조춘원(socio59@netsgo.com) 2003-01-20 15:34:44
KEF는 레이먼드 쿡씨에 의해 1961년에 설립되어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스피커의 명문이다. KEF는 불후의 명기 LS3/5A의 오리지널 유닛 메이커이며, 이미 70년대에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한 음향 분석과 설계를 시작했고, 77년에는 레퍼런스 모델105를 발표하며 우퍼,미드레인지,트위터를 각각 개별적인 인클로져에 수납하는 모듈화 디자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KEF는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과 제품을 내놓으며 스피커 기술 발전을 선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80년대의 KEF의 모델105와 107등의 레퍼런스 시리즈 제품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스피커의 위치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지만, 90년대를 경과하면서 KEF는 보급기 시장에 주력하는 인상을 주었고, 당시 발표한 새로운 레퍼런스 시리즈들도 과거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며 하이엔드 스피커 분야에서는 서서히 잊혀져 가는 이름이 되고 있었다. 물론 KEF의 보급형 스피커들이 훌륭한 가격대 성능비를 자랑하면서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KEF라는 스피커의 명문에 어울리는 새로운 레퍼런스 시리즈가 요구되는 시점이 된 것이다.
명가 재건의 막중한 사명을 갖고 새롭게 발표된 레퍼런스 시리즈는 모두 6개의 모델로구성되어 있으며 멀티채널 사운드의 성장에 발맞추어 2개의 센터채널용 스피커를 포함하고 있다. 6개 제품 모두 KEF 특유의 유니Q를 중심으로 수퍼 트위터와 우퍼를 추가하는 공통의 컨셉을 갖고 있는 제품들로, 제품에 따라 유닛의 크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번에 시청하게 된 203은 플로어 스탠딩형으로는 가장 작은 크기인데, 시리즈내에서는 작은 축에 든다고 해도 203은 높이가 1m가 넘는 중형 이상의 크기를 갖고 있어서 필자의 레퍼런스 스피커인 B&W 시그너처30과 비슷한 크기이다.
최상단에 탄환형의 크롬도금의 금속 인클로져가 위치하는 것이나 류트형의 곡선을 그리는 인클로져의 모습은 확실히 B&W,탄노이,또는 윌슨베네시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KEF만의 독자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다. 203의 최상단 유닛은 트위터가 아니라 초고역을 담당하는 직경 19mm의 티타늄 돔을 사용한 수퍼트위터다.(KEF는 하이퍼 트위터라고 부른다) 수퍼 트위터는 이미 KEF의 플래그쉽 제품인 “모델109 메이드스톤"에서 사용된 바 있는데, 이것은 SACD,DVD-A등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기존 시디의 한계를 넘어선 55KHz까지 평탄한 응답 특성을 갖는다.
고역과 중역은 KEF가 자랑하는 동축형 유니Q 유닛이 담당한다. KEF는 트위터를 미드레인지 중앙에 배치하는 동축형 구조를 사용하여 고역과 중역간의 위상차를 없애고, 중고역간의 밸런스가 좋은 자연스러운 재생음과 넓은 스테레오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역은 165mm(6 1/2인치) 유닛 2개가 담당한다. 인클로져 내부는 각각의 우퍼를 위해 분리되어 있어 인클로져 내부에서 발생하는 정재파를 방지하고 있다.
레퍼런스203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시청환경에 따라 저역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Boundary Compensation Device다. BCD는 FLAT,CUT,LIFT의 세가지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는데, 필자의 시청환경에서는 공장출하시 상태인 FLAT이 가장 좋았고, 곡에 따라 저역을 1dB 올려주는 LIFT포지션을 선택했다. LIFT의 경우 저역의 양감은 증가하는 대신 다소 탄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저역을 1.5~2dB 줄여주는 CUT의 경우에는 다소 야윈듯한 재생음이어서 만족스럽지 않았다. 스피커 터미널에서 간단히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시청을 해보고 자신의 시청환경에 가장 잘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유용한 기능이다. 스피커터미널은 WBT제로 트라이와이어링이 가능하다.
시청을 위해 소스는 아캄 CD23T,필립스962SA,프리앰프는 코드CPA4000,파워앰프는 헤겔H2,케이블은 디스커버리 시그너처와 DH-LAB 실버소닉,카나리 스타쿼드등을 사용했다.
KEF 레퍼런스203의 음질 경향은 밝고 경쾌한 중고역에 탄력있는 저역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비오비욘디의 화성의 영감(Virgin 7243 5 45315 2 1)에서는 현악기들의 선이 다소 가늘게 느껴지긴 하지만 메마른 재생음은 아니었다. 다양한 솔로악기들의 음색 차이와 작은 음량의 변화가 잘 나타나고, 순간적인 어택이 무리없이 잘 전개된다. 자칫 귀가 아프게 재생되기 쉬운 음반인데 203은 고역 재생에서 절묘한 경계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실비아멕네어의 Sure thing(Philips 442 129-2)에서 보컬의 음상은 평소 듣는 B&W와 비슷한 크기로 단정하게 재생이 되었고, 베이스도 어택과 사라짐이 깔끔하게 전개된다. 다이나믹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레퍼런스레코딩의 라흐마니노프(RR-96CD)와 SACD로 재생한 텔락의 1892년 서곡(SACD-60541)의 폭발적인 대음량을 밸런스가 흐트러지지 않고 재생해주어 203의 다이나믹스가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체스키의 SACD데모음반(SACD204)으로 시청한 레베카피젼의 스페니쉬할렘은 CD와 비교해 시청자를 감싸앉는 풍성한 공간감, 정확한 이미징, 레코딩 현장의 미세한 기척과 보컬에 붙어 있는 잔향이 듣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와호장룡(코드1,DTS)이나 글래디에이터(코드1,DTS)같은 액션영화에서도 순간적인 충격음과 배경음악들이 위풍당당하게 들려오고, 음악이 좋은 라운드미드나잇(코드3)은 극중에 연주되는 재즈의 흥겨움이 잘 살아난다. 공간이 조금 넓은 사용자라면 영화 사운드트랙 재생을 위해 서브우퍼를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
수퍼트위터를 사용했다고 해서 고역이 과장되거나 하는 일은 없고, 전대역의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 저역의 양을 무리하게 늘리기 보다는 일정한 한계내에서 정확하게 통제하고자 한 것으로 느껴진다. 대편성 관현악곡이나 영화 사운드 트랙 재생시에는 BCD를 LIFT로 옮기는 것이 더 스케일이 크게 느껴져서 만족감이 높았다. 헤겔 H2(150W,8옴)파워앰프로 구동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는데. 만족스런 재생을 위해서는 적어도 100W급 이상의 견실한 앰프로 매칭시키는 것이 좋겠다.
레퍼런스203은 밸런스가 좋은 고급스런 음으로 신세대 KEF사운드를 대표하는 스피커로 부족함이 없었다. 하이엔드 2채널과 5.1채널 영화사운드의 병행을 원하는 사용자라면 레퍼런스 시리즈의 순정조합으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음새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된 Genuine Cherry 마감의 인클로져가 귀뿐 아니라 눈도 만족시키는 스피커라는 것을 꼭 언급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