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원(socio59@netsgo.com) 2003-05-16 19:07:26
홈시어터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은 갈수록 짧아져서,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 이름에 붙일 숫자가 부족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제조사들은 AV리시버들의 새 모델이 나올 때 마다 새로운 디코딩 포맷 채용, 파워앰프의 출력, 숫자 증가, DA컨버터의 샘플링 주파수 향상 등등의 이유를 붙이고 있다. 돌비 프로로직에서 돌비 디지털로, 그 다음에는 DTS가 도입되었고, 돌비디지털EX, DTS-ES등 새 포맷에 따라 서라운드백 채널이 추가되었다. DAC도 48k에서 96k, 192k로 바뀌고, 여기에 SACD나 DVD오디오를 위한 아날로그 멀티채널 입력이 기본으로 장착되고 있다. 그 밖의 변화라면 돌비프로로직2와 DTS 96/24가 추가된 점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앰프들의 음질이 얼마나 향상되었는가는 의심의 여지도 있지만, 수년째 이들 제품을 따라가 본 경험에 의하면, 비싼 값에 새로 산 앰프가 금방 구형이 되는 아픔이 있긴 하지만, 분명 AV리시버들의 성능이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사실 새로운 서라운드 디코딩 포맷의 채택으로 음질이 좋아졌다기 보다는 치열한 경쟁과 판매량의 급증에 따라 점차 고급의 부품과 오디오 중시의 설계가 행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가격대의 2채널 앰프에 비해 아직 AV리시버의 음질이 열세에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온쿄의 NR900처럼 놀라운 음을 들려주는 기기들이 있어 이제는 AV리시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온쿄 TX-NR900은 TX-DS898의 후속기종으로 상급기인 TX-DS989와 함께 인테그라 시리즈로 구분이 된다. 989는 DSP등에 대한 유상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실시한 바 있는데, 처음부터 새롭게 디자인하여 개발한 제품으로는 NR900이 사실상 최상급기 역할을 하게 된다.
NR900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신 서라운드 포맷을 모두 디코딩할 수 있다. THX프로세싱도 탑재하고 있는데, 상급기 보다는 좁은 공간을 위한 포맷인 THX셀렉트 인증을 받았다. THX셀렉트는 울트라 규격에 비해 파워앰프의 출력은 줄어들지만, THX의 기본적인 기능인 리이퀼라이제이션, 팀버매칭, 서라운드 디코릴레이션, 서브우퍼 크로스오버는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가정이라면 굳이 울트라, 셀렉트 여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NR900의 새로운 사양으로는 “VLSC(Vector Linear Shaping Circuitry)”라는 새로운 DA컨버터와 인터넷에 연결하는 넷튠 기능을 탑재한 점이다. VLSC는 온쿄가 2년간 개발한 신기술이라는데, DA변환과정에서 생기는 펄스성 노이즈를 감소시켜서 보다 정확한 원음을 재생할 수 있다고 한다. 넷튠은 인터넷에 연결하여 인터넷 라디오, MP3,WMA 파일을 재생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별도의 라우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얼마나 효용성 있을지는 의문이다. 리뷰시에도 넷튠 기능을 테스트해 보지 못했다. 이밖에 SACD, DVD오디오 등에 대응하는 광대역 재생 기술인 “WRAT(Wide Range Amplifier Technology)” S/N비 향상을 위한 “옵티멈 게인 볼륨(Optimum Gain Volume)”회로 등 온쿄 고유의 기술이 모두 투입되어 있다. DA컨버터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업샘플링 기능이 마련되고 있고, 2채널 스테레오 재생 음질을 높이기 위한 “퓨어 오디오” 기능 역시 준비되어 있다. “퓨어 오디오” 버튼을 누르면 앰프의 비디오 관련 회로는 모두 꺼지고, 순수한 2채널 인티앰프로 동작하게 된다.
파워앰프는 2개의 서라운드백 채널을 포함하여 110W(8옴 20Hz-20kHz)출력의 7채널 앰프를 탑재하고 있다. 서라운드 백 채널은 멀티룸 시스템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
비디오 스위칭은 60MHz 대역을 가진 컴포넌트 입력단자 2개를 제공한다. 이정도 대역이면 480p의 DVD 신호는 충분히 열화없이 시청할 수 있으며, HDTV신호도 무리 없이 스위칭할 수 있다.
리모컨은 전통적인 온쿄 제품 그대로 인데, 전작인 898의 국내 버전에서 고급 CHAD 리모콘을 제공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아쉬운 부분이지만, CHAD 리모컨이 원래 500달러 가격의 옵션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NR900 리모컨이 경쟁 제품보다 떨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시청기기는 소스에 필립스963SA, 스피커는 B&W 시그너처30, 트라이앵글 셀리우스EX(프론트),노틸러스 HTM1, 섹탄EX(센터), 사운드 다이내믹스 RTS-5(서라운드), RTS-C1(서라운드백), 야마하 SW800(서브우퍼)을 사용했다. 케이블은 DH-Lab과 카나레, 벨덴 제품을 사용했다.
퓨어 오디오 모드로 2채널 시디를 들어보면 해상도가 높으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고역 표현에 놀라게 된다. 해상도를 높이다보면 자극적인 음이 되기 쉬운데, NR900의 음은 고급 하이파이 오디오에서 느낄 수 있는 투명하고, 열려 있는 고음을 들려주었다. 현악기의 작은 음량과 음색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재생해주며, 대편성 관현악곡의 음장도 넓고 깊게 펼쳐진다. 퓨어 오디오를 켰을 때와 일반 스테레오 재생을 비교해 보면 미세하게 퓨어 오디오 모드에서 더 S/N비가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약음시의 섬세한 표현이 퓨어 오디오 모드 쪽이 더 좋았다. 즐겨듣는 실비아 멕네어, 레베카 피젼의 보컬이 아주 생생하게 들리는데, 레베카 피젼의 음반에서 자연스러운 잔향과 함께, 녹음시에 들어간 작은 소음까지 선명하게 들려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NR900의 뛰어난 성능은 영화 재생에서도 빛을 발한다. “블랙호크다운”이나 “글래디에이터”같은 액션물에서도 엄청난 음량으로 재생되는 효과음, 배경음악, 대사가 함께 어우러지면서도, 각각이 모두 명료하게 들려온다. 비슷한 사양을 갖춘 하급기인 SR800과 비교하면 대음량에서의 저음의 무게감이 좀더 좋고, “에너미라인즈”같은 타이틀에서 보다 선명하고, 빠른 이동감이 느껴진다. DSP를 활용한 음장 모드를 자랑하는 경쟁제품에 비교해도, 음장의 깊이나 서라운드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자면 클라세의 SSP75로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순도 높은 재생음 때문에 영화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바로 그런 느낌이다. (물론 NR900은 클라세의 프로세서+파워앰프 조합에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다...)
그동안 소니 555ES처럼 100만원대에서 탁월한 음질을 갖춘 제품들이 있어 각사의 플래그십 모델을 제외하고는 200만원대에서는 딱히 추천할 만한 기기를 찾기 어려웠다. 아캄이나 로텔의 AV리시버도 좋은 음질을 갖고는 있지만, 유저 인터페이스나 사양 면에서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존재감이 흐려져 가던 200만원대 AV앰프에서 온쿄 NR900은 단연 돋보이는 우등생이다.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100만원대의 제품들과 차별화된 음질로 경쟁사의 플래그십 제품과 당당히 비교할 만한 음질을 가졌다. 솔직히 온쿄가 TX-DS989의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NR900을 들은 다음엔 과연 업그레이드된 989가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그리고 앞으로의 새로운 온쿄의 음에 커다란 기대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