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현(evaa@hitel.net) 2004-11-25 02:45:36
아캄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A/V 관련제품을 생산해 왔다. 대체적으로 모듈 형식의 기판을 제품에 삽입하여 스테레오 제품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식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DAVE 모듈이 있다. 이 모듈을 장착하면 스테레오 프리앰프나 인티앰프는 멀티채널 프로세서 역할을 하며 별도의 파워앰프를 통해 파워앰프 채널을 확장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개념은 지금도 유효하며 FMJ나 DiVA 시리즈의 인티앰프 혹은 프리앰프에 별도의 멀티채널 입출력 모듈을 장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아캄의 본격적인 A/V 시장 진입은 최초의 A/V 리시버 AVR-100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프로세싱이나 기능의 제공보다는 음질 자체에 충실했던 제품으로 사양에서는 뒤쳐지지만 음질은 뛰어나다 는 평을 받은 제품이다. 지원 포맷을 조금 더 확장한 AVR-200을 출시한 후 아캄은 급격하게 단계를 높여 하이엔드 프로세서와 멀티채널 파워앰프인 AV-8과 P-7을 출시해 호평을 받는다. 그러나 AVR-200에 대한 업그레이드는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접근 가능한 A/V 앰프 라인업에서 아캄은 철지난 제품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등장한 AVR-300은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최신 사양으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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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R-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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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앰핑
7채널 파워앰프를 탑재한 AVR-300은 일단 채널수에서의 열세를 적극적으로 만회했다. 일본 업체들과 달리 전통적인 영국의 스테레오 제품 제조사들은 파워앰프의 채널 확장에 보수적이었는데 AVR-300을 통해 양적인 면에서의 열세를 완전히 극복한 셈이다. 물론 일본 제품 중에는 야마하처럼 프론트 이펙트 채널을 통해 더 많은 채널 확장을 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프론트 2채널의 출력을 나누는 변칙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확장에서의 아쉬움이라는 쓴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졌다. 현실적으로 6번째 채널부터는 사용자수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여전히 5채널 파워앰프로 충분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같은 값이면 확실한 현재보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려는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현재 놀고 있다 하더라도 2채널의 파워 앰프를 더 확보함으로써 안심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AVR-300은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고 좀 더 근사한 선물을 마련해 놓았다. 바로 서라운드 백 2채널을 프론트 채널로 전환하는 바이앰핑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캄이 지금까지 생산해온 거의 모든 제품들이 100와트 이하의 출력을 가지고 있다. 아캄은 자사 제품의 출력을 보완하기 위해 바이앰핑을 통한 출력확장의 기회를 늘 제공해 왔는데 AVR-300에서도 대부분의 사용자들에게 보험 역할밖에 못하는 서라운드 백 2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뒤늦게 뛰어든 시장에서 앞서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인 셈이다. AVR-300의 사양을 보면 2채널 구동시 전대역에서 0.2%의 왜율로 120W의 출력을 낼 수 있는데 납득할만한 왜율로 측정할 경우 더 낮아질 것이며 8옴과 4옴에서 동일한 측정치이므로 낮은 부하 구동에 불리한 제품임을 알 수 있다. 바이앰핑을 시도하면 7채널 모두를 구동하는 셈인데 이 때 출력은 1kHz에서 0.2%의 왜율로 100W가 되므로 바이앰핑을 하는 프론트 채널은 200W가 되는 셈이다. 전대역을 대상으로 측정하면 더 낮아지겠지만 120W보다는 높아질 것이며 스테레오 재생에서는 4채널만 운용하는 것이므로 전원부의 부담이 덜 간다. 어찌되었건 바이앰핑을 통해서 부족한 출력을 조금이나마 보충할 수 있다.
최신 디코딩 포맷 지원
일곱 개의 채널을 모두 사용할 경우 7채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세싱이 필요하다. 타이틀 자체에 7채널 오디오가 수록되어 나오는 경우는 아직 없기 때문에 추가된 서라운드 채널을 활용할 수 있는 확장 기술이 필요한데 아캄은 돌비 프로로직 IIx 디코딩을 지원함으로써 후방 2개의 스피커가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는 캔디 신세는 면하게 해주었다.
아캄의 리모콘에도 불이 들어온다.
DiVA 시리즈가 생산되면서 전통적으로 채택해 온 회색 리모콘이 드디어 백라이트를 지원하는 모델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백라이트 버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 버튼이나 누르면 불이 켜진다.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밝은 경우에 불편하다. 첫 번째 누름은 무조건 라이트를 켜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동작은 2번째 누름부터 이루어진다. 이 부분은 좋아해야 할 지 싫어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어두운 밤, 즐거운 영화감상 시간에 죄다 같은 크기의 콩알만한 버튼을 이리 누르고 저리 누르고 하는 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점은 감사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DV-79에도 해당하는 개선인데 OSD 메뉴도 매우 산뜻해 졌다.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된다” 주의에서 “기왕 보는 것 즐겁게” 주의로 디자인 철학에 변경이 있었던 것 같다.
2%의 아쉬움
비디오 스위칭 부분은 좀 아쉬운 부분인데 3조의 콤포넌트 입력과 콤포짓/ S-비디오에서 콤포넌트로의 변환은 나무랄 데 없다. 다만 HDMI 출력을 탑재한 DV-79와 조합하도록 개발된 모델이라면 HDMI 또는 DVI 비디오 스위칭까지 지원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무척 강하게 남는다. 디지털 비디오 스위칭까지 지원했더라면 정말 “완벽한” 제품이 되었을 것이다.
간단 접속
스피커 터미널은 아캄 특유의 BFA 단자이다. 나선, 스페이드 및 바나나 플러그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BFA 플러그를 사용할 때 가장 안전하고 단단하게 접속된다. A/V 리시버 중에서 스피커 단자를 칭찬할 만한 제품들은 의외로 적다. 가격을 불문하고 금도금 단자 자체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튼튼하지 않은 저렴한 단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용 단자를 사용하면 매우 간단하면서도 단단하게 스피커 케이블을 접속할 수 있다. 훌륭하다.
2/3=3(?)
이제 성능에 대한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동사의 인기모델 A-85 세 대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파워 앰프 1채널과 멀티채널 디코딩 및 튜너가 덤으로 따라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잠깐! A-85 세 대의 가격은? 500만원 가까이 된다. 그렇다면 AVR-300의 가격은? 인터넷 쇼핑몰 가격을 참고하면 300만원 조금 넘는다. 매우 간단히 설명되었으리라 믿는다. 2/3의 가격으로 동일한 성능을 보여주면서 덤으로 이것저것 딸려 온다면 게임은 끝난 것 아닐까? 그 동안 하이파이넷을 통해 어지간한 인티 앰프는 부럽지 않을 정도의 음질을 들려준다는 일제 리시버들을 많이 소개해왔는데 AVR-300은 일제리시버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뛰어난 S/N비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선명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음원들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최초의 리시버다. 30년 넘게 훌륭한 앰프를 만들어 온 회사답게 샴페인 골드 제품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한 단계 높은 섬세함을 들려준다. 키스 자렛의 ‘Standards in Norway’(Keith Jarrett Trio : Standards in Norway/ECM)중 ‘Little Girl Blue’를 들어보면 피아노 재생에서 맥을 못쓰는 대부분의 리시버들과 달리 매우 낭랑하게 울려 처지는 건반의 울림을 들을 수가 있다. 특히 높은 음역에서의 산뜻한 울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비욘디와 유로파 갈란테의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집(J.S. Bach : concertos/Fabio Biondi, Europa Galante/Virgin-Veritas)에 수록된 협주곡 G minor(BWV 1056)의 2악장을 들어보아도 이런 섬세한 음색의 표현을 잘 느낄 수 있는데 연주자의 호흡에 따라 변하는 미묘한 음색들을 매우 잘 잡아내어 들려준다. 선명하지만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음색을 들려주는 A/V 리시버들의 전형적인 소리가 아니라 아캄 A-85나 A-32 인티 앰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디테일이 매우 풍부한 음색을 들려준다. 일본 사람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의 부지런함이 따라 잡을 수 없는 노련한 감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 재생에 있어서 이만큼 뛰어난 제품은 접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단점은? 바로 위의 한 마디에 숨어 있다. 아캄 A-85를 세 대 쌓아놓고 듣는다는 느낌.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고 베이스에서의 충격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 언제나 느끼는 것인데 아캄의 앰프들은 다이내믹스의 변화가 크지 않은 음악에서는 음량에 상관없이 매우 안정적인 소리를 들려주는데 반해 급격한 다이내믹스의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마지막 한 방의 아쉬움을 남긴다. AVR-300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AVR-300은 A-85나 A-32와는 다르게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는데 바로 바이앰핑을 통해 출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앰핑을 한다고 해서 미니라가 고질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강력한 베이스를 들을 수 있다. 제니퍼 원즈의 Way don deep"을 들어보면 북소리의 타격감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는 음량에서 싱글앰핑의 경우 허전함이 남는 반면 바이앰핑을 한 경우에는 아쉬움이 싹 사라져 버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큰 충격을 느낄 수가 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베이스가 풍성하면서도 쉽게 빠져 나오는 스피커와 매칭 하는 것이 유리한데 얼마 전에 소개한 셀리우스 에스쁘리와 같은 스피커에서는 이런 아쉬움이 좀 더 크게 느껴지는 반면 포커스 오디오의 시그너쳐 888처럼 기본적으로 깊고 풍성한 베이스를 들려주는 제품에서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단단함과 순간적인 임팩트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제품이다.
그런데 이런 아쉬움은 사실 전면 풀 레인지 스피커를 통해 스테레오 재생을 할 때 느껴지는 것이고 멀티채널 재생에서는 서브우퍼의 도움을 받아서 베이스의 약점은 거의 문제되지 않는다. 서브우퍼와 같이 사용한다면 멀티채널 시스템에서는 정말 스테레오앰프 3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들 정도로 깨끗한 채널 분리도와 자연스럽고 섬세한 서라운드 음장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별다른 프로세싱 기능을 갖춘 것도 아닌데 전후좌우 음원의 이동이 매우 정밀하게 표현된다. 매우 낮은 노이즈 플로어 덕택에 각 채널 사이사이의 음장이 매우 입체적으로 잘 살아나기 때문이다. THX 데모 디스크의 소스들을 재생해보면 음원이 이동할 때 툭툭 튀는 듯한 느낌 없이 매우 정밀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글라디에이터의 초반부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화살이나 캐터펄터 탄환의 순간적인 음원의 이동도 궤적을 그릴 수 있을 만큼 매우 정밀한 단계를 표현해주며 진주만의 첫 번째 공습 장면에서 전투기의 움직임도 대단히 실감나게 표현된다. 또한 영웅이나 와호장룡과 같은 우협 영화에서 칼이 부딪칠 때의 울림은 칼에 베일까봐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만들 정도로 깨끗하고 섬세하게 재생된다. 다만 멀티채널에서도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선이 굵지 않기 때문에 데논의 제품들처럼 두터운 장막에 둘러 싸여 있다는 느끼을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음장의 입체감과 투명함에서는 그 어떤 리시버도 따라오기 힘든 수준에 올라있다. 아캄 인티 앰프 3대의 2/3 가격으로 3대와 동일한 성능에 멀티채널 프로세싱까지 지원한다고 생각하면 몇가지 아쉬움 및 리시버로서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장점이라면 동사의 인티앰프를 여러 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완성도 높은 음질을 들려준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동사의 인티앰프들과 같은 강력함의 부족인데 스피커 선택 및 바이앰핑등의 부가 기능을 통해 오히려 동사의 인티 앰프들보다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가장 고민하게 하는 부분은 역시 가격이다. A/V 리시버에 300만원 정도를 투자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뛰어난 스테레오 제품과 홈시어터 제품을 동시에 갖고 싶은 사람한테는 한 방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몇 안 되는 제품이다. 특히 번쩍번쩍 샴페인 골드로부터 벗어나 좀 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듣고 싶다면 정말 매력적인 제품이다. 아캄의 매력을 한곳에 결집시킨 뛰어난 제품이다. 추천 정도는 초강력 급. 차기작에서 디지털 비디오 스위칭과 강력한 펀치가 보완되어 슈퍼 울트라 급의 추천 제품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 잡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