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한주(raker@hifinet.co.kr) 2003-04-11 20:56:26
캐나다에 기반을 둔 심오디오는 20년간의 역사를 통해 전 세계에서 최고급 하이파이 제품으로 명성이 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많이 알려진 회사는 아닌 편이다.
심 오디오에서는 1997년 이후로 동사의 레퍼런스급 오디오 제품들을 MOON 이라는 시리즈로 하나씩 발표하고 있다.
문 시리즈에 이클립스 CD플레이어가 포함되기 이전에는 심 오디오는 앰프가 중심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만듦새
이클립스 CD플레이어는 일체형 CD플레이어지만 전원부와 몸체가 분리되어 있는 형태여서 마치 분리형 기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몸체와 전원부 사이에는 특수하게 쉴드된 DB15케이블을 사용하여 마치 탯줄을 통한것처럼 전원을 공급하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에 들어가는 블랙박스가 연상되는 이클립스의 전원부에는 아날로그 섹션에 들어가는 것과 디지털 섹션에 들어가는 토로이덜 트랜스포머가 두 덩어리로 나뉘어 있으며 여러 개의 대용량 평활 콘덴서가 달려있으며 케이블의 각 핀마다 아날로그 신호를 담당하는 기판에 공급되는 부분과 디지털 신호를 담당하는 기판에 공급되는 부분으로 나뉘어서 본체에 전원이 공급된다. 전원부의 무게는 웬만한 영국제 소형 인티앰프에 육박한다. 전원부의 앞면에는 작고 그다지 밝지 않은 푸른색 LED가 달려있고 전원 스위치는 뒤에 있다. 제작사의 발표에 의하면 음질을 위해서 항상 켜져있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참고로 항상 켜져있을 때의 전원소모는 시간당 18와트라고 한다.
이클립스 본체의 네 귀퉁이에 달려있는 원통형 기둥 아래로는 콘이 장착되어 있어 바닥에 커플링시키도록 고안되었다. 이는 메커니컬 그라운딩을 통해서 음질적인 착색을 일으키는 진동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원통형 기둥 주변을 잇는 방열핀의 모습은 자칫 단순해 질 우려가 있는 외양을 힘차고 열정적이고 자심감이 넘치는 디자인으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면패널은 10밀리미터 두께의 알루미늄을 깎은 것인데 실버와 검정색 마감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만듦새와 마감은 잘 만들어졌다. 정교한 마감과 정밀한 이음새를 보면 오랜시간동안 사용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특별히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듬직하며 고급스러움이 은은히 풍겨진다.
전면부의 조작창은 큼직한 적색 LED를 사용하여 시력이 신통치 않은 사람들조차도 먼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클립스 설계팀은 이클립스에 우수한 음질과 안정적인 동작을 위해 탑 로딩 방식을 선택했고 환상을 주는 복잡하고 기이한 형태의 덮개보다는 원천적으로 고장이 일어날 이유가 없는 슬라이드 개폐방식을 선택했다. 이 슬라이드식 덮개는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여서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어린아이들이 알아서 열었다 닫았다 할 정도다. 슬라이드를 열고 알루미늄 클램프를 빼고 CD를 로딩시킨 후 알루미늄 클램프로 CD를 다시 덮어서 눌러주도록 되어 있다. 동작 전에는 잊지 말고 슬라이드 덮개를 닫도록 하자.
그리고 나서 조작버튼을 찾게 된다. 대개의 톱로딩 제품들은 조작스위치는 전면패널에 두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이클립스는 전면패널에 기본조작버튼이 달려있지 않다.
이클립스의 설계자들은 타사의 제품들에 빠져있는 맹점을 발견하고 이클립스에 보다 직관적이고 인체공학적인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주는데 성공했다. 이클립스의 탑로딩부 바로 옆쪽을 보면 기본 조작 스위치가 달려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동조작 버튼들을 슬라이드식 탑로딩과 같은 면에 둔 것은 보다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지는 본체의 조작부에 비하자면 리모컨을 보면 도무지 같은 팀에서 만든 것인지 의아해 지는 부분이 있다. 알루미늄 덩어리로 깎아놓은 리모컨은 프리앰프와 CD플레이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CD플레이어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길고, 지나치게 무겁다. 버튼 배열도 썩 잘 정리 되어 있지 않으며 CD플레이어에만 사용하기에는 불필요한 버튼들이 많다. 그렇다고 CD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버튼이 부족하다. 가령 듣고자 하는 CD에 첫곡에 변주곡이 실려있지만 두번째 곡부터 듣고 싶다면 다음트랙 버튼을 스무번을 눌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한 적외선의 수신 각도도 지나치게 좁다. 이것은 본체 적외선 수신부의 문제라기 보다는 리모컨의 적외선 발신부의 문제라고 봐야겠다. 호환되는 다른 제품의 적외선 리모컨으로 동작시켜 보면 이클립스의 적외선 수신 각도가 대단히 넓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튼 무게도 무게려니와 조준도 어려워서 한 손으로만 조작하기에는 로보캅의 팔을 갖고 있거나 볼링할 때 사용하는 아대를 차지 않은 이상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아마도 두 손으로 공손히 사용하는 편이 나을것 같다.
후면에는 흔한 RCA 동축 디지털 출력이나 옵티컬 디지털 출력이 달려있지 않은 대신 BNC 동축 디지털 출력이 달려있다. 그리고 BNC 동축 디지털 입력도 달려있어서 이클립스를 트랜스포트처럼 사용하거나 DA컨버터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대개의 하이엔드 CD플레이어가 그러하듯이 이클립스에서도 밸런스드(XLR단자)와 싱글엔디드 (RCA단자)를 모두 지원하고 있다.
이클립스에 사용된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은 필립스 CD-PRO2다. 메커니즘은 바닥면과 연결된 기둥에 해먹처럼 스트립으로 매달려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외부로부터의 진동 영향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것이다.
D/A컨버터는 24비트 버브라운 PCM1704 4개를 사용하여 채널당 2개씩 배분하고 각각의 채널마다는 풀밸런스로 처리하도록 물량공세를 폈다. 이처럼 채널마다 DA/컨버터 칩을 분리하게 되면 좌,우 채널의 분리도가 향상되며, 풀 밸런스로 처리하게 되면 컴포넌트간의 신호전달시에 오류를 교정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다만 풀 밸런스 구성의 잇점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프리앰프의 입력단이 풀밸런스 설계여야 한다.
이클립스를 기본연결하여 CD를 재생하게 되면 CD에서 읽혀진 디지털 신호는 본체에서 디폴트로 선택된 패시픽 마이크로닉스사의 PMD100 HDCD디지털 필터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클립스 설계자들은 이클립스의 BNC 디지털 입력단자를 통해서는 PMD100 HDCD디지털 필터가 아니고 버브라운 DF 1704 필터를 통과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경우 16비트 44.1kHz CD표준 디지털 오디오뿐만 아니라 24비트 96kHz의 외부 디지털 입력도 받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런 기능을 응용해서 디지털 출력과 디지털 입력을 75오옴 동축 BNC 디지털 케이블로 점퍼링하면 HDCD디지털 필터를 회피할 수 있으며 버브라운의 DF-1704 필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이럴 경우 HDCD필터를 사용한 것 보다 해상력이 향상되고 다이나믹 레인지가 커지게 된다고 한다.
들어보기
언밸런스드 케이블로 연결해서 청취했다. 참고로 이런 기본연결법에서는 PMD100 HDCD디지털 필터가 디폴트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밸런스 연결에서도 마찬가지임)
한마디로 이클립스는 얌전한 소리를 내주는 CD플레이어였다. 저역의 무게감은 좋은 편이고, 고역의 뻗음도 괜찮은 편이고 전체적으로도 비교적 투명하게 잘 내주는 편이다. 음성은 꽤 따뜻한 편이고 친근감을 주는 편이다. 일부러 청취자를 유혹시키기 위해서 억지로 숨가쁜 소리를 내주는 자극적인 소리를 내주지는 않는다. 소리의 결을 거슬려서 까실하게 일으키는 편이라기 보다는 결을 잘 쓰다듬어서 잘 눕혀놓는 얌전한 편에 가깝다. 드럼이나 타악기의 소리는 강렬하지만 흥분되기 보다는 잘 제어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이정도 액수의 제품에 어울리는 소리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보여진다. 마치 레가의 주피터 2000CD플레이어에 약간의 해상력, 약간의 정숙성, 약간의 화려함, 약간의 다이나믹 레인지가 추가된 듯한 느낌이다. 만일 이 제품이 3000불짜리 제품이었더라면 이정도로도 대단하다고 여기겠지만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제품이라면 어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맛을 보여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최상급의 CD플레이어들은 분명히 다른 제품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무언가를 장기처럼 가지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BAT라던가 메리디안처럼 화성적인 배음을 잘 살려서 아름답고 부드럽게 소리를 매만져 들려준다거나 와디아처럼 칼날같이 선명한 이미징을 선사한다거나 코드처럼 부드럽고 풍성하고 힘이 실린 소리를 내준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족
제품리뷰 의뢰시에는 수입상을 통해서 아무런 정보를 전해들은 바가 없었으며 BNC 디지털 케이블도 제공받은 바가 없었지만 해외의 평가자료를 찾아보니 디폴트로 사용되는 PMD100 디지털 필터를 회피하여 버브라운 DF1704디지털 필터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보다 역동적이고 보다 해상도 높은 소리를 맛볼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HDCD디지털 필터는 HDCD가 아닌 일반 CD의 재생시에 해상도가 약간 줄어들며 포커스도 줄어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제품에 스위치를 달아서 쉽게 HDCD필터를 바이패스하게 만들어줬다거나 RCA단자로 된 S/PIDF 입력단자를 지원해줬더라면 일반적인 동축형 디지털 케이블이나 비디오 케이블을 가지고 HDCD필터의 바이패스 효과를 테스트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해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아쉽게도 필자는 리뷰기간이 거이 끝날 즈음에야 이런 정보를 알게 되어 75오옴으로 터미네이션된 BNC동축 디지털 케이블을 구해서 점퍼링 테스트해 보지 못했지만 이 제품을 데모하거나 사용하시는 분들께서는 반드시 점퍼링을 테스트해 보시기를 바란다.
사족으로 심오디오의 사장 진 풀린은 버브라운 DF1704 필터를 사용했을 때 HDCD로 인코딩된 디스크를 재생할 때 조차 PMD100 HDCD필터보다 음질면에서 낫다고 인정하면서도 HDCD 필터를 디폴트 필터로 사용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PMD100 HDCD필터의 좋은 점은 매우 열악한 레코딩 (대개의 경우 팝에 해당된다)에서 쉽게 나타나는 매우 공격적인 고역과 중역에서의 그레인을 약간 듣기 좋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나쁜 소리를 가진 디스크도 듣고 즐길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잃은 것이 있는데 해외의 다른 리뷰어들은 다음과 같이 손꼽고 있다. 디테일, 선명성 그리고 투명성에서 눈에 띌만큼 손상받게 된다는 것이다. 과도응답 소리가 다소 컴프레스 되어 있어서 약간 둔중한 느낌이 들며 전체적인 성능은 소극적이고 리퀴드하게 들린다. 그리고 원근감도 바뀌게 되어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듯이 들리고 음장은 축소된다고 밝히고 있다.
마무리
비록 이클립스 CD플레이어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덜 사용자 친화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옥의 티를 두어 군데 가지고 있지만 그중 하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디지털 케이블 점퍼링을 통해서 소리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아쉬움을 달래볼 수 있겠다. 나머지 리모컨에 대한 부분도 만능 리모컨이나 호환 리모컨으로 어렵지 않게 해소될 것 같다.
심 오디오의 문 시리즈는 시간이 경과함에도 바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듬직한 외관, 정교한 만듦새와 눈에 띄는 음질상의 성능이 잘 배합되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음악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엔지니어링 능력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그 결과로 심 오디오의 사용자는 매일 사용하면서 손에 스치는 제품의 몸체를 통해서 촉각으로 즐기고 좋은 소리로 귀를 즐기고 그리고 오래가고 품격있고 제품을 통해서 프라이드까지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정된 청취기간의 시청만으로는 제품의 깊은 부분까지 특성을 많이 알아내지 못한것 같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사용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