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노틸러스의 예고편
노정현(evaa@hitel.net) 2003-11-17 22:43:40
들어가면서
필자가 늘 궁금해하는 것은 노틸러스 800 시리즈의 후속이 어떤 모델일까 하는 것이다. 노틸러스 800 시리즈가 97년에 선보였으므로 이제는 적어도 mk** 라는 형태의 업그레이드 판이 나올 만도 한 시기인데 B&W는 노틸러스 800 시리즈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노틸러스 800 시리즈는 변화가 없지만 다른 라인업에서는 활발한 모델 교체가 있었다. 일단 30주년 기념 시그너쳐 모델이 시리즈로 출시되었으며 CM 시리즈와 600 시리즈의 3번째 버전을 출시하는 등 웬만한 라인업은 정리된 상태이다. 다음은 800 시리즈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NT 시리즈가 700 시리즈로 먼저 모델 체인지를 단행하였다. 800 시리즈의 기술을 적용해 만들어진 NT 시리즈가 800을 제치고 먼저 진화하는 것은 800 시리즈를 대체할 모델 개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모델명 앞에 아무런 부연 설명이 없이 단순하게 7이라는 숫자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CDM 라인업을 800 시리즈와 근접하게 고급화 한 다음 800 시리즈를 한층 고급화시키려는 포석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새롭게 탄생한 700 시리즈는 몇 가지 면에서 CDM 시리즈와 차별된다.
B&W 703
형식 : 3웨이 4스피커 베이스 리플렉트형
주파수 응답 : 30Hz-50kHz(-6dB)/ 35Hz-25kHz(+-3dB)
감도 : 90dB/m/2.83V
임피던스 : 8Ω(3Ω최소)
크기(mm) : 1007(H)x232(W)x357(D)
무게 : 27kg
기능 및 디자인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클로져 디자인인데 CDM 시리즈에 비해 용적이 약간 더 늘어났다. 스펙상으로 CDM 9NT와 동일한 감도를 지니지만 이 제품의 첫 느낌은 소리가 매우 쉽게 잘 빠져나온다는 것이어서 늘어난 용적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경사진 상판은 전작과 달리 곡면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노틸러스 트위터는 여닫이 식의 보호 캡 안에 수납되어 있다. 이 트위터는 새롭게 개량된 것으로 -6dB에서 50kHz까지 응답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노틸러스 800 시리즈보다 더 확대된 수치로 시그너쳐 시리즈의 그것과 동일하다. 미드레인지 유닛은 가장 개선이 눈에 바로 보이는 부분인데 시그너쳐 시리즈의 유닛과 같이 알루미늄 재질의 페이즈 플러그를 사용한다. 또한 모든 유닛들에는 밸런스드 드라이브(ballanced drive)라는 새로운 기술이 채용되었는데 이는 드라이버가 피스톤 운동을 할 때 보이스 코일과 폴피스 사이의 전류 변화에 따른 임피던스의 변화량을 감소시켜 더 선형적인 피스톤 운동을 보장하는 것으로 가장 최근에 개발한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 외에 크로스 오버에 공심 초크 코일과 필름 콘덴서를 사용하여 한층 고급화 시켰으며 한 개의 합판을 구부려 만든 이어진 상판과 전면 배플은 서로 평행하는 면을 없애서 내부의 정재파를 감소시킨다. B&W 특허의 딤플 플로우 포트는 덕트를 통해 흘러나오는 에어 노이즈를 감소시켜 좀 더 정확한 저역을 재생하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트위터를 노출시켜서 배플에 반사되는 간접음의 간섭을 줄였다. 또 한가지 개선된 점은 부속 스파이크인데 반구형의 스파이크 슈즈를 첨가하여 설치장소의 바닥에 날카로운 스파이크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해 준다. 후면 스피커 터미널은 상급기에 적용된 WBT 단자처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깨끗하게 금도금되어 있으며 바이와이어링을 지원한다.
개선된 사양만으로 보면 노틸러스 800 시리즈 출시 이후 개발된 신기술들이 대거 적용되어 CDM NT 시리즈의 후계자로서 상급기인 800 시리즈의 지위까지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바꾸어 생각해보면 신기술이 적용된 800 시리즈의 후속 모델들이 상당한 진화를 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게 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설치
이 제품의 시청은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이루어졌다. 스피커라는 것이 사실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불가능할 수도 있는 제품이다. 설치 장소와 세팅하는 방법에 따라 응답 특성이 극적으로 변화해서 기기를 구입할 때와 집에서 설치할 때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오는 일이 전혀 놀랍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늘 시청하는 공간에서 들어 보는 것이 기기의 성향을 그나마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파이넷 시청실의 경우 매우 넓기 때문에 간접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저역의 응답 특성도 매우 평탄하게 얻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굳이 집으로 옮기지 않고 시청하였다. 그렇지만 집에 설치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 시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리뷰는 첫 인상에 대한 간단한 시청평 정도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기회가 되면 좀 더 집중적인 시청을 통해 보충 기사를 작성하도록 할 예정이다.
성능
이 제품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노틸러스 800 시리즈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좀 더 듣기 편한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필자는 노틸러스 800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지만 다소 건조한 음색은 언제나 단점이라고 생각해왔다. 703의 경우 NT 시리즈보다는 한 꺼풀 벗겨진 좀 더 투명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노틸러스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지만 더 유연해진 음색으로 듣기에 더 편해진 소리다. 음색의 유연함이라는 것이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703의 경우 고역은 활짝 열려 있으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 없이 매끄럽게 넘어가는 데 중역대의 유연함이 특히 돋보인다. 아마도 시그너쳐 시리즈와 같은 미드레인지를 채용해서 좀 더 왜곡을 줄인 덕분이 아닌가 한다.
비욘디와 유로파 갈란테의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집을 들어보면 강약의 조절은 물론 섬세하며 순간적으로 강하게 스냅을 줄 때 음색이 깨지는 일 없이 그대로 보존되면서 재빠른 트랜지언트를 표현하는 부분은 이 제품이 보다 더 상급기에 가까운 성능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보컬에서도 미드레인지의 깨끗함이 매우 수준급이라는 것을 들려주는데 다이아나 크롤의 “trust your heart"를 들어보면 스튜디오 콘솔 앞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제발 이 순간에 악보만큼은 넘기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부스 안의 모든 상황이 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만큼 생생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보컬의 매끄러움은 시그너쳐 805와 같은 모델과 비교해 보면 다소 뒤처지는데 시그너쳐 805에 비하면 약간 건조하고 따뜻함이 아쉬운 그런 소리이다. 그러나 노틸러스 시리즈의 음색을 상기해 보면 매우 유사하면서 같은 수준의 깨끗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NT 시리즈가 노틸러스에 비해 풍성하지만 중역대의 깨끗함이 다소 뒤처지는, 다시 말하자면 라인업 그레이드의 구분을 느끼게되는 수준이었음에 반해 적어도 703에서는 그런 구분보다는 취향의 차이에 따라 선택할 정도로 상급기의 수준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703이 노틸러스 시리즈보다 마음에 드는 부분은 전반적으로 유연함이 더해지면서 고역이 더 상쾌해졌다는 점이다. 노틸러스 800의 경우 시스템 체인 중 어느 한 곳에는 진공관이 들어가 있어야 섬세함과 함께 화성적인 유려함이 살아나는 종류의 스피커라면(이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노틸러스 800 시리즈의 정확한 재생 능력은 이 라인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 가격대의 제 1 추천 순위 스피커이다) 703에서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초고역의 거북함이 덜 느껴진다. 이것이 광대역의 트위터를 사용하여 트랜지언트특성을 향상시킨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703의 경우 예쁘게 고역 끝을 말아 준다든지 혹은 매끄럽게 다듬어주는 성향은 없으면서도 끝까지 뻗어 올라가는 고역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점 만큼은 800 시리즈의 아래 모델이면서도 800 시리즈에 비해 뛰어난 부분이다.
그러나 다양한 라인업을 가지는 제조사의 제품인 만큼 상급기에 비해 약한 고리가 되는 부분은 바로 베이스의 재생이다. 703은 인클로져의 용적이나 더블 우퍼를 채용한 설계 개념을 의식하지 않아도 매우 깊이 있는 베이스를 드려준다. 다이아나 크롤의 같은 곡을 다시 예로 들면 피아노의 낮은 건반이 시그너쳐 805와 같은 소형 스피커에 비해 확실히 더 깊고 정확한 음정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스피커의 크기에 비해 약간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데 전체적인 밸런스가 매우 평탄하게 느껴지지만 그 때문에 약간 야윈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청감상 매우 평탄한 대역에서 고역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된다는 학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중저역대가 다소 부풀어오르는 것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 더 안정감을 갖게 해준다는 것인데 703의 경우 깊게 떨어지는 베이스에 비해 무게감과 단단한 펀칭이 모자라는 느낌이다. 아무로 나미에의 “the power of love"를 들어보면 리듬감 베이스의 정확함 그리고 믹스된 음원들의 섞임 없는 깨끗한 재생 등에서는 나무랄 점이 없지만 마지막 한 방이 아쉬운데 전체적으로 중저역대가 다소 여윈 경향을 띄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소니의 SCD-XA3000ES에서 느꼈던 그런 아쉬움이라고 하면 비유가 좀 쉬울 것 같다.
글을 맺으며
보통 오디오 제조사에서 라인업을 구성하는 정책을 보면 자사가 개발한 모든 신기술이 적용된 기함급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을 조금씩 다운 사이징 하여 하위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이 통례이다. B&W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충격적인 형태의 오리지널 노틸러스에 차용된 각종 기술의 적용 정도를 달리하여 구성한 것이 현재의 라인업이다. 현재의 라인 업 구성이 조금씩 변화한 시초는 바로 시그너쳐 시리즈의 탄생인데 703은 노틸러스의 하위 모델이 아니라 시그너쳐 시리즈의 기술을 좀 많이 다운 사이징한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이전의 NT 시리즈와 노틸러스 800 시리즈의 중간에 있는 모델이 아니라 성능은 현재의 노틸러스 800 수준으로 끌어 올려놓고 이보다 성능이 향상된 800 시리즈의 후속 라인업이 발매되리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성능을 보여준다. 또한 NT보다 상승된 가격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700 시리즈를 살지 아니면 800 시리즈를 살지는 상당히 갈등할 만한 상황이다. 어디까지나 오디오 제품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과 거주 환경이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지만 B&W가 애호가들에게 선택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NT보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더 향상된 성능을 맛보고 싶고 여전히 노틸러스 800 시리즈의 가격이 부담된다면 700 시리즈는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B&W의 스피커가 자신의 취향이라면 이 스피커는 물론 강력히 추천할 만한 제품이다. B&W의 팬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은 들어보시기 바란다. 바로 이런 소리가 B&W의 매력이다.
P.S. 이번 시청에서 다양한 제품과의 매칭은 시도해보지 못했습니다만 들어보면서 생각나는 제품은 클라세였습니다. NT 시리즈도 그렇지만 이 제품도 대단한 구동력을 요구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파워 앰프의 경우 100W가 깨끗하게 빠져나오는 제품을 사용하면 아무런 불만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파워 앰프로 클라세의 CA 101이나 CA 100과 같은 제품을 같이 매칭해준다면 저역의무게감도 보충되고 풍성한 음색에 디테일도 잘 살아나는 멋진 조합이될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본문에서 빠트린 장점이 있는데 703의 점 음원을 정확하게 위치시키는 능력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본문에서 난데없이 소니의 SCD-XA3000ES를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B&W의 팬인 제 입장에서는 잘 만들어진 제품이 또 하나 출시되었다는 것이 기쁩니다. B&W 매니아들은 꼭 한 번씩 들어보세요. NT의 후속이 이정도 향상되었으면 800의 후속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될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