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acherna@hanmail.net)
서론
B&W는 두말할 필요 없이 세계 최대의 스피커 업체로 압도적인 기술과 자본력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년에는 시그너처 805 스피커가 보기 드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시그너처 805 스피커는 하이파이넷 시청실에 찾아온 유명 스피커들을 줄줄이 K.O 시키면서 필자들이 대량 구입하는 사태까지 일으킨 제품이었다. 작은 체구의 805에 중량급의 스피커들이 나가 떨어지는 것에 많은 분들이 열광했다. 이제는 700 시리즈가 발표된 만큼 좀 더 저렴한 제품에서도 뭔가 좋은 소식을 보내올 때가 된 듯 하다.
그 동안 하이파이 애호가들이 200만원 대에서 북셀프 타입인 805와 CDM 7NT 중 하나를 고른다면 거의 805쪽에 손을 들었다. 새로운 700 시리즈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대해 다른 답을 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아주 매력적인 디자인과 음질로 무장한 704 스피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탠드 필요 없이 저음의 확장성과 다이내믹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B&W의 중급 스피커 라인업인 700 시리즈는 5개의 모델로 구성되었다. 705 북셀프, 704와 703 플로어스탠딩 모델을 중심으로, 센터 스피커 HTM7, 리어 스피커 DS7, 서브우퍼 두 모델인 ASW700, ASW750이 더해졌다. 이번에 소개하는 제품은 3웨이 3스피커의 플로어스탠더인 704 스피커다. 상위 기종인 703과 하위 기종인 705 모델의 리뷰는 이미 하이파이넷에 게재된 바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이전의 CDM이나 CDM-NT에서는 북셀프 스피커가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으며, 플로어 타입의 경우 노틸러스 804와 북셀프 805 스피커에 다소 가려 있던 편이었다. 가격적으로는 근접하면서도 디자인이나 음질에서는 차이를 보였고, 홈 시어터 전용 스피커로 인식된 탓도 있었다. 이번에 700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B&W는 아껴왔던 보물 단지를 남김없이 풀어냈다. 그 결과 성능적으로는 800 시리즈에 아주 근접하게 되었다. 거듭된 모델 체인지의 결실을 얻은 셈이다. 세 자리 수의 번호가 붙여진 것도 바로 800 시리즈에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품 소개
B&W 704 Speaker
개인적으로 700 시리즈 스피커 중에서 싱글 우퍼 3웨이 규격의 704가 가장 균형 잡히고 아름다운 모양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부 패널과 프런트 배플이 곡면으로 이어지고, 뒤편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다.
트위터는 25mm 직경의 알루미늄 진동판이며, 미드레인지 유닛보다 뒤에 설치되어 있다. 트위터 아래에는 노란색의 케블라 콘 미드레인지, 그리고 페이퍼/케블라 콘 베이스 드라이버를 볼 수 있다. 미드레인지와 우퍼에는 밸런스 드라이브라는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704 스피커는 간단히 말해서 705 스피커에 서브 우퍼가 덧붙여진 구성이다. 703 스피커는 더블 우퍼를 탑재한 점에서도 다르지만, 미드레인지 유닛의 진동판에 서라운드를 두지 않았다는 차이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 봤을 때에는 전면과 후면 패널의 길이 차이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청 기기 및 설치
시청 기기로는 SONY의 DVP-NS999ES를 SACD 플레이어와 CD 트랜스포트로 하고, Classe의 SSP-60 AV 프로세서, CAV-180 5채널 파워앰프를 사용했다. 또 같은 소스에 VTL의 ST-85 파워와 TL-2.5 프리앰프, Krell KAV-400xi 인티앰프로도 비교해서 들어봤다.
감상
이미 여러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스피커로서 필자의 높아진 기대도 충분히 감당해 낼 성능을 갖고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풍성한 밸런스, 중역 대의 충실한 응답 특성, 자연스러운 질감 등이 704 스피커를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해외 잡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스피커의 고음은 대단히 정보량이 많은 편이다. 무덤덤한 인상의 노틸러스 스피커와 달리 704 스피커의 고음은 아주 유려하면서도 화려하게 들리는 편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얼핏 시그너처 시리즈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 소스기기나 앰프의 특성 차이를 상당히 예민하게 들려줬다. 두 세대 전 모델인 CDM 7 스피커의 경우 중 고역의 질감이 조금 껄끄럽다는 평을 해외에서 듣곤 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800 시리즈 스피커 이상으로 듣기 편해진 듯 하다.
저음의 양이나 다이내믹스는 넓은 거실에서도 충분함을 느낄 것 같다. 상급 기종과 달리 구동하기에도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시험 삼아 연결해본 온쿄 SA-502 AV 리시버로도 아주 듣기에 좋은 소리를 내줬다(온쿄의 저가형 리시버는 대단히 뛰어난 제품으로 하이파이넷에도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싶다). 또 VTL의 ST85에 연결해 봤을 때에도 진공관 앰프의 장점만 돋보이고 단점은 거의 두드러지지 않았다. 고역에서는 진공관의 여린 불빛을 연상시키듯이 현악기의 재생에서 은은한 여운을 들려줬다. 중역대의 질감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서 재즈 음악의 보컬이 보다 현실감 있게 들려왔다. 중 고역 대에 비하면 저음의 해상도라든지 팽팽함은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다. 165mm 직경의 우퍼가 담당할 수 있는 저음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추가된 우퍼와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 캐비닛에서 얻어지는 풍성한 저음은 북셀프 스피커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정말 다른 매력이다.
다른 스피커와의 간략한 비교
틸의 CS2.4, 그리고 KEF의 새로운 KHT9000ACE 스피커와 비교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틸에 비하면 중 저역 대가 조금 여위지만, 달콤하면서도 화려한 고음, 풍성한 중간 저역 대 등으로 감칠맛나는 재생음이 일품이었다. 반대로 알루미늄 캐비닛을 사용한 KEF와 비교하면 조금 가라앉은 듯 차분하고 중 저역대가 부푼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두 스피커 사이의 중용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셈인데, B&W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맞대 놓고 들은 것은 아니지만, 이 가격대의 플로어 타입 스피커로 필자가 사용했던 트라이앵글 셀리우스 202EX와 비교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704쪽이 한 단계 위로 올라섰다고 본다. 704의 트위터가 보다 유연하면서 자연스러운 음색을 지니고 있다. 셀리우스의 경우 저음이 여윈 편인데 비해 704는 훨씬 풍성하고 확장성에서도 뛰어나다. 다이내믹스도 704 쪽이 한 단계 더 뛰어나다.
상급 모델인 노틸러스 800 시리즈의 804와 비교해도 704 쪽이 음악을 좀 더 즐겁고 생생하게 들려 주는 매력이 있다. 804는 모니터 적인 성향이 강하여 소리가 더 차분하고 좀 재미없게 들리는 편이다. 물론 노틸러스 804의 경우 다이내믹스가 더 확보되어 있고, 저음에서도 보다 집중력 있고 정교하다. 유닛이 하나 더 추가된 만큼 앰프를 다소 가리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론
B&W가 이번의 700 시리즈에서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704는 700 시리즈 제품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뛰어난 제품이다. 과거 B&W의 고집스러운 점이 사라지고, 유연하면서도 음악적이다. 또 AV에도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200만원대 플로어 형 스피커의 레퍼런스로 손색이 없다. 그런 점에서 704의 등장은 예전 CDM 1NT나 노틸러스 802 스피커의 존재감을 연상시킨다. 현재도 그렇도 당분간 이 가격 대의 플로어 스탠더 중에서는 경쟁자가 거의 없을 것 같다. 800 시리즈 스피커처럼 롱런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