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래픽한 이미징 재현실력 탁월
문한주(raker@hifinet.co.kr) 2003-01-26 09:17:23
같은 대상을 놓고도 사람마다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한 의학의 경우에도 양의와 한의 사이에는 패러다임과 접근방법은 워낙 다르다. 음악이 연주되는 현장의 이벤트를 저장해서 재생하는 일련의 사이클을 다루는 레코딩과 오디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회사마다 음악이나 소리에 대한 제각기 다른 감수성과 가치관을 최종 결과물에 반영하고 있다.
모사된 세상을 재현하는 오디오 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이라는 것도 자신들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가치관과 비젼이 최대한 구현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다시 말해서 재생 장치 개발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는데 모순된 상황에 빠져 있을 때 문제를 풀기 위해서 타협해야 하는 순간에서 취사선택을 하게 하는 기준은 제작자의 감수성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다.
어떤 사용자는 신제품 오디오를 수십년 전에 개발이 끝난 회로를 재탕해서 사용하고 어디서나 구입이 가능한 부품들을 사용한 것이라 기껏해봤자 껍데기나 달라지겠지 하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렇게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과격하고 획일적인 사고에는 동조하고 싶지 않다.
같은 원리와 회로를 참고하고 부품을 사용하더라도 사용되어질 방법과 재료를 선택하는 감식력과 보유 기술과 경험에 따라서 재생음의 격차가 생긴다. 그것은 컴퓨터나 디지털회로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고 아날로그회로을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다. 어쨌건 간에 그런 결과물로 오디오 동호인들은 여러 회사의 가치관과 재생음에 동조하는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하게 된다.
CD플레이어의 경우는 다른 오디오 제품과 다르게 디지털 파트가 포함되어 있다. 한동안 디지털 부문에 기술 리더쉽을 가진 회사가 CD플레이백 시스템에 큰 영향력을 가진바 있었다. 몇 년 전에는 그것이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반도체와 디지털 부문의 기술이 숨가쁘게 발전해왔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만일 디지털 파트와 아날로그 파트 중 어느 부문이 음질에 더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가? 라고 다시 물어본다면 어떤 답변이 나오게 될까? 아마도 회사마다 놓인 입장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답변이 나올 것이다.
아바론 스피커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에어사는 세계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첫손꼽는 레퍼런스급의 프리앰프 K-1x를 만든 회사로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다. 에어에서는 위에서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현재의 디지털 부품은 수준이 높아져서 DSP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칩 메이커에서 제공하는 부품을 사용하더라도 (버브라운의 DF 1704) 예전에 DSP기술을 사용해야 구현이 가능한 정도의 수준의 성능에 근접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지금은 아날로그 섹션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성능이 크게 좌우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와이드스크린 2001년 6월호 Ayre D-1 DVD/CD플레이어 리뷰에 포함된 에어사의 찰스 한센과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에어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기술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한 그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예전 같았으면 필자는 찰스 한센의 인터뷰 내용을 한 귀로 흘려 들었을 것이다. 필자는 CD플레이백 시스템에서 디지털 필터가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심대하다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버샘플링이나 업샘플링 또는 DSP처리에서 사용되는 라그란지, 웨이브렛 등의 인터폴레이션 방식 또는 상용화된 WTA필터 HDCD필터 등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왔다. 그런데 BAT VK 5D SE CD플레이어를 며칠간 사용해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트랜스포트부나 지터대책이나 디지털부나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섹션의 충실함으로 최상급의 음질을 이끌어 내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제품의 디지털 부문의 설계는 정상급의 기술을 가진 레졸루션 오디오가 담당한 것이긴 하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제품에도 버브라운의 DF 1704가 사용되었다.) 반도체 기술의 약진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아날로그 기술을 거머쥐고 있는 회사에서 주눅들지 않고 CD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제품 소개
에어 CX-7 CD플레이어의 외관은 K-5x 프리앰프와 AX-7 인티앰프와 동일한 컨셉이다. 상급기에 해당하는 D-1 DVD/CD트랜스포트, K-1x 프리앰프의 절도 있게 각진 외관과는 다르게 곡선을 많이 둔 것이 특징이다. 브러쉬 처리된 흰색 알루미늄 패널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아웃풋은 통상적인 RCA 코액셜 디지털 아웃풋 외에도 AES/EBU 밸런스드 디지털 아웃풋도 지원한다. 둘 다 그라운드의 아이솔레이션을 위해서 트랜스포머를 사용했다. 또한 CD플레이어로만 사용할 때는 디지털 아웃풋 신호를 차단할 수 있도록 후면에 스위치를 지원하고 있다.
버브라운 DF 1704 D/A컨버터 칩에서는 두 가지의 디지털 필터 알고리듬을 선택할 수 있게 지원해주고 있는데 CX-7에서는 이를 선택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품 뒷면에 스위치를 달아주었다. Listen은 시간에 최적화된 필터 알고리듬이고 Measure은 주파수에 최적화된 필터 알고리듬이다. 전통적인 CD플레이어들은 주파수에 최적화된 필터 알고리듬이 적용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DSP를 사용한 제품에서나 시간에 최적화된 필터 알고리듬을 지원하곤 했다. 와디아의 제품들도 시간에 최적화된 필터 알고리듬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풀밸런스의 회로가 사용된 아날로그 출력은 밸런스드(XLR단자)와 싱글엔디드(RCA단자)를 모두 지원한다. 아날로그 출력부의 전류-전압 전환에는 에어에서 자랑스러워하는 디스크리트 구성의 제로 피드백 회로를 사용했다.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CD-ROM메커니즘을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비록 오디오전용 메커니즘처럼 우아하고 조용하게 동작되지는 않지만 BAT의 CD플레이어도 거의 유사하게 동작이 되는 메커니즘을 사용하고 있고 메리디언의 최신형 제품들이 DVD-ROM 메커니즘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런 메커니즘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는 듯 하다.
들어보기
에어 CX-7의 첫 대면은 수입원인 HEIS의 전시실에서였다. 가져간 몇 장의 CD를 사용해서 에어 CX-7과 가격대가 그렇게 많이 차이나지 않는 메리디언 588 CD플레이어와 비교해서 몇 곡을 번갈아 가며 들어보았다. 그 후에 제품을 대여해서 집에서 다시 들어보게 되었다.
제품의 음질 청취시에는 디지털 필터를 Listen으로 놓았다.
집으로 가져온 첫날은 이전에 다뤄봤던 제품들과 상당히 다른 접근 방식을 가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가 CD플레이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인식을 수정하고 에어가 제안한 접근 방식을 하나의 새로운 조류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는 것으로 정리하고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는 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겨우 제품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경험한 다른 CD플레이어들은 건축물처럼 솔리드한 고정된 형상으로 비유해서 골격과 음조의 밸런스를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에어의 CD플레이어는 건축물의 비유로는 더 이상 표현하기 어렵고 그대신 신호의 흐름에 따라 끊임 없이 부유하고 있는 역동적인 홀로그램 동영상이라고 비유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필자들끼리 모여서 부담 없이 얘기할 때 에어는 공중부양 시키는 재주가 좋다고 빗대어 얘기했더니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웃어주었다.
비욘디가 이끌고 연주하는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을 들어보면 과도하게 팽팽하게 연주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공기가 재빠르게 부풀었다 줄어들면서 소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은 공기의 탄력감이 잘 표현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귀를 피곤하게 만드는 피크라거나 전체를 뒤덮는 탈색된 느낌이라거나 착색은 나타나지 않는다. 평판형 스피커를 연상하게 하는 맑고 투명한 재생특성을 갖췄다.
소프라노 갈리나 고르차코바의 아리아 모음집을 들어보면 투명함과 해상력이 있고 하모닉 발란스가 잘 잡혔음을 알게 해준다.
코플랜드의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를 들어보면 순간적인 소리의 변화를 재생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며 그 과정에서의 왜곡도 매우 적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관악기의 소리는 자극적이지 않으나 공연장에서나 들을법한 환한 소리를 남김없이 들려준다.
페터 슈라이어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에서 슈라이어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가늘어진다거나 강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가격이 싼 제품이나 비싼 제품이나간에 불문하고 의욕만 앞서서 지나치게 강압적인 느낌을 주는 재생장치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볼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해 보면 에어 CX-7은 음조의 밸런스 면에서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하이엔드 지향의 제품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혹시 필자의 이런 설명에 소리에 적극성이 적고 심심하게 들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필자의 뜻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작된 긴장과 조바심을 느끼기 위해서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니므로 에어의 이런 자세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하이엔드 지향적이다.
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는 듯이 들리는 제품으로 음악을 들어보면 운전할 때 바로 뒤에 차가 뒤꽁무니에 바짝 달라붙어 맹렬하게 추격당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것 같은 조바심과 위태로움을 감지했을 때 느끼는 숨막히는 긴장감과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공연장에서는 이런 왜곡된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다. 이런 소리는 단지 오디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왜곡된 소리일 뿐이다. 공연장에 다녀오면 단지 연주를 잘 했는지 못했는지만 기억날 뿐이지 않은가?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모짜르트의 레퀴엠에서는 에어 CX-7 소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공간에 흩뿌려 지는 이미지나 스테이징의 재현성능이 십분 발휘된다. 풀어지지 않은 소리에 심지도 갖추고 있다. 다만 곡이 가지고 있는 비애를 강화해서 느끼고 싶어서 중량감 있는 무게감을 많이 주문한다거나 기대했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저역의 부분은 좀 더 무게가 실려야 온전한 실체를 다 잡아낸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겠지만 해당 제품의 가격대에서라면 그런 기대는 약간은 접어놓아야 하지 않나 싶다. HEIS에서 여러 앰프와 스피커를 동원해서 들어본 결과로는 메리디언 588이건 에어 CX-7이건간에 제대로 구동되는 플로어형 스피커와 잘 제어된 음향환경에서는 음악재생에 불만스런 면을 찾기 쉽지 않겠다고 느낀바 있다.
에어 CX-7는 아바론 스피커나 스펙트랄 앰프처럼 재생음 대역이 매우 넓으며 투명하고 하이스피디하고 공간재생 능력이 뛰어난 제품이다. 의도적으로 예쁜 소리를 내준다는 것은 에어의 제품 개발 목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메리디언 588에 비한다면 화성적인 색채가 덜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대신 대역의 재생주파수 대역이 좀 더 넓게 처리되고 있으며 좀 더 다이나믹한 음악을 소화 할 수 있어서 조금 더 다양한 장르의 곡에도 적응성이 좋다고 할 수 있다고 봐야겠다.
이 제품의 장점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면 공간의 음향특성이 라이브하지 않으며 넓직할수록 좋고 이왕이면 전대역이 재생되는 플로어형 스피커와의 매칭이 좋을 듯 하다. 나머지 오디오들이 투명한 성향을 가졌다면 더욱 잘 어울릴 것 같으며 청취 공간의 바닥에는 카페트도 깔려있으면 좋을 듯 하다. 그런 조건을 따져보자면 별로 어렵지 않게 미국적인 거주 환경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쪼록 훌륭한 제품이 국내에서도 성공적으로 잘 보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품 스펙
사용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