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한주(raker@hifinet.co.kr) 2002-06-23 15:20:28
엔트리급 하이엔드 CD플레이어 마란쯔 CD6000
50만원 미만의 CD플레이어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이 하이파이넷에 종종 올라오곤 한다. 대개 추천을 받는 기기는 마란쯔 63SE와 CEC2100, CEC3100 정도다. 언급된 기기들은 분명히 추천 받을만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지만 특정 장르나 악기 재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상상력이 필요하거나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마란쯔 63SE의 경우 음의 사그러짐을 놓치는 등 해상력이 떨어지고 대역 발란스가 고역쪽으로 치우친 점, 지터에 영향을 많이 받아 고역에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었다. CEC2100/3100의 경우에는 드라이한 음색으로 악기의 실재감의 표현이 부족해 단조롭게 들리고 저역의 (임팩트 재현에는 뛰어나지만) 양감이 줄어든다는 점, 그리고 대편성에서 악기군의 레이어링이 약간 산만한 점이 엿보였다.
이런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일부 애호가들이 이들 기기의 부품을 들어내고 교체하는 이른바 ‘개조’를 감행해오고 있었는데, 이 경우 제품의 보증유효성이 파기되는데다 예기치 않은 불량이 유발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이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번에 소개할 마란쯔 CD6000은 굳이 개조를 감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고른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음악감상에서 상상력과 인내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가형 CD플레이어 중 충분히 추천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제품구성
아날로그 출력 스테이지에는 좌,우 채널에 HDAM (Hyper Dynamic Amplifier Modules)을 각 각 하나씩 채용하여 출력단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op-amp 사용을 피했다. HDAM은 짧은 신호경로 위에 서페이스-마운트 컴포넌트를 디스크리트로 배열한 모듈로서, 음악의 급격한 입력이 정확하게 응답되도록 슬루레이트를 크게 하고 고주파 노이즈를 효과적으로 차폐한다는 것이 제작사의 설명이다.
기판은 메인부, 구동부, 디스플레이 및 콘트롤부, 헤드폰 등 네 장으로 분리되어 있고 트랜스 하나로 전체 보드에 전원을 공급하고 있다.
바닥은 조립공정에 사용된듯한 구멍이 여러 개 뚫려져 있어 구동부의 모터 소음이 들린다. 테이프 등으로 바닥의 구멍을 막으면 소음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바닥은 통 철판을 프레스로 굴곡을 주었는데 블랙다이아몬드 레이싱콘, 심포지엄 롤러블럭이라던가 오리우스 MIB같은 진동대책 액세서리를 받치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제품의 받침대는 외관을 먼저 고려한 플라스틱 조각이기 때문에 진동 대책으로는 기계적 에너지의 댐핑이 큰 콜크마개를 받침대 밑에 괴어볼 것을 권해본다. (가정주부에게 물어보면 조미료 병뚜껑으로 사용되는 콜크 마개 구입처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리모컨 사용에 있어서 답답했던 것은 빠르게 앞,뒤로 찾을 때 소리가 나지 않았던 점이다.
좋은 점 하나를 추가하자면 튜너를 통해 지글거리는 고주파잡음이 섞여서 나오지 않도록 처리되어 있어서 튜너를 같이 사용하시는 분에게는 또 하나의 만족을 줄것 같다. 시청은 개조되지 않은 CEC3100과 아캄FMJ 23CD를 가지고 주의 깊게 비교하면서 이뤄졌다. TES1350사운드레벨메터로 1kHz 테스트 톤을 재본 결과 음압 차이가 기기간에 1dB미만이어서 별도의 게인 조정은 생략했다. 진동관련 액세서리는 사용하지 않았다.
들어보기
비욘디가 이끄는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은 오디오 제품의 튜닝이 조금만 과하면 공격적인 고역의 재생이 되고 무른 소리를 내주면 여지없이 밋밋하게 재생되기 때문에 오디오 제품의 성능이 그대로 드러나고 마는 아슬아슬한(?) 연주이다. 마란쯔 CD6000은 까다로운 시험을 잘 치뤄냈다. 악구가 진행됨에 따라 악기가 보태지는 것이 잘 드러나고 프레이징이 끝나고 휴지부로 들어갈 때의 음의 사그러짐도 잘 드러내준다. 리듬의 생동감이 잘 드러나며 해상력과 페이스가 무난하게 표현되었고 나무랄 데 없이 상큼한 재생이 되었다. 저역의 에너지감은 CEC3100보다 약하게 느껴진다. 악기의 질감을 나타내는 면에서는 만족스러웠다. CEC3100은 다소 빡빡하고 빈곤한 소리가 난다.
안젤라 게오르규가 부른 카스타 디바를 들으면서 인성(人聲)의 피크 부위에서 찌그러짐이 발생하는지 체크해 보았다. 거슬림을 느끼지 못하게 순탄하게 피크까지 올라가서 찌그러짐은 발견되지 않았다.
헤레베헤가 지휘한 바하의 부활절 오라토리오에서는 풍부한 홀톤과 음색이 자연스럽게 잘 전달되었다. 약간 달콤하고 부드럽게 들리는 중역대는 마란쯔 제품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이 제품에서도 심하진 않지만 그런 인자를 나누어 가지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고, 이런 제품의 재생 특성은 이 연주와 매우 그럴듯한 상승효과를 이루고 있다.
실비아 맥네어가 부른 I won’t dance에서는 베이스의 현을 잡아뜯는 부분의 힘이 줄어든 것이 감지되었다. 저역의 양감의 문제가 아니라 약간 페이스가 처진 듯이 들리는 저역이다. 이 부분에서는 (양적으로는 빈곤을 느끼게 해주지만) 상대적으로 팽팽한 저역을 가지고 있는 CEC3100편이 좋게 들린다. 저역의 콘트롤에서는 약간 처지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재생할 때 왜곡이 느껴지지 않아 소리가 술술 풀리듯이 매우 자연스럽게 재생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데는 지장을 주지 않게 된다.
크리스챤 찜머만이 연주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어보면 CEC3100이 피아노라는 악기라고 상상력을 좀 보태야 할만큼 빈곤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에 비해 마란쯔 CD6000은 피아노 악기의 사실감을 느끼는 데 부족하지 않게 한다. 힘이 응축된 패시지에서는 저역이 옹골찬 CEC3100이 나은 편이고 마란쯔는 그에 비해 순한 맛이 남아 있다.
마란쯔 CD6000이 스타일이 구겨지는 곡은 조 모렐로의 Parisian Throughfare이었는데 강단있는 드럼의 파열음이 순하게 되어서 타악기의 선열한 핵이 표현이 완전하지 못하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 기기는 저역이 형편없는 제품이라는 인상이 들것 같은데, 일부 그렇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런 사실이 잘 느껴지지 않기도 하다. 이글스 Hell freezes over앨범에 수록된 Get over it이나 DCC에서 리마스터링한 Hotel California, 그리고 This is rock ballad 2에 수록된 곡 등을 들을 때는 납득할만한 수준의 저역 재생력을 갖고 있다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맺음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곡된 소리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취향이 작용되는 부분이 아니라 진짜 소리 아니면 가짜 소리로 확실히 구분이 되는 부분이다. 이전 세대의 디지털 기기는 신호전달 과정에서 왜곡을 어떻게 해야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할 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고 저가형 기기가 고가형 기기를 한참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란 면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온라인 쇼핑몰에서 38만원에 팔리는 마란쯔 CD6000에서도 소리의 왜곡이 느껴지지 않는 매우 자연스럽고 안정된 음질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기기는 부자연스런 찌그러짐이나 불편한 소리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랫동안 쫓겨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을 것 같다.
저역이 다소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트랜스를 큰 용량으로 하고 일부 부품을 개선시킨 OSE버전 (Original Special Edition)이 팔리고 있어서 그 제품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시청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