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acherna@hifinet.co.kr) 2002-06-20 15:18:33
소닉 크래프트의 에스피(ESPY)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는 적당한 가격과 높은 가격대 성능비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제품 중에 하나이다. 지금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후속 제품이 출시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애호가들의 관심 기종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파이넷 필자들의 게으름으로 제 때 리뷰되지 못한 점은 상당히 아쉽게 생각한다. 에스피의 후속 제품이 출시되면 가능한한 빨리 리뷰해드릴 것을 약속 드리고 에스피에 대해서는 음질 특성 위주로 간단히 소개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에스피의 외양은 가격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이다. 샤시의 규모도 상당히 크지만 두터운 전면 패널하며 금속제 손잡이까지 매우 묵직하고 견고한 느낌을 준다. 전원 스위치가 특이하게도 돌림식으로 되어 있다. 스위치를 넣고 약 7초 후면 LED가 붉은 색에서 매력적인 파란색 빛을 발하면서 작동 상태로 들어간다. 또 최소한의 전기 소모로 웜업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스탠드 바이 상태에도 둘 수 있다. 디자인의 차별화를 위해 고심한 것은 읽을 수 있지만 뒤로 비스듬히 누운 패널은 데논과 같은 일본제 앰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형태여서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또 겉보기에 크고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 볼륨과 셀렉터의 조작감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연결되지 않은 소스를 선택하고 볼륨을 올리면 상당한 정도로 소리가 새어 들려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볼륨의 커브 특성 때문인지 조금만 돌려도 음량이 갑작스레 커져 버린다. 9시 정도에만 볼륨을 두어도 방안을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대신 11시 이상으로 올리면 소리에 왜곡이 느껴진다는 점은 기억해 두셔야 될 것 같다. 에스피는 B&W나 NHT의 소형 스피커와 매칭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필자의 경우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운드 다이내믹스 RTS-5보다는 중고역대의 질감이 매끄러운 비르고 스피커에서 제 실력을 발휘했다. (다른 앰프보다 차이가 훨씬 더 커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또 가능하면 CD 플레이어에도 어느 정도 투자가 되어야 좀 더 뉘앙스 풍부하고 색채감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앰프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상당히 여러 종류의 음반을 시청해 보았다. 에스피의 소리는 다른 앰프들과는 상당히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이미지가 크고 전체적으로 소리가 상당히 스피커 앞 쪽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레베카 피전의 “New York Girls Club"(Chesky JD141)을 들어보면 기타의 현이 크게 그려지고 레베카 피전이 스피커와 감상자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나와 노래 부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필자의 취향에는 다소 어긋났지만 이런 적극적인 소리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밝고 매끄러운 음색 때문에 매력적으로 비추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피아노의 음색은 비슷한 가격대의 앰프에 비해서 밝고 매끄럽게 느껴진다. 보컬의 경우에는 레베카 피존에서는 좋았지만 제니퍼 원스나 이글즈 라이브 공연등에서 약간 목이 쉰 듯한 착색이 느껴졌다. 이와 유사한 피아노 소리를 들려 주었던 앰프라면 제프 롤랜드의 제품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에스피의 경우에도 고역의 음색에 은은한 금속성의 광채가 느껴지는데 제프 롤랜드 처럼 깨끗한 질감은 아니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앰프에서는 생각조차 못하던 느낌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선하게 들려왔다. 물론 일렉트릭 기타나 심벌즈의 음색을 들어보면 역시 초고역대까지 소리가 주욱 뻗지 못하고 롤 오프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소리의 유연함이랄까 뉘앙스가 부족한 것 역시 제프 롤랜드의 앰프들과 비슷했다. (이런 것은 안 닮아도 좋으련만.) 그 때문인지 라르키부델리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Trout"(Sony SK 63361)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색 차이가 매우 적게 들렸다. 실제 악기 소리를 들어보신 분이라면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소리가 앞으로 나오는 문제에 대해서 다시 언급해야 될 것 같다. 조금 적극적인 표현을 하더라도 음색의 질감이 좋고 정보량이 많으면 감상자를 음악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에스피는 가격대로 볼 때 그 정도의 퀄리티를 갖추기는 상당히 어려운 제품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스피커 뒤 쪽으로 소리를 밀어 넣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미지의 음영이나 윤곽의 세밀한 묘사가 없고 음색 역시 단조롭기 때문에 가까이서 오래 보게! 되면 싫증 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이러한 단조로운 느낌은 중고역대보다는 저역대에서 특히 강하게 느껴졌는데, 앞서 이야기한 레베카 피존에서 고역악기나 보컬은 상당히 앞으로 나오면서도 공간 속에 이미지의 위치를 잘 유지했지만 드럼 소리만큼은 실체가 잘 잡히지 않고 불분명한 인상을 주었다. 또 나미에 아무로의 “Concentration 20"(Avex Trax AVCD-11581)이나 칙 코리아의 “Works"(ECM 825 426-2)에서 베이스와 드럼의 음정이 잘 구분되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특히 드럼의 어택과 다이내믹 콘트라스트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의외로 음량을 높인 상태에서 저역의 에너지가 부족하고 그 결과 리듬이 끌려 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한 편 중 저역의 양감이 풍부하다는 것은 같은 가격대의 앰프에서는 느끼기 힘든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르키부델리의 “송어” 음반의 경우 저역이 감상자를 포근하게 둘러싸는 느낌은 실제 연주회장의 분위기와 상당히 유사한 것이었다. 필자가 듣기에는 밸런스나 음장감에 있어서 맨리의 레퍼런스 컨버터가 연상되었다. 인티 앰프로는 무리다 싶은 카라얀의 말러 9번 교향곡(DG 439 024-2) 연주를 들어보았는데 저역이 가늘어지는 동급 제품들보다는 더 편안하고 풍성한 관현악을 들을 수 있었다. 더블 베이스, 큰 북 같은 저역 악기에 집착하지 않을 분들이라면 다른 앰프보다 더 만족스럽게 교향곡까지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제일 좋았던 것은 피아노 독주곡이나 가벼운 이지 리스닝 계열의 팝 음악으로 거의 한 두 단계 고가의 제품들에 근접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격을 고려해볼 때 에스피는 어떤 측면에서는 훨씬 비싼 앰프에 근접하는 실력을 보여주는 좋은 앰프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세부적인 면에서 몇 가지 개선만 된다면 좀 더 보편성 있는 앰프로 업그레이드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에스피의 가격대 역시 오디오 입문자들에게 아주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제품을 선택했던 분이라면 보통 이상으로 오디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일 것일 것이다. 다음 번 작품에서는 까다로운 취향의 오디오 애호가들도 두말없이 설득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청에 사용한 기기
CD / DVD Player
Denon 1650, Pioneer DV-S5
Loudspeaker
오디오 피직 비르고, Sound Dynamics RTS-5
Interconnect Cable
킴버 PBJ
Loudspeaker cable
XLO 울트라 6, Naim NACS
Power Cords
시너지스틱 리서치 AC 레퍼런스 마스터 커플러, JPS Digital Cords
Accessory
삼양전기 울트라 파워 멀티탭, RPG 디프랙털, RPG 베이스 트랩, BDR 피라미드 콘, 도우즈 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