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로즈 뮤직?
오디오를 접하다 보면 제작자의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JBL,패스,월슨,던레비 등이 그 예다.그런데 분명 제작자 이름에서 따온 브랜드인데도 본인이 그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경우가 있다. 바로 마크 레빈슨이 그런 경우다.(맨리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마크레빈슨의 경우 자신의 이름 조차 브랜드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정작 자신의 이름을 딴 마크레빈슨이라는 브랜드는 오디오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볼 때 마크레빈슨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사실 70년대 이후 최고의 오디오 제작자로 마크레빈슨을 지적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현재 하이엔드 오디오 업계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만 한다.
Mark Levinson
마크 레빈슨이 마크레빈슨을 떠난 후 다시 한번 마크레빈슨의 역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첼로라는 브랜드를 통해서다.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손을 거쳐가면 어김없이 명기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이제 첼로를 떠나 새로 만든 브랜드가 Red Rose Music(이하 RRM으로 약칭)이다. RRM의 설립은 지금까지 와는 두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는 진공관 앰프를 선택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제작하지 않고 기존 제품을 튜닝해서 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레드로즈 뮤직의 출발은 Bo Bengsson의 리본 트위터와 다인 우퍼를 조합한 스피커다. 이 스피커를 잘 울려줄 앰프를 찾다가 오디오프리즘이라는 진공관 앰프를 만나게 되었다. 오디오프리즘의 앰프는 출력트랜스를 포함한 전체적인 재튜닝을 거쳐 최종적으로 스피커와 매칭하게 했다고 한다. 소스는 첼로사에서 사용하던 아포지를 사용하지 않고 새롭게 소니의 SACD 플레이어 SCD-1을 채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첼로에서와 같이 풀 시스템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어색한 첫 만남
오디오랩을 한번도 가보지 않은터라 R3스피커 인수 겸해서 방문을 했다. 가정집을 사무실로 개조한 매장겸 사무실은 방 사이즈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매장을 둘러본 뒤 마크레빈슨이 새로이 조합한 시스템은 어떤 소리를 낼까 궁금해서 시청을 했다. 확인하지 못한 인터커넥트를 제외하고는 마크레빈슨이 추천한 조합(소니SCD-1,Model3 프리,Model2 파워,R3 스피커) 그대로 해서 귀그림 CD로 알려진 체스키의 얼티밋 데모스트레이션 디스크 황인용 판으로 레베카 피죤의 “스패니쉬 할램"을 들었다.레베카의 목소리도 적당히 허스키하게 들리고 배경에 위치한 쉐이커의 음색도 좋았다. 고역과 중저역과의 음색차이도 예상보다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레베카 피죤의 목소리는 잘 재생을 해주었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생겼다. 설명하는 황인용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남자 목소리 특유의 낮은 울림이 줄면서 여자 목소리 비슷하게 왜곡된 소리로 들렸다. 저음도 4인치 직경을 감안해도 다소 부족한 편이었다. 이게 과연 마크 레빈슨이 추천한 조합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 였다. R3 스피커를 차에 싣고 오면서 부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2웨이 라지만 저음이 부족해서 남자 보칼의 아래 마저 제대로 재생을 못해준다면 문제 아닌가. 나보다는 2웨이 북셀프를 쓰는 필자에게 리뷰를 양보해야 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까지 들었다. 머리 속에서는 고급스런 음질로 비싸진 수퍼제로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수렁에서 건진 스피커
기기를 집에 가져오면 바로 연결하는 것이 오디오쟁이의 습성이다. 그런데도 음질에 대한 걱정과 우려 때문에 다음 날에야 연결을 했다. 연결 할때까지도 다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일단 크렐 FPB300에 물려보고 나서 고민을 하더라도 하자는 심산으로 연결을 했다. 애청 음반인 캐롤키드의 “When I Dream"(LINN)을 걸었는데 처음 나오는 기타소리부터 나의 불안감을 불식시켜 주었다. 자연스럽게 울리는 기타의 울림이 저역에 대한 나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결론은 RRM의 모델2 파워앰프로는 R3 스피커를 구동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마크레빈슨이 튜닝을 했다고 해도 EL34가 KT88이 될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인 우퍼를 구동시키기 위해서는 KT88 푸시풀 구성의 모델1 모노 블럭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그러면 모델2 파워 앰프가 수준이하의 앰프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상당히 잘만들어진 앰프다. 다만 KT88푸시풀이 아닌 잘 만들어진 EL34 푸시풀 앰프 이기에 R3의 우퍼를 제대로 구동하지 못할 뿐인 것이다.
<버린 자식 다시 찾은 심정으로 본격적인 시청에 들어갔다. 미켈란젤리 연주의 베토벤 피협5번(쥴리니,빈필,DG/LP)을 들어보면 피아노 음의 잔향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타건시 느껴지는 핵의 단단함과 명료함은 보통 수준이지만 공명음의 처리는 아주 탁월하다. 총주시 저음의 표현도 저역의 양을 욕심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처리한다. 저역이 단단하거나 응답의 빠른 편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처리하면서 풀어지지 않는 튜닝의 묘를 살렸다. 피아노 음의 경우 타건음과 배음의 연결이 자연스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잔향 자체의 표현은 상당히 탁월한 편이다. 총주시에도 저음이 엉키거나 음상이 섞이는 증상은 예상외로 적은 편이었다. 바이올린 소리는 온기가 약간 적은 쌀쌀한 음색이지만 상당히 사실적이고 디테일하게 묘사되었다. 크지 않은 스피커 사이즈를 생각하면 무대 크기도 작지 않았고 음상도 앞으로 나오거나 하지 않았다.
정태춘,박은옥의 "우리는"(지구/LP)을 들어보면 박은옥의 목소리는 고운 소리결이 잘 느껴지고 배음도 아주 좋다. 기타 반주도 보칼을 잘 받쳐주는 수준으로 특별하게 흠잡힐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정태춘의 목소리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정태춘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바이브레이션을 하는데 이 목소리의 자연스런 떨림의 표현이 약간 흐릿하고 애매하다. 배음이 아닌 중역 자체의 디테일한 표현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앞서 마크레빈슨 추천 조합으로 들었을 때처럼 황인용 목소리가 자체가 왜곡되어 들리는 정도에 비하면 그 차이가 작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미드 레인지에 리본형이 채택된 3웨이인 상위 모델인 R1이나 R2에서는 중역의 이런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크레빈슨은 자신의 시스템에서 째즈를 들어 볼 것을 권했다. R3스피커의 진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째즈를 들어야만 할것 같았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중 "so what"(CBS 460603/LP)을 들어보면 색스폰이 금속 특유의 썰렁한 음색으로 잘 표현된다. 바이올린에서는 다소 썰렁한 음색 때문에 온기가 부족하게 느껴졌지만 색스폰에서는 쌀쌀한 음색이 장점으로 작용해서 아주 좋게 들렸다. 어렵다는 브러시의 금속 마찰음도 흐릿해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드럼의 저음도 타이트하고 빠르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내준다. 무대도 적당히 스피커 연결선 뒤에서 형성하고 크기도 스피커 사이즈를 생각하면 크게 형성해 주었다.
제 짝 찾기
R3 스피커를 가져오면서 RRM336이라는 스피커 케이블도 같이 가져왔다. 어떤 성향의 케이블이기에 마크레빈슨이 추천을 했나 싶어 지금까지 시청하던 너바나-SL을 빼고 RRM336을 싱글로 연결했다. RRM336을 연결하니 무대 사이즈가 약간 줄고 초고역과 저역이 약간씩 줄어서 대역폭이 줄어들었다. 투명도도 떨어져서 생생하게 무대를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섹스폰의 음색이 아주 곱고 예쁘게 들리는 것이 아닌가. 브러쉬의 음색도 전혀 부서지지 않으면서 자극이 없게 들렸다. 결정적으로 너바나-SL은 아주 투명하고 크면서 깨끗한 무대를 재현해 주었지만 악기들이 다소 독립적으로 따로 노는듯한 느낌을 주는것에 반해 RRM336은 비록 무대가 작아지고 전체가 흐릿해지지만 악기들이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춰서 연주하는 느낌을 조금 더 느끼게 해주었다. 신혼 집에 가면 거실에 커다란 야외 찰영 사진이 걸려 있다. 이런 대형 사진들은 대부분 필터를 사용 다소 흐릿하게 해서 인물들이 온화하고 예쁜듯하게 보이게 한다. RRM336 케이블이 바로 이런 느낌을 갖게 한다.사실 탤런트 뺨치는 외모가 아닌 다음에야 아주 생생한 사진 보다는 이런 필터 처리한 사진이 보기에 좋다. 대형 신혼집 사진을 사실적이 아니라고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처럼 RRM336케이블도 R3 사용자라면 충분히 선택할 만한 매력이 있는 스피커 케이블이다.
R3는 북셀프 스피커이기에 스탠드 없이는 시청이 어렵다. 필자는 스탠드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R3의 빈박스에 책을 가득 채워 그 위에 R3를 놓고 시청했다. 혹자는 “리뷰씩이나 한다는 사람이 그런 몰상식한 세팅을 하고 들을수있냐!"고 항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외없는 법칙이 없듯이 무겁고 단단하면서 스파이크가 제대로 박힌 스탠드에 세팅하면 무조건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저역의 양이 적은 스피커나 적절한 통울림을 이용하는 스피커의 경우 이러한 정석 세팅은 저역을 너무 조이고 야위게 만들어서 자연스런 대역 밸런스를 무너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오디오랩에서는 하이텔 하이파이 동호회 공구 스탠드에 놓고 시청을 했는데 황인용의 이상한 목소리는 앰프의 출력 탓도 있지만 무거운 철재 스탠드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한다. 무겁고 튼튼한 스탠드만 고집할게 아니라 R3 같이 저역이 충분치 않은 스피커는 스탠드 선택에 좀더 여유를 가지고 튜닝할 필요가 있다.
마치면서
부분별로 살펴본다면 중역 특히 남자 보칼 재생시 디테일한 묘사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여자 보칼의 경우는 문제가 느껴지지 않았다. 고역의 섬세함이나 홀톤 재생능력은 탁월한 수준이다. 다만 약간 차가운 느낌의 음색이 마음에 걸리는데 이 문제는 RRM336케이블로 충분히 조정이 가능해서 굳이 단점이라고 할 수 없는 문제다. 금관이나 째즈의 재생에 장기를 가진 스피커로 무엇보다도 자연스런 음악 재생이 인상적이다. 한 두가지의 단점이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음악적이어서 마크레빈슨이라는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오디오적인 쾌감 보다는 음악적 자연스러움 즐기게 해주는 스피커라고 생각 된다.
시청 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