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채널 SACD 플레이어
조춘원(socio59@netsgo.com) 2004-03-04 18:48:37
마란츠 SA-17S1 SACD플레이어
|
|
SACD 포맷의 주창자인 소니와 필립스 못지않게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열성인 회사가 바로 마란츠다. 소니와 필립스 보다 하이엔드 지향의 제품을 내놓아서, SACD 포맷의 고성능을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 데논과의 합병 이후에도 양사의 제품 특성에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아서,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각자의 개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어느쪽을 평가해야 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겠지만, 아무튼 아직까지 마란츠는 비디오에 비해 오디오 분야에 대한 평가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SA-17s1은 마란츠의 멀티채널 SACD플레이어로서는 현재 최상급에 해당하는 제품이다.(SA-12s1은 사실상 단종된 상태라고 한다) 마란츠의 최상급기라고 하기엔 무게감이 조금 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하급기인 SA8260의 업그레이드라기 보다는 SA-12s1의 후계 기종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
사양을 살펴보면, 마란츠가 직접 개발한 CD/SACD 픽업 모듈과 SA-14 ver.2에도 사용된 동도금 케이스에 넣은 토로이달 트랜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에 본체의 표시부에 사용된 형광 소자를 위한 트랜스를 별도로 투입해서 노이즈 유입을 막았고, 디지털, 아날로그부에 별도의 전원 회로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DAC는 SA12-s1과 SA8260에 사용된 사이러스로직의 CS4397를 사용했다.
|
|
묵직한 무게 만큼 듬직하게 만들어진 샤시와 부드럽게 들고 나는 트레이, 한손에 쥘 수 있는 깔끔한 리모컨 등 마란츠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고급스런 만듦새는 보는 즐거움도 만끽하게 해준다.
SA-17s1은 6채널의 아날로그 출력과 광,동축 디지털 출력단자를 갖추고 있다. SACD신호의 디지털 출력은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출력에 별도의 2채널용 출력이 없는 점이 편의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부분인데, 사실 멀티채널과 2채널의 별도 시스템을 갖고 있는 사용자에겐 상당한 장애 요인이 된다. SA8260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부분인데, 아직 개선이 되지 않은 점은 조금 납득하기 어렵다. 또, 멀티채널 SACD 재생을 위한 베이스 매니지먼트와 딜레이 보정 기능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베이스 매니지먼트나 딜레이 보정을 거치면서 음질이 열화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마란츠의 제품 컨셉을 순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으나, 전채널을 동일한 수준의 스피커로 동일한 거리에서 시청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용자들이 극히 소수라는 현실을 감안했어야 하지 않을까? 보다 많은 오디오파일들을 멀티채널 재생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러한 제약들을 기술 개발로 돌파해주길 바란다.
그대신 마란츠가 탑재해 놓은 보너스는 팬텀 센터 기능이다. 센터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센터의 신호를 좌우 프론트로 나누어 재생해 주는 것인데, 기존 2채널 시스템에 위화감없이 멀티채널을 적용하기 위해 센터 없는 4채널, 혹은 4.1채널을 도입하는 경우를 위한 것이다. 일본 스테레오사운드의 필자였던 고 아사누마 요시히로씨가 주창했던 4채널 재생은 센터 스피커와 프론트 스피커의 음색 매칭이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실제 시청을 해보면 실제 센터 스피커가 있는 것 만큼은 아니지만, 센터의 정위감이나, 스테이징의 깊이가 잘 살아났다. (센터 채널을 사용하지 않은 체스키나 OPUS3의 음반에는 이 기능이 필요없다.)
시청은 2채널을 중심으로 했는데, 아무리 멀티채널 플레이어라도 아직은 2채널 재생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앞서 말한 SA-17s1의 기능상의 제약 때문이었다. 서라운드 스피커가 프론트에 비해 1.5m쯤 가까운 필자의 시청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음장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이 기기의 첫음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과거 2년전에 들었던 필립스 SACD 1000을 연상케 했다. 사실 마란츠의 SA-12s1이 SACD 1000을 기반으로 한 제품이고, SA-17s1도 여기서 자유로울 없을 것이다. 이런 선입견을 배제하고서라도, SA-17s1은 SACD 1000이 들려주었던 자연스러운 음색과 밸런스를 느끼게 했다.
처음에는 SA-14 ver.2와 비교해서 들었기 때문에, “밸런스는 좋은데, 해상도는 조금 떨어지는군…” 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소니 SCD-3000ES와 비교해 들어보면서, 이 제품이 소니 보다 2배 비싼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CD 재생음이다. 먼저 SA-14에 비해 해상도가 떨어진다고 했으나, 3000ES와 비교하면 안들리던 많은 정보가 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비아 멕네어의 Sure thing(필립스)을 들으면 보컬에 붙어있는 미묘한 울림과 그 변화가 더 생생하다. 소니에서는 조금 산만하게 들리는 가요 음반도 마란츠가 더 잘 정돈된 느낌으로 전해준다. 외향적이기 보다는 조금 내성적인 음인데, 저음의 힘은 조금 부족하다. Sheherazade (필립스,SACD)나, 레스피기의 시바여왕 모음곡(레퍼런스 레코딩)을 들어보면 저음의 확장이 부족해서, 넓은 스테이지가 잘 살아나지 않았다. 3000ES와 같은 경향의 음이지만, 보다 정보량이 많으면서도, 매끄럽게 정리된 음이라는 인상이다.
SACD로 시청한 Sheherazade는 전체적인 스케일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각 악기군의 정위감이 상당히 투명하다. 핑크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에서 트랙4의 시계 종 소리가 상당히 리얼해진다. 같은 음반의 CD와 비교해 보면 금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리뷰 얼마 전에 하이파이넷 동료 필자 댁에서 하이엔드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들었기 때문에, 기대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있던 터라 조금 못미치는 소리에 속이 상하긴 했지만, 나머지 재생 체인의 수준을 생각하면 SACD의 잠재력에 대해 더 추구해 보고픈 생각이 든다. SACD 재생에서는 소니와 마란츠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좁혀지는 인상이어서, 소니 3000ES도 만만치 않은 기기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사실 최근 CDP 교체를 기다리면서 3000ES를 한동안 메인 소스로 사용했는데, 별 불만이 없었는데, 인간의 귀란 간사한 것이어서, 마란츠와의 실력 차이를 아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SA-14 ver.2와 비교해 보면 또 2채널에서의 SA-17s1의 한계가 드러난다. SA-14 ver.2가 압도적인 해상도를 갖고 있고, 활짝 열린 고음과 저역의 펀치가 월등하다.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들을 때는 SA-14가 중역대가 조금 튀어나오는 것 같아서 SA-17의 밸런스에 좀더 좋은 점수를 주었는데, 문한주님의 시청평을 조금 들어보면 또 다른 인상의 음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 판매 가격을 검색해 보면, SA-14ver.2가 약 240-250만원대, SA-17s1이 200만원대라고 한다.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채널당 가격을 계산해보면, SA-14가 SA-17의 3배가 넘는다. 2채널 재생음이 떨어진다고 애석해 할 일이 아니다.
SA-17s1은 분명 좋은 음을 가진 기기이다. 어느 시스템에 매칭해도 실패하지 않을 좋은 밸런스를 가졌기 때문에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다. 다만 그 포지션이 조금 애매하다. 만약 2채널 중심으로 듣는다면, 하이엔드 SACD와 CD를 둘 다 잡을 수 있는 SA-14 ver.2를 강력히 추천한다. SA-17s1이나 3000ES와는 완전히 다른 리그에 있는 제품이다. 멀티채널 중심이라면 SA-17s1이다. 그러나, 베이스 매니지먼트와 딜레이 보정 등의 기능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은 시장에서 SACD플레이어가 마음대로 고를 만큼 풍부하지는 않다. 저가의 유니버설 플레이어와 소니, 마란츠 외에 고가의 하이엔드 서너가지가 전부인데, 합리적인 가격과 퀄리티 양쪽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기로 마란츠를 추천하고 싶다.
시청기기
프리앰프 : 소닉프론티어즈 Line3SE
파워앰프 : 플리니우스 SA100mkII
스피커 : 틸 CS 2.4
케이블 : 베터케이블, 모가미, Q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