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odelay0818@hanmail.net) 2003-11-25 22:36:58
싸이러스는 기원전 6세기 경 지중해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 왕국의 기초를 세웠던 왕의 이름이다. 성경에서는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그는 여러 국가를 정복하면서도 종교정책에 관대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성경에서도 신을 부를 때만 사용하는 “목자"라는 호칭을 고레스왕에게 붙이는 부분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고대 페르시아라고 하면 쐐기문자를 만들고 고대 페르시아 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다리우스왕을 떠올리지만, 고레스 왕은 다리우스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다.
싸이러스라는 브랜드 명은 고레스 왕의 업적과 같은 성과를 내라는 바람에서 생겨난 듯하다. 싸이러스는 오랫동안 내실있고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앰프를 생산하는 브랜드로 인식되어 있다. 특히 Cyrus 2나 3 인티앰프는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꽤 많이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예전에 Cyrus 2를 한동안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출시된 지도 오래 되었고 하이파이적인 잣대로 봤을 때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매우 훌륭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싸이러스 시리즈는 누구나 한 번씩 들어본 이름이고 적당히 널리 알려진 브랜드일 뿐 실제로 이렇다 할 관심을 끄는 제품은 아니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단은 외관이 국내 애호가들의 취향과 약간 동떨어져 있으며, 그러한 외관에 비해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던 점 등이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디오 기기라면 어느정도 묵직하고 크기도 크며 알루미늄이나 크롬 도금 섀시로 마감이 되어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실제로 대부분의 제품들이 그런 외관을 갖고 있다. 반면 싸이러스는 컴팩트한 사이즈에 미니컴포넌트 같은 섀시를 갖고 있고 실제로 음질도 왠지 별로일 것 같은데 가격은 보기보다 꽤나 비싸 보인다.
하지만 싸이러스의 신제품들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제품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국의 권위 있는 잡지인 What Hi-fi? 에서는 싸이러스 CD6를 올해의 제품으로 선정하였으며, CD8도 코플랜드를 제치고 베스트 바이에 선정되었다(CD8이 베스트바이가 된 것은 CD8의 음질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음질은 약간 뒤쳐지지만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다). 인티앰프인 싸이러스 8 역시 평점으로 별 5개를 받고 그룹테스트에서 우승하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Cyrus CD6 CD Player
Cyrus 8 Integrated Amp
외관 및 기본사항
싸이러스 제품들은 이전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기기들의 1/3 정도 되는 크기였고 매우 가벼웠다. 외관은 솔직히 고급스러운 맛은 없었다. 또한 앰프라인의 최상위 기종인 8과 CDP 라인의 두 번째 기종인 CD6의 외관이 흡사하고 마감 상태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CD8이나 앰프6도 모두 비슷하게 생겼으리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상위 기종으로 갈수록 고급스러운 제품을 얻게 된다는 만족감은 덜할 것이다. 하지만 대신 싸이러스는 제품의 업그레이드가 손쉬우며, 통일감 있는 디자인의 시스템을 구성하기 쉽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처음 설치 시 가장 특이한 점은, CD6는 RCA 단자 1개가 유일한 입력 단자라는 것이고 CD8은 스피커 단자에 바나나 단자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채널 하이파이를 감상할 때 일반적으로는 입력단자를 1개만 사용하기 때문에 CD6는 별 지적 없이 넘어갈 수 있겠지만, 앰프에서 지원하는 스피커 단자가 바나나 단자 뿐이라는 것은 확실히 단점이다. 문한주님도 이 점을 지적하셨다.
리모콘은 CD와 앰프를 같이 컨트롤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매우 평범하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앰프에서 좌우 채널의 맬런스를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싸이러스 8 인티앰프를 사용할 경우에는 청취공간을 다소 유동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 점은 마음에 든다. 실제로 음악을 감상할 때 의식적으로 스윗스팟에 앉아서 들을 필요가 없으며, 비스듬히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다른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같이 듣는 사람에게 자리를 바꾸지 않고도 스윗 스팟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
감상
그러면 사이러스 시리즈의 실제 음질은 어떤지 확인해보겠다.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이루어진 감상에서 매칭 스피커는 패러다임 스튜디오 40과 B&W 시그너쳐 805였고, 비교 기기는 크렐 400과 DCS엘가, 케언 4808 인티앰프, 로텔 RA1070인티앰프 등이었다.
패러다임 스피커와 함께 시스템을 구성하여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는, 이제까지 패러다임 스튜디오 40의 특성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셀로니어스 몽크의 off minor를 재생해보면, 드럼의 위치와 거리가 매우 잘 드러나 있었다. 스튜디오 40다운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소리이면서도 차분함이 더해진 느낌이 들었다. 스튜디오 40은 스테이지 재생에서 그리 뛰어나지 못한 편이었고 소리도 앞으로 나와 있는 편이었지만 싸이러스와의 매칭에서는 어느 정도 단점이라고 지적했던 스테이지 재생에서 뚜렷한 향상을 보여주었다. 좌우채널의 분리도도 상당히 좋았는데, 이것도 스테이지 재생력 향상에 한 몫을 한 듯하다. 그리고 싸이러스는 차분하고 약간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성향을 보였다.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중역대가 약간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청취자를 음악 속으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사이러스 시스템은 스테이지 재생능력이 수준급임에 틀림없지만, 패러다임 스튜디오40에서 유난히 돋보였던 것은 매칭의 영향도 큰 듯하다.
그 다음으로 싸이러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색은 해상력이다. 청취했던 모든 곡에서 싸이러스 콤비의 해상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싸이러스는 그야말로 음악을 꿰뚫어볼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지녔다. 곡의 뉘앙스나 연주 분위기가 잘 전달되는 것은 물론이다. 소프라노 실비아 멕네어의 Sure Thing을 들어보면 보컬의 발음이 깔끔하고 또렷하게 들렸으며, 벵게로프가 바렌보임과 연주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바이올린 소리의 정보를 모두 끌어내어 표현하는 느낌이어서 매끄럽고 윤기 있는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시그너쳐 805와의 매칭에서는 재즈 음악 등에서 베이스 줄을 튕기는 소리나 다른 악기 소리들이 매우 섬세하게 들렸다. 폴리니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에서도 피아노의 타건음이나 배음 등을 잘 살려주었으며 음 하나하나를 또렷또렷하게 들려주었다. 또한 805로 Monk를 재생했을 때에는 연주자들의 허밍 소리까지 잡아내서 내심 놀랐다.
싸이러스의 또다른 특징은 시원하고 깔끔한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듯하다. 가비지의 When I Grow Up 에서는 기타나 베이스 음이 상쾌하게 터져 나왔고, 앞서 언급한 Sure Thing에서도 노래나 보컬의 담백하고 맑은 느낌이 잘 살아 있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의 울림이 깔끔하면서도 풍성하여, 연주시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었으며 앰비언스도 인상적이었다.
싸이러스는 저음에서도 기대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일단 셀로니어스 몽크의 Off Minor에서는 베이스가 과장되거나 부풀은 소리를 내지 않고 정확하게 컨트롤되면서도 베이스 특유의 울림은 잘 갖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폴리니의 연주에서는 스피커에 따라 결과가 달랐는데, 스튜디오 40에서는 저음이 슬림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805에서는 저음의 양이 슬림하다는 느낌보다는 딱 적절하다는 느낌이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는데, 압도적인 저음 등은 없었지만 오케스트라의 저음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으며 재생음을 한결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전체 재생대역에서 저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절하며 균형 잡혀 있었다. 저음의 양이나 파워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다른 기기들에 비해 월등한 정도는 아니었다. 코플랜드의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를 들어보면 저음으로 호평을 받는 크렐 같은 기기들에 비해서는 저역이 확실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청실의 공간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반 가정에서는 저음의 힘이나 양이 놀랍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싸이러스의 저음은 비교 기기인 로텔이나 케언 등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다만, 플로어스탠딩형 스피커에 연결했을 때 저음이 어떻게 어느정도로 나오는지의 결과를 알면 조금 더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텐데 그 부분을 테스트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저음의 양에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겠지만, 싸이러스 시스템이 내주는 저역의 품질은 확실히 좋다. 셀로니어스 몽크의 노래에서는 아트 블레이키의 드럼 솔로 부분이 있는데, 드럼 소리가 매우 정확하고 빨랐다. 가비지의 노래에서도 페이스가 좋고 타이밍이 훌륭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다이내믹스이다. 싸이러스 시스템은 생김새와 다르게 엄청난 순간 다이내믹스를 자랑했다. 시그너쳐 805와 연결하여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서곡을 들어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이내믹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언급되거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은, 다이내믹스 재생의 초점이 순간적인 폭발력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곡들에서도 물론 훌륭한 다이내믹스 재생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놀라운 정도는 아니었다.
싸이러스 시스템은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 가지 단점도 갖고 있다. 바로 음색이다. 앞에서 싸이러스의 음색은 맑고 투명하며 깔끔하고 차분하다는 설명이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어휘들은 좋은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지만, 이 시스템은 음색의 매력이 약간 부족한 편이다. 그렇다고 음색이 딱딱하다거나 차갑지도 않으며, 적당히 선이 가는 소리도 아니며 소리의 윤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색의 매력이 조금 미흡하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싸이러스의 음색은 마지막에 향신료나 아주 사소한 양념이 빠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가격이나 다른 장점들을 생각하면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사이러스 CDP와 앰프를 함께 사용할 경우에는 스피커를, 그리고 한 기기만 사용할 경우에는 나머지 기기를 잘 선택하면 음색에서의 사소한 단점은 만회할 수 있을 듯하다.
결론
싸이러스 시스템의 주무기는 뛰어난 해상력이다. 여기에 뛰어난 저음 품질과 페이스, 수준급의 스테이지 재생력, 깔끔함과 매끄러움이 더해져, 음악적 통찰력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는 재생음을 들려주고 있으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낸다. 음색의 매력이 적은 것이 약간의 감점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음색에 문제가 있지는 않으며 매칭으로 커버할 수 있다. 보기와는 달리 저음도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꽤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기기가 너무 작고 값싸보이는 것이 흠이지만 음질적으로는 제값을 확실히 해주는 시스템이다. 음질 외적인 부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앰프에 바나나 단자만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의 사항은 개인적인 취향 차이일 듯하다.
싸이러스 제품은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재생을 보여준다. 보통 모범적인 이미지에는 약간의 고지식함과 답답함이 함께 떠오르지만 싸이러스는 그러한 면을 갖고 있지 않다. 다양한 음악을 즐기고 음악적 뉘앙스 표현이나 섬세함 등에 민감하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음질을 원한다면 싸이러스의 신제품 라인업을 생각해볼만 하다.
싸이러스8 스펙
싸이러스 CD6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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