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현(evaa@hitel.net) 2002-06-22 11:46:02
플리니어스 오디오는 특이하게도 뉴질랜드에서 하이파이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은 파워 앰프인 SA-100(A급 증폭 모델로 현재 mk III 모델까지 출시되었다)이 있는데 “스테레오 파일(Stereophile)"의 “recommended components"를 눈여겨 보신 분이라면 mk II 모델의 경우 수년간 A-Class에 랭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모델은 뮤지컬 피델리티의 A-3CR 파워 앰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A-Class에 랭크된 모델중 두번째로 가격이 저렴한($3995) 앰프였다 (제일 저렴한 앰프는 패스 랩의 알레프 3로 $2500).
플리니어스 8200은 동사의 일체형 앰프로 “The Absolute Sound"에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던 8150의 신형인데 스펙상 출력이 20W 정도 증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기술적인 면에서 개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랫 모델인 8100과 함께 생산하면서 상품 차별화를 위해 모델명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해외 오디오 잡지의 광고를 보면 8200(8150)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앰프의 사양은 다음과 같다.
PLINIUS 8200
늘 먼저 단서를 다는 부분이지만 디자인이야 보는 사람 맘이다. 우선 외관을 보면 미리 꺼낸 단서조항을 아무리 곱씹어도 잘생겼다고 할 만한 구석은 전혀 없다. 전면 패널 오른쪽으로 3개의 놉(nob)이 있는데 왼쪽부터 레코드 셀렉터, 소스 셀렉터, 볼륨이다. 좌측 하단으로 검정색의 전원 스위치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디자인의 다른 측면은 그런대로 수긍한다 하더라도 이 전원 스위치만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인데 매뉴얼에 보면 이 앰프는 AB급 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전원 스위치를 끄지 말고 계속 켜두기를 권장하고 있다. 대기 소비전력도 낮은데다가 앰프가 항상 웜업 되어 있어서 음질상으로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계 개념이 그렇다면 별로 보기에 이쁘지도 않은 전원 스위치는 후면 패널에 부착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을텐데 왜 굳이 앞으로 보냈는 지는 설계자만이 알 일이다. 어쨌거나 필자의 개인적 취향을 따르자면 디자인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편이다.
디자인에 대한 불만 때문에 다소 궁시렁 거리면서 앰프의 기능면을 살피다 보면 별로 크지도 않은 앰프가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필요한 모든 기능을 다 갖추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일단 보기와 달리 리모컨이 지원된다. 필자 개인적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생산되는 제품이라면 리모트 컨트롤은 상식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디오 기기는 음악을 듣는 도구이지 체력단련 기구나 수련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도닦는 기분으로 청취위치에서 앰프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볼륨 컨트롤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리모컨으로 지원하는 기능은 볼륨 조정 및 뮤트인데 지원하는 기능에 비해 리모컨 본체는 상당히 크다. 손이 큰 서양인의 체형에 맞춘 듯이 보이는데 역시 디자인 문제로 넘어가면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쉬운 점은 소스 선택은 어쩔 수 없이 앰프 앞으로 가서 놉을 돌려야 하는데 소스를 하나만 사용한다면야 별 문제 없지만 필자처럼 TV, VCR, DVD를 한꺼번에 연결해 놓고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불편한 점 중의 하나이다. 어쨌건 리모컨으로 볼륨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 듣는 중에는 별 불편함이 없지만 사용하다 보면 볼륨에 또 불만이 생기게된다. 사진에서 보듯이 볼륨 놉이 작아서 필자처럼 거의 4m 전방에 위치한 앰프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처음 동작시킬 때 볼륨 위치가 어느정도에 가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볼륨 놉의 반응 및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서 리모컨을 눌렀을 때의 기대치만큼 볼륨이 조정되지도 않는다. 인격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사용자라면 “품격있는 움직임"이라고 좋아할 수도 있지만 필자처럼 완성도가 낮은 사용자들은 “홧병"날 수도 있다.
후면 패널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단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은 포노단(M/M)이 기본 장착되어 있다. 필자는 LP소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해외 리뷰를 보면 포노단의 성능도 상당히 우수하다고 한다. 이정도 그레이드의 앰프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쓰는 턴테이블의 수준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포노단인 것으로 보인다. M/C 카트리지를 사용할 경우 매뉴얼에 동봉된 부품을 사용해서 포노단을 M/C 전용으로 교체할 수 있는데 수고스럽지만 사용자가 스스로 납땜을 해야한다. 여기까지 오면 “아예 가격을 낮추고 키트 제품으로 내놓지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턴테이블을 세팅하고 조작할 정도로 기계 만지작 거리기를 좋아하는 사용자라면 이정도의 노동은 즐겁게 감수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3,200의 가격에 당연히 부품변경의 서비스 비용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인 입력단은 RCA 단자만 지원한다. 고급품은 아니지만 모두 금도금 처리되어 있다. 이외에도 프리 아웃 단자와 서라운드 프로세서 바이패스 단자를 지원한다. 따라서 별도의 파워 앰프를 추가해서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홈 시어터 시스템을 구성하기 편리하게 디자인 되어 있다. 단, 여기서도 아쉬운 점이라면 프로세서 루프 on/off 스위치가 패널 후면에 있어서 랙에 기기를 수납하는 사용자라면 우아한 모습으로 기기를 작동하기는 힘들 것 같다.
스피커 단자는 바이와이어링이 용이하도록 두 조를 설치해놓았다. 단자 간격이 넓지는 않지만 앰프를 들어올릴 정도로 뻣뻣하고 상식을 넘어서는 거대 단자를 사용한 스피커 케이블이 아니라면 사용상의 불편함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용상에 있어서 주의할 부분은 AB급 증폭을 한다고 하지만 열이 생각보다 많이 난다. 특히 상판의 방열구 보다는 하판의 방열구에서 열이 더 많이 발산되기 때문에 밑면의 통풍에 신경을 써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기능면에서 밸런스 조정과 이퀄라이징을 제외한 인티 앰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쓰임새가 다양한 앰프이다. 그러나 그 기능을 수행할 사용자 인터페이스 면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기능을 모두 앰프 앞으로 가서 조절瞞?하다니...
들어보기
일단 들어보면 한 손으로 들기는 힘들고 꼭 두손으로 들어야한다. 무게가 12kg 가까이 나가기 때문인데 내부를 보면 커다란 전원 트랜스와 분리된 파워, 프리부의 기판이 보인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다는 느낌이 드는 내부 구조이다. 참고적으로 필자는 기계 뜯어 보는 것을 질색하는 쪽이기 때문에 내부 구조는 사진으로만 보았다. 어쨌건 앞이나 뒤나 속이나 만듦새에 있어서는 별 흠잡을 데 없는 제품이다. 단, 그래도 가격이 $3,200이나 하는데 단자나 섀시등은 좀 더 고급으로 썼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는 제품이다.
귀로 들어보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필자가 농담처럼 이 제품을 표현한 것도 이 제품의 음질을 고려할 때 그다지 누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기능과 외관 보다는 음질로 승부하는 제품이다.
음색과 밸런스 그리고 페이스
어느정도 길들이기가 끝난 다음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제일 먼저 음색이 매우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음색이 고급스럽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오디오를 평가하는 용어로 사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매우 모호한 표현이다. 그러나 들어보면 겉모양과 틀리게 비싼 소리가 나온다는 점에서는 누구든지 수긍할 것 같다. 좀 풀어서 말하자면 중고역에 이르기까지 악기의 음색이 매우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이질감이 없다. 바이올린을 예로 들면 낮은 음에서는 음이 굵게 나오는데 높은 음에서 갑자기 소리가 가늘어진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파비오 비욘디와 유로파 갈란테의 비발디 “화성의 영감"(Biondi/Europa Galante/EMI/Virgin Classics)을 들어보면 현의 음색이 아주 매끄럽고 일정하게 유지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7번 협주곡의 3악장(RV 567 in F: III. Allegro)의 경우 그레인이 느껴진다든지 음색이 딱딱한 시스템에서 들을 경우 바이올린 소리가 깽깽거리기 쉽상인데 플리니어스 8200은 매우 매끈하게 음색의 입자들이 오돌토돌 튀어나오는 일 없이 잘 처리해 주었다. 현악을 즐기는 분이라면 플리니어스가 표현하는 현의 음색이 매우 매력적으로 들릴 것 같다.
비스펠베이가 연주한 바흐 감바 소나타(J.S.Bach/Gamba Sonatas/Pieter Wispelwey/Richard Egarr/Daniel Yeadaon/channel classics) 들어보면 첼로(violoncello picolo) 현의 마찰 뿐만 아니라 몸통의 울림까지도 번지거나 부푸는 느낌없이 잘 표현해준다. 사실 이 부분은 플리니어스 8200의 음색이 전체적으로 조여진 쪽이고 저역이 매우 단단하게 표현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가 사용하는 나드 S300 인티의 경우 중역대가 다소 부풀고 음색이 살짝 번지는 편이기 때문에 첼로같은 악기의 경우 음색이 다소 모호하고 가볍게 느껴지는데 비해 플리니어스는 첼로의 묵직한 음색을 잘 재생해 주었다.
음색이 조여진 편이라고 표현했는데 간혹 핀포인트 이미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음색을 꽉 조여서 음상을 작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의 앰프는 아니다. 그러나 악기의 질감이 부드럽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하면 폴크스바겐의 뉴 비틀을 보면 차의 실루엣은 매우 부드럽다. 그러나 자동차 자체가 유연한 재질로 되어 있냐하면 그렇지 않다. 달려가서 부딪혀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딱딱하다. 마찬가지로 플리니어스 8200의 경우 그레인이 없고 매우 매끈하게 악기의 음색을 표현하기 때문에 듣기에 부드럽지만 전체적으로 조여져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부분은 관악기를 예로 들면 더 확실해 지는데 필자가 즐겨 듣는 Al Kooper의 “reKOOPERation"(Music Masters)중 4번트랙 “How"m I gonna get over you"를 들어보면 색스폰의 음색이 부드럽고 지글거림 없이 잘 표현되지만 금관악기 특유의 울림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한다. 소리가 조여진 쪽이기 때문에 관악기의 배음과 하모닉스를 풍부하게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음악듣는 즐거움이 반감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러한 경향의 음색을 가진 제품이라는 뜻이지 이 점이 특별한 결함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작은 체구에 비해서 출력이 높게 설정되어 있는데 이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스피커를 드라이빙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따라서 저역에 있어서 슬램(slam)함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는데 제니퍼 원즈(Jennifer Warnes)의 “The Hunter"중 8번 트랙 “Way down deep"을 들어보면 인티 앰프라고 생각하기에는 놀라울 정도의 깊고 단단한 북소리를 들려주었다. 더 놀라운 점은 북의 음색이 정말 사실적으로 표현된다는 데에 있다. 필자가 사용하는 NAD S300의 경우 이 곡을 들을 때 “이정도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플리니어스로 바꾸어 보면 단단하고 깊은 음정의 표현을 넘어서 그 음색까지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데에 매우 놀랐다. 적어도 저역의 단단함과 깊음에 있어서는 인티 앰프 중 Top Class에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저역의 양만 가지고 비교하자면 필자의 NAD S300과 비슷하지만 그 품질에 있어서는 확실히 한 수 높았다. 특히 그 단단함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NAD의 경우 음색이 적당히 이완되어 있는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NAD의 경우 인티치고 저역의 해상도나 슬램함이 상당히 수준급이라고 생각했는데 플리니어스를 들어보면 “더 비싼값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Lisa Ekdahl의 “When did you leave heaven"(BMG/RCA Victor)중 “When did you leave heaven"을 들어보면 돌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베이스가 바닥을 내려치는데 심하게 과장해서 표현하면 필자의 방바닥이 갈라지는 줄 알았다.평소에 필자는 Focus Audio의 FS-78 스피커를 사용하면서 인티 앰프로 울리기에는 좀 역부족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NAD S300으로 바꾸면서 이정도면 되겠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플리니어스의 8200을 들어보고 이 정도의 인티 앰프면 적어도 한국의 일반적인 시청 환경에서 앰프의 구동력 때문에 스피커 선택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밸런스 면에 있어서 플리니어스 8200은 몇가지 단점이 있는데 우선 단단하고 깊게 내려가는 저역과 매끄러운 중고역대에 비해 중저역대는 다소 뒤로 들어간 인상을 준다. 이 점 때문에 저역과 중역대가 유난히 튀어 나온다는 느낌을 주고 음장이 다소 포워드하게 느껴진다.
또 하나 음색에 있어서 아쉬운 점은 크기에서 예상되는 능력에 비해 출력이 다소 높게 설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데 볼륨을 높일수록 음색이 딱딱해지고 건조해 진다. 물론 여타의 인티 앰프에 비하면 미미한 부분이지만 (Krell KAV 300i의 경우 이 점이 두드러졌다) 역시 인티 앰프의 한계점을 드러내 주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런데 적어도 필자와 비슷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분이시라면(필자의 방은 3*4m) 이런 왜곡을 느끼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정도의 큰 소리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약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필자가 사용하는 NAD S300이 더 유리한데 이 앰프는 플리니어스 8200과 같은 스피커 장악력(authority)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불안해서 못 들을 정도의 큰 소리로 틀어놔도 음색이 상당히 일정하게 유지된다.
플리니어스 8200의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깊고 단단한 저역의 품질에 비해 페이스 면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는 제품이다. 매우 빠른 페이스가 요구되는 곡들을 들어보면 제대로 리듬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괴벨이 지휘한 브란덴 브루크 협주곡(Brandenburgische Konzerte/Musica Antiqua Koln/Reinhard Goebel/ARCHIV Masters)중 3번 2악장을 들어보면 그 무지막지한 리듬을 따라가기에는 다소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이 점은 제니퍼 원즈의 “The Huner"중 “Somewhere Somebody"를 들어봐도 느껴지는데 베이스가 단단하게 울리지만 탄력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필자가 들어 본 인티 앰프 중에서는 Krell KAV 300i가 가장 뛰어났다.(필자는 Krell KAV 500i나 Mark Levinson 383, Goldmund SR 등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사실 인티 앰프라서 그런게 아니라 앰프 설계의 문제이다.
해상도와 다이내믹스
플리니어스 8200은 해상도 면에서 가격에서 기대할 만한 수준을 보여준다. 이 앰프가 가지는 음색의 장점은 깨끗한 해상도와 함께 음악을 듣는데 무엇보다도 만족감을 준다. 흔히 해상도가 높으면 피곤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적어도 이 앰프는 고역을 밝게 튜닝해서 선명함을 연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제품은 아니다.
제니퍼 원즈(Jennifer Warnes)의 “The Hunter"중 8번 트랙 “Way down deep"을 다시 블어보면 각각의 악기들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단순히 고역 부분이 귀를 자극하는 선명함이 아니라 부드럽게 악기의 실체를 자연스럽게 전달해 준다는 점에 있어서 선명하면서도 오래 들어도 피곤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전달해 준다.
실제로 소비자들이 해상도에 관해서 속기 쉬운 부분이 처음에는 귀를 쏙쏙 파고 드는 선명함 때문에 해상도가 좋다고 여기다가 오래 듣다보면 강조된 고역 때문에 무척 피곤해진다는 점인데 플리니어스 8200의 경우 단번에 귀를 파고 드는 선명함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10분정도만 들어도 각 악기들이 무언가에 가려진 듯한 느낌없이 매우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필자는 리뷰 기간동안 이런 경험을 많이 했는데 한 번은 MUSICA ANTIQUA KOLN CONCERTI “per l"orchestra di Dresda"(Musica Antiqua Koln Reinhard /Goebel/ARCHIV)를 듣다가 리뷰한다는 것을 잊은 채 판 1장을 그대로 다 들었다. 이 음반은 아르히브의 음반치고는 고역이 상당히 달콤하게 녹음되어 있는데 플리니어스 8200은 각 악기들의 음색을 생생하고 선명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게 잘 들려주어서 적어도 해상도 면에서는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 부분도 대편성으로 넘어가면 다소 그 감동이 반감된다. 헤레베헤 지휘의 “바흐 b단조 미사"(harmonia mundi)중 “Sanctus"를 들어보면 각 성부의 위치나 악기의 움직임이 상세하게 파악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여진 음색 때문에 전체적으로 혼잡스럽게 들린다. NAD S300의 경우 플리니어스보다 해상도는 떨어지지만 전체적으로 이완되고 편안하게 각 악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좀 번지고 섞인다"정도의 느낌만 받는데 플리니어스의 경우 조여진 음색의 악기들이 대규모로 선명하게 들리다보니까 “혼잡스럽고 다소 밀집되어 있지 않나"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상대적으로 반감되는 단점이지 치명적인 약점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 부분이 만족할만한 수준인가 아닌가의 판단은 사용자가 직접 내려야 할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 개인적으로 판단하라고 한다면 가격을 고려할 때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다이내믹스 면에서 전체적으로 다소 떨어지는 페이스 때문에 유로파 갈란테의 비발디-화성의영감(Biondi/Europa Galante/EMI/Virgin Classics)중 6번(RV 356) 3악장(Presto)과 같이 쉴새 없이 크고 작은 다이내믹스의 변화가 많은 곡을 민첩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잘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강약의 대비는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표현해 준다.
Al Kooper의 “reKOOPERation"(Music Masters)중 “When the spell is broken"을 들어보면 도입부 드럼 셋의 변화가 섬세한 해상도를 바탕으로 미세한 스네어의 울림부터 마지막 박자의 큰 타격까지의 다이내믹스 그라데이션(gradation)을 섬세하고 강력하게 잘 표현해 주었다.
앙드레 프레빈과 런던 심포니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Andre Previn/London Symphony Orchestra/EMI Classics) 3악장을 들어보면 다소 페이스가 떨어지는 부분 때문에 전체적인 리듬이 탄력있게 표현되지는 못했지만 도입부의 마지막 부분이나 피날레의 강렬한 투티까지 올라가는 다이내믹스의 변화는 그 변화의 흐름을 타기에 충분했다. 특히 도입부 투티 후 다음 주제 제시부로 들어갈 때의 변화는 상당히 극적이고 임팩트도 강했다. 적어도 필자 정도의 스피커를 사용하는 분이라면 “다이내믹스가 떨어져서 답답해서 못 듣겠다"라는 생각은 안할 것 같다.
이미징과 스테이징
스테이징은 이 제품의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인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소 튀어나오는 중역대와 저역 때문에 전체적으로 음장이 앞에서 형성된다. 근데 사실 음장이 스피커 라인을 기준으로 앞에서 생기건 뒤에서 생기건 그건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문제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건 포워드한 음장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스테이지가 평면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불레즈와 시카고 심포니가 연주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IGOR STRAVINSKY/The Firebird/Chicago Symphony Orchestra/Pierre Boulez/Deutsche Grammophon)를 들어보면 스테이지가 매우 평면적이다. 오케스트라의 앞 뒤 거리가 잘 느껴지지가 않는데 전체적으로 스테이지가 앞으로 나와서 형성되기 때문에 더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이전에 리뷰했던 Hegel의 H2 파워앰프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더 정교한 레이어를 보여주었더라면 플리니어스 8200의 다이내믹스 표현이 수준 이상이기 때문에 매우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해상도가 좋은만큼 각 음원의 실체감은 명확하게 잘 그려주지만 그 각각의 이미지가 위치하는 레이어를 표현하는 데에선 다소 밋밋해서 이 앰프의 전체적인 성능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MUSICA ANTIQUA KOLN CONCERTI “per l"orchestra di Dresda"(Musica Antiqua Koln Reinhard /Goebel/ARCHIV)같은 음반을 들어보면 각 악기들이 피어 오르는 듯한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해 주는 느낌은 참 좋았는데 그러면서도 공간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점은 다소 의외였다. 인위적인 핀포인트 이미징을 바탕으로 하는 미니어쳐적인 스테이지가 그려지지 않아서 아쉬웠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한 공간안에 있다는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다소간의 요철이 존재하는 대역간의 밸런스 문제인 것 같다.
글을 맺으며
이 제품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I) 뉴질랜드 사람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뉴질랜드 하면 양떼가 뛰노는 사회민주주의 국가로만 알았지 이런 하이파이 제품이 있는 지 몰랐다.
ii) “그래봐야 인티 앰프인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 제품을 상대한다면 큰 코 다친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품공장에서 막 나온 시제품처럼 생겼지만 음질만으로 승부한다면 하이엔드라 부를만한 제품이다.
iii) 음질에 있어서 장점으로는 매끄럽고 그레인이 없는 음색과 단단하고 깊은 저역 및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선명한 해상도와 그라데이션의 표현이 좋은 다이내믹스의 표현을 꼽을 수 있고 단점으로는 다소 포워드하고 평면적인 스테이징과 상대적으로 뒤쳐지는 페이스를 지적할 수 있겠다.
iv) 디자인의 부족함이나 기능상의 다소 불편한 점을 음질로 용서할 수 있는 사용자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한 번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제품이다.
최근 들어 인티 앰프의 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인티 앰프를 선택하는 이유가 단순히 예산상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 절약/매칭 문제의 해결/사용의 편의성/적정수준의 음질이라는 다양한 요구사항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킬만한 제품들이 계속 발매되고 있다. 플리니어스 8200은 이런 제품들 중 음질면에서는 선두에 위치한 제품이라고 보여진다. 대출력의 분리형 앰프들이 가지는 “authority"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구동력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음색이나 뉘앙스로 승부를 걸던 인티 앰프의 한계는 충분히 벗어난 제품이기 때문이다.
박우진님의 “Krell KAV 300i” 리뷰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앰프(KAV 300i) 이상의 음악성과 취미성을 추구하는 분에게는 가격이 많이 높아지지만 HiFi-Net 4월호에서 호의적으로 소개하였던 Cary CAD-300SEI ($3695) 앰프를 추천하고 싶다. Speaker 의 폭 넓은 선택을 위해서라면 좀 더 비싼 Jeff Rowland의 Concentra($5600)을 고려하기 바란다. 분리형 앰프로의 선택은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컨센트라까지도 가지말고 최근에 등장해서 호평 받는 인티 앰프 여러종을 시청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티 앰프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스피커 장악력"의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한 제품들이 많아졌고(컨센트라보다 비싸지만 마크 레빈슨의 383 인티 앰프의 경우 대단한 authority를 보여준다고 한다) 또,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들을 차근차근 살핀 다음 그래도 모자란다고 느끼면 분리형 대출력 파워 앰프를 고려하기 바란다. 그리고 플리니어스 8200은 이런 제품들의 리스트에서 정점에 있을만한 음질을 지니고 있다. 통상적인 국내 청취환경에서 운용할 수 있는 스피커의 제한선을 고려할 때 하이엔드의 끝을 기어코 봐야겠다는 사용자가 아니라면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제품이다.
단,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눈을 지긋이 감고 시청해 보시라는 점이다. 제품에 너무 시선을 맞추면 감동이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격이 급한 분은 사용하기에 좀 불편할 것이다.
시청 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