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우진
서론
패러다임 스피커는 캐나다의 스피커 브랜드로 1982년 창립 이래 2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직원이 350명에 달하고, 보이스 코일, 드라이버 콘부터 거의 모든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43개 국가로 수출하는 대형 스피커 회사로 성장했다.
오디오스트림이라는 오디오 마케팅 업체의 산하에 있는데, 이 회사는 앤썸 등 앰프 제조와 부품 공급 회사로 유명한 Sonic Frontiers까지 포함하고 있다. 패러다임 스피커는 뛰어난 정확성, 광대한 사운드 스테이지와 핀포인트의 정위감, 파워풀하고 정확한 저음, 그리고 짜릿한 다이내믹스를 목표로 한다. 음악 감상용 스피커로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홈시어터 서라운드 사운드에 대한 대응성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토템, 포커스 오디오, 미라지, PSB 등 캐나다의 다른 여러 스피커 브랜드들이 그렇지만, 패러다임 스피커는 예전부터 가격대 성능비가 높은 브랜드로 손꼽혔다. 부품을 모두 생산하는 기술력과 생산 능력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자체 무향실을 갖추기 까지 했다. 이 부분은 사운드스테이지의 패러다임 팩토리 투어에 대한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패러다임 스피커는 하이엔드 스피커들과 비교했을 때 강렬한 이미지의 디자인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캐비닛의 마감에서도 확 눈에 띌 만큼 고급스럽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음질에 관계된 요소에 우선하여 투자할 뿐 아니라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진지한 음악 애호가를 배려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패러다임 스피커의 오랜 팬들에게는 기존 레퍼런스 스튜디오 시리즈보다 더 상위 라인업이 될 새로운 스피커도 필요하게 되었다. 만일 패러다임이 본격적인 하이엔드 스피커를 제조한다면 다른 브랜드에서보다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음악적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패러다임에서도 이런 기대에 부응하여 몇 년 전에 시그너처 시리즈라는 새로운 톱 라인의 스피커를 출시하면서 성능에 걸맞는 고급스러운 마감과 새로운 디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사실 시그너처 시리즈는 기존 스튜디오 스피커의 성능, 디자인, 마감 등을 모두 세부적으로 고급화시킨 고급형 버전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폭이 좁은 배플의 캐비닛에 구경이 크지 않은 다수의 유니트를 사용한 점 등은 이전의 전통 그대로이다. 대신에 하이 글로스 마감으로 처리된 곡면의 인클로저, 고급화된 유니트와 스피커 단자 등이 제공되었다. 즉, 패러다임의 필승 공식에 최선의 소재를 투입해서 만들어낸 하이엔드 스피커가 시그너처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기존의 스튜디오 시리즈의 가치도 함께 돋보이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시그너처 시리즈의 음질은 고음의 해상도와 음색, 그리고 전반적인 밸런스 측면에서 보다 하이엔드 스피커다워졌고, 스테레오파일의 추천 기기 리스트에서 A등급에 S2 북셀프 스피커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시그너처 시리즈는 최근 베릴륨 트위터를 탑재한 최신의 시그너처 v.2 시리즈로 진화했다. 여기에는 S1, S2, S4, S6, S8의 6개 스피커 모델이 포함된다. 특히 베이직 모델인 S1과 S2 스피커는 2웨이 북셀프 스피커로 가격 면에서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이다. S4는 스탠드를 사용하는 모델로서 우퍼가 추가된 3웨이 구성. S6와 S8 모델도 우퍼 유니트가 하나씩 추가되는 멀티 유닛 시스템이 되겠다. 이를 차상위 등급인 레퍼런스 스튜디오 시리즈의 스피커에 대응시키면 S2가 스튜디오 20 모델에, 그리고 S4, S6, S8 모델이 차례로 스튜디오 40, 60, 100 모델에 해당한다. 베릴륨 트위터와 시그너처 v.2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스피커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CD의 등장이 그러했고, SACD나 DVD-A같은 고해상도 미디어포맷의 등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새로운 미디어 덕분에 20kHz 가청대역 이상의 주파수 응답에 대응할 수 있는 고성능 트위터는 제조 업체의 주요 관심사항이 되었다. 물론 모든 스피커 브랜드가 신소재 진동판 재질의 개발에 매달린 것은 아니지만, 트위터의 재질이 하이엔드 스피커의 가장 주목받는 이슈가 된 것은 분명하다. 기존 트위터 재질의 경우 높은 주파수 영역에서 고속의 피스톤 작동을 하려면 분명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매우 가벼우면서도 구부러지지 않도록 강도가 높아야 한다는 서로 상반된 요구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티타늄이나 알루미늄 재질은 강도는 높지만 높은 주파수 대역대에서 공진을 일으켜 제대로 재생이 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최상의 소재를 찾는 노력은 이전에 대단히 희귀한 소재인 베릴륨이나 다이아몬드로 눈을 돌리게 했다. 이들 소재는 극히 가벼우면서도 비할데 없이 강도가 높아서 초고역대의 주파수를 매끄럽고 여유롭게 재생해내어 다이내믹 트위터에게는 궁극의 소재, 꿈의 소재라고 할 만 있다.
이미 잘 알시겠지만, JM LAB의 최상급 라인업에서 처음 시도된 베릴륨 트위터는, 레벨의 울티마2 시리즈 등 초고급 스피커 브랜드의 톱 라인업 제품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다이아몬드 트위터는 B&W의 800 시리즈 스피커 중에서 최상위 기종들에 탑재되었다. 결국 이들 신소재 진동판을 사용한 스피커가 향후 고급 스피커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패러다임도 캐나다 스피커 업체로는 처음으로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원래 시그너처 시리즈에 탑재된 고음 유니트는 원래 알루미늄 재질의 진동판을 적용하고 있었으나 시그너처 v.2버전에 이르러 베릴륨 트위터를 탑재한 버전으로 변경하여 출시하게 된다. 베릴륨은 물리적인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고음 유니트의 진동판 재질로 손꼽힌다.
제품 소개
형식 : 2웨이 2드라이버 북셀프 스피커 시스템 크로스오버 : 3웨이 고역 드라이버 : 25mm 베릴륨 트위터 중저역 드라이버 : 듀얼 레이어의 38mm 보이스 코일, 178mm 코발트 함입 알루미늄 콘 주파수 대역 : 52Hz~45kHz(+/-2dB) 임피던스 : 8옴 최대 입력 : 140와트 감도 : 91dB 적정 입력 : 15~225와트 규격 : 38.1 cm x 21.0 cm x 35.6 cm 중량 : 25.4kg 마감 : 체리, 버즈아이메이플, 피아노 매칭 스탠드 : J-29(option) 가격 : 299만원(인터넷 쇼핑몰 판매가격) 문의처 : 다빈월드(02-780-3116)
트위터의 진동판에 부착된 보이스 코일은 역시 가벼운 소재인 알루미늄이며, 이를 강력한 네오디뮴 마그넷으로 구동한다. 트위터가 부착된 새시는 고압 성형된 알루미늄 재질로 공진 현상을 일으키지 않을 뿐 아니라 방열 효과가 탁월하다. 시그너처 20 모델에서는 알루미늄 콘 드라이버가 미드레인지와 우퍼를 겸하여 흔히 말하는 미드베이스 사양이 된다. 40/60/100 모델에서는 폴리머 재질의 전용 우퍼 유닛이 하나씩 더 추가된다.
시그너처 모델에 사용된 미드 베이스 유닛은 알루미늄의 경량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코발트를 도금하여 강도와 내부 손실 특성을 개선하였다. 후면의 새시도 알루미늄 재질이며, 페이스 플러그도 알루미늄으로 제작하고 금 도금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강력한 네오디뮴 마그넷으로 폴 피스를 포화시켜 인덕티브 디스토션을 제거했다고 한다. 그외의 특징으로는 드라이버의 방열 특성에 대단히 신경을 쓰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오랜 시간 대음량으로 스피커를 구동했을 때에도 안정된 작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일듯. 아래 전면에 위치한 리플렉스 포트는 트위터와 설치 위치가 미드 베이스 드라이버를 중심으로 같고 사이즈도 같아서 정확히 상하 대칭을 이룬다.
일반적인 북셀프 스피커에 비하면 상당히 큰 구경의 포트가 설치되어 있는데, 다행히 포트에서 공기의 흐름으로 발생하는 잡음은 없었다. 시그너처 시리즈의 유니트들은 캐비닛에 부착된 별도의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다. 즉, 유니트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캐비닛에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반대로 캐비닛에서의 공진이 유니트에 되돌아 가는 일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패러다임은 이를 IMS Shock Mount라고 부르고 인클로저의 공진을 단지 줄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애버렸다고 주장한다. 그 효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 금속제 프레임은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는 모습은 아니라서 본격적 감상이 아닐 때에는 그릴로 덮어주는 편이 나을 듯 하다. 프레임의 스피커 단자는 바이와이어링이 가능한 바인딩 포스트. 계단 형태로 단자의 높이가 다르게 배치하여 연결 작업이 수월하다. 바인딩 포스트는 플라스틱 캡으로 덮여 있어서 맨 손으로 돌려서 조이기에 편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선이 풀리지 않는 견실한 접촉력을 유지한다. 피아노 마감의 캐비닛은 모서리까지 매끄럽게 마무리되어 고급스러운 느낌. 게다가 겉으로 보아서도 돌처럼 단단해 보인다.
캐비닛의 재질로는 두꺼운 MDF를 적용하고 H형태의 내부 보강재로 견고하게 잡아놓아 공진 현상으로 인한 음색의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은 캐비닛을 두드려보는 이른바 너클 랩 테스트를 권장할 만큼 자사의 캐비닛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통이 울리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정재파가 발생하지 않도록 뒤가 좁아지는 부드러운 커브를 주어 우아한 모습을 지닌다. 하이 글로스 타입의 마감은 다른 고급 스피커에 비교할 만큼 잘 만들어졌다. 후면에는 금색으로 브랜드와 스피커 모델명이 표시된 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시청평 시그너처 S2 스피커의 오리지널 모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반적으로는 호평을 받았지만, 어떤 매거진에서는 중역대의 음색이 덜 투명하다던지, 저음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등의 사소한 단점들을 지적받기도 했다. 이상의 단점 때문에 완벽한 A등급 스피커라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대신에 평균적인 B등급 스피커들보다 장점이 많은 제품으로 판단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시그너처 v.2 스피커들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보완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패러다임이 본격적인 하이엔드 스피커를 시청 전에 또 하나 궁금했던 부분은 새로운 베릴륨 트위터의 소리가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탑재한 B&W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베릴륨과 다이아몬드 두 유니트의 차이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다. 시청 기기로는 타스캄의 CD-1U pro CD 플레이어와 벤치마크 미디어의 DAC-1를 AES/EBU 인터페이스로 연결하고, 네임오디오의 NAIT5i 인티앰프로 구동했다. 인터 커넥트는 킴버의 엔트리급 모델인 Tonik, 그리고 스피커 케이블로는 QED의 실버 애니버서리를 바이와이어링으로 연결했다. 시그너처 스피커는 바이어링에 대응한다. 싱글 와이어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멋진 점퍼 플레이트가 제공되는데 그래도 음질에 미칠 영향을 염려해서 바이와이어링으로만 시청했다.
스탠드는 타겟의 구형 모델을 사용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플로어형 스피커로 인해 북셀프 스피커의 소리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아예 방향을 벽쪽으로 돌려놓았다. 시청 결과는 한 마디로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들어왔던 우수한 북셀프 스피커 중에서도 돋보이는 제품이라 할 만하다. 이전 버전에서의 타협된 느낌 없이, 최신 기술을 동원해서 현재 소형 스피커에서 가능한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양이나 구성은 거의 같지만 소리는 완전히 다르고, 과연 톱 라인업 스피커 다운 하이엔드 사운드를 내준다. 귀에 익은 음반들을 몇 장씩 들어봤는데, 재미 없게 들린 음반은 하나도 없었다.
Jacques Loussier Trio / The Best of Play Bach(Telac)에서는 대단히 매끈하고 세련된 음색과 투명하고 디테일한 사운드스테이지로 감상자를 매료시킨다. 베이스와 피아노가 들려주는 저음은 북셀프 스피커의 기준으로는 대단히 깊고 단단하다. 특정 대역을 강조해서 억지로 만들어낸 저음이 아니라는 생각. 가만히 들어보면 물론 대형기와는 다르지만, 그 나름대로 완성도 높은 자연스러운 밸런스가 된다.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소리를 내지 않고 중역 등 다른 대역을 압도해서 가리는 부분이 없다. 특히 자끄 루시에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리드미컬함이 잘 살아나고 음색도 투명하고 자연스럽다. 역시 베릴륨 트위터의 능력이 탁월한데, 심벌즈를 브러쉬로 칠 때의 미묘한 디테일이라든지 트라이앵글의 날아갈 듯 가벼운 찰랑거림 역시 훌륭하게 들려준다. 소리 결 어디에서도 지글거리는 인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미세하게 톤이 높아서 맑고 상쾌한 인상이 되며, 리얼하고 매력적이다.
이에 비해 B&W의 다이아몬드 트위터는 소리의 윤곽을 더 매끄럽게 하여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베릴륨 트위터나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공통 점이라면 하이테크 소재이면서도 대단히 자연스럽고 차분한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그래서 두 유니트가 내주는 소리는 결국 자연음이라는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Rebecca Pidgean/ Retrospective(Chesky Records)를 들어보면 스페니쉬 할럼 등에서의 목소리가 다른 어떤 스피커 시스템 못지 않게 대단히 곱고 이쁘게 들린다. 질감이 아주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들어도 매력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이 부분에서는 느긋하고 부드럽게 들리는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능가하는 매력이 있다. 굳이 아쉬움이랄까 들면 사람 목소리의 재생에서 어떤 보컬 음악을 들어봐도 소프트돔 트위터 계열의 감미롭고 달콤한 느낌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것. 이는 강도가 높은 재질이기 때문에 소리를 일부러 나긋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끄럽게 감겨드는 소리는 스피커에서 특정 부분을 강조한 결과일 것이며, 아마도 녹음 현장의 소리는 베릴륨이나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재생음에 더 가까울 것이다.
타계한 파바로티의 Three Tenors Concert(Decca)에서는 고역의 극단에서도 화려하면서도 윤기가 넘치는 풍부하고 당당한 목소리가 재생된다. 중역대로부터 고역의 재생이 평탄하기 때문에 귀를 찌르는 느낌이 없고 진하고 두터운 도밍고와 맑고 가벼운 카레라스의 음색과 스타일의 차이도 잘 드러내준다. 실내악의 따사로운 분위기라든지 목관 악기와 현악기의 섬세한 느낌도 대단히 잘 살려낸다. Shigenori Kudo가 플루트를 연주한 Trios for piano, flute& cello(Pavane Records)에서의 아기자기한 앙상블이 마치 현장에서 듣는 것처럼 디테일하고 정교하게 재생된다. 피아노와 플루트가 서로 같은 선율을 주고 받는 부분에서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예전 메탈 재질의 트위터에서 느껴지는 거친 촉감이 없이 밝고 화려한 소리를 내준다. 악기가 놓인 음향 공간을 손에 잡힐 만큼 투명하고 입체적으로 그려준다. 패러다임이 주장하는 것처럼 핀포인트적인 정위감이 탁월하게 구현된다. 음장의 크기가 크고 감상자를 잘 둘러싸기 때문에,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방 전체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전체적으로 음장이 뒤로 깊게 물러서 있고, 소리의 이미지가 작은 탓에 인접감이나 생동감이 덜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교하고 디테일한 음장에서 얻어지는 음악의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이 된다. 이승환의 his ballad을 들어보면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을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고스란히 살려낸다. 가수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라든지, 음반에 담긴 잔향이 풍부하게 재생된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저음은 명료하면서도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으며 대신에 중 고역 대를 견고하게 지지한다.
대개의 최신 스피커들은 녹음이 우수한 음반이라면 음악적 분위기를 가능한 성의껏 재현해준다. 그리고 패러다임 시그너처 급의 스피커라면 능력이 워낙 높기 때문에 힘겹게 느껴지는 일이 없고, 애써 상상해야 할 필요 없이 아주 쉽고 명쾌하게 들려주게 마련이다. 대신에 다소 자극적이고 적극적인 소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좀 심심하고 밋밋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조금 부족하지만 특출난 개성을 가진 이가 더 매력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더 개성 강한 스피커를 찾는 분들이라면 이 리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가질 법하다. 이런 자연음 지향의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오디오의 특징을 따지고 소리를 평가하기보다는 음악 감상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음악의 디테일과 분위기를 잘 재생해주기 때문에, 소리가 편하고 매끄럽다고 해서 재미 없어질 일은 없다. 특히 많은 악기가 동시에 등장하는 관현악곡을 풍요롭게 감상하는데 제격이다. Beethoven Symphonies/ Simon Rattle/ Wiener Philhamoniker(EMI) 에서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난다.
이 음반은 그다지 선명한 소리를 담아내었다고 할 수 없는 둔한 녹음으로 신선한 소리를 찾는 오디오파일에겐 졸립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패러다임 시그너처 스피커로 이 음악을 감상하면 실제 콘서트에서처럼 집중력을 갖고 음악을 감상하게 된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아주 여유롭게 그 향취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강렬한 매운 맛이나 아주 진한 달콤함은 없지만 다양하고 아기자기하게 차려진 단정한 식사처럼 맛볼 부분이 많은 것이다. 악기의 음색이나 악보에 담긴 다양한 음정과 리듬, 그리고 다이내믹스가 단정하게 재생되어 지나간다. 그래서 내침 김에 이 지루한 전집을 모두 이어서 듣더라도 질리지는 않을 것 같다. 사운드스테이지 평가를 위해 들어본 로시니의 서곡 C. Abbado/ The Chamber Orchestra of Europe(DG)에서는 소형 스피커의 장점인 핀포인트 적인 이미지과 사운드스테이지를 확인하게 된다.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미니어처 스타일의 음장이 아니라, 거실에서 감상하더라도 부족감이 없을 만큼 소리가 자연스럽고 넓게 펼쳐진다.
게다가 다이내믹스에서 동급 스피커에 비해 월등히 우세한 시그너처 20 v.2스피커는 소형의 박스에 갇힌 인상이 없다. 무대의 규모가 스피커의 규모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크고 깊다. 자기의 소리를 내지 않아 조용히 사라지고 감상자를 둘러싸면서 깊게 형성되는 음장감이 일품이다. 패러다임 스피커는 홈시어터 분야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서라운드 시스템에 유리한 이유는 두말할 필요 없이 음장 재생 능력과 다이내믹 특성이 좋기 때문이다. 바닥 면적이 좁아서 공간을 갑갑하게 하지 않으며, 같은 브랜드의 평판이 좋은 서브우퍼까지 준비되어있다. 프런트 스피커만으로는 영화 감상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었지만, 기회가 되면 패러다임 스피커로 구성된 서라운드 시스템을 감상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같은 베릴륨 트위터를 탑재한 스피커 중에서는 레벨의 울티마 2 스피커와 많은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베릴륨 트위터를 탑재한 점 외에도 폭이 좁은 배플에 멀티 유니트라는 구성상의 공통점이 있다. 음질 면에서도 고역이 치솟지 않는 매끈한 음조라든지, 섬세한 디테일 재생에 강점이 있다는 부분, 다이내믹스의 여유로운 표현력 등등 많은 경향에서 패러다임의 시그너처 v.2 시리즈와 유사한 점이 있어 보인다.
추측해보면 캐나다 스피커 업체들과 하만 인터내셔녈에 관여한 플로이드 툴 박사의 연구 성과와 이론들이 두 스피커가 비슷한 사운드를 내주는 데 공통적인 배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론
패러다임 시그너처 20 v.2스피커는 최신예 소형 스피커로 많은 즐거움과 놀라움을 안겨준 제품이다. 음의 완성도나 매력도는 필자가 들어본 소형 북셀프 스피커 중에 손에 꼽을 만큼 높다. 중 고역대의 음색의 정확성과 재생의 평탄성, 해상도의 디테일의 재생에서 가장 앞서 있는 제품이며, 저음은 소형 스피커로서는 이례적일 만큼 당당하고 탄탄하며, 음장도 깊고 넓다. 중대형 스피커의 스케일과 다이내믹스를 원하면서 공간적인 문제로 소형 스피커를 사용하는 분이라면 최선의 선택이 될 만한 제품이라 하겠다. 스피커의 기본적 성능이 대단히 훌륭하기 때문에 어떤 장르의 음악에도 훌륭하게 대응하며, 현장감과 다이내믹스가 탁월하여 적당한 서브우퍼와 매칭된다면 홈시어터 시스템의 메인 스피커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앰프를 괴롭히지 않는 91dB 좋은 감도와 너그러운 음질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출력보다는 음질 위주의 매칭으로 충분하다. 패러다임 스피커의 놀라운 가격대 성능비를 기억하는 분들에겐 이 조그마한 북셀프 스피커에 붙여진 가격표가 부담스러울 지 몰라도 그에 상응하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만일 500만원 이하의 북셀프 스피커 중에서 단 하나의 스피커를 고른다고해도 절대로 후회 없는 제품 중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