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오디오 - 새로운 세대의 빈티지 스피커
파인오디오는 브리티쉬 사운드의 본진인 탄노이에서 수십년 경력을 쌓은 베테랑 스탭들이 2017년도에 설립한 영국의 신생 스피커 브랜드다. 파인오디오의 최신 라인업인 빈티지 클래식(Vintage Classic)은 최상급 모델인 F1과 빈티지 라인업 다음에 위치하며, 음악 애호가들이 탐낼 수 있을 만큼 현실적으로 가격에 음악적인 성능만큼은 타협하지 않은 매력적인 스피커다.
파인오디오 브랜드와 제품 라인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로 다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빈티지 클래식 시리즈에 대해서 가볍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빈티지와 빈티지 클래식 시리즈
빈티지 모델은 고급 가구처럼 아름다운 외관의 자작나무 캐비닛에 네오디뮴 마그넷을 탑재하였다. 반면에 빈티지 클래식 시리즈는 마치 스튜디오 모니터처럼 단순한 박스 디자인이며, 어두운 월넛 무늬목으로 마감하고, 페라이트 마그넷을 사용했다.
빈티지와 빈티지 클래식 모델은 드라이버의 사이즈로 모델명을 삼았는데, 두 모델의 구분을 위해 빈티지 클래식 모델은 로마 숫자로 표기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를테면 빈티지 시리즈는 각각 10 , 12, 15인치 드라이버를 사용한 플로어 스탠딩 3가지 모델로 VINTAGE FIFTEEN, TWELEVE, TEN 모델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빈티지 클래식 시리즈는 8, 10, 12인치 드라이버의 플로어스탠딩 모델 Vintage Classic VIII, X, XII 모델이 있고, 빈티지 라인업에 없는 8인치 드라이버를 탑재한 스탠딩 마운트 모델인 VIII SM 모델이 있다.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빈티지 클래식 라인업에서 8인치 드라이버를 사용한 VIII과 VIII SM의 두 모델은 컴프레션 드라이버의 트위터 진동판이 마그네슘 재질이고, X와 XII 모델의 트위터는 티타늄 재질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빈티지 라인업의 최상급 모델에만 15인치 드라이버 가 탑재된다.
빈티지와 빈티지 클래식 라인업의 차이를 살펴보면 같은 크기의 드라이버를 사용한 모델끼리 대응이 되며, 주요한 스펙에서는 거의 대동소이하지만, 빈티지 모델의 네오디뮴 마그넷과 빈티지 클래식 라인업의 페라이트 마그넷의 음질적인 차이는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플래그십 시리즈인 F1 시리즈의 F1-5처럼 5인치 드라이버라면 포인트 소스 드라이버의 특징인 정교한 이미징과 공간에 적합한 저음의 밸런스를 기대할 수 있겠다. 거실에 둘 스피커라면 10인치, 작은 방 같은 근접 시청에서는 5인치, 거실이나 조금 큰 방에서는 8인치 드라이버가 적합한 크기라고 생각된다. 파인오디오의 빈티지와 빈티지 클래식 시리즈는 마치 탄노이의 프레스티지 시리즈와 레거시 시리즈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경쟁 구도는 오디오 애호가들에게는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제품 소개
빈티지 클래식 VIII SM 모델은 제품명처럼 파인오디오의 스피커 중에서 가장 작은 8인치 드라이버를 사용했고, 빈티지 클래식 스피커 중에서는 하나뿐인 스탠드 마운트 스피커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빈티지 클래식 라인업 중에서도 8인치 드라이버를 사용한 스탠드 마운트와 플로어 타입 두 모델은 마그네슘 진동판의 트위터를 탑재하였으며, 다른 빈티지 클래식 모델은 모두 티타늄 트위터를 공통으로 적용하였다.
다른 빈티지 클래식 모델들이 750Hz의 크로스오버 포인트를 둔 것과 달리 마그네슘 트위터를 탑재한 8인치 드라이버의 두 모델은 1.8 kHz로 크로스오버 포인트가 설정되었으며, 로 패스 필터는 2차로 같지만, 하이패스 필터는 1차로 구성한 점도 달라졌다.
파인오디오의 다른 스피커들과 마찬가지로 하이 프리퀀시 에너지(1.8kHz-26kHz)와 프레즌스(2.5kHz-5.0kHz)를 3dB 내에서 전면에 위치한 놉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릴을 부착하면 놉이 가려서 보이지 않으므로 눈에 거슬리지 않게 된다.
권장 앰프 출력은 30에서 180W이지만, 360W까지의 피크 파워 핸들링이 가능하며, 연속 파워 핸들링도 90W까지 가능하므로 91dB의 효율을 감안하면 스탠드 마운트 스피커로서는 상당히 큰 음량을 얻을 수 있겠다.
후면 단자는 바이와이어링에 대응하며, 점퍼 케이블이 부속되어 있지만, 사용자가 점퍼 케이블을 교체하거나 바이와이어링을 통해 소리에 변화를 주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흥미로운 부분은 번들 점퍼 케이블으로 들으면 마치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비닐 레코드를 빈티지 스피커로 듣는 음색에 더 가깝다. 캐비닛은 과거의 스피커들보다 더 특성이 좋은 HDF(High Density Fiber board)로 제작되었고, 보강재로 울림이 없도록 견고하게 처리하였다. 그리고 외부는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한 느낌의 월넛 무늬목으로 마감했다.
최신의 하이엔드 스탠드 마운트 스피커들은 우퍼 크기가 거의 6.5인치가 표준으로 되다시피했지만, 그보다 8인치 드라이버가 저음의 깊이나 스케일감에서 분명한 우위와 만족감을 준다. 10인치 드라이버를 탑재한 모델에서라면 더 나은 효율(94dB)과 저음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만큼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진동판의 분할 진동 현상이 발생시키는 왜곡도 증가한다.
스탠드 마운트 모델이긴 하지만 거실 장 위에 올려놓고 사용한다면 인테리어 측면에서도 잘 어울릴 것이다. 빈티지 클래식 시리즈 스피커들은 월넛 무늬목과 패브릭으로 마감되어 있는데, F1 시리즈나 빈티지 시리즈처럼 눈부실 만큼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외관은 아니다. 하지만 언뜻 간소하고 무심해보이는 박스 스타일임에도 만듦새와 디테일은 훌륭하다. 드라이버 보호를 위해서도 어차피 그릴로 덮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보고 사용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시청평
안느 소피 무터와 빈 필하모닉의 카르멘 환상곡은 처음 오케스트라의 열정적인 합주로 시작되는 데 이 도입부를 깜짝 놀랄만큼 강렬하게 들려줘서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뒤 이어 나오는 무터의 현의 음색도 이전의 스피커에서는 듣지 못했던 것처럼 투명하고 잘 뻗어줘서 오디오적인 쾌감이 대단하다. 그리고 큰 음량 뿐 아니라 작은 음량의 디테일이나 뉘앙스 재생도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주에서의 적막감이나 공간감이 마치 실제 콘서트 홀에 앉아 있는 느낌을 준다. 독주자가 활을 긁을 때의 현의 탄력과 걸리는 느낌이 잘 전달되었다. 반주 오케스트라가 합주로 현을 퉁길 때에는 마치 스피커가 악기라도 된 것처럼 리얼하고 기분좋은 울림이 전달된다.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과거 빈티지 스피커들처럼 울림이 길어지면서 독주악기에 뒤쳐지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서 안심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굴다와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No.21 1악장을 감상해봤는데, 피아노의 고음 음색이 기분좋을 만큼 투명하고 영롱하게 잘 표현되었으며 다이내믹스의 대비 역시 시원스럽게 표현되었다.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의 음색이 선명하게 부각되면서 힘있게 뻗어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관악기 역시 다른 스탠드 마운트 스피커와 달리 적절한 규모감을 갖고 충분한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점이 좋았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중저역은 상대적으로 덜 선명하고 때로는 같이 섞이지만 기분좋은 통울림이 잘 퍼지면서 감상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포근함이 좋았다. 이 스피커의 특성이 활기차고 생기있는 모차르트 음악의 본질을 잘 들려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나 넵트렙코가 부르는 베르디 아리아 모음집에서 맥베스를 들어보면 고음에서 다이내믹스에 여유가 있고, 억지스러운 부분 없이 시원스럽다게 들린다.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번갈아 나올 때 큰 소리를 아무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쏟아내다가 또 조용한 부분으로 전환될 때에는 공간감과 작은 디테일을 모두 스피커가 능숙하게 들려주는 부분에 감탄하게 된다. 그냥 조용하기만 한게 아니라 공간감 재생에 필요한 미세한 디테일을 생략하지 않고 계속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사실 대출력 트랜지스터 앰프 시대 이후로 스피커는 성능이 우선이고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북셀프 스피커들은 대형 스피커와 경쟁할 평탄한 응답과 낮은 대역까지 욕심내다보니 오히려 이런 부분은 다 놓쳐버린 것 같다.
브라이언 터펠이 부른 홈워드 바운드에서 중역대의 음색과 표현력을 감상해볼 수 있었다. 더 큰 10인치 드라이버를 탑재한 모델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올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가수가 부드럽게 속삭일 때와 큰 목소리로 성대를 눌러가면서 부를 때의 음색의 변화가 잘 구현되었으며, 흥미로운 부분은 반주 악기에서 리코더처럼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음색이나 다이내믹스의 특성이 아주 리얼하게 느껴졌다. 과거 빈티지 스피커들은 고음 재생에 어려움이 있다보니 사용자 입장에선 불만을 갖고 별도의 슈퍼트위터를 달게 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최신 기술을 적용하다보니 그런 걱정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녹음이 잘 된 덕분이겠지만, 사운드 스테이지의 레이어링이 잘 재생되어 코러스와 반주 오케스트라의 원근감이 잘 재생되었다.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지휘한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브루크너 4번 교향곡처럼 금관 악기가 멜로디를 주도적으로 연주하는 관현악 음악들을 들어봤다. 호른이나 트럼펫 같은 악기들의 강렬한 에너지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부분이 대단히 신나고 즐겁게 느껴진다. 특히 중저음에서는 박스형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통울림이 만들어내는 착색까지 나쁘지 않게 들린다. 이런 과거의 음반을 고해상도 음원으로 디지털 시스템으로 재생하다보면 저음이 부풀고 섞이는 부분이 생기긴 하는데, 만일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비닐 레코드를 듣는다면 적절한 밸런스로 재생이 될 것 같다. 대형 스피커를 떠올리게 할 만큼의 에너지나 다이내믹 스케일은 참 좋지만, 최고의 하이엔드 시스템에서 가능한 중저음의 해상도와 매끄럽고 정교한 재생까지 바라는 건 무리다. 개인적으로는 실제 콘서트홀에서의 저음이 오디오 시스템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하게 부각되어 들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오디오 매니아들 입장에서는 항상 뭔가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스피커로 모든 걸 다 갖기는 어려우니 선택이 필요하고, 만일 다른 특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더 나은 성능을 원한다면 빈티지 클래식 X이나 XII처럼, 아니면 빈티지 시리즈처럼 더 큰 드라이버와 더 무겁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캐비닛이 갖춰진 상급기로 가야 충족이 될 수 있겠다. 제작사 입장에선 물론 더 비싼 스피커를 구입해주면 좋겠지만, 필요와 예산에 맞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서 선택하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물론 이 가격대의 스피커로서 충분히 어필할만한 스케일의 규모감과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점은 분명하고 방에서는 더 큰 사이즈의 스피커는 제 성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폴리니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31를 들어봤다. 과거 빈티지 스피커들과 다르게 투명하면서도 밝고 생생한 음색이 즐거웠고, 91dB라는 높은 효율 덕분에 피아노라는 악기의 본질에 잘 맞게 작은 소리와 강한 소리의 대비를 대담하고 극적으로 표현해줬다. 이를테면 건반을 강하게 타건했을 때 에너지가 마치 앞 자리에서 감상하는 것처럼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으며, 왼손 건반이 두드리는 저음 역시 다이내믹스이나 재생 대역에 대한 제한 없이 큰 음량까지 무난하게 깨끗한 소리로 재생한다. 중저음에 묻히기 쉬운 고음의 에너지도 힘있게 잘 전달되었다.
피아노의 고음에서는 혼 특유의 벨 처럼 약간 울리는 듯한 착색이 있는데, 이 부분 역시 거슬리기보다는 오디오적으로 귀를 더 기울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고, 그보다는 높아진 효율 덕분에 전반적으로는 왜곡이 낮고 자연스럽게 들렸다. 무엇보다 연주자가 의도한 건반이나 페달의 표현들이 귀에 즉각적으로 잘 전달되어서 음악에 저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근래 내한 공연을 가진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No.16 in A MINOR D845를 들어봤다. 콘서트홀의 좌석에서는 마이크로 녹음된 음반의 소리에 비해 더 많은 잔향을 듣게 되는 편인데, 연주자가 섬세한 터치로 빚어내는 피아노의 미묘한 음색들이 잘 재생되어서 만족스러웠다. 실연에서 들었던 원근감을 생각하며 프레즌스 놉의 위치를 조절해봤는데, 극적인 변화보다는 약간 조정하는 느낌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 TV 플러스에서 뱅상 카셀과 에바 그린이 출연한 'Liason'을 감상해봤는데, 대사나 효과음향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선명하고 정확하게 들린다. 음량을 크게 올리고 싶어지는데, 다른 집에 방해되기 직전까지 올리더라도 귀나 스피커가 모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공간감의 표현력이 대단히 우수하다. 이를테면 길에서 자동차가 멀리서 지나가는 장면, 컵의 물을 마시는 장면, 책상에 총을 내려놓는 장면 등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효과 음향들이 실감나고 현장감 있게 느껴지다보니 영화의 모든 장면에 대한 몰입도가 현저하게 올라간다.
앞에 2개의 작은 스피커를 앞에 둔 것에 불과하지만, 대형 극장에서 큰 스피커들을 설치한 멀티 서라운드 시스템의 느낌까지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들려줄 수 있다. 그리고 음악 재생이 우선인 스피커답게 이 영화의 장면에 어울리도록 의도된 다양한 배경 음악들의 느낌과 분위기가 섬세하게 잘 재생되었다. 이 스피커로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모든 장면의 영상과 음향이 한데 어울려 꽉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유리창이 깨진다거나 총이 발사되거나 하는 강렬한 효과 음향의 에너지를 잘 재생해낸다.
인위적으로 연출된 효과음향을 재생하는 홈시어터 스피커의 기준에서 보면 고음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에 비해서 저음이 약간 느긋하고 익스텐션도 더 필요하겠지만, 이 부분은 서브우퍼를 더해서 딥 베이스 대역을 넘겨주면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한 장점들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스피커에 손이 기운다. 그리고 10인치 우퍼를 탑재한 빈티지 클래식X 스피커정도면 디스플레이 곁에 두더라도 시각적으로 간섭이 되지 않을 것 같고 음향적으로도 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결론
과거 빈티지 스피커들의 높은 효율이나 큰 드라이버, 캐비닛 등은 사실 소스 기기나 앰프가 발전하기 전에 필요했던 요소였다고 여겨졌다. 이 스피커를 듣다보면 그동안 놓치고 있던 스피커의 역할이 아직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현대 스피커의 목표는 전기를 충실하게 소리로 변환시켜주는 역할일 것이다. 그래서 제작사들은 극도의 해상도와 함께 낮은 왜곡으로 넓은 대역과 커다란 다이내믹 레인지를 들려주는 경쟁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매끄러운 밸런스와 정교한 사운드스테이지도 함께 얻어졌다.
하지만 스피커가 최신 공학 기술의 결정체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가면서 앰프와 공간 사이에 놓여진 중재자로서의 본질에 소홀했던 감이 있다. 실제로 출력이 좋은 앰프로도 구동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스피커들이나 과잉된 에너지로 공간에 어울리지 못해서 툼 튜닝에 고민을 안겨주는 스피커들이 많다. 아무리 스펙상 좋은 스피커라고 해도 감상자에게 실제 음악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득해야지, 대단한 스피커가 앞에 놓여져 있고 악기에는 사용되지도 않는 고가의 소재를 써서 이제껏 세상에 없던 소리를 들려줄 테니 집중해서 잘 들어보라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반대로 빈티지 클래식 VIII SM 스피커는 외관 만큼은 두드러지지 않고 겸손해보이지만, 음악가들과 연주자들의 생각과 감성을 어느 스피커보다도 현실적으로 잘 들려주는 훌륭한 전달자다. 컴프레션 혼 트위터와 박스 형태의 캐비닛 울림을 활용한 저음이라는 특성은 분명하지만 음악적으로도 특이 성향이 적고, 관악기나 현악기 등의 음향 특성과 어긋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들린다. 페이퍼 콘 우퍼와 컴프레션 드라이버가 함께 만들어내는 음색은 기대하는 만큼의 레트로 감성이 살짝 살짝 묻어나며 시청 공간을 과거의 세상으로 돌려 놓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로서 8인치 드라이버라는 물리적인 규격은 올라운더로서는 황금의 밸런스라고 할까. 거실은 물론이고 방까지 대부분의 감상 공간에 잘 어울린다. 전방위로 방사되는 저음 포트를 갖고 있어서 설치 위치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거실 장에도 쉽게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다. 이 스피커의 91dB라는 높은 효율은 앰프에 부담을 주지 않고 낮은 왜곡으로 최선의 다이내믹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큰 기대 없이 연결했던 앰프의 음색이 이랬던가 싶을만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색과 넉넉하고 풍성한 밸런스로 원하는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
스탠드 마운트 스피커 중에 익히 잘 알려진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 여전히 많고, 현 시점에도 대형 스피커와 다른 독자적인 영역에서 존중 받을만하다. 그리고 빈티지 클래식 VIII SM 스피커 역시 스펙이나 측정치가 아니라 실제 사용 환경에서 들려줄 수 있는 음악성에서 최고의 소형 스피커들과 겨룰 만하다. 게다가 특별한 서브 시스템을 원한다면 디자인과 음색에서 이처럼 독특한 레트로 감성의 스피커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빈티지 클래식이라는 대단히 제한적인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굳이 과거의 시스템에 향수를 느끼는 분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 없다. 어느 최신 스피커 이상으로 맑고 투명한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모든 면에서 지금 시점에 최선의 선택이 될 최신의 스피커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박우진
시청 시스템 : 마크레빈슨 No.5805 인티앰프, 비올라 포르테 모노블럭 앰프, dCS 바르톡 DAC, 오렌더 N200 네트워크 스트리머/뮤직서버, 실텍 애니버서리 클래식 680i XLR 인터커넥트 케이블, 880L 스피커 케이블, 크리스탈 케이블 모네 네트워크 케이블, 피콜로 점퍼 케이블, 린 LP12 매직 턴테이블/Adikt 카트리지, 멜코 S100 스위칭 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