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드 존슨 ACT2 프리앰프
최윤욱
시작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진공관 앰프 회사 두 곳을 대라면 오디오 리서치와 콘라드 존슨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쌍벽을 이루는 브랜드인데 왠지 한국에서는 오디오 리서치는 널리 알려져 있고 콘라드 존슨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느낌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양대 브랜드답게 소리도 상당히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 오디오 리서치는 진공관 앰프답지 않게 저역 특성이 좋으면서 넓은 무대와 개방적인 느낌의 시원시원한 사운드를 내주는 대신 고역의 음색은 진공관답지 않게 부드럽기 보다는 해상력 위주의 음색을 가졌다. 콘라드 존슨은 이런 성향의 반대편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양이 충분하면서 풍성한 저역, 농밀하고 충실한 중역, 그리고 진공관 앰프다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음색의 고역을 가졌다. 오디오 리서치는 진공관 앰프 이면서 TR 앰프의 특성인 광대역과 높은 해상력을 닮아간 경우이고 콘라드 존슨은 진공관 앰프 본래의 모습에 충실한 길을 걸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오디오 속담 중에 ‘생긴 대로 소리 난다’는 말이 있다. 오디오 리서치와 콘라드 존슨을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디오 리서치 앰프는 은색이거나 블랙인 반면 콘라드 존슨은 황금색 패널을 고집스럽게 채용하고 있다. 간혹 은색이나 검정도 보이긴 하지만 고급 모델은 거의 황금색 패널을 채용하고 있다. ACT2의 경우 리모컨도 샴페인 골드로 아노다이징 처리되어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음색에 어울리는 황금색에 콘라드 존슨이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예전에 콘라드 존슨의 파워 앰프인 프리미어11과 12를 시청하면서 그 아름다운 음색을 샴페인 골드의 앞 패널 색깔이 너무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준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뒤로 석류를 연상하면 입에 침이 고이듯이 샴페인 골드 색깔의 패널만 보면 콘라드 존슨의 찬란한 광채를 띠는 따뜻한 음색이 연상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음색 좋기로 이름난 쟈디스의 앞 패널도 황금색이 아닌가. 역시 오디오는 생긴 대로 소리가 난다는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진공관 앰프 음색이라고 하면 보통 부드럽다고 표현하는데 콘라드 존슨 앰프는 그 부드러움 속에 독특한 음색이 있다. 따뜻하면서 광채를 발하는 음색이다. 색소폰 음색을 콘라드 존슨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호소력 있게 내준 앰프는 없다는 세간의 평이 있는데, 필자의 기억 또한 그러하다. 콘라드 존슨의 이런 음색 탓에 금관악기 그 중에서도 색소폰 소리가 특히 인상적으로 좋았다. 혹자는 색소폰의 리드가 나무재질이라 금관이 아닌 목관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울림통이 금속인 만큼 금속 느낌의 음색을 가지기에 금관악기로 보기도 한다.
내 외부 구경하기...
콘라드 존슨 프리앰프를 리뷰 해보겠냐는 제의가 왔을 때 흔쾌히 하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너무도 기억이 좋았던 파워 앰프 프리미어11A의 음색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ART’라는 프리 앰프가 나오기 전까지 콘라드 존슨은 진공관 앰프 회사지만 프리 보다는 파워로 유명한 회사였다. 기함급인 ‘ART’를 발표하면서 프리 앰프도 파워 앰프에 버금가는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다. 이번에 리뷰하는 ACT2도 이러한 흐름의 끝에 위치한 프리 앰프로 콘라드 존슨의 가장 최신 버전의 프리 앰프인 셈이다. 필자는 어떤 기기를 리뷰하든지 분해해서 내부를 꼭 보고나서야 시청을 하는 버릇이 있다. 일단 외부를 보고 간단하게 분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분해를 시작했다. 밑판부터 분해를 하나하나 해나가는 데도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이 프리의 1층과 2층이 분리가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1시간여의 궁리 끝에 1층과 2층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다 분해하고 보니 외부를 감싼 섀시만 무려 9조각으로 짜 맞추어져 있었다. 애호가가 분해해보고 싶다고 한다면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분해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중에 분해가 어려운 기기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들 정도다.
내부 구조를 살피는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섀시와 메인 기판을 플로팅 시킨 것이었는데 보통 보는 식의 고무발로 밑에서 받쳐서 완충시킨 형태가 아니라 옆에서 잡아서 완충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기판을 옆에서 잡아서 완충시키면 기판 중앙이 축 늘어지면서 휘어져 버리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판 테두리에 금속프레임을 대고 기판과 프레임을 결합 시킨 후 금속 프레임을 옆에서 외부 섀시와 완충재로 결합시켜서 플로팅 되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좁은 공간을 이용한 아주 효율적인 플로팅 구조다. 상당히 기발하면서도 음질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크지 않은 공간에 꽉 들어찬 필름 콘덴서를 보면 내부가 빼곡히 부속으로 꽉 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의 하이엔드 앰프들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채용하는 추세에 발맞추어 기판 실장형으로 회로를 구성하는 것과 달리 전통적으로 음질이 좋다고 알려진 필름 콘덴서를 사용하고 저항 등의 소자도 음질이 좋다는 제품을 일일이 납땜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작했음을 한눈에 확인 할 수 있었다. 뒤편에 일렬로 늘어선 릴레이에서 보듯이 ACT2는 입력 선택은 물론 100스탭으로 조절되는 음량도 각 단마다 릴레이를 사용해서 작동되도록 했다. 물론 이 릴레이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통해서 컨트롤되게 해서 사용자 편의성을 충분히 고려했다. 물론 이 모든 기능은 리모컨으로 그대로 컨트롤 가능하다. 외관은 보다시피 샴페인 골드 앞 패널을 1, 2층 모두에 전면 패널로 채택했고 2층 좌측에 진공관을 보이게 배치하고 진공관의 보호를 위해서 아크릴로 망을 구성했다. 전체적으로 볼륨레벨을 알려주는 숫자의 크기가 다소 어색하다는 점 외에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사각형 일변도의 프리앰프에 비해서는 시각적으로 더 낫다는 느낌이다.
기능을 살펴보면 좀 특이한 것이 보이는데 EPL1, EPL2가 그것이다. EPL1은 테이프 데크 등의 입출력 게인이 다른 소스기기 녹음 시 사용되는 기능이고, EPL2는 5채널이나 7채널로 AV 구성 시 신호를 바이패스를 시킬 수 있는 기능이다. 회로 구성은 보편적인 삼극 증폭을 택하고 있고 특이하게 피드백을 전혀 걸지 않았다고 한다. 사용 진공관은 6DJ8의 슈퍼 튜브라 불리는 6H30을 4알 사용하고 있다. 요즘 유수의 진공관 프리앰프 회사들은 앞 다퉈 이 관을 사용하고 있는데 관의 스펙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6DJ8보다 아이들링 전류가 훨씬 더 많고 대역 특성이 더 넓고 자체 임피던스가 더 낮다. 따라서 진공관의 음색을 가지면서도 상당히 낮은 아웃 임피던스를 갖춰서 파워 앰프와의 매칭이나 신호 전송에 유리하다. 6H30 진공관은 원래 러시아제 관으로 우주항공용으로 개발된 관이다. 그러던 것을 러시아 기술자들이 설립한 BAT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로 오디오 리서치, 소닉프론티어 등에 공급하면서 일약 고가 진공관 프리앰프라면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관으로 인식 될 정도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소리 들어보기....
주말을 맞아서 집중적으로 시청했는데 시청 전에 가격을 일부러 알아보지 않은 채로 시청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첫 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소리를 내주었다. 제니퍼 원스의 [The Hunter] 앨범 중 Way down deep을 들어보면 보컬과 악기가 위치하지 않는 빈공간이 정말로 깨끗하게 처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개 이렇게 배경을 놀라우리만치 깨끗하게 처리하는 프리들은 음상은 정확하게 자리 잡지만 음악이 싱겁고 밋밋하게 되기가 쉽다. 한마디로 배경의 적막감은 아주 좋지만 음악이 재미없어져 버려서 좋은 소리 같긴 한데 음악에 집중이 안 되버리기 일쑤다. 대표적으로 Ayre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ACT2는 이런 기우를 말끔히 날려버릴 만큼 음악도 생동감 있게 들려주었다. 부연 설명하자면 배경에 낀 뿌연 먼지는 깨끗이 닦아버리고 음상 부분은 오히려 간추려서 더 돋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보여주었다. 보통 음상 부분만 강조해서 간추리다 보면 음악적 뉘앙스나 디테일을 손상키는 경우가 많은데, ACT2 프리는 음상 부분을 강조하면서도 디테일이나 뉘앙스를 더 돋보이게 해서 음악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대역밸런스는 모범적이라고 표현할 만 했는데 저역부터 고역까지 평탄하면서 특정 대역이 앞으로 나오거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예전의 콘라드 존슨을 기억하는 애호가가 언뜻 들으면 저역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지만 아주 단정하고 단단한 핵이 느껴지는 질 좋은 저역을 갖추고 있다.
야신타의 ‘Moon river’를 듣다보면 야신타가 눈앞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깨끗한 배경 한가운데 야신타의 입술이 위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야신타의 무대위치는 스피커 연결선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흔히 말하여지듯 스피커 뒤에서 무대를 형성하는 프리는 아니고 그렇다고 앞으로 포워드하게 나오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다. 무대의 크기도 오디오 리서치처럼 인위적으로 크게 펼쳐놓는 스타일은 아니고 적당히 자연스러운 무대 크기를 가진다. 앞 뒤 깊이감의 표현도 깊지도 얇지도 않은 정당한 수준을 유지했다. 콘라드 존슨 앰프를 언급하면서 고역의 음색을 언급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예전의 콘라드 존슨 앰프에 비해서는 달콤함이나 짙은 호소력이 약간 줄어든 느낌이다. 그러나 오디오 리서치의 그것에 비한다면 분명 달콤하고 호소력 있고 매력적인 음색이다. 여기서 콘라드 존슨의 새로운 음에 대한 방향을 느낄 수가 있다. 꿀물이 줄줄 흐르는 듯한 호소력 짙은 음색을 약간 절제하고 대신에 지저분했던 배경을 깔끔히 정리하고 다소 오버하는 듯한 울림의 과잉을 줄이면서 정확하고 단단한 음상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콘라드 존슨의 음에 대한 변신은 기존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 하이파이의 추세에 발맞추는 방향으로의 진화라고 판단되는데 특히 대편성 곡을 들으면서 그 변화의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샤를르 뮌쉬 지휘의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들어보면 예전 같으면 저역의 양이 넘쳐서 풀어지는 느낌을 주면서 무대 전체가 총주 시 흐트러지는 것을 감수하고 들어야 할 부분에서도 단정하면서 절도 있는 저역과 총주 시 흔들리지 않는 음상을 바탕으로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필자가 느낀 콘라드 존슨의 이런 변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시청 시 아쉬운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음질과는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밸런스드 입출력 지원이 안 된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밸런스 단을 만들어 붙여놓는 것보다는 솔직해서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둘째는 낮은 레벨의 볼륨에서 대역밸런스에 약간의 미흡함이 있었다. 기백만 원하는 프리들에 비하면 로 레벨에서의 밸런스가 뛰어난 수준이지만 기천만 원하는 프리들에 비하면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가격을 모른 상태서 시청하면서 이거 천만 원은 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가격은 천만원대 중반을 넘어가는 가격이었다. 이런 가격을 감안하면 로 레벨에서의 밸런스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다. 하긴 요즘 웬만한 앰프들 기천만원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서 작지 않은 금액이지만 상대적으로 비싸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면서....
이 프리를 시청하면서 참 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스기기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전달하는 게 프리의 본 목적이라면 ACT2는 그 본래의 기능에 약간 벗어나 있거나 아니면 약간 초월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분명 있는 그대로 뱉어내는 스타일의 프리는 결코 아니다. 자기만의 개성이 분명히 있는 프리앰프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저분하고 뿌연 배경을 분명 깔끔하고 깨끗하게 청소해준다. 음상도 윤곽을 분명하게하고 배경과 음상사이의 대비를 극대화 시켜서 콘트라스트를 극적으로 개선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개 이런 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프리들은 음악을 인스턴트 식품처럼 맛없게 만들어버리는데 ACT2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좀 독특하다. 적극적으로 배경을 깨끗하게 하고 음상을 정확하게 만들어 주면서도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호소력을 더 높여 주지만 그 정도가 적당해서 물리거나 싫증이 나기 전의 적정선을 유지한다. 이점이 콘라드 존슨 음의 변화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ACT2 프리를 들으면서 느낀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혼자 독학으로 공부해서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아직 확실하게 이해를 하지 못한 이론을 실력이 뛰어난 교수가 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짚어서 정리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만드는 것 같다. 몇 번 들어야 ‘아! 그렇구나’하고 알게 되는 음악적 요소들을 한두 번 만의 시청으로도 파악할 수 있게 핵심은 간추려서 강조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정리해서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의 프리다.
첫 음부터 강열하게 시청자를 잡아끄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음악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 것인지 알게 해주는 프리다. 오디오적인 쾌감만을 쫒는 애호가가 아니라면 관심을 두고 시간을 가지고 시청해 볼만한 프리 앰프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양
게인 : 21.5dB
최대 출력 : 10vrms
출력 임피던스 : 500Ω 이하
왜곡 : 0.1% THD 이하
주파수 응답(at unity gain) : 2Hz~100kHz 이상
험, 노이즈 : 100dB below 1.0V
관 구성 : 6N30P×4
크기 : W483×H137×D400mm
무게 : 13.6kg
시청 시스템
CD플레이어 : 메리디안 508.24
앰프 : 크렐 FPB300
스피커 : 틸 CS6
케이블 : PAD,실텍 인터/ 너바나SL 바이런 스피커케이블
문의처
소노리스 02-514-3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