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원(socio59@netsgo.com) 2002-06-23 15:29:51
필립스"는 세계 최대의 가전회사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와 홈시어터 매니아들에겐 한동안 잊혀진 이름이기도 했다. 850,950,930(뒤에 951,931로 변경)등의 시디플레이어로 하이파이 오디오 입문기 시장을 제패하기도 했지만 후속 기종이 없어서 90년대 후반 이후 “필립스"는 값싼 시디카세트나 미니콤포 시장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앞서 소개했던 SACD1000을 비롯해 이번에 리뷰하게 된 Q50 DVD플레이어를 보면서 확실히 “필립스"의 이미지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결론부터 말하면 Q50 DVD플레이어는 각사별로 물밀듯이 출시되고 있는 프로그레시브 스캔 DVD플레이어들 중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기능과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가격도 매우 경쟁력있는 제품이다. 과거 필립스 950이 시디플레이어가 하이파이 오디오로 가는 입문기로서의 역할을 했듯이 Q50은 고화질 홈시어터로 가는 길잡이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제품이 될 것이다.
우선 외관부터 살펴보자. 높이 72.5mm의 날씬한 몸매이다. 가운데에 트레이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보통 주변에 있어야할 대형 디스플레이 창이 없다. 숫자로 트랙넘버, 시간을 알려주는 디스플레이가 없는 것이다. 대신에 오른쪽 구석에 작은 정사각형의 디스플레이가 있는데 여기에 아이콘으로 현재의 플레이 상태가 표시된다. 사실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고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콘을 사용한 필립스의 디자인에는 다소 불만이다. 그러나 제품의 슬림화를 위해서 선택한 방법으로 보이고, 재생중에는 OSD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는 편이다. 저가형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샤시의 금속재질이나 플래스틱 몸체와의 연결 부분이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싼티가 나지 않는다. 무언가 묵직한 걸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빈약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VCR같았던 기존 필립스 제품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 트레이가 열리고 닫히는 동작은 잡소리가 나지 않아서 좋았으나 트레이가 덜그럭거리고 가벼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전면의 버튼들이 다소 반응이 느린 듯한 점을 느끼기도 했다. 뒷면을 보면 DTS,DD 디코더를 내장하여 6채널 아날로그 출력을 지원하기 때문에 작은 몸체에 6채널 아날로그 출력, 2채널 출력, 콤포넌트 ,S비디오,콤포지트, 디지털 동축, 토스링크 출력단자가 자리잡고 있다. 아담한 크기의 리모콘은 손에 쉽게 잡히는 디자인에 버튼 배치도 편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백라이트가 없어서 결정적으로 조명을 끄고 시청할 때 원하는 버튼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에는 야마하 AX-1 리모콘에 주요 기능을 학습을 시켜서 사용했다. 설정메뉴의 인터페이스는 기존 필립스 제품(SACD1000)과 거의 같아서 아이콘 형태로 되어 있는데 SACD1000을 이미 사용해 봐서 그런지 낮설지 않았다. 아마도 며칠 사용해 보시면 금새 익숙해질 것이라고 본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파루자의 DCDi 회로를 탑재했다는 것이다. 전면 패널에도 자랑스럽게 DCDi의 로고가 인쇄되어 있다. 이것은 FLI2200 디인터레이싱칩을 탑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다시피 파루자라면 초고가의 비디오 프로세서로 유명한 회사이다. 고급기들은 수만불이 넘는 가격인데다가 싼 제품이라도 수천불대라서 쉽사리 넘불 수 없는 제품들이었는데 그 기기에 들어간 기술을 수십만원짜리 DVD플레이어에서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칩자체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다. 지난 2000년 6월에 파루자를 합병한 SAGE.Inc가 파루자의 노하우와 자사의 IC 생산 기술을 결합하여 생산한 것이 이 FLI2200 디인터레이싱 칩이며 그 고성능과 활발한 영업 탓인지 이것을 채택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최근에 삼성전자가 자사의 프로그레시브 스캔 DVD플레이어에 FLI2200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고, 엘지전자도 PDP에 이칩을 사용한다고 한다. DCDi(Directional Correlational Deinterlacing)는 일반적인 인터레이스드 신호에서 프로그레시브로 변환해주면서 대각선으로 거칠게 들어나는 엣지들을 없애주어서 부드러운 화면 재생을 가능하게 한다.(http://www.dcdi-video.com/)
화질 체크는 480p 입력을 지원하는 SD급 TV인 삼성 A7DR에 콤포넌트단자로 연결하여 실시했다. 대형 디스플레이에 연결하여 시청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쉬운 점인데 기회가 되는데로 CRT프로젝터로 시청해볼 생각이다.
비디오엣센셜로 TV쪽을 캘리브레이션을 하고서 시청을 시작했다. “마스크 오브 조로"의 군중장면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장면을 보면 몰려드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보여준다. 라인이 겹치거나 떨리는 것이 없어서 시원하게 한눈에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붉은 톤이 도는 색조가 소니 9000ES에 비교하면 약간 부드러워져 보인다. 전에 사용하던 파이오니어 S9에 비교하면 약간 덜선명하게 느껴졌다. 약간 과장한다면 파이오니어나 소니의 경우 캘리포니아의 무더운 날씨가 몸에 전해지는 듯 정말 더워보였다면 필립스는 약간 덤덤한 편이라고 할까...아무튼 색감에서 다소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것은 디스플레이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아티팩트나 노이즈가 없었고 소니 9000ES에 비교해도 디인터레이싱 기능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없었다.(사실 9000ES에 사용된 제네시스칩보다 Q50에 사용된 SAGE/FAROUDJA의 FLI2200 칩이 디인터레이싱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트릭스"의 모피어스 구출장면에서도 벽에서 떨어져 나오는 콘크리트 파편,물방울 등 화면을 가득 메우는 아주 미세한 조각조각들을 모두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매트릭스는 여러번 보았는데도 Q50으로 볼 때 전에 못보았던 장면을 새롭게 보는 듯 했다. 현란한 액션 속에서도 대충 얼버무리고 가는게 없기 때문에 테스트를 위해 보고 있으면서도 어느새 테스트는 잊어버리고 화면에 집중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마도 노정현님께서 온쿄939를 리뷰할 때 느꼈던 소감을 그대로 옮겨 적어도 될 듯 싶다. “더록"의 험비와 페라리의 추격장면에서 페라리의 반짝반짝한 질감이 선명하게 전해온다.
소니9000ES 사용자로서 매우 배가 아픈 일이긴 하지만 아마도 필립스를 먼저 보았다면 소니9000ES를 구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보자면 역시 소니가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약간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가장 핵심적인 화질에서 필립스 Q50은 9000ES에 대등한 실력을 보여주었다.(물론 이런 결론은 29인치 SD급 TV로 한정된다)
역시 화제의 제품인 엘지전자의 A956과 비교를 해보면 애국심이라는 팩터를 제외한다면 필립스에 손이 갈 수 밖에 없다. 디스플레이만 잘 조정하면 화질에서 두 기기간에 큰 수준 차이는 없다. 게다가 A956이 파격적인 40만원대 가격에 판매되고 있기는 하지만 제품의 디자인이나 사용상의 편리성,A956이 아직 세세한 버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필립스를 선택하겠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격을 중시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엘지 제품을 권한다. 아직 삼성전자가 프로그레시브 스캔 DVD플레이어를 시장에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엘지 A956은 보급형에서 좋은 선택이 될 것이고 이젠 굳이 30만원대의 인터레이스드 DVD플레이어를 살 필요는 없다.(당장 프로그레시브 스캔 기능을 활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시디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살펴보기 위해서 동료 필자 노정현님에게 Q50을 보내어 테스트를 의뢰했다. (노정현님도 필자와 동일한 디스플레이를 사용중이라 화질에 대한 언급도 들었는데 역시 동일한 의견이었다.) 음질에 대한 노정현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Q50의 2채널 아날로그 출력의 성능(엄밀히 말해 CDP로서의 능력)을 보기 위해 온쿄의 DV-S939 및 에이프릴의 스텔로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Q50은 디스플레이 창이 무척 작은데다가 타이틀 정보가 표시 되지 않아서 무척 불편할 것 같았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불편한 점이 없더군요. 타이틀을 넣은 초기에 곡수 및 전체 시간 정보가 디스플레이 되지 않는다 뿐이지 트랙을 선택하면 트랙 넘버가 뜨면서 플레이 될 때는 원형 그래프가 나와서 곡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표시해 줍니다. 숫자로 얼마 진행되었는지 표시하는 것 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편하더군요.
음질에 있어서 전체적인 특징은 저역이 좀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거의 모든 DVD 플레이어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 Q50도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무게중심이 다소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해상도에 있어서는 온쿄 939나 스텔로에 비해 떨어집니다. 이 두 제품에 비하면 투명도가 떨어지면서 디테일이 떨어집니다. 이런 느낌은 특히 심벌즈나 하이햇등 드럼 셋의 미세한 울림을 잘 포착하지 못하는데서 두드러지는데요 파트리샤 바버의 “cafe blue"나 키스 자렛의 “standard in norawy"같은 음반의 드럼셋을 들어보면 심벌즈군의 미세한 울림을 표현하는데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음상들의 구분도 위의 두 기기에 비해 모호하게 표현됩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음색에 있어서 비슷한 가격대의 DVDP들과 달리 비교적 풍부하게 표현해줍니다. 특히 고역에 있어서 완전히 열려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지만 비욘디와 유로파 갈란테의 “비발디-화성의 영감"을 재생해 보면 귀에 거슬리기 쉬운 현소리들이 동급의 플레이어들에 비해 비교적 매끈하게 재생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역에 문제가 있을 경우 엄청나게 공격적이든지 혹은 매우 거친 현소리를 듣기 쉬운 이 음반에서 Q50은 고역쪽에 에너지가 다소 몰려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의 거칠음이나 공격적인 면은 없습니다. 피아노의 재생에 있어서도 저역의 부족함으로 인해 가볍게 들리는 음색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적어도 하모닉 디테일의 결여로 미디 피아노와 같이 단조로운 음색을 들려주지는 않습니다. 하모닉스의 디테일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음반중의 하나가 다이아나 크롤의 “Love scenes"나 “When I Look In Your Eyes"같은 앨범인데 플레이어의 성능이 떨어질 수록 뭉툭한 드럼셋("When I Look In Your Eyes “앨범의 경우만)이나 단조로운 피아노, 그리고 밋밋한 보컬을 경험하게 됩니다.
Q50의 경우 피아노의색이 단조롭기는 하지만 파이오니어 DV-525 처럼 음정만 들리는 미디음원 수준의 재생은 아니고 어느정도 음색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팝이나 락음악을 들을 때 어택이 부족한 저역 때문에 스텔로 처럼 어택이 강한 플레이어와 비교하면 심심하게 들리지만 비교하지 않고 듣는다면 특별하게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 저역의 양감이나 어택이 부족한 반면 전체적으로 꽤 경쾌한 페이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고역의 트랜지언트 특성이 떨어지는 해상도에 불구하고 꽤 좋은 편에 속하든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고역이 강조되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정확한 판별은 할 수 없는데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주는 제품입니다. 만약 $500의 CD 플레이어라면 더 좋은 소리를 들려줘야겠지만 레퍼런스급에 해당하는 화질을 고려할 때 별로 아쉬워할 부분이 없는 제품입니다.
아마도 국내 시장에 DVD플레이어가 보급된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판매된 제품이 삼성, 엘지 제품 외에 파이오니어의 DV-525,535같은 제품일 것이다. 이 제품들이 거의 60만원대에 팔린 적도 있으며, 불과 몇달 전까지 프로그레시브 스캔 DVD플레이어는 최소 100만원 이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필립스 Q50의 가격대 성능비는 놀라울 정도이다. DV-525나 삼성,엘지의 보급기에서 업그레이드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이 필립스 Q50이다. 이미 480p 입력을 받을 수 있는 SD급 이상의 TV를 갖고 있다면 하루빨리 프로그레시브 스캔의 고화질을 맛보시길 권한다. 20-30만원대의 보급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높은 수준의 기기이면서 수백만원대 고급기에도 당당히 도전할 수 있는 당찬 실력을 가졌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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