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레빈슨 No. 512 CD/SACD플레이어는 제품 포지션이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No. 390SL의 연장선상에 있다기 보다는 No. 31.5 레퍼런스 CD 트랜스포트와 No. 30.6 DA컨버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해야겠다. 다시 말해 No. 31.5와 No. 30.6를 한 몸체로 통합시키고 SACD재생까지도 할 수 있게 한 제품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파워앰프와 직결할 수 있게 해준 기능은 덤이다.
그러므로 예전에 비해 제품의 가로폭이 늘어났느니, 높이가 높아졌느니, 트레이가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옮겨갔느니, 전면패널의 곡면 가공이 사라져버렸느니 하는 얘기들은 제품 컨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 이유가 있다면 No. 512에서 트레이 로딩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No. 31.5 레퍼런스 CD 트랜스포트가 톱로딩 방식이었고 No. 390SL이 트레이 로딩 방식이었으니까 트레이 로딩 방식을 사용한 No. 512는 No. 390SL을 계승한 제품으로 오해할만하다.
일반적인 CD플레이어 설계에서는 트레이 로딩 방식이 톱로딩 방식의 수준을 쫓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제품은 통상적인 제품과는 다른 설계가 적용되었으므로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어설프게 속단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No. 512는 에소테릭의 VOSP (Vertically aligned Optical Stability Flatform) 메커니즘을 사용하고 있다. 이 메커니즘에는 광학 렌즈가 디스크 트랙의 이동에 따라 움직일 때 광학 렌즈의 축이 디스크 표면에 수직 방향을 유지하도록 조정하는 기술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트레이는 제품의 수준에 어울리게 메탈로 되어 있으며, 트레이가 열리고 닫힐 때의 시각적이나 감성적인 부분은 고급 제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킨다. 닫기 버튼을 누르고 SACD타이틀을 인식하는 데 걸리는 데 대략 11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메뉴의 설정 변경을 통해 고정 출력과 가변출력을 변경할 수 있다. 가변출력을 선택한 경우 볼륨이 0에서 39까지는 1.0씩 증가하는데 39이후부터는 0.1씩 증가한다.
마크 레빈슨의 제품답게 제품을 통합해서 조작하게 하는 기능이 마련되어 있다. Link2, MLNet 프로토콜로 다른 마크레빈슨 제품과 연동시킬 수 있게 했고, RS-232포트를 두어 크레스트론 같은 서드 파티 콘트롤러와 연동하여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내부 설계 부분을 들여보면 좋은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접근을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터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DDS (Direct Digital Synthesis)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트랜스포트에서 디지털 스트림을 읽고 해독한 후에 메모리 뱅크에 임시로 저장을 한다. 메모리 뱅크의 출력을 관장하는 것이 DDS인데 이때 DDS는 메모리 뱅크에서 빠져나가는 신호를 리클러킹시킨다. 이렇게 리클러킹한 신호를 디지털 회로에 보내므로 트랜스포트로 인한 지터가 효과적으로 제거된다. 이 방식의 좋은 점은 마스터 클럭을 한군데에서 관장할 수 있고 DAC쪽에서 마스터 클럭을 통제한다는 점이다.
SACD에 수록된 DSD디지털 신호를 네이티브로 처리할 수 있는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AD1955 D/A컨버터를 사용했다. (DSD신호를 네이티브로 처리한다는 뜻은 DSD신호를 PCM신호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DSD신호를 PCM신호로 변환시켜 재생하는 제품은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신호대 잡음을 줄이고 다이나믹레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채널당 D/A컨버터 칩을 두개씩 사용한 디퍼런셜 모드로 설계했다. 오디오 신호를 담당하는 PCB는 유전율이 낮은 Nelco® N4000-13 SI재료를 사용한 6층 PCB이며 각 부품에는 전원공급과 그라운드가 충분히 확보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 PCB를 금속 서브 인클로우저에 둘러싸서 노이즈가 침입하는 것을 차단시켰다.
그리고 디지털 회로와 아날로그 회로 각각에 전용의 전원이 공급이 되도록 설계한 트랜스포머를 사용했다.
들어보기
제품 청취는 GLV에서 했다.
마크 레빈슨 No. 512의 첫 인상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라는 느낌이다. 비교해 들어본 메리디언 800 CD/DVD플레이어는 소리가 술술 쉽게 나오는 스타일에 군더더기 없이 소리가 나오는 담백한 인상인 것에 비하면 No. 512는 밀도감이 느껴지는 스타일로 음악의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고 분위기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필자의 청취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메리디언 800 CD/DVD 플레이어: ‘무소유’, 마크 레빈슨 No. 512: 다혈질에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담겨짐
과거 마크 레빈슨 제품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No. 512도 고역이 닫혀있다는 인상을 준다. 피아니스트 타로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 연습곡을 들어 보면 피아노의 소리에 윤기를 잃지 않기는 하지만 약간 어두워졌다는 인상이다. 레퍼런스 레코딩 RR-57, John Rutter Requiem 앨범에 실린 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이라는 곡도 차분하게 들린다. 합창소리가 복사에너지처럼 발산하여 홀의 공간을 채우며 부유하듯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가벼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 대신에 사람의 합창에 좀 더 무게중심이 옮겨져서 더욱 진하게 들리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중역의 밀도감이 좋고 달콤하게 들린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타악기의 타격음은 좀 더 묵직하게 그러나 약간은 반응이 느려진 것 같은 인상이다. 스피드라거나 해상력 또는 저역의 디테일 이런 부분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음악의 분위기를 뜨겁게 만든다는 점에서 봤을 때 재즈 계열의 보컬을 재생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
이 정도의 결과로 본다면 개성이 분명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놀랍게도 전원품질을 개선시키는 PS Audio의 Power Quintet를 사용했더니 마크 레빈슨 No. 512는 이제껏 들었던 것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합창 소리는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홀의 공간을 따뜻하게 채워나간다. 닫혔던 것 같은 소리도 활짝 열리고 디테일해져서 부유하듯이 날아다닌다는 가벼운 느낌을 들게 해주었다. 타악기의 타격음은 제 무게를 가지고 반응도 민첩해진다. 음악의 미묘한 강약을 잘 살려줄 수 있게 되어 음악을 표현하는 데 깊은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대역이 뭉쳐져 있고 윗부분이 막혀있다는 인상이 사라지며 재생대역이 넓어지고 평탄하게 들리게 된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전에 들었던 진득한 재즈 보컬의 맛은 옅어지는 경향이 생긴다.
음악에 감흥을 받기 쉽게 튜닝한 제품은 대신에 소리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느리고 대역도 일부 좁혀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면에 소리의 반응이 재빠르고 광대역을 지향하는 제품은 그 대신에 음악의 밀도감이 잘 표현 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마크 레빈슨 No. 512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전자에 해당하는 제품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원 개선장치를 연결하게 되면 후자에 해당하는 제품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필자가 익히 잘 알던 프리앰프를 RPGC 파워하우스에 연결하니 이번처럼 완전하게 달라진 소리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해당 제품이 전원의 컨디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증거인데 이런 식으로 주변 컨디션을 통해서 소리의 특성 변경이 가능한 특성은 오디오 매칭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스피커를 바꿨더니 부담스러운 소리가 되었을 경우 다른 제품으로 교체를 하지 않고도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즐기는 음악 스타일에 따라 골라 적용해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어떤 시기에는 투명한 소리나 그런 소리에 어울리는 음악 장르에 끌릴 때가 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은 웬지 이 음악을 뜨끈하고 진하게 한번 들어보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약간의 수고로 소리에 변화를 주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마크 레빈슨 No. 512가 경쟁 제품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우위인 부분은 프리앰프 없이 파워앰프에 직접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크 레빈슨 No. 512는 디지털 볼륨이 장착된 다른 회사의 제품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 디지털 볼륨이 장착된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파워앰프에 연결해 들어보면 소리가 펜촉으로 와이어프레임만 그린 듯이 들려서 넓은 공간을 채우는 소리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 비해 마크 레빈슨 No. 512는 렌더링이 잘 된 그래픽처럼 정밀하게 표현할 수 있으므로 넓은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리모컨은 버튼에 불이 들어오므로 어두운 공간에서 사용하는 데에도 좋지만 리모컨의 촉감이 뻑뻑하다는 점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전원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워앰프에 직결해 보면 프리앰프를 사용했던 것보다 소리가 좀 더 뻑뻑해진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마음 편하게 청취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스러운 걱정이 든다. 청취를 해갈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불안감이 들게 된다. 프리앰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굳어지게 된다. 하지만 전원장치를 투입하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실내악 음악의 정취를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디테일하게 되었다. 딱딱하고 강압적으로 들렸던 소리는 입체적이고 음악의 미묘한 강약을 살려낼 수 있는 소리로 들리게 되었다. 이 정도면 프리앰프 없이 그냥 파워앰프에 연결해서 듣는데 충분할 정도로 안정적이고 음악적인 소리가 나오게 된다.
마무리
마크 레빈슨 No.512의 경우에는 주변 조건에 따라서 민감하게 변하는 제품이어서 필자로서도 어떤 스타일의 소리가 원래의 설계 의도에 맞는 소리였는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뒤집어 놓고 얘기하자면 사용자가 의도한 대로 재생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 점에서 소리를 완성시켜나가는 데 적격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프리앰프가 없이도 시스템을 단순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마크 레빈슨 No. 512는 오랜 공백을 깨고 등장한 제품답게 새로운 기술과 과거의 전통을 잘 조합시킨 훌륭한 제품이며 과거의 명성을 앞으로도 잇는데 그 역할을 다하게 될 제품이라 할 수 있겠다.
SACD를 재생할 수 있는 하이엔드 재생장치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디지털 오디오 부분에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던 마크 레빈슨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오디오계에 자극을 줄 것이 예상된다.
스펙
아날로그 출력 : 밸런스드 (XLR), 언밸런스드 (RCA)
디지털 출력: AES/EBU (XLR), S/PDIF (RCA)
콘트롤 커넥터: 이더넷 포트, RS-232 포트, IR(적외선) 포트, 3.5mm mono mini plug 트리거 입출력 (12V)각 1조씩
S/N (신호대 노이즈)비: 108dB
다이나믹 레인지: 108dB
THD (Total harmonic distortion): CD재생시 92dB, SACD재생시 99dB
재생 포맷: CD, SACD
고정출력레벨: 밸런스드 접속시 4V, 싱글엔디드 접속시 2V
가변출력레벨: 밸런스드 접속시 최대 16V, 싱글엔디드 접속시 최대 8V
출력 임피던스: 10 Ohms
치수 (H x W x D): 116mm x 442mm x 448mm
중량: 14.7kg
시청기기
- 소스기기: dCS Elgar DAC, dCS Purcell upsampler, Meridian 800 DVD/CD player, Linn Klimax DS player
- 프리앰프: Mark Levinson No. 326S, Ayre KX-R, Meridian 861 surround sound controller
- 파워앰프: Halcro dm38, Mark Levinson No. 53 Reference, Mark Levinson No. 532
- 스피커: Revel Salon2, Revel Salon
- 인터커넥트: Ayre Signature, Sunny Audio S1000X, Transparent Reference XLR, Argento FMR XLR, Kimber Select 1130, Cardas Golden Reference
- 디지털케이블: Sunny Audio D1000
- 스피커 케이블: Cardas Golden Reference, Transparent Ultra, Siltech Classic Aniversary 550, Kimber select 3038
- 전원 액세서리: PS Audio Power Quint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