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한주(raker5235@hanafos.com) 2004-05-09 14:05:31
달리 스피커는 여러해 전부터 국내에 꾸준히 소개되어 왔지만 그동안 인지도는 매우 낮아서 흔히들 말하는 변방의 스피커에 속했다. 필자는 달리의 로열시리즈 중 젭터라는 북쉘프 스피커에 대해서 매우 실망스러워 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시리즈의 달리 제품은 꽤 괜찮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달리는 최근 들어 플래그 쉽 모델인 유포니아 MS5를 스테레오파일 추천기기 A클래스에 올려놓는데 성공했고 스테레오사운드에서도 호평 받고 있다.
2003년에 창립 20주년을 맞은 달리사는 기념작으로 헬리콘 400을 내놓았다. 헬리콘 400의 제품 컨셉은 유포니아에 적용된 기술을 최대한 투입하면서 비용을 줄여 좀 더 나은 가격대를 실현하려 한 것이라 한다. 다시 말해 유포니아의 주니어 모델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이 제품은 스테레오 사운드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아 작년도를 빛낸 스피커에 선정된 바 있다. 스피커 부문에는 모두 12 모델이 선정되었다. (스테레오 사운드의 수상 명칭은 그랑프리였지만 단어의 사용이 부적절 하다고 판단해서 의역했다. 대상이라는 단어의 본래 뜻에 맞으려면 하나만 선정해야 옳다. 그런데 12개의 스피커가 모두 그랑프리에 선정되려면 12대의 스피커가 하나의 스피커로 변신합체가 될 때나 비로소 가능해지는 게 아닐지…)
스펙
살펴보기
우선 유려한 곡선을 가지는 몸통이 돋보인다. 마치 소너스파베르의 크레모나 스피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훌륭한 목공 기술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크기는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편으로 대부분의 거주환경에 적합하다. 우퍼 유닛의 진동판은 길이가 다른 섬유를 혼합한 펄프 재질로서 독일의 쿠르트뮐러에서 제작되었다. 13kHz부터 초고음역까지 감쇄 없는 평탄한 특성을 재생하기 위해 리본유닛을 채용했고 3kHz부터 13kHz까지는 소프트 돔 타입을 조합했다. 리본과 소프트 돔을 근접 배치해 하이브리드로 구성한 것은 ‘유포니아 모듈’로 불리며 이 유포니아 모듈은 유포니아 시리즈의 기술적인 하이라이트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한다.
들어보기
첫번째로 꼽을만한 것이라면 스피커가 시스템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 미덕을 가졌다는 것이다. 음색상에서의 눈에 띄는 결점이 없고 구동도 그다지 크게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한정된 몇몇 앰프만 엄선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
두번째로 꼽을만한 장점이라면 빠르고 왜곡이 적고 적절하게 제어된 팽팽한 저역과 무게를 갖췄다는 점이다.
이 제품은 크기로 보아서 틸1.6보다는 크고 틸2.4 정도에 근접한 편인데 저역의 특성은 틸 2.4보다는 틸1.6에 더 가까운 면모를 보여준다.
파트리샤 바버의 modern cool앨범(모빌 피델리티 UDSACD 003)에 실려 있는 7번 트랙 company라는 곡에는 복잡한 엇박자로 구성된 드럼파트가 등장한다. 헬리콘 400으로 재생되는 드럼은 생생하고 리드미컬하게 들려서 복잡한 박자에 끽소리 못하고 압도당하게 된다. 고통이 먼저 느껴질듯한 우악스러운 저역을 구사하지 않더라도 잘 계산된 엇박자의 저역만으로 사람을 쓰러트릴수 있음을 보여주는 곡이다.
그렇지만 이 음악의 저역 재생은 아무 스피커에서나 제대로 구사되는 것은 아니며 다른 스피커에서는 이런 특성을 가진 곡인지 모르고 그냥 넘어갔을런지도 모른다. 가령 레벨 퍼포머 M-20이라든가 틸 2.4처럼 언더 댐프된 저역을 가진 스피커들에서는 틸1.6이나 하베스의 프로 모니터 30처럼 제대로 조여지도록 댐프시킨 저역을 가진 스피커만큼 드럼 곡에서 짜릿함을 즐길 수는 없다.
그런데 헬리콘 400이 틸 1.6이나 하베스 프로 모니터 30보다 더 좋은 점은 이들이 구현하기 어려워하는 저역의 깊이라거나 무게감이 좀 더 제대로 실려서 재생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클로우저는 잘 만들어져 있어서 재생음에 통울림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음악 신호에 스피커 고유의 컬러레이션을 넣지 않은 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오디오에서 이거 하나만 제대로 틀어줄 수 있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음반이 있다. 차세대 테너로 부각되는 로베르토 알라냐가 부인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함께 녹음한 푸치니 작곡 오페라 라보엠(Decca 470 624-2, SACD)에서 8번 트랙 그대의 찬손, 9번 트랙 내이름은 미미, 그리고 10번 트랙이다.
하이엔드 제품이건 아니건 불문하고, 매칭이 잘못되었거나 중역대에 왜곡이 있는 시스템에서라면 8번이나 10번 트랙에서 알라냐의 음성이 비정상적으로 눌려서 맹꽁이 소리처럼 답답하거나 두껍게 들리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메인컴포넌트에서부터 케이블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제품들이 이상하게 들릴 소지가 있어서 이상이 있으면 하나씩 원인을 제거해 나갈 수 있다.
소니 XA-3000ES, 크렐 400xi 그리고 헬리콘 400의 조합에서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천만원짜리 권장 시스템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채널 클래식 레이블에서 출시된 네덜란드 바하 소사이어티의 연주로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들어보면 합창단의 두성 공명이 제대로 감지된다. 그리고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벨칸토 앨범 (Decca 470 621-2, SACD)에서도 두성공명이 제대로 감지된다. (각주1 참조)
여러 오디오를 접하다 보면 오디오를 진단하는 여러가지 음반으로 몰아부치면서 의심을 받을만한 면이 있는지를 추궁하면 대개는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인데 이 제품은 그런 면이 없다.
투명하되 무난하다. 여러 종류의 음악을 훌륭하게 재생해 낸다. 그래서 나중에는 제품을 신뢰하고 음악에 만족스럽게 젖어들게 만든다.
티끌만큼 의심되는 것이 하나 있긴 한데… 헬리콘 400은 아주 큰 소리를 내는 부분에서는 왜곡이 심해진다거나 괴로운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두드러진 문제를 내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미 큰 소리에서 더 커진 소리로 여유로움을 가진 상태에서 리니어하게 소리가 더 커진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스피커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을 것으로 보여지지만 소스기기의 한계가 스피커의 한계보다 먼저 드러나는 입장이라서 현재로서는 딱부러지게 원인을 밝혀내기는 힘들 것 같다. 엘가 DAC이나 에어D-1x등의 정상급 소스기기와 크렐FPB 3000C파워앰프로 매칭해본 B&W 시그니춰 805같은 경우는 다이나믹 컴프레션 문제에 관한한 제한을 가지지 않았었다.
헬리콘 400의 경우는 큰 음량의 재생 부분에 대한 판정을 유보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실평수 12평짜리 시청실을 가진 사용자의 환경이 아닌 이상 실용적으로 아쉬움을 줄만한 부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파이넷 시청실에 헬리콘 400이 있었을 때 같이 들어본 필자들은 매칭 앰프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필자의 경우에는 VTL인티앰프 보다는 크렐 400xi가 더 납득할만한 매칭이었다고 생각한다. 크렐보다 저렴한 VTL 인티앰프도 가격 말고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지만 크렐 인티앰프의 음색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닌데다가 구동이 수월하게 되고 음색의 충실성이란 면에서 보자면 트랜지언트 리스폰스가 충실히 묘사되고 반응이 빠른 크렐의 장점을 누를 만큼은 되지 못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VTL의 본격 상급기종에서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소피아 스피커와 매칭된 VTL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마무리
헬리콘 400은 여러 면에서 사용자 친화적이다. 방문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듯한 독특하고도 우아한 자태는 거실에 놓여져도 거부당하지 않을 특별한 인테리어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사용제품의 매칭면에서도 특별히 가려서 선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스피커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인데 이 점에서도 훌륭하다.
위보다 더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음질이 뛰어나다는 점이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음질이 뛰어나면서도 사용자에게 많은 희생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언급한 순서를 뒤바꿔봤다.
만일 소형 스피커가 내줄 수 없는 것 때문에 고민중이시라면 더 큰 스피커로 옮길 것을 권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권장할만한 적절한 가격대의 마땅한 스피커가 드물었다. 틸이 거의 유일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이제는 국내 오디오애호가들에게 틸 말고 다른 대안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헬리콘 400은 정말 음악적이고 결함이 적고 가격대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다.
적극 추천한다.
시청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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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마란츠 SACD 14 ver.2의 시연을 했을 때 헬리콘400을 동원했었는데, 동료 필자로 부터 얻은 지적 중에 하나는 르네 플레밍의 두성 공명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사용했었던 뉴트릭 단자로 터미네이션 된 모가미 인터커넥터가 고역을 롤오프시켰던 것이 주 원인이었다.
그에 못지 않은 두번째 이유는 스피커케이블이 저음이 많이 강조되어 중고역을 마스킹 시킨 것이 문제였다.
그로 인해 소리가 어둑해지며 둔중해지고 한마디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그대신 동급의 사양인 카나레 4S11G를 사용하되 네개의 각 심선마다 터미네이션하여 바이와이어링 버전으로 연결시켰다. 그러자 저역 과잉으로 인한 마스킹이 사라지며 중고역도 베일을 벗긴 듯이 투명한 소리가 들린다. 전체적으로는 압박감이 사라지고 개방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참고로, 카나레 4S11G를 싱글와이어링 버전으로 터미네이션하여 연결시키면 앞서의 문제와 동일한 상황이 재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