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odelay0818@hanmail.net) 2003-06-30 00:18:59
지난 번 하이파이넷에서 앰피온의 헬륨+ 스피커 리뷰가 있긴 했지만, 아직도 앰피온이라는 브랜드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스피커의 이름에 기체 원소의 명칭을 차용한 것도 특이하다. 앰피온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제우스와 안티오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앰피온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양치기의 손에 자랐으며, 음악에 출중했다고 한다. 앰피온의 스피커들은 헬륨, 아르곤, 크레온, 크세논 등의 이름을 달고 있다. 이들은 모두 0족원소인데, 0족원소는 가장 안정적이어서 다른 원소들과 반응하지 않으며, ‘귀족 원소’라고도 불린다. 이는 ‘음악에 출중한 신의 아들이 만들어낸, 안정적이고 귀족적인’ 제품이 되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스피커의 외관 역시 일반적이지는 않다. 우선 전면에 그릴이 없어서 유닛이 노출되어 있다. 리뷰용 샘플은 체리 마감이지만, 여느 체리색보다 조금 밝고 주황색에 가까운 체리색이었다. 트위터 주위는 움푹 패여 있어 쇼트 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스피커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단자인데, 바나나 단자를 사용한다면 상관없지만, 만일 스페이드 단자(말굽 단자)를 사용한다면 렌치를 이용하여 단자 접속 부분을 풀었다가 다시 조여야 한다. 연결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겠지만, 말굽 단자를 사용할 때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릴이 없으므로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조금 더 주의해야 한다. 기타 설계 특성이나 기본적인 컨셉은 앞서 리뷰된 바 있는 앰피온 헬륨 플러스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스펙은 다음과 같다.
이 스피커를 처음 울려봤을 때의 느낌은 촉촉하면서도 울림이 좋은 소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듣다보니 각 대역간의 이음새가 부자연스러워서 머릿 속에 혼란을 유발시킨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발견한 사실이지만 이 스피커에서도 역시 준비 운동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두 시간 지나자 처음에 느꼈던 부자연스러움과 괴로움이 사라져 갔고, 첫 인상이었던 촉촉한 음색과 좋은 울림만 남게 되었다.
촉촉하고 울림이 좋다는 특징 다음으로 이 제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저음이 많다는 점이다. 이 스피커를 사용했을 때 저역의 부족으로 고생할 일은 없을 듯하다. 저역에 대해서 한 가지 언급하자면, 저역이 많이 나기는 하지만 가장 아래에서부터 단단히 받쳐주는 저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 ATC 스피커를 들 수 있는데, 똑같이 저역이 많이 나는 느낌이지만 무게중심 자체는 ATC가 더 아래에 있는 것 같으며, ATC스피커가 더 차분하고 탄탄한 느낌을 주었다. 두 스피커의 차이점은 앰피온 쪽이 저역만큼이나 중고역의 소리도 도드라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스피커는 소리가 전체적으로 앞으로 나와 있는 느낌인데, 모든 대역이 하나같이 또렷하고 강한 소리를 내주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인상을 주게 된다.
나윤선 퀸텟의 앨범 Light For The People 앨범을 들어보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살펴보았다. 우선 1번 트랙 One Way에서는 실로폰 소리의 타격음을 무리없이 잘 내주며, 이는 다른 음반들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Ella &Louis의 1번 트랙 초반부에 나는 피아노 소리에서도 타격음을 잘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타격음은 투명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다이내믹스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이어서, 드럼 소리의 강약이 잘 살아있으며 2번 트랙 Light For The Poeple 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소리가 뭉개지거나 째지지 않으면서도 큰 음량에서도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가 살아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관현악곡으로는 아바도와 벵게로프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을 들어보았는데 역시 다이내믹스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윤선 앨범의 4번 트랙인 베사메무초를 들어보면 고역 역시 시원하고 평탄하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해상력도 발군이어서, 노래하면서 들리는 호흡소리나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다 잘 표현된다. 대편성 곡에서도 오케스트라가 숨쉬는 소리라든지 활이 악기에 닿는 소리 등이 잘 들리며, 이 점은 음악을 듣는 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러 대역의 소리가 섞여 있는 음악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U2의 Elevation을 들어보았다. 이 노래에서는 초반부와 중반부의 보컬인 보노의 환호성소리에서 청량감과 상승감을 잘 느낄 수 있는데, 이 스피커에서는 그런 느낌이 약간 부족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저역, 중역, 고역이 동시에 나야할 때에는 저역이 좀더 강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에릭클랩턴의 Reptile 앨범에 있는 Believe in Life를 들어보았는데, 에릭클랩턴의 목소리가 확실히 두텁게 들렸다. 이 노래의 매력은 에릭클랩턴의 목소리에 섞인 약간 허스키한 음색인데 이 스피커로 들었을 때는 그런 매력이 조금 가리워진 느낌이었다. Signature 805로 이 두 노래를 들어본 결과, 아르곤에서 느꼈던 약간의 불만사항들이 해소되었다. 저음이 많은 소리를 싫어한다면 이 스피커를 살 때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야할 것이다.
전반적인 음의 특성 다음으로는 스테이지에 대해서 언급해보겠다. 이 스피커는 무대를 숨김없이 다 드러내주지만, 이미징이 핀포인트처럼 정확하다거나 음장의 규모가 크지는 않다. 대체로 악기들의 음상이 큰 편인데, 다행스럽게도 부자연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임장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바렌보임 지휘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 마지막에서 오케스트라가 앞에서부터 뒤에까지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처럼 연주되는데, 앞 뒤가 확실히 구분되기는 하지만, 차례 차례 소리가 뒤로 뻗어나가는 레이어링이 잘 표현되지는 않는 편이다. 불레즈 지휘의 말러 심포니 7번 1악장에서도 첫 나팔 소리는 원래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느낌이 나야 하지만, 그처럼 아득한 느낌이 나지는 않는다.
대신에 큰 장점도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스피커는 울림이 좋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특징은 스테이지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는 데 도움을 준다. 에릭 클랩턴의 언플러그드 앨범을 들어보면, 청중들의 박수소리만 들어도 공연장의 열기와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스테이징에서는, 성능이 좋고 깨끗한 카메라 렌즈로 무대를 들여다보는 듯한 인상이 느껴졌다.
이 스피커는 상당히 매력적인 소리를 내준다. 음색 자체도 중립적이고 여러 가지 특성에서 다 무난히 좋은 점수를 얻으며, 전반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치장하지 않은 화려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그리고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것 같다. 만일 차분하고 관조적인 스타일을 고집하는 분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개는 듣는 사람을 매료시킬 잠재력을 지닌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공간과 주변 기기 매칭에서는 주의할 부분이 있다. 일단 저음이 많고 화려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감도도 87dB로 어느 이상의 앰프 출력을 요한다. 매칭에서는 음악의 뉘앙스를 잘 살려주는 기기들과 매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로텔의 RA1070 인티앰프와 매칭 했을 때에는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웠지만 아르게리치와 기든 크레머가 연주한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섬세한 뉘앙스가 잘 느껴지지 않아 연주가 조금 단조롭게 들렸다.
결론
상당히 매력적이며 전반적인 특성들도 다 수준 이상일 정도로 가격대 성능 비가 좋은 스피커라 할 수 있다. 특히 북셀프 스피커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면서도 저음에서 아쉬움을 느끼거나 화려한 성향의 소리를 선호하는 분들은 이 스피커를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