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acherna@hanmail.net) 2004-07-15 14:09:45
KEF의 스피커 라인업을 보면 Reference, Q, KIT, XQ, KHT, CI, Coda, Cresta 등등 그야말로 족보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 거기에 상징적인 최상급 모델인 Maidstone까지 빼놓을 수 없다. 제품 라인업이 이렇게 확장된 것은 그만큼 개발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유닛 분야에는 UNI-Q를 고집하면서 크게 주력하지 않는 것 같지만, 캐비닛의 가공이나 디자인 능력에서 최고 수준의 메이커로 손색이 없다.
최근 등장한 KEF 제품 중에서 눈에 띄는 제품이라면 바로 KIT와 KHT 상급 기종이다. KHT 라인 업중에서는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KHT2005가 대표작이다. KHT2005는 계란형의 디자인 이상으로 사운드에서도 확실한 차별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KEF는 이 스피커의 성공을 바탕으로 KHT1005, 2005.2, 5005, 9000ACE의 풀 라인업을 확보했다.
KHT 라인업 중에서도 ACE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9000 뿐이다. 물론 ACE는 야구 팀의 에이스 피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Acoustic Compliance Enhancement의 약자다. KEF에서 KHT 팀의 에이스로 지목한 9000ACE는 과연 어떤 제품일까? KEF에서는 40년간이나 스피커 개발에 전력해 왔는데, 그 동안 어려웠던 과제 중 하나는 소형의 캐비닛에서 깊고 풍부한 저음을 얻어내는 일이었다고 한다. 캐비닛의 크기와 저음의 확장성은 바로 연관된 것인 만큼 결코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적인 스피커에서는 유닛이 전후 피스톤 운동을 할 때마다 공기가 자연스럽게 압축되거나 확장된다. 그리고 공기의 변화된 압력은 다시 유닛에 영향을 주게 된다. 캐비닛이 작으면 작을수록 유닛에 가해지는 압력도 커지게 된다. 그래서 캐비닛에 들어간 흡음재는 스피커의 진동을 흡수하고 열 에너지로 전환하여 유닛에 걸리는 부하를 줄여주게 된다. KEF가 제안하는 ACE 기술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폼 대신에 다공성 탄소 재질(아마 숯이 아닐까 싶다)을 흡음재로 사용하여, 유닛의 후면 압력을 흡수한다. 이 부분은 흡음재의 부피가 적으면서도 흡음 효율이 높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제품의 사양을 보면, 주파수 대역은 75Hz~27kHz로 저음 재생 능력에서는 그리 인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실제 시청 결과도 스펙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제품의 외관은 비엔나 어쿠스틱과의 유사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보면 타원형 단면의 알루미늄 인클로저에 유닛을 수납하여, PDP 곁에 부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KEF 고유의 동축 드라이버인 UNI-Q는 여기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Uni-Q ,드라이버 내에는 19mm 직경의 트위터가 내장되어 있다. Q 시리즈와 XQ 시리즈와 동일한 165mm 직경의 Uni-Q 드라이버를 중심으로 같은 직경의 우퍼가 둘러싼 가상 동축형 구조다. 모든 유닛이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소리의 확산 특성을 최대한 일치시키도록 만들어졌다. 이 부분은 KEF의 고유한 특징으로 인정할 만하다.
스탠드는 플로어 타입과 데스크 타입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매우 견고하면서도 연결하기가 편리하다. 물론 브래킷을 부착하여 그림에서 보듯이 벽에 바로 설치할 수도 있다. 스피커 캐비닛을 둘 만한 공간적 여유가 없다면, KHT9000ACE의 날렵한 스타일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시리즈와 호환되는 서브우퍼는 옵션으로, 두 모델이 있다. PSW3000은 300W의 앰프가 250mm의 우퍼를 구동한다. 최고급 모델인 PSW4000은 수 가공한 캐비닛 내에 500W의 앰프를 내장한다.
제품을 시청해 보면 디자인에서 받는 것 같은 산뜻하고 정밀한 음색, 섬세한 해상도를 그대로 느끼게 된다. 다른 스피커와 비교하면 소리의 톤이 한 단계 높아서 밝고 시원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KHT2005.2가 개방적인 고역과 유연한 중역 등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2005.2와는 전혀 다른 유닛이지만 같은 라인업의 일관성은 유지되는 느낌이다. 보컬이나 영화 사운드트랙의 목소리는 다소 카랑카랑하다고 할까. 애매한 부분 없이 모든 것이 정확하게 들리지만 전혀 날카롭다거나 딱딱한 느낌은 없다. 만일 저음이 라이브하다거나 고음이 흡수되는 성향의 공간에서라면 KHT9000ACE의 소리가 대단히 상쾌하게 들려올 것 같다.
이 스피커의 용도를 정확히 구분하면 위성 스피커 개념으로 봐야 한다. 역시 저음의 깊이라든지 다이내믹스 부분은 아무래도 서브우퍼에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서브우퍼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저음의 응답 속도라든지, 해상력은 상당히 훌륭한 편이다. 드럼의 소리는 적당히 팽팽하면서도 기분 좋은 탄력 감을 갖고 있다. 다이내믹 레인지에도 상당히 여유를 갖고 있어서 볼륨을 상당히 올린 상태에서도 소리가 부드럽게 유지되는 편이다. 홈 시어터에 유리한 장점이라면 모든 스피커를 동일하게 맞춰서 구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 완벽하게 음색이나 음장이 매치된 소리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필자 생각에는 굳이 더 우수한 서브우퍼를 매치시키고 싶지는 않다.
디자인 위주의 스피커로는 보기 드물게 음악적 소화 능력을 갖춘 셈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듯이, 이렇게 만듦새 좋고 소리도 썩 괜찮은 스피커의 가격은 역시 만만하지 않다. 음질의 모든 판단 기준에서 별다른 흠이 보이지는 않지만, 가격적으로는 하위 기종인 KHT2005.2와 달리 상당히 고가다. 역시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동일 유닛을 사용한 Q나 XQ 시리즈가 가격적으로, 음질 적으로 보다 많은 장점이 있어 보인다. 그래도 아마 PDP 곁에 매칭시킬 스피커로 음질이나 디자인에서 이처럼 호화스러운 제품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는 인테리어를 고려하여 배불뚝이 TV 대신에 거의 평면 TV나 DLP 리어프로젝션 등을 구입하는 추세인데, 이점에서 KHT9000ACE의 활용도는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