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acherna@hifinet.co.kr) 2002-06-23 13:56:42
최근 필자는 앤드러의 설계자로 유명한 윌리엄 이글스턴의 최신작인 루나(Lunare) 시리즈 모델 1 스피커를 수입원의 시청실에서 시청해 보았다. 이 제품은 하이파이넷 뉴스에 소개되었던 것처럼 제작자가 자신의 이글스턴 웍스(Eggleston Works)를 떠나 첼로(Cello)를 위해 개발한 제품이었으나 첼로가 문을 닫는 바람에 새로운 회사 WEGG3(제작자의 이름 William Eggleston 3세에서 따온) 를 설립함으로써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루나 시리즈는 하이파이와 홈시어터 모두에서 최고 수준의 제품으로 기획되었으며 현재 모델 1외에도 미션(Mission) 1이라는 센터/리어 겸용 스피커와 미션 1을 프론트 스피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트랜퀼리티(Tranquility) 베이스 1이라는 패시브 방식의 서브 우퍼가 마련되어 있다. 미션 1 스피커의 경우에는 모델 1에서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2개만을 떼어낸 모습을 하고 있으며 두께가 4.4"에 불과할만큼 상당히 얇기 때문에 설치에 부담이 없다. 미션 1 스피커를 5대 사용하고 트랜퀼리티 베이스 1을 서브 우퍼로 사용한다면 역시 최상의 홈 시어터 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모델 1 스피커의 내력으로 볼 때 아마도 첼로사의 스트라디바리 그랜드마스터를 대체하기 위한 제품으로 구상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보게 되는데 그 근거는 7개의 트위터와 4개의 미드레인지 2개의 12인치 우퍼를 사용한 초대형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2미터에 달하는 높이나 200kg을 넘는다는 무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앞에 있는 이를 압도하는 거함이다. 라틴어인 “기울어진 초승달"을 뜻하는 루나(Lunare)라는 이름은 이 스피커의 초승달 형태로 배열된 트위터에서 유래된 것이다. 7개의 트위터의 중앙을 중심으로 아래 위로 가면서 조금씩 음압을 감쇄시킨 자사 특허의 기술을 적용했는데 이를 통해 다수의 트위터를 사용하면서도 아주 정확하게 모든 음원의 위치를 전달해 준다고 한다. 유닛의 레이아웃과 함께 알루미늄 재질의 정교한 배플이 초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다.
트위터는 앤드러 시절부터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다인 오디오제 에소타(Esotar)이며, 미드레인지 역시 모렐(Morel)의 제품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퍼는 에어리얼 어쿠스틱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미드레인지는 우퍼로부터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별도의 체임버에 적재했으며 앰프로부터의 출력을 네트워크 없이 직결한 것이나 후면을 폼 재질로 채워 놓고 개방시킨 것은 앤드러와 유사하다. 우퍼의 로딩은 베이스 리플렉스를 채택하였는데 스피커의 규모를 고려하여 포트에서의 노이즈가 들리지 않도록 스피커의 윗 부분에 포트를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인클로저의 사이드 패널은 알루미늄 재질을 채용한 전후 패널과 달리 목재로 되어 있으며 평행이 되지 않도록 9도정도의 경사를 주어 뒤로 갈 수록 좁아지게 설계해 놓았다. 규모 뿐만 아니라 설계나 만듦새 면에서도 현존하는 스피커 중 최정상급 제품이라는데 이의를 달 수 없는 제품으로 보였다. 또 스펙면에서도 20-30000Hz의 주파수 대역, 91dB의 감도, 최소 임피던스 6.8옴, 최대 입력 파워 600와트, 120dB의 최대 음압등 모든 면에서 꿈의 스피커라 불릴만하다. 다만 11만 5천달러의 가격표만이 이 스피커를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 같다.
시청 기기로는 첼로 사의 레퍼런스 DAC, 듀엣350 파워 앰프, 마크레빈슨의 No.38L 프리 앰프가 사용되었다. 또 나중에 최근 화제에 오르고 있는 에이프릴 스텔로 CD 플레이어의 음을 들어보기도 했다. 수입원의 설명으로는 첼로의 퍼포먼스 파워 앰프와 연결했을 때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사운드 미러에서 십여 차례 이상 B&W 노틸러스 801 스피커와의 매칭으로 들어 친숙한 듀엣 350 앰프와의 연결이 필자에게는 편안함을 안겨 주었다. 연결된 케이블은 역시 첼로사의 제품이었으며 시청 공간은 약 10평 정도로 이 스피커에게는 다소 좁은 감이 있었지만 RPG의 룸 튜닝 디바이스로 잘 보완되어 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일렉트로닉스로 연결된 시스템이었으나 모델 1의 소리는 필자가 일찌기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것이었다. 저역에서 고역에 걸쳐 지극히 부드러웠으며 풍부함과 실재감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었다. 음색은 약간 어두운 듯 하면서도 매끄럽고 부드러운 에소타 트위터의 느낌을 그대로 갖고 있었으며 중저역도 이와 방향를 함께하는 쪽으로 이음새 없이 잘 통일되어 있었다. 에소타 트위터의 장점 중 하나는 음량을 아무리 올려도 왜곡이 없고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인데 모델 1 역시 상당히 큰 음량으로 시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에 자극이 없는 부드러움이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이렇게 큰 스피커가 넓지 않은 공간에서도 모니터 스피커로 널리 사용되는 B&W801 노틸러스 모니터 스피커를 능가할 정도의 극명한 묘사력을 들려주었다는 점이었다. 장사익의 음반에서는 트랙에 따른 녹음의 차이와 문제점을 입의 크기와 원근의 대비를 통해 처절할 정도로 드러내어 주었으며 오디오폰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에서는 피치카토를 왼손으로 구사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해줄만큼 근접 녹음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물론 저렴한 시스템에서도 어느 정도(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이런 느낌을 얻을 수는 있지만 모델 1과 비교한다면 다소 과장해 이야기하면 돋보기와 전자 현미경의 차이라고 할 만큼 해상력의 수준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잠시 스텔로 CD 플레이어를 연결해 보았는데 좀 더 안정감 있고 차분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소리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칭에 있어서도 최상의 일렉트로닉스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 스피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스피커가 구동이 까다롭다느니 매칭이 중요하느니하는 흔해빠진 핑게를 대고 싶지는 않다(스펙을 봐도 알겠지만 임피던스나 감도등 여러 면에서 이만큼 너그러운 제품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스피커가 가장 투명한 트랜스듀서 중 하나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XLO의 테스트 음반에 수록된 관현악 곡을 시청해 보았는데 오케스트라 바로 앞에서 듣는 음량에 이르러서도 아무런 긴장감을 느낄 수 없을만큼 폭발적인 다이내믹스를 들려주었다. 저역에 얼마나 많은 디테일이 숨겨져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는데 특히 큰 북 소리는 이제까지 오디오에서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도 실제 소리와 가장 유사한 트랜지언트를 느끼게 해주었다. 또 어떤 시스템에서도 모델 1이 들려주는 오르간 소리에 필적한 소리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20Hz를 넘나드는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는 다른 저역의 소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깨끗하고 맑은 공기의 진동 그 자체였다. 인클로저의 진동을 배제한 상태에서 도달할 수 있는, 그야말로 리얼 베이스의 경지였다.
음장 면에서는 물론 정교함에 있어서는 동축형 스피커나 소형 2웨이 스피커가 들려주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겠지만 이 정도 크기의 스피커로서는 믿기 힘들 정도의 정확한 표현을 해주고 있었다. 필자는 첼로의 스트라디 마스터를 여러차례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자연스럽고 풍부한 소리를 들려주는 좋은 스피커였지만 이미징 표현에서는 분명히 아쉬움이 있었던데 비해(악기의 크기가 확대되고 초점의 정확성이 부족했다) 모델 1은 컵으로 물을 마실 법한 크기의 입과 팔에 걸칠 듯한 크기의 바이올린을 그려주었다. 물론 드넓은 사운드스테이지와 스테레오 시스템에서도 온 몸을 감싸는 듯한 임장감은 소형 스피커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장점이다. 필자는 이 스피커가 음장 재현 부분에서도 대형기로서 가능한(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DVD를 시청해보지는 못했지만 이 스피커가 홈 시어터 분야에서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리라는 점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주파수 대역이나 다이내믹스, 트랜지언트 리스폰스는 물론이고 상당히 넓은 서비스 에어리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위치에 앉아도 정확한 음장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현재 윌슨 오디오나 레벨, B&W, 메리디언등에서 최고급 홈 시어터 조합을 내놓고 있지만 이들 모두 모델 1과는 전혀 급이 다른 제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아마 크렐의 새로운 LAT 시리즈만이 이에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스템을 소유할 수 있는 분은 거의 없겠지만(현재 국내에도 한 대가 판매되었다고 하지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한 분도 안 계실 가능성이 더 높다.) 정말로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궁극의 사운드 이펙트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파이넷 독자들에게 모델 1에 대한 이 리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제품 구입 결정에 참고가 될 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 필자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적어도 모델 1은 필자에게 오디오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오히려 현재 시스템에 만족하고 그 장점을 재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칭찬하려고 글을 썼으니 칭찬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되겠다. 어차피 살 수도 없는 제품을 펌푸질한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글스턴에 따르면 스테레오파일을 비롯한 여러 저널을 통해 격찬 받은 그의 대표작 앤드러 역시 모델 1에 비하면 습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의 말은 상당히 겸손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JBL, 타노이, 인피니티와 같은 과거의 명기는 물론이고 수 없이 나왔다가 사라져간 스피커들 모두가 모델 1에 비하면 습작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Lunare Model One [WEGG3] 주요 사양
* 주파수 대역 : 20Hz - 30kHz
* 임피던스 : 8옴
* 사이즈 : 387 X 492 X 1959mm
* 무 게 : 204Kg
* 제작국가 : U.S.A.
* 가 격 : 140백만원
* 수입원 : 에이프릴뮤직(02-3446-5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