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uphase super audio CD player DP-78
posted by 박우진
서론
소스 기기 분야에서는 여전히 일본 업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소니, 에소테릭, 데논, 마란츠 등은 CD 플레이어나 SACD 플레이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정말 하이엔드라는 이름에 걸 맞는 브랜드를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가장 확실한 선택은 아큐페이즈가 되겠다. 오디오파일을 위한 고급 기에만 전념하는 브랜드로, 특히 아큐페이즈의 디지털 소스 기기들은 일본의 하이엔드 매거진인 스테레오사운드의 베스트바이 추천 제품의 상위권을 독식해왔다. 일본 제품들이 음악적인 감각에서 뭔가 다르다고 의심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큐페이즈는 그 점에서도 드문 예외적 존재였다. 스테레오파일이나 더 앱설루트 사운드 매거진에서의 높은 평가가 이를 입증한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일체형 CDP의 최상위 기종이라고 할 수 있는 DP-78을 들어보게 되었다.
제품 소개
DP-78은 SACD와 CD 플레이어 모두에 최선을 다한 제품으로 소개된다. 싱글 렌즈, 트윈 픽업 시스템으로 CD와 SACD를 신속하게 선택 재생할 수 있어서, 하이브리드 디스크를 선호하는 포맷으로 선택 감상할 수 있다.
내부 회로에는 이미 잘 알려진대로 아큐페이즈 특유의 멀티플 델타 시그마 방식을 적용했다. 최소의 디스토션과 우수한 S/N 비를 목표로 여러 개의 DAC를 함께 병렬로 작동 시킴으로써 변환 에러를 캔슬하는 방식. 원리적으로는 많은 숫자의 DAC를 함께 동작시킬수록 에러를 보다 정교하게 교정할 수 있다. 본 기기에는 무려 6개나 되는 아날로그 디바이스제 AD1955 델타 시그마 칩을 사용했다. 최상의 DA 회로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외부 디지털 신호 입력도 가능해서 DVD 플레이어에 연계한 DAC로도 활용할 수 있다.
아큐페이즈는 IEEE1394가 도입되기 전에 SACD와 하이비트 PCM 디지털 신호 전송을 위해 독자적인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HS(High Speed) 링크다. DP-78모델에선 후면 패널을 열고 옵션 보드를 장착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HS 링크를 통해 아큐페이즈의 DC-330이나 DF-45와 연결하여 멀티 앰핑 구성이 가능하다.
아날로그 회로 부분에서는 전압-전류 변환 회로를 개선해서 부하에 관계 없이 안정된 성능을 제공한다. 전통적인 레벨 컨트롤 기능을 갖고 있어서, 편의에 따라 파워앰프와 직접 연결도 가능하다. 물론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프리앰프의 볼륨 컨트롤에 의존하는 것이 좋다. 레벨 컨트롤은 –60dB까지 음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후면의 출력 단자에선 밸런스드와 언밸런스드 출력을 하나씩 장비한다. 바닥에는 고 탄소강으로 만들어진 인슐레이터를 부착하여 진동의 영향을 차단했다. 타협 없이 만들어진 최상의 제품인 결과 무게가 무려 18.4kg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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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DP-78에 대한 아큐페이즈의 소개 글을 보면, 어떤 화려한 찬사나 수식어는 없다. 다만, 조용한 배경과 공간의 이미징에서 탁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관 디자인을 봐도 느껴질 만큼, 아큐페이즈의 제품은 가식이 없고, 정직하게 만들어졌다. 요란한 장식을 더한 케이스라든지 화려한 디스플레이 대신에 필요한 부분에 최선을 다한 물량 투입과 정성이 기울여졌을 뿐이다.
실제 소리 역시 제작사가 소개한 그대로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 CD 플레이어 중에 이렇게 소리의 배경이 조용한 제품을 달리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인위적으로 소리 사이를 검게 가려버린 느낌이 없고, 그냥 조용하다. 예전에 스테레오 사운드 매거진에서 아큐페이즈의 앰프를 설계할 때 트랜스포머에 청진기를 대어 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큐페이즈는 일본인 특유의 완벽성이 가장 잘 구현된 브랜드이다. 소리의 질감이 깨끗하고 매끈한 데다가 배경이 매우 조용하기 때문에 우아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을 준다. 고음은 차분하고 부드러우며 몇몇 디지털 기기들처럼 야위거나 날카로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10여년 전 아큐페이즈의 DP-65나 DP-75 같은 제품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CD 플레이어인 DP-78은 밸런스 측면에서 대단히 안정감이 넘치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언뜻 첫인상으로만 판단할 경우에는 들으면 감상자를 사로잡는 흡입력에선 대단하다거나 특별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출력이 적당히 확보된 앰프와 좀 더 큰 스피커로 울려보면, 탄탄하게 뒷받침된 저음과 폭이 넓고 매우 안정된 무대가 그려진다.
그래서 DP-78의 잠재력을 살려주려면, 가급적 대형 시스템을 연결해줘야 진면목을 발휘할 것 같다. 실제로 화려한 음색을 자랑하는 소스기기들이 편성이 작은 팝이나 재즈의 보컬 음악은 잘 들려주지만, 록 음악이나 대편성 관현악곡에선 대음량에서는 음량을 줄여버리고 싶을 만큼 소란스러워진다. 이에 비해 DP-78은 브루크너나 말러의 대편성 교향곡을 너무나 쉽게 들려준다. SACD로 리마스터링된 귄터 반트의 브루크너 교향곡 제 4번 <로맨틱>(RCA)에서 CD 재생과 SACD 재생 모두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과 연주 공간의 규모감이 과장감 없이 담백하게 잘 살아난다.
저음은 여유롭고 편안하여, 불필요한 긴박감이나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덕분에 그냥 편하게 전체적으로 들어도 그림이 좋지만, 세부적으로 귀를 집중해 봐도 어느 한 구석에 소리가 눌리거나 또 과장된 인상이 없이 가지런하고 단정하다. 비트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적 의도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 해석이다. 필자가 들어본 로맨틱 교향곡의 재생 중에 제 일급에 속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최신의 디지털 소스 기기들은 음색의 재현성이나 사운드스테이징의 정밀도에서 많이 향상되었지만, 스케일과 규모감을 들려주는 데에는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마우리찌오 폴리니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No.23<열정>의 라이브 녹음(DG)에서도 너무나 안정된 연주가 되어 음정이나 리듬이 모두 명확하고 듣기에 편하게 된다. 건반을 오르내리는 손길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곡에 어울리는 열정은 조금 부족하게 들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제니퍼 원스의 <헌터>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조금 굵고 부드럽게 들리며, 톤이 낮고 차분하게 가라 앉혀진 인상이다. 중역대의 자연스러움에서는 역시 기대하던 대로 훌륭하다. 목소리에 부자연스럽게 눌리거나 내질러도 딱딱해지는 느낌이 없다. 게다가 가수가 보다 감상자에 가깝고 입이 적당한 규모를 유지해서 좀 더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들린다.
반복된 이야기지만, 차분하고 얌전한 경향이다 보니 가수가 부르는 목소리에서 열정이 조금 덜 조명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보컬이 두드러지면서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호소력을 기대하기엔 조금 미흡하다. 대신에 보컬과 반주가 아니라 보컬이 반주 악기와 조화되어 음악의 부분으로 혼합된다. 이런 부분은 아큐페이즈 만의 해석 방식이라 할 만한 특성인데, 감상자의 선호도가 나뉘어질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잘 알려져 있듯이 다수의 일본 제품들이 대체적으로 고음을 차분하고 때로는 밋밋하게 들려주는 경향이 있다. 전체적인 완성도를 추구하는 입장에선 이 같은 튜닝 방식이 정답이겠지만, 사람에 따라선 좀 더 쨍하게 밝고 선명한 소리가 아쉬울 수도 있다.
DP-78에 대해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그런 선입견이나 취향 차이를 적용시킬 수준은 이미 넘어서 있다. 물론 필자도 그런 의심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살바토레 아카르도가 연주한 바이올린 독주곡<The Violin of Cremona>을 들어봤더니 현과 활이 긁히듯이 격렬하게 마찰하면서 만들어내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아찔한 아름다움이 기대 이상으로 정말 멋들어지게 재생되어 나왔다. 특히 스테레오복스의 중급 라인업에 해당하는 Colibri-XLR 밸런스드 케이블로 프리앰프와 연결했을 때엔 정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이 때의 아큐페이즈 DP-78은 묘기에 가까운 빠른 손놀림과 역동적인 활의 움직임을 치밀하게 재생하고 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다. 그려면서도 드러냄과 다스림의 절묘한 균형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세련되고 수준 높은 재생 실력을 갖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바로 연주자의 능력을 잘 돋보이게 해주는 제품이란 이야기다.
SACD 재생의 결과를 일반적인 수준으로 간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것 같다. 우선 음장의 투명도가 한 단계 더 향상되며, 중역대가 더 너그럽고 부드러운 인상이 된다. 그리고 디테일이나 음색에 초점을 맞춘다면, CD 재생에서보다 약간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결코 별 다른 소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다른 브랜드의 SACD 플레이어에 비해서 저음의 소리가 덜 야윈 느낌이 되는 점이 좋았다.
결론
CD 재생만 가능한 하위 기종 DP-57과 비교한다면 DP-78은 분명 대역 폭이 넓고, 사운드스테이지도 한결 더 넓게 들린다. 물론 DP-57은 재즈 음악에서 탄력 넘치는 베이스와 안정된 중역대를 들려주며 클래식 음악에선 밸런스와 다이내믹의 균형에서 가격 대를 초월한 제품이었다. DP-57을 감상하기 전엔 이처럼 사용자를 매료시키면서도 가격 면에서 만족스러운 CD 플레이어를 기대조차 하기 어려웠다.
상급 기종인 DP-78은 중량감과 안정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음악의 골격과 살집을 보다 견실하게 들려주는 확실한 상위 기종이다. CD 재생에서의 특징은 DP-57과 DP-78이 같은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DP-57에서 만큼 눈에 번쩍 띄는 강렬함은 없다. 보다 확장된 시스템을 사용하는 감상자에게 부응할 높은 완성도, 그리고 SACD 재생이라는 보너스가 DP-78의 특징이라 하겠다. SACD 재생은 CD 재생의 기본적인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특유의 투명도와 유연함, 그리고 매끄러운 질감이 한 층 더해진다. 사운드스테이지의 견고함과 배경의 고요함에서 근래 접한 디지털 기기 중 최고 제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 마디로 일체형 SACD 플레이어의 재생에 레퍼런스가 될 만한 제품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꼭 들어보시기 바란다.
디지털 입력 : 동축 1, 광학 1
샘플링 주파수 : 32kHz, 44.1kHz, 48kHz, 88.2kHz, 96kHz(2ch PCM)
옵션보드 : 176.4kHz, 192kHz, 2.8224MHz(DSD)
DAC : MDS++ type 24bits
주파수 응답 : 0.5~50,000Hz +0, -3dB
S/N비 : 114dB
다이내믹 레인지 : 110dB
채널 분리도 : 108dB(20~20,000Hz)
출력 전압 및 임피던스 : 밸런스드 2.5V (50ohms)
언밸런스드 2.5V(50ohms)
출력 레벨 컨트롤 : 0~-60dB(1 dB steps)
전력 소모 : 25W
규격 : W465xH150xD397mm
중량 : 18.4kg(Net) 24.0kg(shipping car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