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다리다 지쳐서 잊고 있던 동안에
올해 초까지만 해도 고해상도 음악저장 포맷인 SACD과 DVD-Audio가 상호공존의 형세를 띄는 바람에 어느 쪽으로든 한쪽으로 결정나주기를 고대하던 사람들이 내심 실망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연말로 접어들면서 대세가 SACD타이틀로 현격하게 기울어지는 판국이 형성되고 있다.
우선 타이틀의 출시 갯수와 향후 전망에서 DVD-Audio 타이틀이 열세에 놓여있는 반면에 SACD타이틀은 급 물살을 타고 출시가 확대되는 중이다. 현재 http://www.sa-cd.net에 수록되어 있는 SACD타이틀은 2600개 이상이다. 이 중에는 클래식 SACD타이틀이 1000개 이상이 포함되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거의 대부분의 SACD, DVD-Audio타이틀을 취급하고 있는 온라인 점포 http://www.phono.co.kr, http://www.fineav.com에 의하면 현재 1300개 이상의 SACD타이틀이 수입되어 있다. 반면에 DVD-Audio는 고작 140여종에 불과하다.
녹음에 있어서 상당한 실력을 가진 레이블에서 주목 받을만한 SACD타이틀 신보를 속속 발표하고 있고, 오랜 역사와 방대한 레코딩 컬렉션을 보유한 음반사에서는 예전의 명반을 SACD로 재출시하고 있다. 리빙 스테레오, 머큐리를 시작으로 해서 DG, Decca, Philips도 예전의 명반을 SACD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 요즘 SACD타이틀 부문은 처음 CD가 나타났을 때의 분주함과 활력이 연상될 정도다.
한편 소스기기를 만드는 업계에서도 컨설팅을 받는다거나 해외 바이어의 주문사항을 조사해보면 DVD-A타이틀 재생 지원은 있어도 나쁘지 않을 사양이지만 SACD타이틀 재생은 필수사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ACD타이틀 쪽으로 대세가 결정됨으로 인해서 소비자의 입장에도 혜택이 좀 더 많아질 것이 예상된다. 생산규모가 커지게 되면 SACD타이틀의 공급가격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가격적인 면에서도 CD에 상당히 근접해오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참신한 뉴 프리미엄 디자인 컨셉
외형 디자인을 할 때 회사의 부적절한 입김이 반영되어서 망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를 꼽자면 왕년에 김우중 회장의 지시에 따라서 모든 GM 대우 자동차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바뀐 사건이 해당될 것이다.
마란츠는 오디오 앰프부문에 있어서 명기를 산출해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신제품의 외형에도 예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앰프의 명가 마란츠를 상징하는 둥그런 황금빛 창이 디지털 소스기기인 마란츠 SA-1이나 마란츠 SA-14 ver2같은 SACD 플레이어에까지 달려있다니 어쩐지 생뚱맞은 디자인처럼 보인다고 느꼈던 할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형 플래그쉽 SACD플레이어인 SA-11S1 SACD에서는 그 문제의 둥그런 계기창을 없애는 대신 푸른 사파이어 빛 램프를 사용함으로써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게끔 했다. 이 빛은 주요 조작 버튼 여섯 개를 비추는 기능적인 면도 갖추고 있다. 사파이어빛 조명과 디스플레이창은 리모컨을 통해서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전면패널에 곡면을 주는 디자인은 제품이 높이가 높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며 평범한 디자인을 바꿔놓는 효과가 있어서 마크레빈슨, 플리니우스, 클라세 등 가리지 않고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리모컨의 상판은 알루미늄 판으로 제작되어 깨끗하고도 쿨한 느낌을 주고 있다. 손에 쥐기에는 약간 두툼한 편이 좋았을 텐데 약간 얇은 듯 하다. 예전에 마란츠 리모컨이 가지고 있었던 버튼 배치의 문제점을 많이 개선했다.
SACD 재생부의 구성
이 제품은 마란츠 SA14 ver.2의 후계기로 개발된 스테레오 전용기에 해당한다. SA14에서는 산요 메커니즘 사용했었는데 여기서는 마란츠에서 개발한 모듈을 사용하고 있다. 공간 재현성의 향상에 중점을 두었다는 설명이다. 트레이는 빛이 반사되는 것을 줄이려한 듯 무광처리 했다.
DA컨버터는 NPC(Nippon Precision Circuit)의 최신 DSD/PMC 대응 DAC SM5866AS를 채널당 하나씩 사용해서 디퍼런셜로 구성했다. SACD 재생시 필터를 리모컨을 통해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필터를 거치지 않은 스트레이트 신호처리와 DA컨버터칩이 내장한 두 종류의 필터가 해당된다.
필터1은 다이렉트 모드로서 오리지널 소스에 충실히 재현하는 목적에 사용되며, 필터2는 100kHz이상의 대역을 필터링해서 감쇠시키되 DAC내의 동작을 비대칭으로 해서 DAC의 분해능을 우선시 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필터 3은 100kHz 이상의 대역을 필터링 하되 완전대칭 동작으로 해서 후단의 I/V변환시 특성이 좋아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I/V(전류/전압)변환회로는 HDAM(고속 전압 증폭 모듈)을 사용했다, 그리고 로우 패스 필터에도 HDAM, 출력 회로도 HDAM을 사용하는 등 OP앰프를 사용하지 않은 듀얼 모노럴 풀 디스크리트 구성이다.
그리고 SA14 ver.2이 싱글엔디드 출력의 마지막에다 간단하게 OP앰프의 힘을 빌려서 밸런스드로 출력으로 구성한 것이었다면 SA-11S1에서는 디퍼런셜 D/A컨버터에서부터 아날로그단의 밸런스드 출력까지 풀밸런스드로 전송된다. 그래서 풀밸런스드와 언밸런스드 출력간에 음질적인 차이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밸런스드 출력을 사용하는 오디오애호가에게는 좋은 소식이 되겠다.
제품을 둘러보면 상판에는 열이 잘 빠지도록 구멍이 뚫려있고 후면에는 XLR단자가 달려있다. 핫은 3번이다.
이 제품은 SACD플레이어지만 SACD타이틀을 로딩하면 타이틀에 따라 CD로 먼저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 SACD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기본값으로 SACD를 먼저 인식토록 하게해야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싶다. 번번히 확인하고 SACD재생으로 바꾸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들어보기
마란츠 SA-11S1는 봄에 핀 벚꽃이 만개한 것 같은 화사한 소리를 내준다. 그 대신에 음악에 무게가 실리는 역동적인 부분을 다소 간략히 넘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연주의 전경을 한눈에 다 보이도록 해준다기 보다는 클로우즈업으로 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필자가 보유한 소니 XA9000ES SACD플레이어와 반복해서 비교해보면 두 제품은 비슷한 면이 적고 대칭되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제품임을 알게 해준다. 차근차근히 살펴보도록 하자.
프로코피에프 발레조곡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 파보예르비 지휘, 신시네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텔락 SACD-60597 제1조곡 중, Folk dance를 들어보면, 마란츠 SA-11S1은 음의 색채가 화려하고 만져질 것 같은 환상을 준다. 그리고 공연장 앞쪽 좌석에 가서 듣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무척 생동감 있고 거기에 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해준다.
그래서 제품 개발자가 밝힌바 있는 “마란츠가 줄곧 추구해온 광대한 공간 표현능력과 더불어 전례 없는 음상 실체감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라고 한 표현이 한낱 허황된 자부심의 표출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한편, 소니 XA9000ES는 음의 색채감의 면에서는 소박한 편이고 발랄한 활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도 매력이 덜 나타나는 편이다. 그대신 소니의 장점이라면 음의 핵이 사라지지 않게 무게중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견고한 건축물을 감상할 때와 같은 안정감과 힘의 조화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 될 것이다. 세부적인 발랄함 대신에 힘의 균형이 잘 잡혀져서 리듬이나 신나는 스윙을 어렵지 않게 잘 다룬다. 이런 점 때문에 전체의 오케스트러가 흘러가는 분위기나 전경이 잘 파악되도록 하는 편이며 곡의 흐름도 조망하기 좋게 도와준다.
앞서의 관점에다 마란츠 SA-11S1를 다시 대입한다면 마란츠는 음의 무게나 에너지의 중점이 이동하는 점에서는 흐릿하고 탈색된 것처럼 자세하게 표현해 내는데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리고 전경의 파악보다는 독주자나 특정 악기의 파트가 활약하는 부분이 잘 들리도록 해준다.
그래서 영상쪽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차용해서 비유하자면 마란츠 SA-11S1이 새츄레이션이 잘 나오고 화사한 색감을 가진 대신 그레이스케일의 표현에서 어두운 쪽이 깊게 내려가지 않아서 파워풀한 영상을 보여주지는 못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마란츠 SA-11S1의 매력이 돋보이는 경우는 편성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라거나 현악기의 사용이 많은 경우에 해당되겠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플랫 장조 K.364, 미도리 바이얼린, 크리스토프 에센바하 지휘, 소니SS 89488을 마란츠 SA-11S1으로 들어보면 바이얼린의 세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전체적인 그림이 덜 그려지는 편이지만 세부묘사는 대단하고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로 세부의 탐미적인 소리를 잘 표현해준다.
소니 XA9000ES로는 그 아름다운 음을 잘 표현해 낼 수 없다. 그 대신에 역동적인 모습을 그려내 준다. 팽이가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회전을 하는 역동성이 있는 것처럼 음악의 내부에 역동성이 있음을 표현해준다. 한 걸음 떨어져서 듣는 것처럼 음악의 구조적인 흐름을 잘 드러나게 해주기 때문에 음악가들이나 음악 선생님들이 좋아할 법 하다.
또 한가지 시벨리우스 바이얼린 협주곡, 헤닝 크라게루드 바이얼린, Bjarte Engeset 지휘, Bournemouth 심포니 오케스트라, 낙소스 6.110056의 경우 소니 XA9000ES로 들으면 닭고기의 가슴살을 먹는 것처럼 팍팍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마란츠 SA-11S1으로 들으면 피어나는 바이얼린의 소리로 인해 많은 점에서 좋아진 인상을 받게 만들어 버린다.
그 반면에 전투적인 느낌을 주는 피아노곡에서는 마란츠 SA-11S1의 장점은 좀 덜 드러나는 편이 아닌가 싶다.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7번, 피터 야브론스키 연주, 엑스톤OVCL-00146의 경우 마란츠 SA-11S1은 상대적으로 마이크를 가까이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느낌에다가 한 음 한음이 벨칸토의 울림처럼 피어나고 손가락은 가볍게 움직이는 듯이 들리는 점은 특기할만 하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아노 소리가 피아노 몸통이 울리는 것으로 해서 발생된다는 것을 깜빡 잊어먹게 한다.
리듬과 에너지의 역동적인 부분을 잘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소니 XA9000ES가 뛰어나다. 소리는 항상 피아노 몸통의 울림중의 일부라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래서 실체감을 느끼게 한다. 소리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표현되므로 인해서 연주자의 의도가 단지 소리에 흔들림에 휩싸이지 않게 하고 유지되도록 해준다. 그래서 복잡한 소리의 범벅에서도 연주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며 이런 연주자의 존재를 잃지 않음으로 인해서 연주가 공허하게 들린다거나 혹은 비인간적으로 덮어놓고 공격적으로만 들리지 않게 해준다.
그런데 이런 여러 경험과는 동떨어지게 타악기 연주에서 마란츠 SA-11S1의 묘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트리샤 바버의 Modern Cool앨범(Mobile Fidelity UDSACD2003)에 실린 Touch of Trash란 곡에서는 타악기 연주자가 북의 가죽을 때리면 막의 떨림의 정도가 부위마다 다르게 나타나면서 북을 때리는 위치가 한 곳을 계속해서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부위를 때리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점에서는 탄복하고 말았다. 소니 XA9000ES에서는 그런 변화를 민감하게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필터의 차이에 따른 느낌을 간략히 적어 보자면, 필터1이 피어남이 잘 나타난다. (필자가 제품 평가시 필터1에 놓고 재생했다) 필터2는 몸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약간의 불친절한 기분으로 주변에 긴장감을 주는 건조하고 사무적인 느낌이 배어나오는 것 같은 분위기에다 몸놀림이 약간 무거워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필터3은 2번보다 더 참을성을 잃은 상태 같아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느낌을 준다. 좋게 말하면 씩씩하고 약간은 오버한 혈기왕성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이 필터의 세팅을 다르게 한다고 해서 원래 제품이 가진 본성을 뒤집어 엎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서 소니 XA9000ES가 되지는 않는다.
마무리
마란츠 SA-11S1은 구미의 제품들이 쫓아오기 힘들 정도의 호화로운 구성을 한 2채널 전용 하이엔드 SACD플레이어로 어찌된 일인지 국내에 이 가격대에 단독후보로 나서서 최고의 제품이 되어버렸다.
약간은 인공적인 느낌이 있었던 (그게 매력이라고 볼 수 있었던) 마란츠 SA-14 ver.2에 비하면 마란츠 SA-11S1은 상당히 음악적인 표현력이 진일보 했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예전의 마란츠 제품에서처럼 노르스름한 기름처럼 느껴지는 착색은 들어있지 않다.
마란츠의 소스기기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저역의 무게에 대한 부분은 아무래도 HDAM의 훌륭한 장점을 얻는 대신에 그와 맞바꾼 트레이드오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쨌든 훌륭한 제품이 한국에 소개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며 좋은 SACD플레이어를 찾는 여러분께 거리낌없이 추천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기쁘게 생각한다.
시청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