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초반대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제품
노정현(evaa@hitel.net) 2003-06-30 18:36:05
대부분의 하이엔드 오디오 제조사들이 DVD를 기반으로 하는 유니버셜 플레이어 개발에 관심을 두는 시점에서 아캄만큼 다양한 라인업의 CDP를 생산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대표적인 1-2 기종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축소시키고 있는데 반해 아캄은 오히려 라인업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있어서 CD 플레이어는 여전히 유용한 존재며 그만큼 가격대별로 다양한 모델을 갖추고 있는 아캄의 제품들은 좋으나 싫으나 일단 가격대별로 구매 리스트에 항상 오를 수밖에 없다.
최근 출시된 CD 82는 72와 92(곧 93으로 대체)의 중간대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좀 더 넓혀주는 제품이다. 그렇지만 CD 82는 다양한 가격대별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외에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제품이다. 앞으로 출시될 아캄의 상급기 FMJ CD 33과 DiVA CD 93의 프로토 타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CD 23의 핵샘인 DCS의 RING DAC을 대체하는 울프슨의 WM8740 멀티비트 델타 시그마 DAC를 사용하는 기본 모델이 바로 CD 82인 것이다. 아캄이 라인업을 형성하는 방법은 좀 특이한데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기함급 모델을 개발한 후 기함에 투입된 기술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며 하급 라인을 구성하는데 반하여 아캄은 기본 모델을 개발한 후 그 모델을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으로 라인업을 만든다. 물론 DiVA 시리즈는 이와 반대로 FMJ의 하급 라인으로 출발했지만 아캄이 혁신적으로 설계방식을 전환하여 생산한 A 85가 A32의 원형이 된 것은 역시 새로운 기술을 베이식 모델에 투입하고 베이식 모델을 기반으로 업그레이드 제품을 발표하는 아캄의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디자인 및 사양
CD 82의 심장 WM8740은 DV 88과 DV 27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매우 큰 전력 소모량을 가지는 Ring DAC을 기반으로 DVDP를 설계하기에는 부담이 많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적으면서도 품질이 뛰어난 DAC가 필요했던 아캄은 자사의 DVDP에 울프슨의 DAC를 도입한 것이다. 아캄의 DVDP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CD 재생 능력은 새로운 기술 적용이 성공했음을 입증해 주었으며 곧바로 새로운 CDP 개발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이 바로 CD 82이다. WM8740은 델타 시그마 방식으로 비트 스트림을 생성하지만 1비트가 아닌 6비트의 멀티 비트급으로 동작한다. 그 이유는 1비트 방식의 DAC가 만들어내는 다량의 고주파 노이즈를 감소 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1비트 방식의 DAC는 클록 지터에 취약해서 오버 샘플링 클로에서 발생한 지터가 그대로 DAC로 유입되어 다량의 노이즈를 발생시키는데 반해 울프슨의 멀티 비트 DAC는 클록 지터에 대한 민감도가 1비트 DAC의 1/64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동작 방식은 Ring DAC과 상당히 유사한데 아캄이 울프슨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 하다.
CD 82는 채널별로 WM8740을 하나씩 장착한 듀얼 모노 구조로 좀 더 정확한 DA 변환을 꾀한다. 참고로 곧 출시될 CD 33과 CD 93은 채널별로 4개의 WM8740을 탑재하고 있으며 업샘플링 기술을 추가하고 있다. 변환된 아날로그 신호는 버브라운의 OP 앰프를 통해 증폭되어 출력되는데 이 부분도 아날로그 디바이스의 제품을 사용하던 종래의 제작 방식을 변경한 것이다. 트랜스포트부는 3빔 방식의 소니 제품을 사용하며 섀시는 다른 DiVA 제품들과 공유하고 있고 아날로그 출력은 언밸런스 2조를 갖추고 있다. 겉모습은 변화가 없지만 내부는 새롭게 설계된 차세대 아캄 CDP의 기본이 된다.
음질
CD 82는 중립적이면서도 각 악기의 음색을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음악에 빠져들게 한다.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특별한 첫인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이 음반 저 음반을 들어보고 싶게 만들어 준다. 필자가 거의 매번 언급하는 비욘디와 유로파 갈란테의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집을 들어보면서 이런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았는데 이 음반을 들으면서 이 제품에 대해 특별하게 언급할 부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음반을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끝까지 다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음반은 듣는 이에 따라 평가가 갈리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고 자주 듣는데 녹음시에 유입된 기저 소음이 잘 포착되는지 악기의 음색이 어떤지 리듬감은 어떤지 강약의 변화는 어떤지 이런 것을 따지기 전에 그냥 즐겁게 듣고 끝내버렸다. 리뷰 기간동안 이 음반을 여러 번 들었고 들을 때마다 그랬으므로 특별히 시시콜콜하게 기억나거나 언급할 점은 없는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만큼 필자가 만족스럽게 감상했다는 것이다.
뒤마누아의 관현악 모음곡집의 24번 트랙을 들어보면 초반부의 북소리는 긴장감을 잘 유지하면서도 여린 세기의 연타에서 주자의 강약 조절이나 변화하는 음색도 무리없이 소화해 주었다. 뒤이어 지는 현 파트의 음색은 매끄러우면서도 촉촉함이 잘 유지되었고 느린 템포로 바뀌면서 등장하는 탬버린의 미세한 강약의 변화와 소리의 터짐 및 사그러짐도 섬세하게 포착해서 연주자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었다. 이정도의 디테일을 소화해낼 수 있다면 섬세한 표현력에서 큰 부족함을 느끼기 힘들 것 같았다. 아쉬운 부분은 S/N비가 아주 높은, 매우 깨끗한 재생음을 들려주는 제품들에 비해서 탬버린의 울림이 사라졌다가 시작되는 잠깐 동안의 정적감이 다른 악기에 묻혀서 잘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필자는 어떤 것이 좋은 탬버린 연주인지 잘 알지 못하는데-주로 들어본 것이 노래방에서였으므로- 매우 깨끗한 시스템에서 재생되는 이 곡의 탬버린을 들어보면 연주자가 악보를 보면서 박자를 미리 세고 있다가 음표가 시작되면 쫓아가듯이 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런 느낌이 끝까지 살아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중급기들이 이 부분에서 다소 무성의한 연주로 생략해버린 다는 느낌을 많이 주는데 반해 CD 82는 상당히 디테일한 면까지 잘 들려주는 점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제니퍼 원즈의 “way down deep”을 들어보면 위력적이거나 강력한 무게감의 표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진다. 도입부의 북소리를 들어보면 좀 더 강력한 타격의 충격감이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데 동사의 레퍼런스 FMJ 23T와 비교해보면 확실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23T가 82보다 좀 더 탄력적으로 북소리의 타격감을 표현해주었고 좀 더 깨끗하고 선명한 재생음을 들려주었다. 따라서 좀 더 규모가 크게 들렸는데 이런 규모감의 차이는 대편성에서 더 잘 드러났다. 정경화가 연주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들어보면 23쪽이 82보다 더 음장의 규모도 크고 아래에서 위까지 대역의 확장감도 더 좋았으며 특히 투티 부분에서 더 힘차게 들렸다.
동사의 더 높은 가격대의 제품과 비교에서는 가격만큼의 차이가 드러났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제품들과 비교해 보면 중립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음색이나 충분한 섬세함등이 매력적인 제품이었다. 예를 들어 비슷한 가격대의 케언 포그 2.0과 같은 플레이어는 아캄 82보다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음색을 들려주지만 베이스 파트의 리듬감이 82만큼 잘 살아나지는 않는다. 약간 아래 가격대의 로텔 1070과 같은 기기와 비교해 보면 전체적으로 더 느슨한 느낌이 들지만 대신에 단조롭지 않고 섬세한 음색의 변화를 더 잘 표현해 주며 작은 다이내믹스의 변화를 더 잘 표현하기 때문에 표현력이 더 풍부한 음악을 듣게 해준다. 고가의 제품들과 비교하면 절대적인 해상도나 섬세함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비슷한 가겨대의 제품 중에서는 가장 중립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움이 잘 살아나는 매우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제품이다. 예전에 케언 포그 2.0을 리뷰 하면서도 밝힌 바 있지만 요즘 생산되는 디지털 기기들이 비슷한 가격대에서 성능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지는 일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300만원을 넘어가는 완성도 높은 제품들에 비해 제품별로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지 100만원이 넘는 싱글 CD 플레이어들이 치명적인 결함 등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다만 기기마다 약간씩의 특성 차이를 가지고 있고 개인들의 취향에 따라 더 선호하냐 아니냐 하는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CD 82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여러 사람들에게 안심하고 두루두루 추천할 수 있는 제품이다.
글을 맺으며
아캄의 CDP들을 보면 B&W의 스피커가 생각난다. 가격대별로 다양한 라인업을 구성하는 만큼 가격을 뛰어넘는 괴물 같은 제품을 만들지는 않지만 그 가격에 상응하는 성능으로 구매자에게 꼭 보답을 해주며 같은 가격대에서 최상의 선택 중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완성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CD 82 또한 이 가격을 넘어서 뭔가 한 방 보여주겠다는 식의 제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보급형 제품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보급형 제품들과 차별되는 성능을 보여주며 또한 경쟁 제품들 중에서도 특별한 아쉬움 없이 모든 면에서 만족할만한 고른 성능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취향에 따라서 조금 더 강력한 다이내믹스를 원한다든지 혹은 좀 더 화려한 음색을 원한다든지 할 수 있겠지만 별다른 아쉬움 없이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한 성능의 CDP를 이 가격대에서 찾는다면 가장 먼저 관심 가져야 할 제품이다. 요즘 같은 불황에 CDP에 100만원 넘는 돈을 투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가격대의 CDP를 찾는 분이라면 반드시 청취해 보시기 바란다. 이 가격대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제품이다.
시청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