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욱(nam0617@korea.com)
프로용 녹음기기 제작사인 dCS의 민수용 제품인 딜리어스는 전작인 Elgar의 기술을 채용하여 새롭게 출시된 제품이다. Elgar에 채용된 5bit 64배 오버샘플링 구조의 ring DAC을 채용한 것을 물론이고 24비/192kHz까지의 샘플레이트 변환 성능,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한 기기 업그레이드, 고성능의 디지털 볼륨 채용등 전작 Elgar에 하등 뒤질게 없는 좋은 사양을 가지고 있다. 업샘플러인 Purcell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유사한 외형을 지닌 것도 특징적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dCS의 제품이 국내에서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물론 좋은 음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새로 제정되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DVD-audio 및 SACD포맷에 대한 대응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엘가가 국내에 출시되던 당시 24/96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기는 전무 했었고(사실 소프트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엘가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었다. 고가의 가격으로 많은 이들이 들어볼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겠지만 당대 최고의 DAC중 하나로 모두들 손꼽혔던 것이 사실이고 거기에는 24/96 대응이라는 독보적 존재로서의 이익이 어느 정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후 출시된 MSB사 Link DAC의 성능이 엘가와 비교되는 해프닝 또한 엘가에게 있어서 새로운 포맷에 대한 대응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이며 강점이었던 가를 잘 반증해 주는 예일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으로도 새로운 포맷의 미디어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최소 2-3년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며 앞으로 계속하여 새로운 포맷을 지원하는 기기들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저가의 업샘플러며 SACD, DVD-audio지원 DAC들은 핵심부품이 공급되는 올 8월 이후면 수십종이 시장에 풀릴 것이며 따라서 새로운 포맷에의 대응이라는 dCS의 홍보전략은 더 이상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것보다는 지금 내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 사용자들에게는 좀더 중요한 기기의 판단기준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숫자놀음에서 한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Delius의 팬시한 숫자놀음은 공허한 허장성세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청취한 바로는 기존 CD의 재생능력에서도 매우 좋은 성능을 보여 주었다. 다만 앞에서 강조한 바대로 기존 CD의 재생기로서 Delius을 인식하고 그러한 측면에서 Delius를 평가하는 것이 필자의 관심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고 필자의 리뷰를 읽으시는 독자 제위께서도 그러한 측면에서 읽어달라는 점을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다.
2. Listening
dCS는 레이다에 들어가는 첨단 부품을 만드는 회사이며 무엇보다 필자에게는 녹음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고급 ADC를 만드는 회사로 인식되어져 있다. 그래서 이번 시청에는 dCS사의 가장 큰 경쟁사인 미국 Apogee사의 PSX-100이라는 A/D-D/A기기를 비교기기로 선택해 보았다. PSX-100은 직결용이 아니기 때문에 Krell의 KRC-3프리를 함께 사용하기로 했고 이렇게 두 기기를 합하면 Delius의 가격과 거의 같아지므로 나쁘지 않은 비교 대상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시청공간은 필자가 매스터링 룸으로 사용하고 있는 RPG사에서 설계한 13평 정도의 공간이었고 Cello사의 Duet350Mk3와 Duntech의 Regent를 모니터링 앰프 및 스피커로 사용하였다. 딜리어스의 경우 출력전압을 직결용인 6v로 조정하여 CEC3100의 AES/EBU출력을 받아 직결로 Cello strings #1을 사용하여 Duet350과 연결하였고 비교기기는 카나레 밸런스 케이블로 크렐과 DAC을 연결한 뒤 Cello strings #1을 사용하여 Duet350과 연결하였다. 스피커 케이블은 실텍사의 최고급 모델인 180 LS (G-3)를 사용하였다.
3. Sounding
바르톨리의 마술과 같은 기교가 놀라운 Live in Italy(Decca 455 981-2)를 들어보았다. 딜리어스는 직결에서 흔히 나타나는 중역의 얇음으로 인한 고역의 강조, 다이나믹의 저하가 감지되었다. 물론 싸구려 직결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소리는 아니었지만 곰곰히 들어보면 여전히 직결에서 드러나는 전반적인 경향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직결인 만큼 해상도는 매우 좋아 노래와 피아노 반주의 구별이 명확하게 그려졌다. 스테이징과 포커싱은 나무랄 데 없이 좋았고 입술의 움직임도 세세히 잘 그려졌다. 비교기기의 경우 크렐 프리의 특징인 듯 중고역에서의 피크와 고역의 롤오프가 감지되었다. 고역은 순화되어 바르톨리의 화려한 움직임을 좀더 편하게 그려내었고 소리에도 살집이 붙어 좀더 기름지게 되었다. 다이나믹은 딜리어스 보다 낳게 들렸고 홀의 울림도 좀더 포착되었다. 함께 들었던 다른 분은 홀의 올림에 대해 크렐의 경우 해상도가 떨어져 소리가 섞이기 때문이라 설명하였는데 이렇듯 프리의 특성으로 인한 소리의 차가 선호도를 가를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실비아 맥네어의 Sure Thing(Philips 442 129-2)을 들어보면 비교기기 보다 저역은 좀 더 풀어졌으나 피아노의 음색과 위치는 훨씬 좋았다. 다만 보컬이 좀더 건조하게 들려 음악의 맛을 살리는데는 좀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프리를 사용하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으리라 보이지만 이만한 DAC에 또 고가의 프리를 붙여 사용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면 여전히 직결에 대한 평가로 Delius를 평가하는 것이 낳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폴리니의 최근 쇼팽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았다. 최근 DG녹음이 그러하듯 홀의 울림이 과도히 녹음되어 마치 목욕탕 안에서 연주를 듣는 것 같고 게다가 피아노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 여러 번 디스토션이 들어가 있는 그리 좋지 않은 녹음이다. 하지만 딜리어스는 그리 좋지 않은 녹음임에도 들을만한 소리를 내 주었다. 비교기기 보다 훨씬 듣기가 좋았는데 아마도 재생시의 다이내믹 레인지가 매우 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이외에도 한국에서 녹음된 몇몇 공연 실황을 들어보기도 했는데 비교기기 보다 훨씬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지금까지의 리뷰는 소편성에서의 재생능력에 대한 평가였는데, 이 부분에서는 직결 시스템인 딜리어스에서 몇몇 아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역대의 살집이 빠짐으로 인해 음악적 맛이 감소되었고 오히려 고역이 강조되는 약점을 보였고 피아노나 보컬등의 급격한 다이내믹 변화에 흡족할 만큼 반응해 주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직결을 포기한다면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약점은 같은 가격대의 DAC, 프리 조합과의 집중적인 비교에 의한 것이니 만큼 사실 그리 흠잡을 것이 없다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편성으로 음반을 바꿔보니 딜리어스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아르헤리치/아바도/런던심포니의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DG 423 665-2)에서는 크렐에게서 나타나는 고역의 롤오프가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역이 무리 없이 잘 뻗는 딜리어스에게서 좀더 선명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라벨의 특징인 음색의 변화를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목관의 음색도 훨씬 왜곡이 적었다. 각 악기간의 스테이징도 좋았고 전반적인 해상도의 증가로 악기들의 움직임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홀의 울림은 비교기기 쪽이 좀더 많이 포착되었다.
워싱턴 매스터 코랄이 연주하는 크리스마스 코랄(Albany Troy353)을 들으니 비교기기의 경우 딜리어스보다 산만하고 소란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교기기의 경우 홀의 울림도 더 많이 나고 저역도 양적으로 더 많이 나왔지만 각각의 소리들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왔다면 딜리어스의 경우 잘 정돈되고 선명한 소리가 재생되었다. 악기와 합창단 간의 구별도 분명하여 졌고 스테이징도 향상되었다.
4. 결론
위에서 언급한대로 딜리어스의 직결은 작은 편성을 즐겨 들으시는 분보다는 대편성의 음악을 즐겨 듣응 분들께 적합한 소리를 들려 주었다. 물론 프리를 함께 사용한다면 음악적인 맛을 소리에 첨가할 수 있겠지만 그 만큼의 해상력의 저하를 감수하여야만 할 것이며 경제적 부담 또한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편성의 아쉬움은 대편성의 선명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소리를 듣게 된다면 충분히 감수할만한 작은 아쉬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쉬움은 다른 여러 직결 DAC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아쉬움인 만큼 딜리어스를 탓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딜리어스는 현재 CD를 재생하기에 좋은 DAC인가?… 물론 답은 Yes이다. 화려한 숫자 놀음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Delius는 매우 좋은 DAC이다. 중가대의 DAC들보다는 한등급 위의 소리를 들려 주었고 비슷한 기기인 와디아에서 느껴지는 고역의 딱딱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가격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하이엔드로의 나래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필청해 보아야 할 좋은 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