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에 수입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 뒤에는 기존의 하이 엔드 제품들은 웬만한 봉급쟁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중고품을 찾게 되지만 워낙 수요가 많아서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특히나 소스 분야에서는 기술의 발달로 하이엔드 제품 의 수명이 매우 짧고, 가격대 성능비가 높은 제품들이 많지 않아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굳이 지명도 있는 브랜드의 중고를 찾으면 클라세 시디피1이나, 메르디안508.24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에 만만치 않은 상대가 나타났다. 신생 브랜드이기는 하지만 성능은 견줄만하고 무엇보 다도 신품가격이 이들의 중고가격과 비슷한 대인 오디오 브랜드로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헤겔이라는 브랜드이다. 헤겔은 노르웨이 제품으로 가격대 별로 파워,프리,시디피로 구성된 2종류의 모델라인을 구 성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저가형 컴퍼넌트의 CDP2를 들어보았다.
외양
물론 오디오는 소리가 좋아야 하지만 이제 디자인도 그 자체가 하나의 메릿이 되어버렸다. 전면 패널은 좀 생소한 컨셉이기는 하지만 깔끔한 디자인이다. 폴크스바겐의 뉴비틀의 둥근 헤드램프처럼 하나의 동그란 커다란 둥근 버튼을 2개로 각 버튼의 네 끝을 사방으로 조작 하는 느낌은 색다르다. 가운데가 둥그렇게 나온 배플이나 심플한 버튼 그리고 푸른색의 디스플레이는 일본식 디자인에 식상한 분들에게는 매력일 것 이다. 다만 파워 온 오프 스위치를 누르는데 힘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밑에 레이싱콘을 받치면 밀려날 수도 있다. 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워서 위에 무거운 것으로 눌러주어야 할 것이다. 트랙을 읽는 픽업의 소음은 매우 작고 트래이의 여닫힘도 부드럽고 조용하여 하이엔드 냄새를 풍긴다. HDCD지원은 안 된다. 통통거리는 상판이나. 전면에 비해서 밋밋한 뒷면 처리는 비록 앞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전면 디자인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리모콘도 일반 가전 제품 같은 평범한 디자인의 플라스틱 재질이다.
음질
신품이라서 7일간 BREAK-IN을 하였고, 헤겔 파워2, 프리2의 라인업에서 시청하였다. 먼저 므라빈스키의 차이코프스키 6번 5악장을 들어보았다. 포효하는 관과 현의 다이내믹스 가 일품인 음반이다. 헤겔은 현악기의 텐션과 저역의 스피디한 저역을 잘 표현해주었다. 특히 총주시 뭉개지거나 하지 않고 악기 하나 하나를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였다. 라이브 녹음이라서 여러 가지 현장에서의 잡음들이 많이 들어갔는데, 클라세보다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해상력은 클라세 보다 한 수 위다. 특히 땅을 울리는 저역이 아니라. 순간반응이 빠르고 정확하게 잡아주는 저역은 인상적이었다. 음상을 매우 작게 조였고 악기들의 전후 좌우 배치를 잘 잡아내주었다. 스테이징 능력도 클라세 보다 한 수 위다. 음장감은 넓거나 깊다기 보다는 작고 아담하게 약간 뒤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러나 고역이 약간 어두워서 금관 악기의 쭉쭉 뻗는 고역의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나지를 못한다. 음색이 클라세 보다 어둡고, 고역이 화려하지 않아서 관악기에서는 많이, 현악기에서는 약간 클라세가 한 수 위다.
Diavox에서 나온 Carmignola의 비발디의 사계중에서 10,12번 트랙을 들어보면 비록 요즘의 인기스타 Biondi만큼은 아니더라도 경쾌하고 다이내믹한 소리를 들려주는데, 헤겔은 투명하고 윤곽이 단단하며 차가운 바이얼린 소리를 들려준다. 밝고 따뜻하며 화사한 바이올린 소리가 아니라 얼음장 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이다. 클라세에 비해서 소리가 가늘고 차 가워서 화사한 바이얼린의 고역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고역에서의 질감은 떨어지지만 연주의 강약묘사나 악기와 연주자의 전후좌우 위치와 각 악기들의 Layering를 정확하게 표현하여서 연주회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Andrew Manze가 연주한 바흐의 바이얼린 소나타(HMF)들을 들어보면 고악기인 합시코드 특유의 울림과 텐션이 잘 살아난다. 대개의 고악기들의 울림과 잔향을 표현하기는 쉽지가 않은데 헤겔은 이를 정확하게 잘 표현해주었다. 뒷 배경도 매우 깔끔하다. 다만 편하고 기분 좋게 들어야 할 음악이 너무 긴장을 하게 만들어 음악에 몰두하지 못하게 한다.
피아노 곡으로는 스타크만의 쇼팽 스케르죠 OP11번을 들었다. 헤겔은 스타크만이 돌망치로 건반을 내려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의 단단한 소리를 들려준다. 저역은 바랄 나위없이 훌륭하고 오히려 너무 단단한게 아닌가 할 정도이다. 헤겔 라인업 에서 보다는 아니라 프롤로그 200I에서 들었을 때가 저역의 덜 단단했지만 듣기에는 더 편했고 좋았다. 건반 터치의 강약이나 왼손 오른손 구분, 건반을 눌렸을 때의 음의 변화 단계와 배음이 잘 살아난다. 피아노에서는 아무래도 헤겔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딩”하고 건반이 쳐진 후에 잔향지는 단계들이 잘 표현되었다. 둘 다 밸런스가 훌륭하기는 하지만 클라세는 밝고 화려한 고역 때문에 아무래도 에너지가 고역에 몰리는 것 같고, 헤겔은 깊고 타이트하고 단단한 저역 때문에 에너지가 저역쪽으로 몰리는 것 같다.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에서는 매우 훌륭한 Deep base를 들려주었다. 헤겔 라인업에서의 단단하면서도 스피디한 저역은 여기에서도 진가를 발휘하였다. 베이스의 현을 튕기는 소리는 정확하게 끊기고, 잔향을 깔끔하게 내주었으며, 기타의 텐션도 아주 훌륭하였다. 디테일을 잘 표현해서 제니퍼 원스의 목소리의 강약변화와 침 넘기는소리, 떨림등 도 아주 잘 묘사하였지만 소리 자체가 약간은 맹맹하고, 고역에서의 딱딱함이 느껴졌다.
결론
헤겔 시디피는 해상도, 빠른 반응속도와 다이내믹스, 스테이징등에서 매우 훌륭한 점수를 줄 수 있고, 윤기 있거나 따뜻하고 촉촉한 중 고역의 질감이란 면에서는 약간 처졌다. 전체 적으로 차고 고역이 딱딱한 소리라는 것이 제일 약점일 것이다. 예컨대 예쁜 소리라기 보다는 정확한 소리를 추구하는 컨셉이라고나 해야겠다. 현악기쪽보다는 피아노쪽에서 배음과 잔향의 사라짐을 잘 표현해주었고, 헤겔 라인업에서의 말러 1번 같은 대편성곡은 앰프특성과 맞물려 텐션있고 스피디한 저역을 들려주었다. 차라리 이름을 말러쯤으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신품가격으로 100만원이상 비싼 클라세 1.0과 비교할 때 음색과 질감을 제외하면 그다지 비슷하거나 나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음색이 차갑고 해상력이 좋기 때문에 매칭을 할 때 케이블쪽을 중고역이 예쁜 XLO나 Kimber 쪽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생소한 브랜드라는 약점을 극복할 만한 성능을 지녔다. 선뜻 질르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200만원 중간대라는 가격이 걸리기는 하지만 말도 안 되게 올라 버린 신품시장에서 노오픈 박스를 선호하거나, 바꿈질을 자주 하지 않는 분들은 관심을 가질만한 제품이다.
사용기기
파워: 헤겔 파워 2
프리: 헤겔 프리 2
인터커넥터: 너바나 밸런스. XLO 2.1
스피커케이블: XLO Reference 5a
Speaker: Dynaudio Confidence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