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벽으로부터 들어오는 전원이 완전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혹시 우리집 전기는 깨끗하다고 믿고 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자도 전에 실제로 오실로스코프로 측정해본 결과 가정용 교류 전원의 파형이 약간씩 일그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각종 전기 제품이나 디지털 오디오 기기, 그리고 라디오 전파등 수 많은 노이즈 발생원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오디오 제품에는 상당히 큰 용량의 필터링 커패시터를 갖추고 있어서 어느 정도 이러한 노이즈를 걸러내 주지만 그래도 완전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파워 웨지니 파워 블록이니 하는 등의 다양한 파워 라인 컨디셔너들이고 우리 나라에는 실제로는 별 보탬이 안되는 AVR이었지만 파워텍이라는 제품이 발매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전압의 변동은 허용치 내에만 들어가면 오디오의 성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 PS 오디오는 아예 발전소를 통채로 팔겠다고 나서고 있다.
PS 오디오의 파워 플랜트를 쉽게 설명하자면 한 가지 주파수만 출력하는 파워 앰프라고 할 수 있다. 즉 60Hz의 사인파는 오실레이터에서 만들어 주고 이것을 그대로 증폭해서 220V의 오디오 전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단일 주파수를 출력하는 앰프를 파워 컨디셔너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PS오디오가 처음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판매되는 제품으로는 처음인 것 같다. 파워 플랜트는 네 가지 모델이 있는데 이번에 시청한 P300은 가장 용량이 작고 또 저렴한 제품으로 200W 이하의 부하 - 즉 소스 컴포넌트나 프리 앰프에서 사용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P300의 디자인은 이전의 파워 컨디셔너와는 다르게 매우 깔끔하게 되어 있다. 이 샤시를 설계, 가공하는 Neal Feay라는 회사에서는 쎄타와 콘라드 존슨, BAT 그리고 소닉 프론티어즈의 샤시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전면 패널에는 파워 버튼과 출력 전류 및 주파수를 나타내는 디스플레이 그리고 주파수를 50Hz에서 120Hz까지 조정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고 뒷 면에는 네 개의 아웃렛, 메인 온 오프 스위치 그리고 낙뢰로부터 비디오 장비를 보호하는 케이블 티비 입출력 단자가 부착되어 있다.
파워 플랜트 P300의 시청은 프리 앰프를 사용하지 않는 필자로서는 CD플레이어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프리앰프와 아날로그 기기에 대해서는 심재익님께 시청을 부탁드렸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이 늦어지고 있어서 필자가 먼저 글을 올리게 되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나중에 심재익님의 리뷰는 필자의 글 앞에 올려두도록 하겠다.
사실 파워 라인 컨디셔너를 따로 구입한다는 것은 웬만한 오디오 애호가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오랫동안 정평있는 타이스의 파워 블록2를 사용해 봤지만 실제로 음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느냐고 물으면 그다지 할 말이 없다. 대체적으로 파워 라인 컨디셔너는 고역을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대신에 컴포넌트의 순간 응답 특성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순간 응답 특성이 망가져서 고역이 뭉개진 것이라고 주장해도 할말이 없을 것 같다. 물론 필자는 타이스 파워 블록을 사용하는 편이 더 듣기에 편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했다. 또 타이스 파워 블록에 부착된 파워 코드에는 고유한 커패시티 조절 스위치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를 사용하면 음장이나 밸런스를 조절할 수 있는 효과가 있던 것도 필자가 오랫동안 파워 블록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평가하건대 파워 블록이 음질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인 면에서든 부정적인 면에서든 오디오 파워 코드, 예를 들면 시너지스틱 리서치의 레퍼런스 AC 마스터 커플러보다도 적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모델은 다르지만 같은 회사에서 제작한 AC 마스터 커플러에 대해 현승석님이 쓰신 리뷰를 참조해보면 기존의 파워 라인 컨디셔너들이 음질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그 폭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좋지 않은 습관이기는 하지만 항상 새로운 제품을 시청하기 전에는 대충 어떤 쪽으로의 음질 변화가 있을까 예상을 하게 된다. 파워 플랜트도 파워 컨디셔너라는 카테고리에 넣어서 추측하면 고역이 매끄러워지고 음장이 깨끗해지는 정도를 기대하고 시청할만한 제품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연결해서 들어본 결과는 기대와는 좀 방향이 다른 것이었다. 우선 이야기해야 될 부분은 음질의 변화 폭이 상당히 컸다는 점이다. 특히 중 고역대의 질감이 변화하는 것이 특이했다. 예를 들어서 파비오 비온디가 연주한 비발디 바이올린 소나타(Arcana, A4-A5 942004)에서 바이올린의 음색은 윤기가 더해졌고 고역의 뻗침이 향상된 것처럼 느껴졌다. 쳄발로의 소리도 배음이 더 잘 살아나서 촉촉함이 더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주파수를 증가시켰을 때 더욱 두드러져서 최대치인 120Hz에 두었을 때에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고 하더라도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의 음이 변모되었다. 크레머-마이스키-아르헤리치의 쇼스타코비치 트리오(DG 459-326-2)에서는 잔향이 좀 더 풍부하게 들렸고 연주자의 숨소리라든지 악보 넘기는 소리등 디테일이 향상되어 실제 연주회장의 분위기에 접근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음장이 스피커 뒤 쪽으로 움직이면서 이미지는 콤팩트하게 작아지고 그 대신에 악기 사이의 빈 공간이 넓게 느껴진다. 다만 P300의 출력 용량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발레리 게르기에프의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Philps 462 905-2)을 들어보았을 때에 총주에서의 다이내믹스나 팀파니의 무게감이 억제되어 들리는 부분은 아쉬웠다. 관현악 재생에서 중역이 뒤로 물러 앉으면서 음장이 깊어지고(폭은 오히려 약간 축소된 듯이 느껴졌다.) 디테일이 개선되는 부분은 긍정적이었다. 다이내믹스와 저역의 무게감에 대한 문제점은 역시 자드의 베스트 앨범(B-Gram JBCJ-1203)에서도 베이스 기타의 풍부함이 축소되고 드럼의 어택이 약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혹시 파워 컨디셔너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하고 시간을 두고 여러번 시청을 반복해 보았지만 결과는 같게 나타났다. 대신에 이즈미 사카이의 목소리는 훨씬 더 매끈하고 이쁘게 들렸다.
파워 플랜트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상당히 후한 편이다. 1천불이 넘는 케이블이 시장에 넘쳐나는 이때에 파워 플랜트의 가치를 후하게 평가하는 것은 나름대로 타당하게 보이기도 한다. 1천불 짜리 케이블보다는 분명히 파워 플랜트가 더 사서 덜 억울할 제품일 것이다. 또 현재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파워 컨디셔너 중에 이 정도 음질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제품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P300의 경우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CD 플레이어나 프리앰프 정도이고 다이내믹스나 어택이 감소될 가능성은 염두에 두어야 될 것 같다. P600, P1200, P2000등등 더 큰 출력을 가진 제품이 있지만 가격이 비례해서 올라간다. 또 220V 제품은 미국 내에서도 원래 가격이 30%이상 높게 책정되어 있는데다가 수입품인 관계로 국내 시판 가격이 가격대 성능비와 동떨어진 것이 될 수 밖에 없음은 안타까운 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