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욱(mc7270@hitel.net)
서론
요사이 케이블의 춘추전국시대라 할만큼 많은 케이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법 역사가 있는 Audio Truth(Quest), Cardas, Tara Lab, Van del Hul, Acrotec, MIT 등등의 회사도 물론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신생 브랜드도 많이 생겨서 케이블을 하나 구입하려면 꽤나 고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도 기기가 기본이 되어있고 매칭이 제대로 된 시스템이면 케이블이란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기본 구조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선택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때까지 레퍼런스로 사용해 오던 Audio Quest의 Diamond X2를 다른 케이블로 바꿔보고 싶은 충동에 이것저것 8종류의 케이블을 바꿔가면서 시청을 해 본 결과 결국 신생 케이블 회사중 하나인 Nirvana 사의 인터커넥트 케이블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아래의 글에서 간략하나마 Nirvana 사의 인터커넥트 케이블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시청기기
Loudspeaker
Rogers LS 3/5A BBC Monitor 15 ohm version
Totem Mani-2
Speaker cable
Audio Quest Dragon 8ft
Power amplifier
Goldmund Mimesis 8, Mark Levinson No.332
Interconnector
Audio Quest Diamond X2, JPS super conductor
Cardas Golden Cross, Nirvana S-L
CD Player
Mark Levinson No.39
Line conditioner
Chang Light speed ISO 6400
Accessories
BDR cone #3 (1 set), #4 (2 set)
Belden Power Cords Medical grade
Target R2 Speaker stand
Rogers LS 3/5A의 저역한계가 80Hz이므로 저역의 테스트를 위해서는 Totem사의 Mani-2를 사용했고, 모든 인터커넥트들은 모두 언밸런스드(Single-ended) RCA단자를 사용하였다. 또한 필자의 시스템이 파워앰프와 시디피 직결인 관계로 인터커넥트 비교가 좀더 용이했음을 미리 밝힌다.
[케이블의 특성 및 제원]
너바나 인터커넥트는 튼튼하게 생긴 정사각형의 검은 박스에 담겨져 배달되었다. 단자는 유명한 WBT의 최상품(WBT-014)을 사용했고 (요사이 킴버도 사용하기 시작한) 검은 색의 비닐로 실드 처리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외관인데, 아마 필자가 근래 특이한 케이블, 예를 들면 MIT, Transparent, PAD 등을 많이 보아와서 그러리라. 단자는 조임식으로 만들어져 신뢰성 있어 보이고 특이한 점은 너무나 잘 휘어진다는 점이다. 한 동안 슈퍼컨덕터를 사용한 경험에 미루어 볼 때 Flexibility란 하이엔드 케이블이 가져 할 중요한 미덕의 하나이라고 생각해 오던 차라 반갑기도 하고 실제 연결 시에도 무척 편리하였다.
너바나는 이 S-L 인터커넥트(밸런스와 언밸런스)외에 디지털 케이블 한 종류와 스피커 케이블을 만드는데 사실 상당한 고가라 오디오애호가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미국내 가격이 인터커넥트 1미터 페어 한 조에 $695이고 2미터 페어 스피커 케이블도 $1095나 한다. 줄 값이 웬만한 미드파이 기기 값과 맞먹는 것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너바나의 케이블은 대칭적인 리츠 구조에 기본을 두고 울트라 퓨어 카퍼(Ultra-pure-copper)로 제작되었으며 너바나 케이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독자적인 Geometry를 배경으로 손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실제 이 너바나의 케이블은 현재 체스키에서도 사용한다고 하니 기본이야 확실하겠지만, 체스키 레코드사가 요사이 Joseph Audio사의 새로운 스피커 RM 7i도 사용한다고 하니 체스키의 레퍼런스 기준이 조금 의심이 가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이 케이블의 제작자인 Stephen Creamer란 사람은 전 시스템에 다 너바나를 써야만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글에서는 일단 인터커넥트의 성질을 먼저 알고자 스피커 케이블은 같이 사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리이므로 일단 들어보자.
[시청]
첫인상은 “소리가 곱다” 라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이번 케이블 바꿈질의 병이 도지기 전까지만 해도 곱게 연마한 소리를 가진 케이블들을 선호해왔다. 아크로텍 2010이 그랬고 실텍 4-80이 그랬다. 오르토폰 8N선도 그러하고, 최근 Wire world나 Audio Magic사의 줄들도 다 곱고 예쁘게 연마한 소리다. 그러나, 너바나의 케이블은 뭔가 좀 다르다.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고우면서도 고운 티를 내지 않는다. 나름대로 중립을 지키려고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나하나 음악을 들어보자.
Beethoven Piano Sonata Op 57. Appassionata
Carol Rogenberger, Delos
델로스의 훌륭한 녹음에 멋진 연주가 가미되어 있는 매력적인 음반이다. 여기서 캐럴 로젠버그가 치는 피아노는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가장 덩치가 큰 피아노 중의 하나인 뵈젠도르프 임페리얼이다. 개인적으로 뵈젠도르퍼를 좋아하고 또 스타인웨이 뉴욕이 나오고 나서부터 전 세계 피아노 연주의 흐름이 좀 가벼운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터라 더욱 애착이 간다. 문제는 뵈젠도르프의 무거우면서도 울림이 풍부 -풍부하다 못해 때로는 멍멍해 지기까지 하는- 한 소리를 오디오로 제대로 재생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너바나가 고역에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일단 저역도 기본이 있어야하기에 제일 먼저 들어보았다. 피아노의 몸통 울림을 원 피아노의 현을 때리는 소리와 구분해서 들려주는 해상도는 일단 수준급이다. 음장도 뒤로 물러나 앉는 스타일에다가 저역부터 고역까지 상당히 절제되어 있는 소리를 내 준다. 저역에서 뭉친다거나 배역을 흐리게 하는 일이 없고 3악장의 몰아치는 듯한 열연에서도 다른 케이블들에 비해 절대 해상력과 음장에 있어서 우위를 지킨다. 이만한 저역의 디테일이면 다이아몬드 같은 뿜어내는 저역만 기대하지 않는다면 일단 합격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피아노의 다이내믹도 무난히 소화하고 역시 높은 건반에서 단맛이 난다. 이 느낌은 마치 은선을 들을 때와 흡사한데, 너바나 케이블은 디지털만 은선이고 인터커넥트와 스피커 케이블은 동선이다. 동선에서 이런 소리를 내다니. 고역만 놓고 본다면 번인(Burn-in)이 잘된 실텍 케이블과 흡사하다. 은선이라고 킴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음장의 에지는 아주 부드럽게 처리되어 정확한 음상보다는 편안하지만 자연스럽고 움직이지 않는 음상을 제공한다. 고역을 좀 더 들어보기 위해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Bach Sonata for Violin and Harpsichord
Reinhart Goebel & Robert Hill, Archiv
녹음도 훌륭하고 연주도 정열적이다. 젊은 연주가들의 패기가 서려있는, 레퍼런스로 듣기엔 조금 모자라지만 들을 때마다 그 맛에 이끌려 자주 손이 가는 판 중 하나이다.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 두 악기 다 고역에 민감하다. 잘못된 고역재생은 피곤함을 가져다주며 억제된 고역은 음악을 밋밋하게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너바나의 진가 -진가라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가 나타난다. 바이올린의 트레몰로에서는 굴러가는 듯한 유연함과 마치 반짝반짝하는 듯한, 손에 잡힐 듯한 음상이 잡힌다. 더군다나 해상력은 잃지 않으면서. 이 음반을 들으면서 “돈 값은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역대는 아주 약간 부푼 듯한 인상이 드는데, 이 현상은 음악에 필자를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치 울림이 적당하고 좋은 홀에서 나 만을 위해 이들이 연주하는 것처럼. 흠을 잡자면 실제 원음에 접근해 가는 요사이 하이엔드의 추세를 고려할 때 고역의 단맛이 약간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착색인데 너바나를 애용하는 사람은 아마 이 고역에서의 착색 -좋게 말해서 윤색- 때문일 것이다. 이 것은 흡사 잘 만들어진 TR앰프를 듣다가 3극 싱글앰프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필자는 왜 제작자인 Stephen Creamer가 너바나를 소스와 프리 사이에 연결하면 소스를 2단계 업하는 것과 같은 레벨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선전하는지 알게 되었다. 호불호(好不好)가 갈릴 중요한 대목이다. 대편성을 한번 들어보자.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30
Byron Janis, Charles Munch, Boston Symphony Orchestra, BMG
평소 라흐마니노프의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야니스 -미국선 제너스라 불린다- 의 젊은 시절 명연주이다. 안탈 도라티와 한 3번이 하나 더 있지만 개인적으론 뮨시와 한 이것을 최고로 친다. 요사이는 손가락의 병이 도져서 연주활동을 쉬고 맨해튼에 살면서 뮤지컬 작곡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야니스지만, 고양이를 무지 좋아하는 그의 성격답게 한치의 빈틈도 없는 치밀한 연주이다.
녹음은 57년이지만 놀랄 만큼 다이내믹과 해상력이 갖추어진 판이고 약간의 노이즈가 함유되어 있어 사실 현대적 하이엔드로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울리기에 까다로운 편이긴 하다. 다른 케이블에 비해 특이한 점은 피아노의 위치가 다른 케이블보다 앞쪽이고 오케스트라는 더 들어간다. 앞뒤 길이가 상당하다는 말인데, 대신 좌우가 조금 좁아졌다. 좌우의 폭과 다이내믹은 아마 다이아몬드가 제일 낫지 않나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연주 내내 고역의 빛으로 인하여 피아노가 빛이 난다. 가끔 금관이 부풀어오를 때 그 고역의 하모닉스로 인하여 제일 뒤에 점잖게 앉아 있어야 할 금관들이 잠깐 앞으로 오는 일이 있었지만 다른 케이블들에서도 어느 정도 감지되는 일인 터라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아크로텍을 칭찬하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튀어나오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아크로텍, 하지만 아크로텍은 다이내믹에 약하고 저역대의 해상도가 문제가 되어 필자가 1년 정도 사용후 방출하였다. 3악장의 피날레에서 음악적인 감흥이라는 측면에서는 주저 없이 100점을 주고 싶다. 화려한 광채와 고급스런 고역을 가지면서도 해상도와 음장의 정숙함을 동시에 가진 것이다. 음장사이의 배경이 투명하지 않다는 게 지적될 수 있는데 아마 너바나의 liquidity와 바꾼 것이리라. 그러나 결코 탁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으니 참 대견스런 케이블이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어보자.
Wolf Morike Songs
Elly Ameling(soprano), Rudolf Jansen(piano), Hyperion
이 판을 들으면서 필자는 너바나가 호불호가 큰 제품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아멜링의 목소리가 마치 우유가 흐르듯 부드럽게 물결치는데, 사실 필자가 이때까지 가져오던 아멜링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다. 킴버의 KCAG를 물렸을 때는 목젖이 들여다보이는 상쾌한 이미징을 가져왔는데 너바나는 그런 면에서는 조금 수그러든다. 그리고 음상이 조금 커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끔씩 반주하는 피아노와 목소리가 융합되어 부풀어오르는 부분이 있으며, 시원스레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다. 물론 앞에서 얘기한대로 매끌매끌한 촉감은 더욱 배가되어 진짜 파워앰프가 튜브인 것처럼 들리는 장점(?)도 있다. 전반적으로 소리가 날이 서고 에지가 각이 진 시스템이면 더욱 매칭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총평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듯이 이 너바나는 케이블의 3극 싱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잘 만든 300B 앰프와의 조합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하니 자못 궁금하다. 제작자도 싱글앰프 -TR이라면 PASS같은- 와의 조합을 추천하고 있으며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녹음이 조금 안 좋은 상태의 시디에서도 훌륭한 음악성을 맛보게 해주며 뒤로 빠지며 깊은 음장과 고역의 윤기, 저역의 풀어지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갈무리는 너바나를 탑 클래스 케이블로 올려놓기 부족하지는 않으나, 뚜렷한 음상과 터지는 다이내믹을 제공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으며, 특히 가미된 약간의 윤색은 오디오 애호가들의 호불호를 갈라놓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일 3극 싱글이나 튜브앰프에 좀더 매끄럽고 진한 음색과 정밀하진 않지만 자연스러운 음장을 선호한다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필자도 그런 경우로 인하여 이 너바나를 택했다. 많은 케이블이 난무하는 시대에 주저치 않고 추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케이블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