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acherna@hanmail.net) 2004-04-01 17:20:03
VTL은 미국의 진공관 앰프 제작업체다. VTL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Manley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VTL의 설립자인 David Manley는 남아공에서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일하던 인물로서 이 때부터 앰프 제작으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83년도에 영국으로 돌아와 앰프 제작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 무렵 그의 제품들은 유럽 각지로도 판매될 만큼 성능을 인정 받았다고 한다.
1986년도에 CES에서 출품한 제품들이 큰 호응을 얻자, 그는 아들인 Luke와 함께 회사를 미국으로 옮기게 된다. 롱 아일랜드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자리잡은 VTL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로 제품을 수출하는 등 순탄하게 성장한다. 하지만, 1993년도에 아버지 David는 회사를 떠나고 Luke가 홀로 경영을 떠맡는다. 부자의 결별에는 제품의 컨셉트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David는 프로용 제품의 개발에 기울어져 있었고, Luke는 가정용 제품 쪽을 더 만들고 싶어했다. David는 VTL이 자리를 잡던 무렵부터 프로용 제품을 Manley라는 브랜드로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레코드 제작도 한 바 있다.
David가 떠나긴 했지만, Luke는 사실 VTL의 공동 설립자로서 회사 운영, 서비스, 딜러 관리 등을 해왔다고 한다. 따라서 VTL은 David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을 지속한다. 아버지가 엔지니어로서 VTL의 사운드 성격을 확립했다면 아들 Luke는 생산과 품질 관리에 집중하면서 VTL을 신뢰성 있는 브랜드로 키워나가게 된다.
현재 VTL은 대단히 하이엔드 지향의 브랜드로서 주력 제품이 모노블록이며, 진공관 앰프로서는 이례적일 정도의 고출력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시그너처 라인업의 Wotan이나 Sigfried 같은 고급 제품들은 출력이 700와트 1250와트 이렇게 된다. Wotan은 무게만도 125kg에 달한다. 현재 VTL의 TL-7.5 프리앰프($12,500)와 MB-450 파워앰프($10,000)는 Stereophile 매거진의 A등급 추천제품이며, 오랫동안 등재되었다가 이번 2004년 4월의 최신 리스트에는 빠졌지만, ST-85 파워앰프와 IT-85 인티앰프 역시 B등급 추천 제품이었다. 또 ST-150 스테레오파워앰프와 TL-7.5 프리앰프는 각기 2001년과 2002년에 The Absolute Sound 매거진의 Golden Ear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ST-85 파워앰프는 이미 5년 전에 출시된 제품이지만, 진공관 앰프란 분야가 최신 기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므로 제품이 언제 나왔는가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특히 직접 소리를 들어보고 나서는 VTL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하이파이넷에 소개해볼 필요를 느꼈다. 나중에라도 VTL 라인업의 다른 제품에 대한 소개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ST-85는 VTL의 파워앰프 중 가장 하위 기종으로 EL34를 채널 당 2개 사용하여 85와트의 출력을 제공한다. 이 제품은 $1750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꽤 쓸만한 앰프로 평가 받았다. 최고급 제품인 Sigfried의 디자인이 서버용 컴퓨터를 연상하게 하는데 비해 MB, ST 등의 외관은 대단히 고전적이다. 어떻게 보면 외관이 다소 투박한 듯도 하지만, 세부적인 만듦새에는 실수라든지 어설픈 부분은 전혀 없다. 워낙에 케이스가 튼튼해서 아이라든지, 애완동물이 데일 염려도 없다. 전면이 비 대칭 디자인이라는 부분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별 문제는 되지 않을 듯 싶다. 후면의 스피커 단자는 바나나 플러그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지만, 역시 튼튼해 보인다. 제품을 들어보면 무게가 생각보다 엄청나서 놀라게 된다.
VTL은 전 모델에 걸쳐 출력 트랜스포머를 5옴에 최적화시켜 놓은 것이 특징이다. 트랜스에서 탭을 여러 개 내었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VTL의 주장인데, 대신에 매칭하는 스피커도 가급적 5옴의 임피던스를 갖는 것이 좋을 듯하다. 탭이 하나이기 때문에 2차측의 끝에서 피드백을 취할 수 있으므로 진정한 글로벌 피드백 회로를 구성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여기 사용된 트랜스포머는 최고급 모델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디자인을 지닌 것이라고 한다.
시청
ST-85의 시청에는 Thiel CS2.4 스피커, Dali Helicon 400 스피커, 앰프로는 Ayre K-5x 프리, 소스로는 소니 SCD-XA3000ES, dCS Elgar DAC 등을 사용했다. 사용된 케이블은 리버맨 오디오에서 제작한 바로크 스피커 케이블과 후루카와의 인터커넥트였다.
ST-85 파워앰프는 진공관 앰프로서는 적당히 컨트롤되고 조여진 저음을 들려준다. 이것이 VTL에서 주장하는 글로벌 피드백의 효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규모의 앰프로서는 음량이 변화할 때에도 밸런스나 사운드스테이징이 상당히 안정적이고 객관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TR 앰프에 귀가 익은 분들이라면 아마 크렐의 K-400Xi 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조금 더 예리하고 정교하게 짜맞추어진 소리를 원하시겠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감촉이 좋은 소리를 듣고 있자면, 시간이 얼마든지 흘러도 좋을 것 같다.
고음에는 독특한 하모닉스가 들어간 듯 다소 화려한 착색이 붙어 있지만, 귀에 듣기 좋게 들리는 정도로, 어색하게 도드라지지는 않는 편이다. 저역에서 중 고역대까지 소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단지 저역의 깊이와 고역의 투명도에서는 중간 이상의 성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간 출력의 진공관 앰프 답게 저음의 깊이나 또 어택은 그리 강력하다고는 볼 수 없다. 퍼커션의 소리는 장력이 약간 느슨해지고 울림이 길어진 인상이다. 하지만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면 현의 도톰한 음색이 맛깔스럽게 살아나는 것이 매우 기분 좋게 들린다. 진공관 앰프 특유의 매끄러움에 독특한 착색이 더해져 취미적인 즐거움을 더해준다. 다만 현에서 보다는 객관적으로 들려야 할 피아노의 음색은 예의 착색 때문에 보다 풍성하고 화려한 소리가 된 인상이다. 이런 착색은 예전 Manley의 앰프에서도 유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VTL은 그보다는 덜하고 조금 더 중립적인 편이다.
한편 관현악곡을 들었을 때 음장이 잘 구현된다든지, 저음의 통제력, 다이내믹스의 변화에 대응하는능력에서는 동급 제품 중에서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이 앰프를 들으면서 예전의 자디스 오케스트라 레퍼런스와 오디오 신세시스의 시무스 인티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동일한 인티앰프 장르는 아니건만, ST-85의 사운드는 이들의 중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오케스트라 레퍼런스와 마찬가지로 고음에 독특한 착색이 있는 반면에, 밸런스라든지 다이내믹스의 재생 능력에서는 시무스의 평탄하고 잘 정리된 특성을 닮아 있다. 오케스트라 레퍼런스의 경우 소프라노 등 여성 보컬에서 다소 불안한 소리를 들려주었던 반면에, ST-85에서는 이를 별 무리 없이 생생하게 들려준다. 특히 구동력의 여유로움, 음장의 정교함, 홀로그래픽적인 3차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점에서는 ST-85가 한 두 단계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스테레오파일의 리뷰 기사에서는 플로어 스피커 구동에서의 출력 부족을 많이 지적하고 있는데, 그 리뷰 이후의 제품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시스템에서는 그런 느낌은 거의 받지 못했다. ST-85는 충분한 음량과 정교한 음장으로 관현악 감상에서 많은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결론
VTL의 고급 기종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VTL 사운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실례일 듯 싶다. 시그너처 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MB-450 파워 같은 중급 모델 역시 월등한 실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ST-85는 출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제품이고, 또 파워앰프 중에서는 입문 기종인 만큼 이 앰프를 듣고 VTL의 사운드를 상상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힘을 빼고 만들었음 직한 ST-85가 이 정도라면 상급 모델은 얼마나 대단한 소리를 들려줄까 하는 생각은 내내 머리 속에 남아있었다. 물론 ST-85를 지금 구입한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더 비싼 ST-150은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브랜드인데다가 디자인도 많은 분들이 좋아할 그런 취향은 아닌 듯 하다. TR 앰프의 깔끔한 소릴 좋아하는 분들에게나 또 흐느적거리는 듯하면서도 곱고 윤기가 흐르는 진공관 사운드를 좋아하는 분에게나 ST-85의 중간적인 특성은 뭔가 배가 고프게 느껴질 지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가 만일 이 가격대에서 앰프를 구입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이 ST-85가 될 만큼 개인적으로 만족감을 느낀 제품이었다. 수입원의 배려도 있었지만, 한 달 넘게 사용하면서 다른 앰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소리보다는 음악을 즐길 수 있던 제품이었다. 진공관 사운드를 선호하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VTL의 상급 모델들도 들어보시길 권한다.
문의처 : 코포사운드(02-543-7526)
규격
Vacuum Tube Complement : 4 x EL34, 4 x 12AT7
Output Power : 20 Hz – 25 kHz ± 0.1dB < 3% THD (Stable to 2W) into 4WTetrode = 90 wattsinto 8WTetrode = 80 watts
Small signal frequency response (< 0.2% THD @ 1W) : 1 - 75 kHz -3dB
Class of output operation : AB1
Inputs / Outputs : Single-ended RCA /1 pair 5 way binding posts
Input Sensitivity / Impedance : 0.7 V / 100KW
Output Impedance : 1.55W
Power Consumption : Idle = 140WFull Power = 500W
Dimensions : (W x D x H) 15.75 x 12.5 x 7 inches40 x 31.75 x 17.75 cm
Weight per unit : 45 lbs (20.5 Kg) fully pack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