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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은 소피아와 와트/퍼피 시스템7을 통해 플로어 스탠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다 보여준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CUB와 CUB2로 이어지는 북셀프 스피커에 최신 모델을 더하는 일이다.
그런데, 윌슨은 세계적인 하이엔드 스피커 업체다. 소형 스피커라고 해서 저렴하고 성능을 타협한 제품을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성능 미니 모니터라면 사실 와트/퍼피의 와트가 바로 그것이다. 함께 판매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와트 만의 별매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몇몇 도시에서는 덩치 큰 스피커가 다리를 주욱 펴고 누울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데,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데이빗 윌슨 씨는 사진처럼 뉴욕의 예를 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역의 아파트 한 평에 와트 퍼피 한대 가격은 보통이 되어 버린 상황이다. 매니아들은 스피커를 뒷벽에 가깝게 붙여선 안 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상식 중에 상식이 너무나 사치스러운 생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가 필연적인 대부분의 가정에서 매립형의 스피커는 답이 될 수 없다. 천장이 아닌 벽에서의 매립은 공간을 절약해주지 못한다. 게다가 매립형 스피커의 소리는 윌슨 오디오가 지향하는 하이엔드 수준이 될 수도 없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해서 데이빗 윌슨은 진정한 이름 그대로의 북셀프 스피커를 만들기로 한 모양이다. 책장에 넣거나 탁자 위에도 올려 놓을 수 있는 그런 스피커 말이다. 듀엣 스피커는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의 좁은 주거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컨셉트의 스피커로 고안되었다. 이전의 윌슨 스피커와 달리 프런트 배플에 곡면의 무늬를 주어서 회절에 대비했다.
다만 언젠가 넓은 공간에 스피커를 옮겨 설치한다면 또 거기에 어울리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인크레더블 헐크” 같은 성격을 지녀야 한다. 그래서 듀엣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사용 장소에 맞춰 스피커가 2단계로 변신하는 개념이다. 변신 방법은 스피커에 부속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케이블을 교체하는 것이다. 책장에 둘 때에는 북셀프 모드로 하여, 넓은 공간에선 트위터 저항을 바꾸고, 크로스오버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전용 케이블을 교체한다.
윌슨의 이전 어떤 스피커에서도 그렇지 않았지만, 이번엔 크로스오버 네트웍을 스피커 밖으로 끌어 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빙고! 스피커가 선반에 두더라도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부담을 줄여주는 의미, 그리고 스피커의 내용적을 크로스오버가 차지하는 일 없이 전부 활용하면서, 또 크로스오버가 좁은 캐비닛에서 진동의 영향을 맞바로 받지 않게 하겠다는 배려가 숨어 있다.
캐비닛의 마감은 12단계로 이루어진 도장 과정을 거쳐 윌슨오디오 특유의 아름다운 광택을 낸다.
감상
듀엣 스피커에 대한 감상 평은 코포산업 본사 시청실에서 진행된 데이빗 윌슨의 두 차례 시연에 대한 감상을 적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윌슨 오디오의 자료에 따르면 듀엣의 목표는 순수한 목소리, 정확한 음색, 고음과 저음의 일관성, 그리고 박력과 스피드 넘치는 스피커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듀엣은 소형이지만, 제대로 된 일렉트로닉스로 구동하면 마치 소형의 고성능 스포츠 카처럼 씽씽 자유자재로 소리를 주물러 내는 제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데이빗 윌슨은 마크레빈슨의 일렉트로닉스로 스피커를 직접 시연하면서, 보컬 음악과 극히 대조적인 대편성 관현악곡을 비교해주었다. 그 어느 음악에서도 이미징이 매우 정확해서 소리의 배경과 음원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소리는 밝고 선명하게 부각되었으며, 배경의 음장은 맑은 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투명했다. 음색의 미묘한 디테일이 마치 현미경을 보는 것처럼 세부적으로 재생되었고, 굉장히 분석적으로 표현되었다. 윌슨 오디오의 스피커다운 제품이라고 하면 가장 정확한 평가가 될 것 같다. AV 냄새가 나는 윌슨 오디오의 이전 CUB와는 완전히 다른 윌슨 오디오의 고급 제품다운 느낌이 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CUB는 듀엣의 등장으로 카탈로그에서 이제 빠져 버렸다.
인터뷰에서나 앞서 스피커 소개 부분에서 언급된 이론적 설명은 잊어도 좋을 것 같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그런 경향보다는 하이테크적인 느낌은 여전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워밍업 된 이후의 소리는 목소리도 부드럽고 매끄러워서, 실제 이 스피커를 구입한 사람이 경험하게 될 다양한 표정의 변화를 일면 엿보게 되었다. 많은 분들의 선호가 나뉘어지는 포컬 트위터 특유의 단단하고 예리한 느낌도 일렉트로닉스의 웜업 덕분인지, 많이 순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피커에 대한 길들이기가 부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소리를 내줄 잠재력은 분명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특히 관현악곡에서는 아주 파워풀하고 풍부한 소리를 낸다. 출력 큰 TR 앰프가 힘차게 전기를 스피커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제대로 구현되어서, 내심 만만치 않은 제품이란 생각을 했다.
과연 윌슨 오디오의 명성 답게 소형 스피커에 대해 성능에 대한 타협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다. 최고 성능의 북셀프 스피커로 손색이 없고, 다른 어떤 회사의 미니모니터와도 비교가 곤란하다. 음색이라든지 몇몇 부분에선 아주 좋은 스피커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수준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굳이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예전 레벨의 울티마 젬 정도가 듀엣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은데, 투명도나 스케일 등 모든 면에서 듀엣이 앞선다. 모양은 좀 겸손해서 아쉽지만, 한 마디로 소형 모니터의 그랜드슬램이 등장한 셈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가격에 대해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윌슨 오디오라도 그렇지 소형 스피커에게 이 가격은 솔직히 좀 곤란하다 싶다. 욕심 많은 오디오 매니아의 특성상 같은 가격이면 더 크고, 더 보기 좋은 녀석에 손이 가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점에선 듀엣에 비해 얼마 더 비싸지 않은 소피아2가 더욱 더 탐나는 제품일 수 밖에 없다.
다시 앞서 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런 부분에서 듀엣은 분명히 용도가 다르다는 변명거리가 있긴 하다. 조금만 생각해서 최근의 흔한 거실 스타일을 머리에 떠올려 보자. 긴 문갑 위에 LCD나 PDP가 붙어 있는 상황이고, 거실은 쇼파 외에는 다른 가구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덩치 큰 플로어 스탠더를 평면 TV 곁에 둘 수는 없지 않는가. 또 하나의 예로 거실을 가족에 내주고 서너평 안되는 좁은 아파트의 방에서 암자에 갇혀 생활하는 매우 매우 진지한 오디오 매니아를 생각해보자. 여기에 플로어 스탠더 놓고 스피커 위치 좀 제대로 잡아 보려고 하니, 방 가운데까지 스피커가 나와야 될 판이다. 그랜드슬램은 물론이고 와트 퍼피도 공짜로 줘도 사용하지 못할 상황이란게, 대단히 안타깝지만 많은 매니아들의 현실이다. 이 두 경우 모두 듀엣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정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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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윌슨 오디오 대표 데이빗 윌슨
http://hifinet.co.kr/index.php?/feature/interview_with_david_wi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