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audio Moon i5.3 Integrated Amplifier
posted by 박우진
2006년도에 발표된 심오디오의 새로운 제품 중에서 CD 플레이어는 최윤욱 필자님께서 소개해주신 바 있다.
다음 차례는 같은 짝인 Moon i5.3 인티앰프 순서이다. 원래 CD 플레이어에 바로 이어서 리뷰했어야 마땅하지만, 필자의 게으름에다가 하이파이넷의 필자 분들도 어이 된 일인지, 갈 수록 바빠지셔서 적시에 리뷰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제껏 하이파이넷에서 심오디오라는 회사에 대해서 많은 소개가 된 적은 없는 듯 하다.
회사 설립자라든지, 제품 개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없지 않지만, 홈페이지에도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자료가 없고 단지 History of Simaudio라는 제목이 있지만, 실제론 회사가 아니라 제품 개발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미 단종된 제품에 대한 이야기들이라서 관심이 갈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심 오디오는 1980년대에 PW-3000 시리즈의 인티, 파워, 프리앰프로 오디오 매거진의 격찬을 받았고, 특히 인티앰프가 공급이 달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과거에 판매된 제품이 A/S가 이루어질 만큼 심오디오는 자신의 제품에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Celeste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여기에 적용된 르네상스 회로는 지금 판매중인 Moon Classic 시리즈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테레오파일 매거진은 W-4070 파워앰프를 1500달러 이하 가격대의 기준이 될만한 제품으로 추천했다. 그리고 1997년도에 등장한 Moon 시리즈는 레퍼런스 수준의 오디오로 2005년도에 발매한 Moon Evolution 시리즈까지 이어지고 있다. Moon 시리즈는 계속적으로 제품이 확장되면서 오디오 매거진의 격찬을 받았고, Titan 멀티 채널 앰프처럼 홈 시어터 제품으로도 발전되었다.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2004년도에는 Nova와 Eclipse의 CD 플레이어, P-5 프리앰프, W-5 파워앰프, i-5의 인티앰프에 대해 250개의 한정판을 발매하기도 했다. Moon Evolution 시리즈로는 Andromeda CD 플레이어와 Moon P-8 프리앰프, 그리고 W-8 파워앰프가 있다. 중급 기종으로 Moon Evolution 시리즈의 SuperNova CD 플레이어와 i-7 인티앰프도 있다.
심오디오의 제품에 대한 소개는 앞으로도 꾸준히 해드리도록 하겠다. 이상의 제품 라인업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같은 캐나다 업체인 프로페셔널 지향의 브라이스턴과 오메가 시리즈 등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클라세와 함께 중견 하이엔드 그룹으로 분류될 만하다. 북미의 TR 앰프 시장에선 마크레빈슨, 크렐, 제프 롤랜드 등의 선두 그룹을 조금 거리를 두고 추격하는 위치가 되는 것이다. 심 오디오의 사운드 자체는 굉장히 개성적이고, 수준도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개인적으론 몇 년 전에 심오디오의 Nova CD 플레이어를 테스트해본 적이 있다. 스테레오파일 등에서 호평 그대로 만만치 않은 소리를 들려주던 제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원래 심오디오의 전공 분야는 앰프라고 하니, 이 인티앰프는 썩 괜찮은 소리를 들려주던 CD 플레이어보다도 더 인상적이어야 마땅하다.
제품 소개
Moon i5.3 인티앰프는 Moon i-5 앰프의 개선작이다. 제작사의 설명에 따르면, 파워와 투명도를 개선한 것이 전작과 주요한 차이.
최대 연속 출력은 8옴 부하에서 85와트 부하에 불과하지만, A급 증폭 방식의 제품인 만큼 출력 수치로만 따져선 안될 것 같다. 4옴 부하에선 135와트로 인티앰프임을 감안하면, 전류 공급 능력이 우수한 편이다.
개선된 전원부에는 손실이 적은 특주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탑재했다. 전류 공급의 스피드와 다이내믹이 개선되었다. 신호 경로를 14인치 정도로 최대한 단축하고 입력에서 출력 단까지 커패시터를 배제한 결과 앰프부에는 피드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음색이 정확하고, 피드백에서 발생하는 IMD(intermodulation Distortion) 왜곡을 배제했다고 한다.
소리를 듣기 전에 우선 외관을 살펴본다. 매니아들 중에 이제 득음의 경지에 올라서 외관만 봐도 소리가 들린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게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오디오 제작자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할 때 필연적으로 자신의 추구하는 사운드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것은 그릇과 같아서 담긴 내용을 반영해야 하지 않는가.
Moon i5.3은 눈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매니아들이 감정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어느 정도 짐작할 만한 내용이라고 본다.
두툼한 전면 패널, 큼지막한 볼륨, 측면 방열판도 힘있게 만들어졌고, 대단한 굵기의 기둥에, 바닥을 뚫어버릴 것 같은 스파이크까지 엄청나게 힘있어 보이지 않은가? 보기만 해도 역동적이고 강력한 소리가 나올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실제로 들어봐도 그렇다. 따라서 한 마디로 성공적인 디자인이다. ^^ 이 제품이 보기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개성적인 외관임에는 분명하다.
볼륨 손잡이를 돌리면, 좌우 채널의 음량이 0에서 50 사이의 숫자로 표시된다. 스피커에 따라 다르겠지만, 25~30 사이에서 충분한 음량을 얻을 수 있다. 여기 사용된 볼륨은 포텐쇼미터가 아니라 다이얼을 돌려서 마이크로프로세서 회로를 조작하는 방식이다.
가운데 위치한 스탠바이 스위치를 누르면, 디스플레이는 꺼지나, 회로는 그대로 켜져 있어서 웜업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켜준다. 만일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려면 후면 패널에 별도의 스위치가 따로 있다.
입력 선택은 입력 스위치를 +나 -로 누르면 순차적으로 변경된다. 입력 단자는 5계통으로 충분한 편이며, 홈시어터 시스템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프로세서 다이렉트 기능도 물론 지원한다. 입력 셀렉터 버튼을 5초 정도 누르면, 외부의 볼륨으로 조작되는 패스 스루 모드로 전환된다. 반대로 파워앰프와 연결하기 위한 프리아웃 단자도 갖추고 있다.
입력 단자는 전부 싱글 와이어링 구성으로 되어 있다. 아마 이 가격 대에서 밸런스드 회로를 구성하기엔 비용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스피커 출력 단자도 싱글 구성이지만, 바나나 플러그와 스페이드 플러그에 모두 대응하므로, 케이블의 단말 처리를 다르게하면 바이 와이어링이 가능하다.
감상
먼저 페라이어가 연주하는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부터 시작. 전반적으로 소리가 스피커 앞 쪽으로 시원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인상이 된다. 기대 이상으로 투명도가 대단하다. 소리에 뿌옇게 덮인 부분이 하나도 없이 피아노 소리 그 자체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소리가 전혀 가늘지 않은 데다가, 그 속에 담겨진 디테일과 뉘앙스가 중급 기종 기준에서 대단히 풍부하게 살아 난다. 마치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리면 바로 그 소리가 귀에 전해지는 것 같다. 만일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소리를 감상한다면 이렇게 들릴 것 같다.
일반적으로 진공관 앰프가 현악 감상에 유리하고 반대로 트랜지스터 앰프가 피아노 소리를 잘 재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 정도 수준에 오른 트랜지스터 앰프는 손에 꼽을 정도도 되지 않는다. 익히 알려진 브랜드 중에서도 그럴 정도니 Moon i5.3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설명이 될 것 같다. 앰프란 존재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 음색 재생을 추구하다보면, 다이내믹스가 소홀해지고, 이를 모두 추구한 제품은 가격대가 대단히 높게 마련인데 Moon i5.3은 그런 난해한 목표를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달성해 내고 있다.
자끄 루시에의 피아노 트리오에서도 좀처럼 듣기 힘든 리얼한 피아노 소리에 푸욱 빠져들게 된다. 왼손 건반의 소리는 도톰하면서도 달콤하고 감미롭다. 게다가 빠른 패시지에서 하나의 음표도 흐려지는 일이 없이 아주 리드미컬해서 흥겹기 그지 없다. 역시 A급 증폭 방식 특유의 물처럼 유연하고 촉촉한 음색을 내주는데 좀처럼 귀를 뗄 수 없을 지경이다. 음량을 크게 올려봐도 거칠거나 날카로운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소리가 약간 뒤죽 박죽되는 현상이 있는데, 워밍업을 오래 시켜 놓으면 점점 차분해 진다. 순간 응답 특성이 매우 탁월하다. 스틱이 드럼에 닿는 순간 소리가 전혀 주저 없이 신속하게 튀어 나온다. 그리고 심벌즈의 소리를 들어보면, 찰랑 찰랑 부서지는 소리 속에 담긴 미묘한 디테일의 재생이 아주 기가 막히게 뛰어나 최고급 진공관 앰프 못지 않다.
Esoteric DV-60과의 매칭에선 소리를 스피커 앞으로 쏟아내고 감상자를 둘러싸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서라운드 시스템도 아닌데, 귀 속으로 소리가 마구 들어오는 느낌이 되는 것이다. 이 조합의 사운드는 대개의 하이엔드 기기가 소리를 스피커 뒤로 빼내서 편안하고 느긋한 무대를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다. 소리에 포위되어 딴 생각 하지 말고 듣고,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라도 쳐야 될 분위기가 된다.
대개 경우 해상력 좋은 앰프들이 사운드 이미지를 가늘고 작게 만든다. 감상 공간의 좁은 규격을 감안하면, 이미지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선 전체적인 무대를 일정한 축척으로 좁혀 놓아야 한다. 그래야 흔히 말하는 음원 사이의 빈공간이 생기고, 살아 숨쉴 공간이 생긴다. Esoteric DV-60 SACD 플레이어와 Moon i 5.3 인티앰프의 조합처럼 소리를 확대해서 앞으로 당겨놓으면 개별적인 이미지는 자세하게 그려내지만, 전체적인 그림이 왜곡된다. 적어도 이론적인 논리로는 그렇다.
힘과 투명도를 겸비한 앰프인 만큼 클래식 음악 감상에 탁월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메르만이 연주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재생해 봤다. 2악장 독주 부분에선 그전에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지메르만이 내는 한 숨 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그가 연주하면서 한 숨을 그리 크게 내쉬는 지는 내한 공연 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 문제의 숨소리를 음반에서 다시 확인하기도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독주가 끝나고 목관 악기들이 하나씩 나오면서 멜로디를 주고 받는 부분에서 다르게 편집된 것이 티가 난다.
그만큼 Moon i 5.3 인티앰프의 투명도와 디테일 재생이 대단하다. 압도적인 소리에 눌려서 자의 반 타의반으로 CD를 꺼낼 생각도 못하고 그냥 다음 트랙인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로 넘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수 없이 많은 디테일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소형 스피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콘서트 홀에서 감상하는 것 만큼 스케일이 큰 소리를 낸다. 눈 감고 있으면 정말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비슷한 체험이 가능하다. 스피커의 그릴이 투명도를 제약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서, 우퍼는 물론이고 트위터 그릴까지 전부 벗겨 버렸다. 그리고 감상 시간이 지날 수록 소리가 점점 안정감을 더하고 소리도 더욱 투명하고 유연해 지는 것 같다.
사용상에 발견한 단점이 하나 있는데, 볼륨 조절이 50단계 밖에 되지 않는 점이 그것이다. 연결한 스피커의 경우 디스플레이의 표시에서 최대 37 이상으로는 볼륨을 올리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실제 사용 가능한 볼륨이 몇 단계 되지 않게 된다.
결론
올해 유독 좋은 인티앰프들을 여럿 접한 것 같다. TR 앰프건, 진공관 앰프이던 수준 이하 제품이 거의 없었고, 왠만한 분리형 앰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실력자들이 많았다. 올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 하나를 꼽는다면, 심오디오 Moon i 5.3을 골라야 하겠다. 소리를 감상자 앞으로 쏟아내는 버릇은 분명 문제다. 볼륨 조절이 불편하고, 디자인도 무난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85와트에 불과한 출력 스펙이나 만듦새 등등을 고려했을 때 이 제품의 가격을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리만 놓고 보면, 그런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톱 클래스 제품임에 분명하다.
시청 기기
디지털 소스 : Eoteric DV-60 DVD/SACD/CD Player, Bechmark Media DAC-1 DAC. Tascam CD-01U Pro CD Player, Creek Audio Evo CE Player, Creek Audio Evo Integrated Amplifier
앰프 : BAT VK-51SE 프리앰프, Classe CA-2200 Power Amplifier
스피커 : B&W 805S Spe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