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는 채널당 3개의 KT88 진공관을 사용하여, 40와트의 출력을 제공하는 대형 인티앰프다. 무게가 무려 50kg에 달하여 200와트 이상 출력을 지닌 대형 파워앰프의 무게에 해당한다. 지금 듀얼 모노 구성의 인티앰프는 대단히 보기 어렵다. 채널 당 3개의 진공관이라면 푸쉬풀 구동이 대부분인 다른 브랜드의 제품에서 접하기 어려운 싱글 패럴렐 구성이다. 유니즌 리서치는 출력 트랜스포머 같은 중요한 부품을 직접 생산해 왔으며, 그 덕분에 KT88을 패럴렐 싱글-엔디드 울트라 리니어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싱글 방식으로 진공관의 아름다운 음색과 자연스러운 음악성을 살리면서 패럴렐 구성으로 현실적인 실용성을 고려한 제품이라 하겠다.
전단 증폭과 파워 스테이지 드라이브에는 3극관으로, 리니어리티 특성이 뛰어나고 홀수차 하모닉스가 적은 ECC 83과 ECC82를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외관의 디자인은 유니즌 리서치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여전히 패널에 목재로 치장하고 최대한 클래시컬한 느낌을 살려서 오페라의 스피커들과 잘 어울린다. 온/오프 스위치 역시 디자인의 조화를 잃지 않도록 돌림식 놉으로 구성했다. 후면에는 싱글과 바이와이어링이 가능하도록 여러 쌍의 스피커 단자를 마련해 놓고 있다. 제작사에선 스피커 단자 역시 고급 부품을 적용하고, 충분한 숫자를 사용해서 싱글과 바이와이어링에 모두 대응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고급 진공관 앰프로 이름난 메이커들마저 스피커 단자에 소홀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감상
퍼포먼스는 진공관 앰프답게 중역대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낸다. 채널 당 40와트라는 출력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충실한 전원부 덕분인지 유약한 인상은 전혀 없다. 자끄 루시에 플레이스 바흐 (SACD)를 들어보면, 소리가 가늘어지지 않고, 피아노 소리는 실연에 가까운 유연하고 물 흐르는 듯한 감촉과 중 저역대가 풍부한 양감을 지닌다. 게다가 드럼 스틱의 여운이 아주 달콤하리만큼 투명하고 깨끗하게 그려지는데, 이를테면, 초고속 촬영한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처럼 정확하고 선명하며 깨끗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럼의 스틱이 심벌즈를 어택한 다음의 여운이 고스란히 잡히면서도 뒤에 나오는 소리에 엉키지 않아서 실연과 같은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진공관 앰프 특유의 하모닉스는 퍼포먼스 역시 분명히 갖고 있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는 것 같지만, 비교하면 무색 무미한 경향의 BAT와 화사한 음색으로 이름난 자디스의 중간 정도라고 할까. 음색이 화사하고 여운이 잘 살아나는 쪽에선 자디스 쪽에 가깝지만, 착색이 지나침이 없어서 적당히 절제되어 있다. 질감이 유연하고 단정한데다가, 소리의 뒷 배경이 조용한 점에서는 BAT를 연상하게 한다. 그럼에도 유니즌 리서치 만의 특징이 있는 데 그것은 소리가 전체적으로 활기차고 힘차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클라세 델타 시리즈의 프리 파워앰프 조합에서와 비교하면, 다이내믹스 특성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특성이 나타난다.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가 안정되고 차분한 저음으로 소리를 전체적으로 가라 앉게 만드는 편이라면, 퍼포먼스 인티앰프는 음량의 변화를 보다 역동적으로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관현악곡 재생에서 들려주는 사운드 스테이지는 실연에서의 열띤 느낌을 잘 전달해주어 대단히 흥미로왔다. 대개의 최신 앰프들이 소리를 스피커 뒤 쪽으로 빼서 엷고 가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퍼포먼스는 소리를 스피커 앞쪽으로 끌고 나와서 에너지와 열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감상자가 음악적 이벤트에 참여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연주자들이 감상 공간으로 직접 찾아와서 연주를 들려주는 분위기가 된다. 비교적 편성이 작은 실내악 분위기의 음반을 걸어 놓아도 다른 앰프에서 듣는 관현악곡 처럼 음악의 스케일이 크고 밀도감이 넘치게 재생된다.
디테일 재생에서는 싱글 앰프의 장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레베카 피존의 SACD인 <Retrospective>에선 기타를 퉁기는 손놀림이 리얼해서 실제 연주 이벤트에서 감지되는 현장감이 잘 살아난다. 마찬가지로 브루크너의 4번 로맨틱 교향곡에서도 도입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현의 트레몰로가 기가 막힐 만큼 리얼하게 재생되었다. 소음량에서의 디테일과 대음량에서의 스케일은 양립하기 어려운 특성 중 하나다. 그럼에도 퍼포먼스는 음악적 클라이맥스에서 확실하게 감상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한 재생 성향을 나타낸다. 40와트 상이라는 출력은 그냥 숫자 놀음에 불과하게 된다. 먼 곳에서 큰 소리가 울리고 있구나 하는 그런 강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 무대 근처에서 소리의 에너지를 몸으로 느끼면서 듣는 느낌이랄까. 밸런스는 소음량일 때와 비교해서 차이가 없이 그대로 잘 유지되며, 어느 한 쪽으로 소리가 기우는 인상은 없다. 그리고 모든 악기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면서도 세부적인 음정이나 리듬은 그대로 잘 살려낸다.
진공관 앰프에게 의례적으로 기대하는 보컬의 느낌은 어떨까. 제니퍼 원스의 목소리는 역시 좀 더 굵고 뉘앙스가 풍성하게 들리며,스피커 가운데에 부드럽게 위치한다. 진공관 특유의 곱고 화사한 하모닉스가 살짝 실려있지만, 소리를 일방적으로 자기 방식에 맞춰 착색하는 고집은 없다. 보컬의 이미지는 스피커 가운데에 정확히 위치하지만, 스케일로는 입 크기처럼 작지 않고 크게 들려서 역시 다른 현대적인 앰프들과 성향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내지를 때에도 목에 힘이 들어가거나 날카로와지는 일은 없다. 배경의 반주 악기는 이 앰프의 대단한 투명도 덕분에 필요한 만큼 선명하게 드러나면서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재생된다. 감상 음악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는 함께 감상한 김민영 필자님의 의견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서로 전혀 의견 교환 없이 각자 평가하고 작성한 리포트이므로, 의견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시면 흥미로울 것이다.
레베카 피전에선 소리가 풍성하고 전체적으로 체적이 큰 소리를 들려준다. 야위거나 가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도 음악이 붕 뜨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무겁거나 둔하고 질척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넘치고 활기차다. 남성적인 느낌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체격도 좋은데 달리기도 잘하는 운동선수 같은 인상이다.
저음 역시 양감이 풍부하고 힘이 좋다. 드럼의 타격에 강렬하고 톡 쏘는 느낌은 다소 없으나, 힘의 부족이라기보다는 받아들인 신호에 충실하기 때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갖고 있는 음악이 대부분 락이나 힙합이고 강렬하며 자극적인 소리에서 즐거움을 찾는 경우에는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전체적인 그림을 본다면 만족스러울 것이다.
자끄 루시에에서는 고음은 인공적인 윤기를 내지 않고 다소 정직하다는 느낌을 준다. 소리가 전체적으로 뜨지 않고 안정적이며 밀도가 높다. 분산이 넓고 시원스럽게 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중심이 잡혀 있어서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베이스 역시 충분히 깊이 내려가면서도 다른 음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짜르트 레퀴엠에서는 역시 고음을 강조하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 전체적인 균형에 초점을 맞춘 소리를 들려준다. 무대는 규모 면에서 매우 단정하고 컴팩트한데, 위치 표현은 상당히 정밀하다. 보컬 간의 간격과 악기 각각의 위치 구분이 매우 뚜렷하다. 스테이징이 좋은데다 양감이 풍부하고 거기에 디테일까지 살아 있어 손에 잡힐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다이아나 크롤에선 고역이 강조되거나 내세워지지 않으면서도 디테일은 제대로 표현된다. 전체적으로 디테일이 좋지만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지 않는다. 풍성하면서도 밸런스적으로는 치우치지 않은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에 이런 음악에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충분히 맛깔스럽다.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