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re KX-5 Preamplifier
본격적인 시청에 앞서 에어의 신제품이라는 것 자체에 기대를 가졌다. 에어의 5 시리즈와 7 시리즈 제품 3-4개를 상당 기간 직접 쓰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B&W PM1 스피커에 에어 KX-5와 VX-5를 연결한 시스템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조합도 아니고, 실제 이런 매칭 시도 자체도 아주 드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인상적인 음악 재생 능력을 보여줬다.
레이첼 포저의 비발디는 연주의 들고 나는 셈여림과 리듬/페이스를 민첩하게 표현해서 신나고 기분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규모감있게 공간을 채우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새로운 에어의 프리-파워 앰프 조합에서 주목할 것은 기존 에어 특유의 장기,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가벼운 Airy Sound에서 진일보하여 밀도감있게 공간을 가득 채운다는 점이다. 베토벤 피아노-첼로 소나타에서도 에어의 공간 장악력은 재차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단순히 공간감을 잘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골격이 잘 잡힌 구조를 토대로 다이나믹한 재생을 통해 뛰어난 공간 재생 능력을 보여줬다. 음색 측면에서는 투명하고 맑은 느낌으로 차갑거나 진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티어니 수튼의 Route 66, Comes Love에서는 뛰어난 정위감과 더불어 가수의 미묘한 감정 표현과 섬세한 기교를 세밀하게 전달하는 모습까지 선보여 감탄했다. 팻 매쓰니의 신보 Kin 가운데 Rise Up은 이 조합의 뛰어난 Attack & Decay 표현력과 매크로 다이나믹스 재생 능력 그리고 정확하고 스케일 큰 공간 재생 능력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음악에 정신없이 빠져 들게 했다. 마치 팻 매쓰니의 실황 공연을 가장 좋은 좌석에서 직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음이 쏟아져 나와 시청자를 휘감싸는 생생한 느낌이었다. 멋진 경험이었지만 계속 이렇게 듣게 되면 공연이 끝나 돌아가는 길에 긴장이 풀리고 다소 피곤한 느낌이 들듯이 비슷한 느낌이 들 것 같은 인상이었다.
전반적으로 PM1이 임자 제대로 만났다는 생각이었는데, B&W 에어 조합의 재생음은 비유를 하자면 차체가 가벼운 고성능 소형 스포츠카, 이를테면 로터스 엘리세를 연상케 했다.
다음으로 소너스 파베르 올림피카 I을 에어 프리-파워 조합에 매칭하여 시청을 계속했다. 처음 매칭하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인상적이었던 PM1 재생 능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한 비교 용도로 생각했는데 진짜 주인공은 올림피카 I 이었다. 아마도 기존의 소누스 파베르 스피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에어와 소누스 파베르간 시각적 부조화 - 두 회사 제품의 디자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 때문에 기대 수준이 낮았는데, 정작 재생 음악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곡에 따라서는 시청자를 다소 압도하는 PM1 조합과는 다르게 재생음의 규모는 더 확장되고, 더 커졌지만 무대와 객석을 어른스럽게 구분짓는 성숙한 재생음이었다. PM1에서 다소 아쉬었던 빌 찰랩 트리오의 In the still of the night 트랙의 더블 베이스 연주는 올림피카 I에서 깊고 명료하게 재생되어 만족스러웠다. PM1-에어 조합은 심봤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좋았는데, 올림피카 I-에어 조합은 스팀팩 맞은 PM1-에어 조합이라고 할 정도의 더 대단한 재생이었고 그 정도로 좋았다. 더 길게 시청평을 적을 필요가 없다.
올림피카 I은 외관만 기존의 크레모나 분위기일뿐, 재생음은 완전히 일신한 젊고 현대적인 사운드. 기품있게 화려하고, 민첩하고 활달한, 스케일이 큰 성향으로 진화되었다. 듣는 분에 따라서는 이러한 소누스 파베르의 변화가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에어 사운드의 지속적인 발전과 소누스 파베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던 의미있고 즐거운 시청이었다. 에어 KX-5, VX-5, 소누스 파베르 올림피카 조합은 시간을 내서 꼭 들어봐야할 훌륭한 조합으로 필청을 권한다.
(최정호)
Ayre VX-5 Power Amplifier
먼저 B&W PM1으로 시작한다. 레이철 포저가 이끄는 라 스트라버간자의 비발디 음악에서는 에어 특유의 물 흐르는 것 같은 음색이 인상적이다. 이 비유는 울림이 풍부하다, 매끄럽고 부드럽다, 투명하고 시원하다 등의 여러 좋은 의미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택이 대단히 신속해서 소리에 머뭇거림이 없이 활로 현을 긋는 소리가 바로 바로 귀에 꽂히는 느낌이 든다. 비발디 음악의 화려한 현의 음색과 화려한 기교가 잘 전달되었다. 여러 현악기가 모여서 내는 화음과 현의 하모닉스가 풍부하게 재생된다. 여기서 약간 마음에 걸린 부분은 중저역대의 울림이 약간 끈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소리가 멈추었을 때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고 약간 울림이 지속된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이를 에어 앰프의 저역 댐핑 특성으로 이해했지만, 나중에 스피커를 바꿔 들어보고 난 다음에는 PM1 스피커의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 특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신 앰프답게 해상도가 높으면서도 약간 두텁고 포근한 음색을 지니고 있어서 예리하거나 분석적인 인상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서 비스펠베이가 연주하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들어보면 첼로의 규모감이 충분히 잘 전달되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활의 놀림은 바이올린처럼 날렵하다. 저음 악기라고 해서 리듬에서 무겁거나 느리다는 인상은 전혀 없다.
빌 찰렙 트리오의 리튼 인더 스타즈에서도 이 앰프의 페이스 리듬 재생 성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베이스의 리듬이 드럼의 스틱과 어울려서 경쾌하게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아주 멋지게 재생된다. 분명 이런 부분은 오히려 대형 시스템에서는 넘치는 저음을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이 생겼을 것 같다.
티어니 서튼의 노래에서는 재즈 가수가 사용하는 발성의 다양한 기교를 극명하게 들려준다. 보컬리스트가 시시각각으로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지 바로 이해하게 된다. 목소리는 곱고 부드러우며 귀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든다.
팻 매쓰니 그룹의 음악에서는 감상자가 숨을 못 쉴 정도로 음악의 흐름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아까 빌 찰렙 트리오의 연주에서는 리듬과 페이스를 초 시계처럼 정밀하게 들려주었다고 하면, 여기서는 압도적인 다이내믹스까지 동반되어 음악에 압도 당하게 된다. 해상도가 높아서 마치 앞에 조명 기구가 훤히 켜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음반에서는 너무 소리가 앞으로 쏟아져 나와서 신이 나기도 하지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스피커를 소너스 파베르의 올림피카1으로 교체해서 다시 같은 음반들을 들어봤다 아무래도 스피커의 우퍼 구경에 더 커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무대의 규모가 위 아래 앞뒤로 더 넓어졌다. B&W PM1에서는 다소 과하게 앞으로 나온다고 생각된 부분이 있었는데 소리가 뒤로 들어가면서 무대가 더 매끄러워지고 깊어졌다.
소너스 파베르의 올림피카1 스피커는 소형의 북셀프 스피커다. 그런데 이 스피커가 그려내는 무대의 규모가 아주 잘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 스피커라면 일반적인 거실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스케일 면에서 감상자에게 부족감을 느끼게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규모 내에서 빈 틈이 없어서 어디 하나 흠잡을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것은 스피커의 밸런스 특성이나 확산, 또 앰프에 대한 반응 특성이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피커의 왜곡이 낮아서 음색이 더 중립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 결과 PM1 스피커에서 느꼈던 음악적인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여유롭고 더 매끄러우며 자연스러운 표현력을 얻게 되었다. 아까는 에어 앰프 특유의 착색으로 이해하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 스피커에서는 그런 버릇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슬릿 방식의 베이스 포트를 사용한 덕분인지 포트에서 비롯되는 저음에서의 끌림도 나타나지 않았다.
피아노의 표현력을 들어보기 위해서 안스네스가 연주하는 리스트 음반을 들어봤는데 저음에서 고음까지 소홀함이 없이 깨끗하게 재생해 냈다. 피아니스트가 페달을 사용해서 얻어내는 음색의 미묘한 변화와 잔향감이 아주 잘 표현되었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작렬하는 피아노의 강렬한 타건과 점차로 고조되어가는 다이내믹스도 열정적으로 들려주었다. 역시 피아노 음악으로 들어본 머라이 페라이어의 영국 조곡에서도 최신의 시스템다운 세련된 음색과 풍부한 잔향으로 공간을 산뜻하면서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예전에 비해 로이코 시청실의 공간이 상당한 음질 튜닝이 되어 있어서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이 만큼 실제 무대에 근접한 음장과 밸런스를 들어본 기억은 없다. 라벨의 라 메르를 파보 예르비가 연주한 음반에서 들어보면 현악기가 점점 크레센도로 커지면서 마치 바닷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소리가 스멀스멀하게 올라오는 느낌이 잘 전달되었다. 이 부분은 저음이 풍부하게 뒷 받침되는 대형 스피커 시스템에서만 구현되지만 이 소형 시스템에서도 그런 느낌 자체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까다로운 사용자라고 해도 불만을 갖기 힘든 아주 완성도 높은 시스템이다.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