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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란츠 SA-11/ PM11 시스템

하드웨어리뷰

by hifinet 2006. 7. 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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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정현 on 06/07 at 12:4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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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이파이넷에 기고한 이래 후속 기사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란츠의 프리미엄 라인업인 SA-11과 PM-11이 출시되었을 때 기획 의도는 두 제품의 개별 리뷰 외에 콤보로서의 성능에 대한 리포트도 같이 포함하는 것이었으나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조합에 대한 기사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입원의 협조로 애초 기획했던 바를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사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후속기사를 써야할 경우 대단한 의지가 있지 않으면 여러 기기들을 다시 수배해서 세팅을 다시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란츠 콤보의 경우 청취에 대한 의지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마란츠의 PM-11은 올해 들어 접해본 제품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모던 쇼트의 퍼포먼스 6나 마란츠의 15 시리즈 그리고 SA-11을 들어보기 전까지는 가장 인상적인 제품 한 가지만 꼽으라면 스테레오 제품 중에서는 PM-11을 지적할 수 있었다. 인상적인 제품 리스트에 이제는 SA-11도 포함되어야 하겠는데 실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 SA-11/ PM-11 조합이다. SA-11과 PM-11 콤보는 단순한 합 이상의 무엇인가를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다.
마란츠 특유의 샴페인 골드에 대한 호감은 없지만 SA-11과 PM-11을 포개어놓고 보면 색상의 선호도를 떠나서 고급스러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애호가 입장에서 같은 라인업의 소스 및 앰프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일 수 있다. 굳이 같은 브랜드로 셋업 하는 것은 성능보다 통일된 디자인에서 오는 깔끔함 때문일지 모른다. 11시리즈의 독특한 실루엣은 꽤나 폐쇄적이어서 같은 시리즈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리고 랙에 수납된 SA-11과 PM-11을 보면 단순한 어울림을 넘는 시각적인 포만감을 준다. 2개의 조합이 단순한 합보다 커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적인 시너지는 고스란히 귀로 전달된다.
PM-11은 매우 섬세하며 자연스럽다. 그리고 섬세함이나 절묘한 뉘앙스를 기회비용으로 삼아 전류 공급 능력의 부족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지도 않는다. 또한 앞에서 들어온 것에 특별한 것을 덧붙인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중립적이면서 투명하다. 만약 무엇인가 덧붙인다는 것이 있다면 높은 중역대를 조금 누르는 느낌으로 다듬어서 어떤 소스를 재생해도 귀에 거슬리는 바 없이 듣기 편하게 만들어 준다는 정도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PM-11을 처음 섭외할 때 수입원의 걱정은 예상 밖이었다. 디지털 소스 기기에 비해 마란츠의 앰프들은 90년대 이후 대단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PM-11은 지금까지 접해본 인티 앰프 중에 두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한 제품이었다.
SA-11은 기대했던 대로 멋진 제품이다.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우아하고 아름답다. 문한주님의 기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그래서 연주의 전경을 한눈에 다 보이도록 해준다기 보다는 클로우즈업으로 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클로즈업으로 보는 재미가 너무 좋아서 굳이 전경을 다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 다는 점이다. SA-11이 들려주는 섬세함은 어떻게 보면 경이롭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보다 몇 배 더 비싼 제품과 비교해도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해 주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와디아 같은 제품이 파고드는 소리라면 SA-11은 스며드는 소리이다. 이러한 느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문한주님의 리뷰에 보면 이런 표현도 나온다.

“마란츠 SA-11S1이 채택한 음악적으로 성숙하지만 자극적이라거나 유별나지 않게 들리는 튜닝은 혹시라도 번잡한 현대인의 입장 때문에 잘못 평가될 위험도 어느 정도 숨겨져 있을 것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퇴근 후 모처럼 시간을 짜내어 고작해야 한 두 시간 남짓 음악을 감상하고 오디오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에게서라면 웬지 어딘가 시원하고 짜릿한 느낌이 쏙쏙 들어오는 제품일 때 더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얘기다.”

이제는 예를 드는 것조차 지겨워진 다이아나 크롤의 “I’ve got the world on a string"을 들어보면 시원스럽게 쾅쾅 울려대는 느낌보다 어떻게 이런 울림이 나오는 가를 자세히 보여주는 것 같다. 베이스가 유난히 탄력이 붙는 것은 아니지만 또 유별나게 신나는 리듬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연주자의 손가락 끝에 붙는 힘의 강약이 숨 막힐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된다. 뿐만 아니라 드럼 파트의 모든 울림들이 고속촬영을 보듯 타격의 시작부터 사라짐이 여유를 가지고 표현된다. 결국 음악을 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훨씬 더 많은 감동이 스며들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여유로움과 우아함은 PM-11과 짝을 이루었을 때 정점에 오른다. 오디오의 조합이 싱거우면 소금 더 넣고 짜면 물 더 넣으면 되는 것처럼 직관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SA-11과 PM-11의 조합을 들어보면 SA-11의 우아함이 PM-11의 여유와 자연스러움 덕에 훨씬 잘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오디오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오고 싶어지는 마음이 없어졌다. 그러나 SA-11과 PM-11이 같이 있었던 일주일 남짓 정말 오래간만에 오디오 때문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퇴근 후 듣고 싶은 곡 목록을 미리 생각하고 집에 가자마자 틀어보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기계로부터 받는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의 곡을 들었더니 해상도가 어떻고 이미징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그 제품에서 나오는 소리를 또 듣고 싶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졌다면 굳이 다른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매달 원고 마감을 맞추기 위해 가족 눈치 보면서 여가를 할애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기계 들어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사람의 마음을 오래간만에 설레게 했다면 말이다.
섬세한 뉘앙스 외에 SA-11/ PM-11 조합의 베이스는 독특한 맛이 있다. 물론 가장 큰 변수야 같이 조합되는 스피커지만 PM-11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의 매칭이라면 강력함보다는 깊고 안정감 있는 대역의 확장과 정확한 음정 및 고급스러운 탄력을 느낄 것이다. 캐롤 키드의 ‘I thought bout you’를 들어보면 어쿠스틱 베이스가 절대 두드러지게 튀지 않지만 정확한 음정을 유지하면서 평소보다 좀 더 깊게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탄력 또한 댐핑이 많이 된 제품에서 받는 탕탕 퉁기는 느낌이 아니라 운지의 진폭이 정확히 느껴지는 섬세함이 더 먼저 다가온다. 어떤 곡이든 피아노가 등장할 때 낮은 건반의 표현을 잘 들어보면 낮은 건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장력이 매우 잘 느껴진다. PM-11 자체도 이런 느낌을 매우 잘 살려주는데 SA-11과 합쳐지면서 미소 레벨의 디테일과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정교함은 대단한 수준으로 배가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카리스마 있는 사람의 조용한 한마디가 100명의구호를 잠재우듯이 SA-11과 PM-11의 조합은 조용하고 우아하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음악을 들은 후의 감동이 마음 속 깊이 스며 있다는 느낌을 남겨준다. 가끔씩 오디오 리뷰를 읽어보면 음반의 정보를 남김없이 긁어내는 바람에 녹음이 좋지 않은 음반은 듣기 힘들게 만들어 준다는 제품 평을 접하게 된다. 마란츠의 프리미엄 콤보는 좋은 녹음인지 나쁜 녹음인지 낱낱이 구분해 주지만 모든 음반에서(비틀즈를 제외하고-비틀즈는 CD로 재미있게 들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찾아준다. 어쩌다 한 번씩 꺼내 듣는 뉴 트롤스(New trolls)의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은 들을 때마다 어렸을 때 유치한 감정 때문에 그렇게 좋아 했었나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사실 이쪽이 더 맞겠지만) PM-11이 들어온 후 그리고 SA-11이 들어온 후 새롭게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별로 좋지도 않은 녹음이지만 그리고 세련되지 못한 연주지만 연주자의 미묘한 감정이 정말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SA-11과 PM-11의 가격은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지만 해외 판매 가격 및 가격대 성능비를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 애호가 입장에서는 횡재에 가까운 행운을 얻을 수 있다. 600만원이 넘는 예산으로 디지털 소스와 앰프를 구입한다면 확실히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시스템을 만날 수도 있고 더 멋지게 생긴 제품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적인 섬세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그리고 모든 장르와 모든 음반으로부터 거슬림 없는 감동을 얻고 싶다면 또 순간적으로 귀를 파고들어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제품보다 들을수록 더 깊이 음악에 빠져들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면 SA-11/ PM-11의 콤보는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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