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란츠에서 유니버설 DVD 플레이어 DV-9500의 후속기인 DV9600이 출시되었다. DV9500에 iLink를 추가한 마이너 업그레이드 정도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개선 폭이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치가 올라간 상태에서 제품을 살펴보게 되었다.
기능상으론 두 개의 iLink 단자가 지원되며 이것을 통해 SACD, DVD-Audio, 그리고 일반 DVD 타이틀의 돌비 디지털/DTS 사운드 트랙까지 하나의 선으로 깔끔하게 연결이 된다.
마란츠 DV9600은 하이파이넷에서 진행 중이었던 하이엔드 프로젝터 shoot-out(소니 VW100, 야마하 DPX1300, 파루자 FDP-DILA1080pHD, 마란츠 VP12S4, 인포커스 스크린 플레이 777)의 DVD 소스 기기로 데논 A1XV와 함께 참가하여 테스트하였으며 아울러 삼성 800BK와 벤큐 PE8720에도 테스트하였다. 마침 소니의 DVP-NS9100ES의 잡지 리뷰용 제품까지 받아 놓았으므로 DV9600과 소니 9100ES, 그리고 전 모델인 DV9500과 영상은 거의 100% 동일한 삼성 HD2000을 비교하였다.
이번 리뷰의 주제는 마란츠 9600이지만 소니의 9100ES의 잡지 리뷰와 맞물려 시종 비교 평가했으므로 소니 9100ES의 테스트 결과도 상당히 포함돼서 결과적으로 마란츠 9600과 소니 9100ES의 맞짱 리뷰라고도 할 수 있겠다.
Marantz DV9600 DVD Player
Sony DVP-9100ES DVD Player
블랙 레벨/화이트 레벨
전작인 DV9500과 삼성 HD2000의 경우 영상은 100% 동일하다고 할 정도였지만 공장 출시의 초기 설정은 달랐다. DV9500의 경우 디폴트 세팅에서는 블랙 이하의 신호(Below Black 혹은 Blacker Than Black, 이하 BTB로 표기)와 화이트 이상의 밝기(Above White 혹은 Whiter Than White, 이하 WTW)는 표현하지 않도록 조정되어 있다.
반면 최근에 조 케인의 영향을 받은 삼성은 HD2000에 BTB와 WTW가 재현되도록 해 줄 것을 강력하게 마란츠에 요청했었고 이에 따라 초기 설정에서 BTB와 WTW가 나오도록 세팅해 출시했었다. 물론 DV9500도 영상 조정에서 컨트라스트 세팅을 한 클릭 내리면 WTW가 보이며 브라이트니스를 한 클릭 올리면 BTB도 나오므로 초기 세팅만 다를 뿐 실제로는 동일한 영상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마란츠도 이점을 납득해서인지 이번 DV9600에서는 삼성 HD2000처럼 공장 초기 설정에서도 BTB와 WTW가 모두 제대로 표현된다.
소니의 경우도 비슷한 과정을 보였었는데 저가형 모델 중에 975V가 초기 설정에서 BTB와 WTW가 나오지 않도록 블랙에서 화이트까지만 표현하는데 비해 최근 모델인 92V에서는 처음부터 BTB, WTW가 모두 나온다. 그러나 9100ES에서는 오히려 92V와 달리 초기 설정에서 블랙과 화이트까지만 보이고 Picture 세팅을 –1로 낮춰야 WTW가 나오며 Brightness를 +1로 높이면 BTB가 나온다.
사실 실제 영상에서는 블랙과 화이트 사이의 계조만 제대로 표현하면 되므로 BTB나 WTW는 그다지 중요한 항목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엔지니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블랙에서 바로 끊어 버리면 실제 영상에서 블랙 아래쪽의 신호도 간혹 포함하는 경우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BTB도 표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리플리>에서 주드 로가 썼던 까만 색 모자가 BTB가 안 나오는 제품에서는 그냥 새까만 색종이처럼 평면적으로 나온다. 반면에 BTB 신호도 출력되는 제품에서 디스플레이의 블랙 레벨을 블랙 포인트가 아니라 –1이나 –2% 정도의 블랙에 잡아 놓으면 까만 모자의 입체감과 그라데이션이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필름을 비디오로 바꾸는 텔레시네 과정에서 정확한 블랙을 잡았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지만 장면마다 블랙 레벨이 약간 유동적인 경우가 꽤 있으므로 영상에 대한 환자급 완벽주의자들은 BTB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플루지(PLUGE) 패턴을 사용해서 블랙을 맞출 때도 블랙과 그 위쪽 +4% 그레이 정도만 표현되는 것보다 마이너스 블랙의 신호가 보여야 블랙 포인트를 정확하게 설정하는데 쉽고 편하다고 하겠다. 어쨌든 마란츠 DV9600은 DV9500과는 달리 초기 설정에서도 BTB와 WTW는 제대로 나오므로 BTB에 대해 알던 모르던, 신경을 쓰던 안 쓰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디인터레이싱(De-interlacing)
이 부문에 있어서 현존 최고의 DVDP는 데논 A1XV다. 골드문트나 에소테릭 등 수 천만 원을 호가하는 DVDP들도 영상에서만큼은 데논 A1XV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블루 레이나 HD-DVD로 전환되기 전에 DVD 포맷 자체의 영상으로는 A1XV가 그 한계점에 거의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실리콘 옵틱스 리얼타 HQV를 통하여 480i의 DVD 신호를 480p의 프로그레시브 신호로 변환하는데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98점은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점을 줄 수 없는 이유는 테라넥스보다는 스넬&윌콕스 프로세서를 지지하는 조 케인이 끊임없이 지적하는 약점 중 하나로 서클 트레이싱이 빨라질 때 잔상 문제 등 몇 가지 약점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래가 프로그레시브 영상이므로 2-3 검출만 제대로 하면 완벽한 프로그레시브 프레임으로 복원이 가능한 필름/영화 소스는 기술의 발달로 비교적 논란거리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필드의 시간차 때문에 두 개의 필드를 합쳐 하나의 완벽한 프레임으로의 복원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비디오 소스의 디인터레이싱은 계속 우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게다가 필름 소스라 하더라도 플래그(flag)가 잘못 들어간 경우가 허다하고 편집에 의해 케이던스가 깨지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필름 소스의 디인터레이싱도 아직 기기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디인터레이싱 능력만으로 볼 때 DV9600은 DV9500에 비해 일반 영상에서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지 몰라도 테스트 패턴과 많은 플레이어들이 약점을 보이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재생하면 비약적으로 좋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마란츠에 사용된 디인터레이서 칩은 파이오니어제 VQE 칩인데 DV9500에 사용된 VQE 칩에 비해 최신 버전을 탑재해 필름 소스와 비디오 소스에서 모두 상당한 개선과 매끄러운 변환을 보인다.
예를 들어 <비디오 에센셜>의 동영상 몽타주에 있는 유명한 성조기 펄럭이는 장면은 파루자만을 위한 장면이라고 농담할 정도였는데 계단 현상(Jagginess)이나 아티펙트 없이 깨끗하게 표현할 수 있는 프로세서는 소비자용으로는 과거 파루자만이 가능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DV9600도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아주 잠깐 미세하게 계단이 보이지만 곧바로 적응해서 이후로는 아주 매끄럽게 표현해 낸다.
이 정도 수준은 파이오니어의 구형 VQE로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경지이고 과거 파루자나 테라넥스를 제외하고는 심지어 그 좋다는 실리콘 이미지도, 제네시스 등도 톱니같이 jaggy한 영상을 보여 줬었다.
그런데 비교에 사용된 소니 9100ES도 최신 세대 시네모션을 사용한 자체 기술로 마란츠 9600에 전혀 밀리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인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테라넥스/실리콘 옵틱스 HQV의 몇 안 되는 약점이라던 빠른 서클 트레이싱에서는 마란츠 9600이 오히려 데논 A1XV나 소니 9100ES보다 앞서며 가장 안정적이다. 이 서클 트레이싱 패턴에 한해서는 이미 삼성 HD2000에서 HQV를 쓴 데논 A1XV보다도 안정적인 것을 직접 확인 했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프로그레시브 검출 모드는 가장 권장할만한 세팅이 Auto 2인데 이는 플랙이 아닌 케이던스 검출 모드이다. 이때 30 프레임 비디오 소스와 24 프레임 필름 소스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소스를 테스트해도 코밍 현상을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뀐 모드를 재빨리 알아채고 시종 비디오 모드와 필름 모드를 정확하게 찾아 가서 복원된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식으로 주관적인 점수를 매긴다면 DV9600은 96-97점 정도까지 줘도 무방할 것 같다.
데논 A1XV가 그 유명한 프로세서를 사용해서 98점 정도라면 한때 실리콘 이미지나 파루자에 비해 열악한 프로세서로 꼽히던 파이오니어 VQE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DV9600이 A1XV에 육박하는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것은 그 동안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크로마 버그(혹은 Chroma Upsampling Error, 이하 CUE로 표기)
욕을 먹던 말던 꿋꿋이 CUE에 대한 무신경함을 유지하던 파이오니어 제품도 747, 858까지와는 달리 969Avi부터는 대단히 개선된 성능을 보였었다. 컴포넌트와는 달리 HDMI/DVI 디지털로 영상 출력을 하게 되면 잘 안보이던 CUE도 확연하게 드러나니 지금처럼 무대책으로 일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CUE는 480i의 인터레이스 영상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인데 프로그레시브 제품들이 나오면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이후 DVI/HDMI 시대로 접어드니 이제는 더더욱 덮어 둘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즉 CUE는 영상의 디테일이 선명하게 살아날수록 더욱 거슬리는 현상 중 하나다.
DV9600이나 9100ES 모두 특정 장면, 예를 들어 <토이 스토리>나 <무사>, 그리고 <영웅>의 장만옥과 장쯔이가 붉은 옷을 입고 대결하는 장면 등에서 CUE가 거의 사라졌다. 얼마나 깨끗하게 보이는가는 <디지털 비디오 에센셜>의 타이틀 15, 챕터 7의 중앙 약간 좌측에 있는 적색과 청색의 삼각형이 꼭짓점을 맞대고 있는 부분이나 <토이 스토리>의 메뉴 화면, 그리고 챕터 3의 체스판, 챕터 4의 플라스틱 통 뚜껑이나 마이크의 빨간 부분 등을 볼 때 안보이거나 아주 미세한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 정도면 아주 특정한 장면이나 패턴만을 왕창 준비한 채 크로마 버그만을 찾겠다고 달려들기 전에는 전혀 감지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겠고 앞으로는 지겨운 크로마 버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업스케일링
DV9500에 비해 DV9600에서는 두 가지 큰 개선점이 돋보인다. HDMI 출력을 통해 480i의 신호를 내보낼 수 있고 최근 1080p를 지원하는 디스플레이 기기에 맞춰 1080p도 출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필자는 DVDP에서 HD급 해상도로 업스케일링해서 출력하는 것에 이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결해서 사용하는 디스플레이 기기에 내장된 스케일링 프로세서가 아주 열악하다면 당연히 업스케일링 DVDP의 장점이 살아나겠지만 수준급 스케일러가 내장되어 있다면 DVD의 원래 해상도인 480i/p로 받아서 디스플레이 기기에서 자체 해상도로 스케일링하는 것이 더 좋을 가망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요인이 있지만 대표적인 스케일링 아티펙트인 링잉과 앨리아싱 문제가 예라고 할 수 있다. 1280×720의 해상도를 가지는 고정화소식 디스플레이 기기에 DVDP에서 480p로 출력하고 디스플레이 기기에서 1280×720으로 스케일링 하는 것이랑 DVDP에서 720p나 1080i로 업스케일링 출력한 것을 디스플레이 기기에서 자체 해상도인 1280×720으로 스케일링한 것을 비교해 보면 거의 99% 480p로 출력한 것이 가장 깨끗하다.
저가형 프로젝터나 TV, 혹은 동영상에 최적화되지 않은 PC 모니터 겸용 제품이라면 모르겠으나 720p 이상 1080p까지 해상도를 지원하는 제품이 허접한 스케일링 프로세서를 내장한 경우는 드물다고 하겠다. 예외적으로 480p 출력이 안 좋은 모딕스나 데논 A1XV 정도가 업스케일된 영상이 우수할 뿐 나머지는 그냥 480p로 연결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마란츠 DV9500과 삼성 HD2000의 경우는 DVDO로 유명한 실리콘 이미지의 Sil9190 스케일링 칩셋을 사용했었는데 480p에 비해 720p나 1080i의 출력은 링잉은 약간 증가하지만 나름대로 장점도 있는 훌륭한 업스케일러였다.
여기에 DV9600은 데논 A1XV와 마찬가지로 실리콘 이미지로부터 DVDO를 다시 사들인 앵커베이 테크놀로지의 칩셋을 사용하고 있다. 데논의 경우 A1XVA라는 1080p 출력 제품이 다시 발매되었고 기존 A1XV의 사용자들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1080p 출력이 가능해졌지만 마란츠 DV9600은 처음부터 1080p 해상도를 지원하고 나온다.
하지만 현재 1080p의 해상도를 가진 프로젝터나 TV도 1080p의 입력까지 지원하는 제품은 많지 않다. 그 예로 소니의 SXRD 프로젝터 VW100도 1080p 신호를 받지는 못하므로 1080i로 입력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마란츠 DV9600에서 480i를 480p로 일차 디인터레이싱하고 1080i로 스케일링해서 출력하면 소니 VW100에서 1080i를 1080p로 다시 디인터레이싱하므로 프로그레시브 변환이 두 번 생긴다.
데논 A1XV는 테라넥스/실리콘 옵틱스 HQV칩으로 디인터레이싱만 수행하고 스케일링은 앵커베이 테크놀로지(이하 ABT) 칩으로 수행하는데 야마하 DPX1300 프로젝터는 스케일링마저 HQV로 처리한다. 이 경우 최상의 디인터레이싱을 유지하려면 DVDP에서 480p로 변환되기 전의 480i의 인터레이스 신호를 출력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마란츠 DV9600의 480i 출력은 값진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아날로그 컴포넌트 출력은 프로그레시브로 변환하지 않고 480i로 출력할 수 있지만 DVI나 HDMI의 경우 480i의 인터레이스 신호를 출력하는 제품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때문에 고가의 비디오 프로세서를 가진 사람들은 프로그레시브로 변환되지 않은 순수한 480i의 디지털 신호를 받아서 외부 디인터레이서/스케일러로 보내기 위해 SDI 개조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도 과거에 파나소닉 RP-91을 SDI로 개조해서 사용한 적이 있었으나 이제 그러지 않고도 디지털 신호로 480i 신호를 뽑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파나소닉을 택했던 이유도 크로마 버그가 없는 깨끗한 신호를 원해서였는데 이번 DV9600도 그런 점에서 필자를 흠뻑 만족시키고 말이다.
게다가 DVI가 아니라 HDMI이기 때문에 RGB 신호뿐 아니라 Y, Cb, Cr의 디지털 컴포넌트 신호를 4:2:2로 뽑을 수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4:4:4로 뽑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이미 8비트로 처리된 영상이고 4:2:2로 뽑는 것이 10비트 처리가 가능하다. 따라서 480i의 디지털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야마하 DPX1300 같은 제품이라면 처리 과정을 위해 RGB 신호를 컴포넌트 신호로 다시 바꿀 필요 없이 순수하게 HQV 프로세서로 10비트 이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본다면 마란츠 DV9600의 1080p 영상 출력에 환호할지 모르지만 하이엔드 유저들은 오히려 HDMI를 통한 480p도 아니고 480i의 컴포넌트 출력에 열광할 수 있다는 말이다.
480i 출력으로 야마하 DPX1300에 연결하고 테스트하면 당연히 DV9600의 VQE 디인터레이싱과 앵커베이의 업스케일링은 전혀 동작하지 않고 야마하의 실리콘 옵틱스 HQV가 디인터레이싱과 업스케일링을 모두 수행한다. 그 결과는 대단히 훌륭했다.
480i 출력을 디지털 RGB와 디지털 컴포넌트 4:4:4, 그리고 디지털 컴포넌트 4:2:2로 바꿔 가며 테스트한 차이는 육안 상 거의 느끼기 힘들었던 반면에 480i, 480p, 720, 1080i의 해상도를 비교하면 단연 480i가 최고였다. VQE+앵커베이보다는 확실히 HQV의 능력이 명불허전임을 입증한다.
업스케일링 능력은 같은 앵커베이 테크놀러지의 칩셋을 썼어도 데논 A1XV에 떨어질 뿐 아니라 전 모델인 DV9500보다도 낫다고 하기 힘들다. 자사의 DRC 회로를 사용하는 소니도 비슷한 결과인데 975V에서는 720p도 상당히 좋았지만 9100ES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마란츠와 소니 두 제품 모두 업스케일링을 하면 480i/p보다 특히 링잉이 확연하게 증가한다. 이것은 데논 A1XV의 매끄럽고 자연스러움에는 상당히 못 미칠 뿐 아니라 DV9500이나 975V보다 심한 수준이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업스케일링 기능이 좀 더 선명하고 좋게 보이는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 꼼수들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때문에 필자는 소니 9100ES와 마란츠 DV9600 모두 720p나 1080i의 업스케일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480p로 볼 것을 권한다. 만약 사용자의 눈에 480p 신호보다 720p나 1080i로 업스케일링된 영상이 좀 더 샤프하게 보인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480p로 출력하면서도 샤프니스 세팅을 조금 올린다면 업스케일링된 신호와 비슷해 질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이미 언급했듯이 신호를 받아 영상을 구현하는 디스플레이의 스케일러가 허접할 경우는 비록 480p보다 못하더라도 소니나 마란츠에서 업스케일링해서 내보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기타 테스트 결과
오버스캔은 마란츠 DV9600의 경우 상하좌우 전혀 잘리는 부분이 없다. 소니 9100ES는 좌우로는 전혀 잘리지 않고 상하로 0.5% 정도만 덜 나오므로 문제 삼지 않아도 된다.
크로마(색) 신호와 흑백(루미넌스) 신호의 딜레이는 HDMI 출력의 경우 두 제품 모두 전혀 없이 일치한다. 만약 연결한 디스플레이에서 처리하는 과정에 시간차가 생긴다 해도 두 DVDP의 세팅 메뉴에는 YC 딜레이(혹은 크로마 딜레이)를 보정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
주파수 대역은 해상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일반적인 영상에서 고역이라고 할 수 있고 디테일을 제대로 보여 주는데 필요한 5MHz까지는 두 제품 모두 깨끗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간혹 나타나는 미세한 디테일, 그리고 가로 720 픽셀 포맷인 DVD의 최대 수평해상도인 540 TVL(TV Lines)까지 완벽하게 풀어내기 위한 한계대역인 6.75MHz까지도 완벽하게 깨끗한 것은 소니 9100ES다.
마란츠 DV9600은 6.75MHz의 직선이나 웨지(Wedge) 패턴을 풀어 낼 때 간섭과 므와레의 조짐이 미세하게 나타난다. 즉 테스트 패턴 상으로 따지면 9100ES가 DV9600보다 선명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실제 시청 시 일반 동영상에서는 거의 감지가 불가능한 수준이고 결국 비슷한 선명도라고 할 수 있다.
색 정확도는 두 제품 모두 대단히 훌륭하다. 색 영역을 SMPTE-C(BT.601) 표준 좌표에 정했을 때 두 기기로 테스트 DVD의 R, G, B 컬러 필드를 띄우고 측정하면 어큐펠 시그널 제너레이터 측정치와 거의 일치한다.
실제 영상
마란츠 DV9600에서 디지털 컴포넌트 4:2:2 포맷, 480i의 출력으로 야마하 DPX1300에 연결한 화질은 DVD 영상 극한의 한계점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상태에서 <제5 원소> 시청 중에 나중에 들어 와서 본 사람은 HD냐고 물어 봤을 정도다. 물론 비교 확인을 위해 같은 장면을 HD 소스로 바로 다시 틀어 본 결과 역시 HD쪽이 확실한 우위다. 그러나 HD를 보지 않고 DVD를 먼저 본다면 HD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DVDP 중에서는 HD에 가장 근접한 영상을 보여 준다. 이 매칭에서라면 오히려 데논 A1XV를 능가하거나 적어도 밀리지 않을만한 경지다.
그러나 480i의 디지털 신호를 받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나 프로세서가 없다면, 아니면 받을 수 있더라도 실리콘 옵틱스/테라넥스 HQV급의 처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해상도나 포맷에서 필자는 소니 9100ES의 영상이 아주 털끝만큼 미세한 우위에 있다고 본다. 사실 480p, 720p, 1080i 상태에서 두 제품의 영상은 막상막하, 난형난제다. 설사 약간 차이가 있다 해도 실제 영상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입맛에 맞는 대로, 좋아하는 브랜드대로 둘 중 아무거나 골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기타 주의 사항 및 불만
소니의 경우 초기 설정에서 BTB와 WTW가 안 나오므로 세팅에서 픽쳐를 –1로 브라이트니스를 +1로 바꿀 것을 권장하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그런데 샤프니스도 잘못 되어 있다. 초기 설정은 Off인데 실제로 끄는 것은 Off가 아니라 1로 해야 한다. 즉 샤프니스가 먹는 정도는 1, Off, 2의 순서이다. 2로 놓으면 윤곽 강조가 너무 심해지고 Off도 거슬리므로 1로 세팅하기를 권한다.
마란츠도 초기 세팅에서 윤곽 강조가 심하다. 세팅에서 Sharpness High, Sharpness Mid, Detail의 세 가지 파라미터로 조절이 가능한데 High는 한 칸 정도 남을 때까지 줄여야 윤곽 강조가 줄며 Mid는 오히려 너무 낮추지 말고 중간 정도를 유지해야 좌우로 생기는 링잉이 거슬리지 않는다. Detail도 중간 이상으로는 올리지 않아야 한다.
기능상 소니의 장점은 디스크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어도 전에 재생하던 곳을 바로 나오게 할 수 있고 디스크마다 화질 세팅을 해서 재생 시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소니가 전통적으로 지원해 온 기능인데 일반인들은 별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필자 같은 리뷰어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기능이다. 그러나 응답 속도가 너무 느리다. 디스크를 꺼내려 Open 버튼을 누르면 거의 7-8초 후에 나온다. 잘못 누른 줄 알고 다시 누르면 나오려다 다시 들어가서 꺼내려면 10초 이상이 걸린다. 그리고 리모컨을 눌러도 딜레이가 생긴다.
영화 타이틀 하나 집어넣고 느긋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한다면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처럼 이 디스크 저 디스크 넣었다 뺐다 하거나 이 장면 저 장면으로 마구 스킵하면서 세팅치 불러오고 바꾸며 테스트하는 리뷰어들이나 성질 급한 사용자에게는 상당히 짜증나는 일일 수도 있다.
한편 디스크를 만들 때 일부러 스킵하지 못하게 막아놓지 않았다면 마란츠는 챕터뿐 아니라 타이틀도 마구 앞뒤로 넘어 찾아다닐 수 있다. 이것 역시 일반 사용자보다는 리뷰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편리한 보너스다. 그러나 세팅을 바꿀 때 그 항목만을 밑으로 불러내지 못하고 전체 항목에서 바꿔야 하므로 영상을 가려 버린다. 즉 세팅 바꾸고 나가서 확인하고 다시 들어가서 또 바꾸고 이런 방식으로 짜증을 유발시킨다.
이것은 전 모델들도 마찬가지고 삼성 HD2000도 그랬다. 그리고 리모컨의 버튼 배치가 약간 불편하게 되어 있다. 익숙해지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버튼들의 위치가 애매하므로 프로젝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깜깜한 상태에서 조작하기에 약간 문제가 있다. 차라리 백라이트를 지원해 주던지...
사운드
마란츠는 소위 유니버설 기기이므로 DVD-Audio도 되지만 소니는 이를 지원하지 않고 SACD까지만 지원한다. 아날로그 출력으로 테스트한 2채널 멀티채널 SACD는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둘 다 훌륭하다. 거의 비슷한 성향이라고도 하겠는데 말장난 같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마란츠가 약간 나긋나긋하고 소니는 조금 화사한 인상이라고도 하겠다.
두 제품 모두 한 마디로 데논 3910보다는 전체적으로 좋으며 데논 A1XV와는 성질이 다르고 오히려 데논의 순수 하이파이용 SACDP인 DCD-SA1이나 마란츠 SA-11S1, 소니 XA9000ES를 연상시키는 사운드다. 필자는 데논 A1XV보다 이 두 제품의 사운드가 더 좋게 느껴진다.
iLink를 통해 소니 TA-DA9000ES AV 앰프로 연결해 보았다. 이때 DA9000ES에서 지터를 줄이기 위해 버퍼에 저장했다가 재생시키는 H.A.T.S 기능을 켜고 사용했는데 이 앰프에 아날로그로 연결한 것에 비해 큰 차이는 아니지만 공간감이 확장되고 백그라운드가 좀 더 정숙해진다. 따라서 DA9000ES에 연결한 경우에 한정 짓는다면 iLink가 아날로그 연결보다 필자에겐 좋았다. 단지 이때 마란츠 마저 자기 소리가 아닌 소니의 소리로 바뀌어 버린다.
CD 재생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마란츠 쪽이 소니보다 조금 더 낫고 DVDP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사운드이며 오디오 전용기인 마란츠 SA8400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약간 상회한다.
마란츠 DV9600의 DVD-Audio도 대단히 뛰어나다. 해상도와 디테일, 그리고 다이나믹스 모두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데논 A1XV의 수준까지 가지는 못한다.
요약
마란츠의 480i 디지털 영상 신호 출력은 대단히 매력적인 기능이다. 또한 소니는 지원하지 않는 DVD-Audio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 이외의 영상이나 음질에서는 소니 9100ES나 마란츠 DV9600은 뚜렷한 승자가 없다. 따라서 위에 말한 점들이 필요 없다면 둘 중 어떤 것을 고르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므로 취향이나 브랜드 선호도에 따라서 골라도 하자가 없어 보인다.
DV9500의 사용자라면 iLink나 480i, 1080p 출력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굳이 DV9600으로 업그레이드를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 세대의 DVDP들 보다는 확실히 좋아졌으므로 DVD라는 포맷의 한계를 생각해 보면 거의 끝까지 온 제품이고 앞으로 개선의 여지는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