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로 음악 듣기
문득 누구를 가장 자주, 많이, 오래 동안 보고 사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단연 컴퓨터와 모니터 화면이었다. 글쓴이가 특별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넥타이 부대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글쓴이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회사에서는 일하느라 컴퓨터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인터넷하고 노느라 컴퓨터를 본다. 하루 중에 상당 부분을 컴퓨터와 함께 하다 보니, 음악도 컴퓨터로 듣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늘었다.
문제는 컴퓨터로 듣는 음악이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맥락도, 도구도 진지한 음악 듣기와는 거리가 멀다. 우선 PC 소음 때문에 음악 듣기가 적당치 않다. 그나마 조용하게 개선된 요즘도 눈으로는 무엇인가를 보고, 손으로는 자판을 연신 두드리면서 BGM 삼아 음악을 듣는다. 음악 듣기가 주가 될 수 없다. 게다가 그 음악 듣기마저도, 공짜로 끼워 주는 싸구려 플라스틱 스피커 혹은 제품에 붙어 나오는 스피커로 듣는다. 음악이 제대로 전해지기 어렵다.
빌트인 스피커가 못마땅해 별도로 돈을 내 PC용 스피커를 산다 해도 다 거기서 거기다. 자칭 하이엔드 컴퓨터용 스피커라고 해봐야 붐박스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고, 기본에 충실하기 보다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각종 불필요한 기능과 과장된 스펙으로 정신이 사나울 뿐이다. 좀 좋다 싶으면 가격이 PC 가격에 육박하고, 크기도 커서 책상에 올려놓고 사용하기 부담스럽다. 기본기가 충실한 PC용 스피커 사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이러다 보면 결국 ‘에이.. 컴퓨터로 무슨 음악이야. 그냥 소리만 나면 되지.’로 결론 나기 쉽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글쓴이가 아는 한 분은 PC용 스피커로 ATC 액티브 모니터를 사용하시는데, 이런 경우는 오디오쟁이의 이른바 ‘끝장 보기’ 기질이 발동한 매우 드문 경우임에 분명하다.
원하던 원치 않건, 컴퓨터로 음악 들을 일은 앞으로 점점 많아 질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슨 수를 내긴 내야 할텐데.. MP3 파일의 음질상의 한계, 오디오카드 성능 등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적당한 크기와 가격에, 충실한 기본기를 갖춘 PC용 스피커가 있다면 그나마 즐거운 음악 듣기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은 비단 글쓴이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글쓴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은 오늘의 주인공 audioengine A2 스피커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Audioengine A2 스피커
Audioengine(이하 오디오엔진) A2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점을 두고 있는 오디오엔진사의 제품이다. 오디오엔진은 비교적 신생업체로서 2005년에 첫 제품 A5를 출시했으며, A2가 2번째 제품이다. 생산하는 제품도 액세서리를 제외하면 A5 스피커, A2 스피커, S8 서브우퍼 세가지가 전부다. 회사 역사는 짧고, 생산하는 제품은 몇 안되지만, 회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오디오 업계에서 상당 기간 일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오디오엔진 홈페이지를 참고 하시기 바란다.(http://www.audioengineusa.com)
외관, 구성, 스펙
박스를 뜯으면 상당히 정성스런 포장에 기분이 좋아진다. 좌우 스피커는 파우치에 각각 별도 포장되어 있고, 나머지 부속들도 2개의 파우치에 나뉘어 포장되어 있다. 부속품으로는 전원 어댑터와 전원선 1개 이외에 스테레오 미니잭 케이블 2개, 스피커 케이블 한 개가 기본 제공된다. 따라서 사용자는 별도로 케이블을 구입할 필요 없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오디오엔진 A2는 일단 보기에 예쁘다. 글쓴이가 리뷰를 위해 받은 제품은 흰색 하이그로시 마감이었는데 보는 순간 아이팟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흰색 마감 이외 검정색 마감도 있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애플 아이맥 유저는 흰색을, IBM 계열 PC 유저는 PC나 모니터 색깔에 맞춰 검정색이나 흰색 중 택일하면 될 것 같다. A2는 일반적인 PC 스피커보다 키는 좀 작고 깊이와 너비가 길다. 손으로 들어보면 무게가 약간 나가는데, 한쪽은 무겁고 다른 한쪽은 가볍다 못해 부실한 PC 스피커와는 달리 양쪽 스피커의 무게가 각각 1.5kg 정도로 비슷하다. 왼쪽 스피커에는 Class AB 방식의 15W 앰프가 내장되어 있다. 오른쪽 스피커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일단 스피커가 너무 가볍지 않아 좋은 인상을 받았다.
유닛을 살펴보면 2 way 구성으로 20mm 실크돔 트위터와 2.75인치 케블라 재질의 우퍼 유닛이 탑재되어 있다. 유닛은 모두 오디오엔진사의 요구에 맞게 커스텀 제작된 모델이라고 한다. 우퍼 유닛 아래의 포트는 세로로 얇고 긴 모습을 하고 있는데 포트로 인해 불필요하게 스피커 크기를 키우지 않으면서 디자인 측면도 고려한 시도가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그릴을 장착할 수 없으므로 사용할 때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마감은 훌륭한 편이다. 눈으로 보기에도 깨끗하고, 손으로 만져봐도 거친 면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감의 완성도로 치면 100만원대의 북쉘프와 견주어도 별로 부족할 것이 없다고 판단된다. 중국에서 제작된 제품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싸구려 플라스틱 스피커와는 다르게 MDF로 잘 짜진 인클로져도 만족스럽다. 손으로 두드려보면 통울림과는 거리가 먼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인클로져 밑면에는 인클로져 색상과 동일한 고무패드가 붙어 있어 스피커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킬 수 있게끔 해놨다. 또한 PC 스피커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방자형이다.
그 밖의 자세한 스펙은 아래 표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Audioengine 2 스펙
설치하기
설치하기는 아주 쉽다. 컴퓨터와 연결할 경우, 컴퓨터의 사운드 아웃 단자와 스피커의 인풋 단자를 미니잭 케이블로 연결하면 되고, 아이팟 등의 포터블 기기와 연결할 때는 미니 기기의 헤드폰 아웃 단자와 오디오엔진의 인풋 단자를 연결하면 된다. Stand alone형 CDP나 SACDP와 연결할 때는 RCA 인터커넥트를 이용하여 연결하면 된다.
소스와 스피커가 연결된 다음에는 왼쪽 스피커와 오른쪽 스피커를 스피커 케이블로 연결하고,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면 끝이다.
들어보기
A2의 기본적인 성능을 테스트해보기 위해서 우선 데스크 탑 PC 사용시를 전제로 해서 시청에 임했다. PC는 Dell의 Vostro 200 모델이며, 사운드 카드는 Realtek의 High Definition Audio였다. PC나 사운드카드 모두 진지한 음악 감상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것은 아닌데, 오히려 이런 상황이 일반적인 사용자들의 환경을 잘 대변해줄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 내지 위로한 후,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를 구동시켰다. 윈도우 미디어는 버전 11판이었고,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에 기본 수록되어 있는 Aaron Goldberg의 Oam’s Blues를 재생시켰다. 특별한 음장 모드는 적용하지 않았고 2 Channel로 설정한 상태였다.
A2에 대한 첫인상은 A2의 성능이 기존의 플라스틱 PC 스피커와는 완전히 격을 달리 한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기존 PC용 스피커와 비교는 의미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플라스틱 PC 스피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몇 겹 씌워진 듯한 흐리멍텅하고 멍청하고 답답한 소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해상도가 좋아 피아노 소리를 깨끗하게 들을 수 있었고, 복잡한 드러밍도 명쾌하게 전달되어 좋은 느낌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저역의 품질이었는데, 유닛의 구경이 작다 보니 깊이 있고 풍부한 저역은 기대할 수 없었고, 실제로도 그렇지는 않았지민, 적어도 저역의 품질 측면에서는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다. 저역을 과장하기 위해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풀어 놓지 않았으며, 스펙 상 내줄 수 있는 저역 한계 내에서 해상도가 좋고 반응이 빠른 탄탄한 저역을 들려줬다. Oam’s Blues 곡 후반부의 드럼 솔로에서는 숨가쁘게 연주되는 분절음의 긴박감과 타격감을 또렷하게 잘 전달해줘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굉장히 규모가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는데, 볼륨의 크기뿐 아니라 재생음의 규모라는 점에서도 훌륭한 성능을 보여 줬다. 한껏 볼륨을 높여도 음이 찌그러지지 않았으며, 재생음의 규모는 스피커의 크기와 연관 짓기 어렵게 컸다. 하도 신통해서 한참 동안 놀라고 있는데, ‘아래 집에서 싫어하지 않겠냐’는 안사람의 말에 볼륨을 줄였을 정도였다. 흔히들 소형 스피커가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줄 때 작은 거인이란 흔해빠진 표현을 가져다 쓰는데, 내가 만난 적잖은 작은 거인들 중, 가격 대비 그리고 크기 대비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진짜’ 작은 거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기대 이상의 성능에 약간 고무된 상태에서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에서 기본 제공되는 음악을 몇 곡 더 듣고, 멜론(MelOn)을 통해 음악을 들어봤다. 우선 BMK의 ‘하루살이’, MC The Max의 ‘행복하지 마요’, 사랑과 평화의 ‘부족한 사랑’ 등을 들었는데 남녀 보컬에서도 일반 PC 스피커와는 격이 다른 성능을 보여줬다. 호소력 있는 보컬이 절절히 전해져 와 중역대도 충실하게 표현해준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음악 저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음장이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팝 앨범과는 달리 공간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재즈 트리오 앨범이나, 클래식 앨범을 재생할 경우, A2는 모니터 위에 제법 정밀한 미니어춰 음장을 만들어냈다.
멜론으로 음악을 들은 이후에는 아이팟과 A2를 연결하여 시청을 이어갔다. 아이팟을 재생시켰을 때에도 PC를 통해서 음악을 들었을 때와 동일한 특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정도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고역 재생 특성(잠시 후 기술하기로 한다)과 음색과 관련된 것인데, 우선 음색에 대한 것만 언급해보면, 특별한 착색이 감지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반적인 음색은 어두운 편이었다. A2가 책상 위에서 사용되는 초니어필드 리스닝 환경을 감안하면 밝은 음색 보다는 다소 어두운 음색이 편한 음악 감상에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적어도 글쓴이에게는 어둡게 느껴졌다. 이 부분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좀 더 확실한 평가를 하기 위해, A2를 메인 시스템으로 가져갔다. Naim CD5X를 소스로 해서 MP3 파일이 아닌, 레드북 CD 재생 때의 성능을 살펴보기로 했다. Monster Pro1000 Microphone 케이블에 아이크만(Eichmann) Silver Bullet 단자를 적용한 커스텀 메이드 인터커넥트로 CD5X와 A2를 연결하고 시청에 임했다. PC와 아이팟 연결 때와 마찬가지로 전대역에 걸쳐 좋은 대역밸런스를 보여 줬으며, 뛰어난 해상도, 크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다이나믹스와 무대 표현 능력이 더욱 잘 재연되었다. 적어도 20평형대 아파트 거실에서는 본격적인 음악 감상용으로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역 재생 능력에 대해서는 중역과 저역 표현 능력에 비하면 조금 아쉬움이 남는데, 실크 돔 트위터가 고역을 깨끗하게 쭉 뽑아낸다기 보다는 솜씨 좋게 Roll-Off 시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MP3를 들을 때 느꼈지만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레드북 CD 재생에서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음색의 어두움도 마찬가지였다. MP3 재생 때와 일관되게 음색은 어둡게 느껴졌다.
맺음말
오디오엔진 A2의 포장 박스에는 Powered Multimedia Speaker System으로 제품 성격을 규정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약 10일간의 리뷰 기간을 거치면서 그 표현에 적지 않게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인상적인 기기였다. 현재 형식 승인이 진행되고 있는 A2가 정식 수입 되면 소비자가격이 약 30만원 정도가 될 것으로 짐작해보는데, 앰프가 내장된 액티브 스피커로서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성능을 내주는 스피커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PC용 스피커로는 최고의 성능이며, 어줍잖은 미니 컴포넌트와도 격을 달리하는, 본격적인 음악 감상용 스피커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소스 기기와 A2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스럽게 음악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회를 내서 꼭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기기 협찬: 하이파이플라자 (http://www.hifiplaz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