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 오디오’하면 우수한 성능의 유닛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특히 에소타에 대한 명성은 거의 전설이 되어, 단종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유닛을 이야기 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다인 오디오는 에소타 유닛을 탑재한 컨피던스 5에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여 에비던스라는 에일리언 비슷한 초 하이엔드 제품 출시로 정점을 찍었고, 이 플래그쉽 모델의 성과를 반영한 컨투어 라인업에 이어 마지막으로 포커스라는 라인업을 출시함으로써, 이제 에비던스-컨피던스-컨투어-포커스-오디언스로 이루어지는 풀 라인업이 완성된 셈이다.
개인적으로 7~8년 전부터 4년 동안 제품을 사용한 적이 있어 다인 오디오는 매우 친숙한 브랜드다. 최초 구입의 계기도 에소타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유닛에 대한 명성 때문이었을 만큼 매혹적인 중고역의 유혹은 떨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명 ‘움직이지 않은 우퍼’라 불릴 만큼 빈약한 저역으로 인해 앰프밥(*구동력 높은 앰프로의 업그레이드 )과 스피커 방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앰프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고 다인 스피커를 떠나 보낸 적이 있다.
사실 다인 오디오의 제품들은 에비던스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예외적인 한 두 종류를 제외하고는 울리기 어렵다는 악명으로 인해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동호인에게는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들은 에비던스 이후 새롭게 개량된 유닛과, 네트웍, DDC(Dynaudio Dispersion Control)라 불리는 다인 오디오 특유의 노하우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놀라운 가격과 더불어 국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포커스 시리즈도 에비던스 이후에 얻어진 노하우들이 반영되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가난한 이의 에소타’라는 별칭을 가진 에소텍의 개량 버전이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개선이 있었는지는 자세한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으나. 마그넷의 재질이 네오디뮴으로 바뀐 것 같고, 코일의 재질이 변경되어 전반적인 고역 특성이 좋아졌다고 한다.
박스를 뜯어보니 일단 아담한 사이즈가 마음에 든다. 30평대 아파트에 적당한 사이즈다. 에소텍 트위터와 2개의 6인치 우퍼로 구성되어있고, 인클로저는 앞부분이 넒은 박스형이다. 마감은 가구회사 혈통을 이어받아 고급스럽게 마무리가 잘 되어있고, 별도의 스파이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여전히 박스형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존 컨투어 시리즈의 전위적인 디자인에 비하면 필자의 취향에 더 맞는 편이다.
우선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과 같은 곡으로 일주일 정도 몸풀기를 한 후에 집중 시청하였다. 시청에 이용된 시스템은 마크레빈슨 390 CDP-패션 패시브 프리앰프-마크레빈슨 432 파워앰프에 디지털/인터케이블은 디스커버리 에센스와 어낼러시스 플러스 크리스탈 오발, 스피커 케이블은 어낼러시스 플러스의 크리스탈 9을 사용하였다. 시청 공간은 30평 대의 아파트 거실이고, 사정상 뒷면은 50센티 정도 밖에는 띄우지 못했으며, 별도로 마나님의 무서운 눈초리에 룸 튜닝이 없는 상태에서 시청하였다.
사람도 그렇지만 오디오도 첫인상이 중요하다. 첫 인상은 ‘빠르군, 선이 굵군, 저역이 좋네’ 이 세 가지였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 첫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기에 따라서 번인이 오래 걸려 처음과 끝 인상이 전혀 다른 제품도 있기는 하지만, 번인 기간이 한 달 이상 걸리는 경우는 개인적으로 제품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편성으로 가장 먼저 듣는 곡은 항상 헤레베헤의 모짜르트 레퀴엠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들어온 곡으로 스케일과 디테일, 다이내믹스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곡이고 2악장, 3악장, 8악장을 주로 듣는다.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저역 특성이다. 더블 베이스나 큰 북의 울림은 아주 좋다. 볼륨을 조금 더 올려보니 고역부터 저역까지 음의 윤곽이 단단하고, 빠르고 탄탄한 저역이 재생됨을 알 수 있었다.
음의 윤곽이 굵고 무거워, 음상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준다. 6인치라는 유닛의 크기상 아주 낮은 대역까지 재생하지는 못하지만, 특정 대역까지는 ‘오버한다’ 싶을 만큼 단단하고 빠른 저역을 들려준다. 말러나 쇼스타코비치 등의 대편성 에서도 관악기의 뻗침이 그대로 살아있고, 저역의 펀치감이 좋아서 대편성 곡을 듣는 맛이 난다.
다만 스테이징은 깊게 나오지 않는데, 전적으로 스피커에만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 스피커와 벽 사이의 간격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감안한다고 하더라고 음상이 앞에 생긴다는 점을 온전히 비켜가지는 못할 것이다. 전통적인 다인 오디오 사운드의 특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이 드러나는 장르는 여성 보컬과 현이다. 자끄 루시에 트리오 음반과 같이 피아노 등 악기가 주를 이루는 연주곡 보다는 제니퍼 원즈, 다이아나 크롤과 같은 여성 보컬위주의 곡과 바이올린, 첼로와 같이 음의 질감 표현이 필요한 장르에서 유리하다. 빠르고 단단한 저역은 ‘way down deep’과 같은 곡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 6인치 우퍼 임에도 불구하고 8인치 우퍼를 쓴 타사 스피커 만큼의 양감과 스피드를 보여주었다.
고역에서는 패브릭 돔 특유의 착색이 남아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도 피아노나 현의 끝 소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려서 듣기 좋게 들리는 ‘맛깔스러운’ 중고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들어보았던 혼이나 금속 트위터를 사용한 제품의 차갑고, 화려하며 쏘는 소리와는 다른, 무겁지만 따뜻한 소리들은 뛰어난 다이내믹스와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그러나 비욘디의 사계와 같은 고악기 연주를 따라가기에는 약간 버거운 것 같다. 전광석화와 같은 빠른 보잉을 구사하는 연주에서는 부분적으로 템포가 더디게 느껴진다. 차로 치면 경차가 잘 어울릴 장르인데, 포커스는 무거운 SUV와 같아서일까? 선이 굵고 무거운 만큼, 스피드와 디테일 그리고 정확하고 빠른 맺고 끊음 같은 면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바우어즈앤윌킨스가 기술적인 스펙을 중시하고 실연을 절대적 기준으로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맞추어 튜닝하는 모범생 이미지라면, 다인 오디오는 스펙보다는 우수한 자사 유닛의 음악적 특성을 살리는 쪽으로 컨셉을 잡아왔다. 따라서 정확하고 정교한 맛은 덜하지만, 힘 있고 감칠맛 나는 음색이라는 반대급부를 제공한다. 특히 포커스 라인업은 기존 다인 오디오 스피커의 장점에다가 중립성과 정교함과 같은 덕목들을 서서히 갖추어 가고 있는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커스 222에는 음악성의 부족과 대역간의 이질감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으로 박스형 디자인과 ‘앰프밥을 먹는다는 점’에선 역시 다인 오디오 패밀리의 꼬리표를 달만하다고 느껴진다.
따라서 매칭에는 여전히 댐핑이 좋은 대출력 앰프를 권하며, 평소보다 한 눈금 위의 볼륨으로 들을 때 대형 스피커 못지 않은 스케일과 다이내믹한 저역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박스형 디자인으로 인한 마나님의 눈총과 사이즈에 비해서 높은 가격(소리에 비해서가 아니라 )으로 인해, 중고를 찾는 고객은 상위모델인 컨투어 시리즈에 눈길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편성을 좋아하면서 가끔 가요나 락도 즐기고, 무엇보다도 싱싱한 새 제품의 박스를 뜯는 손 맛을 즐기길 원한다면, 30평 대의 아파트 거실에는 딱 적당한 후보 군이 될 것이다. 멀티채널까지 운용하려 한다면 엄지 손가락 하나 정도 가뿐히 들어줄 수 있겠다.
이 가격대에 가장 좋다고 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조건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런 목소리도 상당히 잦아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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