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acherna@hifinet.co.kr) 2002-06-19 16:24:55
이번에는 슬림한 외양과 다양한 기능을 지닌 록산의 카스피안 인티 앰프를 소개드리도록 하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탐탁해 보이지 않지만 들려주는 음은 정말로 높은 음악성으로 필자에게 감명을 준 제품이었다. 그럼 카스피안 앰프를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자.
록산은 저크시스 턴테이블로 명성을 얻은 영국의 종합 오디오 회사이지만 아무래도 이름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아시겠지만 카스피안은 이란과 러시아에 접한 호수의 이름이다. 그것은 아마도 록산의 사장인 툴라지 모그하담이 이란 출신의 인물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카스피안 인티의 겉 모습은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다. 같은 영국제 인티 앰프인 미리어드등에 비교한다면 상당히 소박하고 평범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솔직한 평이 될 것 같다. 또 스위치나 볼륨등의 조작감도 앰프의 가격에 어울리는 인상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앰프에 대해 지레 겁을 낼 필요는 없다. 어느 앰프처럼 닭 대가리 돌리는 기분은 아니었다.) 리모컨을 사용해서 볼륨이라든지 소스 선택 등을 할 수 있는데 그 리모컨이라는 것도 요사이 선풍기에 달려오는 리모컨보다 그리 나은 모습은 아니었다. 너무 흠을 팍팍 잡은 것 같은데 좀 더 현실적인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바로 스피커 연결단자이다. 바나나 플러그를 쓰거나 가는 선을 끼워넣고 돌릴 수는 있어도 고급 케이블에 흔히 사용되는 스페이드 단자는 연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냥 심통으로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록산은 CDP, 튜너, 스피커등도 웬만한것은 다 만들지만 스피커 케이블은 안 만들기 때문이다.
외장에는 큰 돈을 들이지 않은 것이 분명하지만 제작사에 따르면 가능한 고급 부품을 사용하고 신호 경로를 순수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프리와 파워 앰프부는 모두 듀얼 모노 구성이며 앰프를 제어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경우 트랜스포머에서부터 별도의 권선으로 되어 있어 음악 신호와 완전히 분리되도록 회로를 구성하였음을 자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앰프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파워와 프리부가 분리된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원한다면 프리 앰프나 파워 앰프로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같은 카스피안 시리즈의 파워 앰프를 연결하면 바이앰핑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앰프에 제공되는 파워와 프리를 연결하는 핀보다는 프라임 오디오에서 프롤로그 인티 앰프 용으로 별도 제작한 플러그를 사용하는 편이 투명도가 개선되고 더 자연스럽게 들렸다.
사실 처음에는 이 앰프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투명도나 해상도가 떨어지고 소리도 느슨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이 전체적으로 둔하고 느린 것 같아서 파워부에 마크 레빈슨 No.39를 직접 연결해서 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정도 워밍업 시키고 난 후 다시 시청했을 때의 소리는 인상적인 것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오히려 소리가 맑게 들려오기 시작했다.)그리고 날이 갈수록 더 좋아졌다. 앰프의 발열량이 상당히 적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계속 켜 둘 수 있었다.
대개 인티 앰프들의 경우에는 저역은 포기하고 고역의 음색이나 해상도에 강조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카스피안은 이와는 다르다.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Sony SMK52619)에서의 고역과 저역의 피아노 음색이 일치되어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맑고 깨끗한 피아노의 음색은 꽤 만족스러웠다. 또 가늘고 여윈 저역을 들려주는 동급 앰프들과 달리 카스피안은 이례적으로 풍부한 저역을 들려준다. 제니퍼 원스의 더 헌터(Private Music 01005-82089-2)에서 “somewhere somebody"나 “way down deep"을 들어보면 베이스나 퍼커션의 소리가 비슷한 급의 앰프가 들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양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역과 고역이 잘 일치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하이파이넷에 리뷰된 바 있는 아캄의 알파8 앰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카스피안은 가격이 더 높은 대신 재생되는 음색의 질감이 월등히 우수하다. 제니퍼 원스의 목소리는 싱싱하고 매끄러우며 부드럽다. 거친 입자라든지 왜곡이 없는 매우 편안한 음색이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테이크 파이브(Columbia CK 65122)를 들어보아도 색소폰의 소리가 다른 어떤 앰프에서 듣는 것보다 더 부드럽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규모 면에서 결코 고급기라고 할 수 없는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가 진공관 앰프의 장점을 흉내내려고 애쓴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에 성공한 것 같다!)
카스피안의 또 다른 장점은 넓고 자연스러운 음장 재현에 있다. 너무 뒤로 들어가지도 또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튀어나오지도 않고 스피커 사이에 이미지가 위치하며 악기끼리 겹치지도 않는다. 인티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상자를 포근하게 둘러싸는 음장은 기분 좋게 느껴진다. 플레트네프가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DG 453 450-2)을 들어보면 무대 앞의 현악기 군과 중간에 위치한 목관 악기 그리고 제일 뒤에 있는 타악기 군의 거리를 카스피안 앰프가 자연스럽게 그려주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매끄럽게 소리를 다듬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게 느껴지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대 위로부터 음이 살며시 피어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음장 재현 성과 중 절반은 필자의 오디오 피직 비르고 스피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르고의 장점을 이 정도로 높이 살려준 카스피안 앰프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르네 야콥스의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HMC 951663-65)에서는 이러한 음장 재현의 장점 때문에 가수들이 노래를 주고받는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너무 칭찬만 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다른 측면에서 냉정하게 카스피안 앰프의 약점을 짚어 보도록 하겠다. 카스피안 앰프는 멜로디나 음색을 그려내는 데에는 우수하지만 리듬을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서툴다. 특히 어택이 둔하고 약하기 때문에 음악을 밀어붙이고 끌고 나가야할 드럼이나 베이스 기타는 오히려 음악에 끌려 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표시된 출력은 70W나 되고 또 실제 볼륨을 올리면 상당히 큰 음량을 얻을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이 앰프는 온화한 특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하긴 앰프의 문제가 아니라 원한다면 괴물도 되어주기를 바라는 필자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디테일 재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다른 앰프에서 듣던 것에 비하면 작은 소리들은 전체 음악 속에 녹아 들어가서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고역의 뻗침에도 다소 의문이 든다는 점도 지적해야 될 것 같다. 심벌즈의 소리는 실제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날카롭고 힘을 갖춘 당당한 소리로 들려주지 못한다. 이러한 중 고역대의 에너지 부족은 앞서 지적한 어택이 약하다는 이야기와도 상통하는 것이다. 또 200만원에 가까운 앰프의 가격은 이 앰프에 대한 적극적인 추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록산의 카스피안 앰프는 하이파이적인 특성은 부족한 대신 겉 모습만 가지고, 또는 잠깐 듣고는 알 수 없는 매우 높은 음악성을 지닌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오적인 측면보다는 자연스러움으로 감상자를 설득시키며 음악에 저절로 빠져 들게 해준다는 점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성능에 비해서 다소 가격이 비싸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분석적으로 듣는 오디오 광보다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권해줄 수 있는 제품 중에 하나다. 앰프의 특성상 응답이 빠르면서 고역대가 강한 스피커와 매칭하면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청에 사용한 기기
CD Player
마크레빈슨 No.39, Denon 1650
Loudspeaker
오디오 피직 비르고
Interconnect Cable
킴버 PBJ
Loudspeaker cable
XLO 울트라 6
Power Cords
시너지스틱 리서치 AC 레퍼런스 마스터 커플러, JPS Digital Cords
Accessory
삼양전기 울트라 파워 멀티탭, RPG 디프랙털, RPG 베이스 트랩, BDR 피라미드 콘, 도우즈 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