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앵글의 백인대장
노정현(evaa@hitel.net) 2004-11-07 04:44:07
셀리우스가 아니었다면 트라이앵글이 지금처럼 유명해졌을까? $2,000의 가격으로 스테레오파일 추천 기기 A class에 올랐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셀리우스는 트라이앵글의 라인업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다. 트라이앵글의 상급기들이 풍성한 베이스를 바탕으로 따뜻한 음색과 섬세함을 자랑하는 반면 예리함이나 민첩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데 셀리우스는 재빠른 응답과 예리한 해상도를 바탕으로 매우 정교한 소리를 들려주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회사의 제품들은 서로 다른 등급에 있다해도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제품 철학이 라인업 전체를 관통하기 마련인데 트라이앵글만은 상급 라인업과 하급 라인업 사이에 어떤 단절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러한 단절감이 극복된 것은 기함 마젤란의 등장이다. 마젤란은 트라이앵글의 신형 유닛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 트라이앵글의 모든 노하우가 집약된 유닛을 높이 2m의 대형 컬럼(column)에 정렬하여 바늘 같은 해상도와 고속의 응답특성을 실현한 제품이다. 마젤란의 등장은 트라이앵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으며 그 끝맺음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에스쁘리(esprit) 라인이다.
디자인 및 특징
|
|
셀리우스 ES (esprit) | |
|
셀리우스와 셀리우스 ES(esprit)는 수치로 표현되는 기본적인 사양에서 큰 차이점이 없다. 92dB/W/m의 높은 감도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재생대역도 같다. 틀린점이라면 최저 임피던스가 4옴으로 전작의 5옴에 비해 더 떨어졌으며 미드레인지가 담당하는 대역이 400Hz-4kHz에서 300Hz-3kHz로 한 단계 내려왔다. 미드레인지의 윗대역을 1kHz 낮춤으로써 셀리우스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밝은 중고역을 다소 가라앉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크기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높이와 폭은 각각 1.5cm, 2cm 줄었지만 깊이는 5cm정도 늘어났다. 무게도 1.5kg 정도 증가했다. 줄어든 폭 때문에 전작에 비해 앞에서 보면 좀 더 날씬하게 느껴지지만 늘어난 뒷길이 덕에 전체적으로는 더 부피가 커진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전작에는 없는 스피커 받침대가 추가되어 실제 높이는 더 높아졌다. SPEC(single point energy conduction)이라 불리는 이 새로운 방식의 스파이크는 마젤란에서 도입된 것으로 스피커 자체의 진동을 앞쪽의 커다란 스파이크로 몰아서 바닥으로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디자인 면에서 보았을 때 필자의 취향에는 영 탐탁지 않은 부분이다. 실제로는 굉장히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지만 시각적으로 안정된 형태라고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
SPEC (Single Point Energy Conduction) |
크고 작은 변화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유닛의 변화이다. 특히 마젤란의 TZ-2800을 그대로 축소한 TZ-2400 트위터는 마젤란의 개발을 통한 전체 라인업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음을 알려준다. 마젤란 트위터는 세미 혼(horn) 형태로 96dB/W/m라는 높은 감도와 함께 넓은 확산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외 미드레인지 및 우퍼 역시 모두 신형 유닛으로 교체되었다.
|
위로부터 새로 개발된 트위터, 미드레인지, 베이스 유닛 |
음질
변한 것은 무척 많은데 리얼 우드 마감인 전작 셀리우스 EX(소비자가 240만원)에 비해 50만원 상승한 가격을 합리화할 수 있을 만큼 성능도 향상되었을까가 가장 궁금한 점일 것이다. 오리지널 셀리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에 걸맞지 않는 놀라운 해상도였는데 290만원이라는 가격은 경쟁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고 또 오리지널 셀리우스가 발매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다른 스피커 제조사들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웬만해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는 가슴아픈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필자 또한 얼마나 좋아졌을까가 매우 궁금했다. 솔직히 필자에게 처음 제품이 전달되었을 때 가격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는데 가격을 몰랐을 때 받은 느낌은 200만원대일 경우 경쟁자를 찾기 힘들어 보이고 300만원대일 경우 꽤 많은 경쟁자들을 만나겠지만 여전히 상위권에서 활약하게 될 것 같고 400마원대라면 대안이 너무 많아지겠다 라는 것이었다. 이 전도 말했으면 결론은 이미 말한 것이 돼버리는데 정교함과 예리함 그리고 민첩함이라는 측면에서 이 가격대의 경쟁자는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 좀 더 포근한 스피커가 좋을 수 있겠지만 음반에 담긴모든 것을 그대로 재생한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가격대의 다른 경쟁자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먼저 투명함에서 셀리우스 ES는 정말 아무 것도 가리는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여전히 밝고 활달한 성향이기 때문에 고역이 다소 어둡고 중후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귀를 시리게 하기 직전에 멈춰버리기 때문에 탈색되었다는 느낌은 없다. 아무로 나미에의 “the power of love"를 들어보면 탈색된 제품들이 여지없이 실패하는 심벌즈의 재생에서 불필요한 늘어짐이 전혀 없이 매우 상쾌하고 정밀한 타격의 생김과 사그러짐을 들을 수 있다. 특히 빌 에반스의 “quintessence” 앨범을 들어보면 징그러울 정도로 심벌셋의 정교한 다이내믹스를 들려주는데 결코 금속음의 늘어짐이 없다. 이럴 경우 특정 대역이 튀어나온다든지 혹은 전체적인 음색의 통일성에서 손해를 볼 것 같지만 전작에 비해 좀 더 충실한 중역대를 바탕으로(여전히 전체적으로 풍성한 소리라는 느낌은 없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매우 깨끗하게 연결되어 들린다. 스피커의 크기에 비하면 양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지만 음색의 통일성 면에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이아나 크롤의 “I"ve got the world on a string"의 도입부 피아노는 특정대역이 부풀거나 줄어드는 일없이 일관성 있는 음색을 들려준다.
부피감에서 큰 진전은 없어도 전작이 낮은 음에서 뭔가 나오다 마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반면에 셀리우스 에스쁘리는 동일한 사양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대역에서의 끝맺음이 좀 더 확실해졌다. 따라서 베이스가 훨씬 더 깊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3dB에서 45Hz라는 사양의 스피커는 정말 흔하지만 깊게 떨어지는 베이스를 정교하게 재생하는 제품은 매우 찾기 힘들다. 사양 면에서 어지간한 북쉘프 스피커와 비슷한 셀리우스지만 깊고 깨끗한 베이스 기타를 재생하는 데 있어서는 역시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를 따라올 수 없으며 셀리우스는 덩치에 비해 부피나 깊이에서 모자라는 것뿐이지 같은 사양의 제품들과 비교할 때 플로어 스탠더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준다. 알 쿠퍼의 “when the spell is broken"을 들어보면 매우 여린 킥 드럼에서 강한 타격까지 얼버무림 없이 차근차근 또박또박 설명하듯 매우 깨끗하게 재생해준다.
중역대의 깨끗함은 전작을 훨씬 능가하는데 전작이 환하게 들여다보이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입자감 같을 것을 느끼게 했던 반면에 에스쁘리에서는 아무런 착색 없이 정확하게 음원과 빈 공간을 구분해 준다.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의 “Ammonia avenue"를 들어보면 각 악기와 배경 사이의 경계가 어떤 지저분한 입자도 없이 깨끗하게 구분되며 어쿠스틱 기타의 울림과 잔향의 깨끗함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일렉트릭 기타와 달리 어쿠스틱 기타처럼 수평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비브라토를 주는 경우에 움직임의 폭을 크게 주지 않을 경우 비브라토의 강약을 느끼기 힘든데 셀리우스는 이 곡에서 연주자가 비브라토를 어느 정도의 세기로 얼마나 지속시키는지 속시원하게 알게 해준다. 보통은 처음의 강한 진폭 외에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섬세함은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같은 곡을 재생해보면 보컬이 순간순간 호흡의 면화에 따라 음색이 바뀐다는 것을 매우 쉽게 알게 해 주는데 일반적으로 중저역대를 살짝 부풀린 스피커들과 달리 차갑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어서 캐롤 키드의 목소리가 매우 정확하게 들리지만 정겹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고,중,저의 배분을 정확하게 1:1:1로 했다는 느낌을 주는데 아마도 이 부분이 셀리우스 에스쁘리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것이다.
고역의 뻗침 또한 50kHz의 광대역을 자랑하는 많은 스피커들보다 훨씬 주저함 없이 쭉쭉 뻗어 올라간다. 카르미뇰라가 연주한 비발디의 “Le humane passioni” 5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집을 들어보면 바이올린의 네크가 좀 더 길었다면 하늘 끝까지 올라갔겠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역의 뻗침이 매우 여유 있게 들린다. 그냥 고역이 강조된 스피커를 들어보면 이 곡 어디선가 분명히 귀에 꽂히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셀리우스는 매우 매끈하게 모든 것을 잘 처리하였다.
투명함 덕분에 녹음의 잔향특성이 어떤지 매우 잘 보여주는데 제임스 주트의 밀러 1번처럼 녹음이 잘 된 음반에서는 원음과 잔향이 매우 잘 어우러져서 공간의 특성이 매우 입체적으로 잘 살아난다. 대형기들에 비하면 확실히 축소된 규모지만 복잡하게 섞인 음원들의 위치를 정교하게 지적해주는 특성은 셀리우스만의 미덕이다. 아쉽다면 이 음반의 넓은 다이내믹스 폭을 제대로 살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피커의 유닛도 많고 덩치도 꽤 큰 편이지만 대편성 곡의 거대한 다이내믹스를 제대로 표현하는 데에는 역시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200만원대의 스피커에서 이 이상을 바라는 것을 무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작에 비해서 음색이 훨씬 고급스럽고 매끄러워졌다. 전작이 분명히 중립적인 음색으로 모니터적인 성격을 보여주었지만 세련된 음색은 아니었는데 에스쁘리에서는 좀 더 다듬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제품을 처음 받았을 때 중역대가 약간 막힌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대략 3주정도 사용하고 반납할 때가 되자 몸이 다 풀렸다는 듯이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소리를 들려주었다. 종이 재질의 미드레인지 유닛은 여전히 길들이기가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전작에 비하면 초기의 뻑뻑함이 훨씬 덜한 수준이고 몸이 어느 정도 풀리면 훨씬 매끈하게 다듬어진다. 실은 이 부분이 전작에 비해 상승한 가격을 가장 합리화시킬 수 있는 특징인데 비싸진 만큼 고급스러워진 소리를 들려준다.
글을 맺으며
이 제품을 추천할 이유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를 들라면 트라이앵글이 마젤란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목표를 마젤란 이외의 스피커 중 가장 잘 표현하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가격을 떠나서 투명함, 예리함 그리고 민첩함에서 다른 경쟁자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제품이다. 이 세상에는 좋은 스피커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적당한 가격으로는 승부 할 수 없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적당한 가격이라면 적당히 어느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 셀리우스도 마찬가지다. 감도를 높이기 위해 스피커의 덩치는 크지만 베이스의 확장성은 같은 크기의 제품들과 비교하면 모자란다. 그리고 이만한 높이로부터 자연스러운 음장감을 느끼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한데 그 공간을 메우기에는 베이스가 모자라는 전작의 딜레마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만 빼면 전작보다 모든 것이 향상되었고 가까운 곳에서 들어도 전작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가격 상승분 이상 향상된 성능은 이보다 100만원 정도 비싼 스피커들과는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져다준다. 로마군의 백인대장처럼 트라이앵글 라인업의 허리를 이끌어 가는 강력한 주자가 바로 셀리우스다. 셀리우스 덕분에 트라이앵글은 당분간 이 가격대에서 패권을 놓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