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hwanguk@hitel.net) 2003-10-26 10:24:18
에포스 ELS3은 여태껏 엔트리 클래스 북셸프 스피커의 강자로 군림하던 쿼드 11L 보다도 한 단계 위의 투명함과 해상력을 들려주는 놀랄만한 물건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저역과 액세서리 지원은 아쉽지만 그 청명한 소리는 이러한 단점을 덮고도 남는다
프롤로그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트라이앵글의 셀리우스202 스피커를 지금의 B&W 시그너처805로 바꾸기로 결심한 다음에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가용예산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2채널 환경을 꾸미고 별도로 저가의 AV환경을 만드느냐, 멀티채널 AV환경을 중심으로 밀고 가느냐 하는 것인데, 이러한 고민의 일단에는 쿼드 11L과 같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엔트리 클래스 스피커의 존재가 있었다.
그만큼 왓하이파이 등에서의 쿼드 11L에 대한 찬사는 스피커에 대해 군침을 흘리게 할 만큼 강력했고, 실제로 구입해서 써본 감상도 ‘그 가격(구입가 40만 원대 초반)에 기대하지 못했던 뛰어난 성능’이란 느낌이었다. 성능도 그렇지만 실제로 본 외관은 거의 환상이라 할만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았을 때 측면으로 은은한 햇빛을 받은 버드아이 메이플 마감의 광택이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자아낼 정도였다. 보는 각도와 기분에 따라 시그너처 805보다도 멋있어 보일 때도 종종 있었으니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능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는 존재했다. 이것은 가격대를 생각했을 때 말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우스운 일일 수밖에 없지만, 요지는 그 차이가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한 귀에(어색한 표현? ^^;) 너무나도 확연히 드러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고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의 에포스 ELS3와의 뜻하지 않은 만남은 잔잔해진 나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예전에 쿼드 11L을 염두에 두고 하던 고민을 다시금 시작하게 하였다.
기기소개
ELS3 미니 모니터 스피커는 에포스의 첫 저가형 모델이다. 에포스에 따르면 이 새로운 스피커는 고품질 2채널뿐만 아니라 5.1채널 환경인 홈시어터에도 적합하도록 디자인 되었으며(ELS-3C 센터 스피커도 곧 발매예정), 홈엔터테인먼트 용이라는 이름으로 오디오 품질에 있어서 어떤 타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외관은 미니 모니터 스피커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컴팩트하다. 폭은 한 뼘길이에서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남으며 높이는 한 뼘에 새끼손가락 길이 정도가 남는다. 마감은 원가 절감을 위하여 에포스 기존 모델들의 리얼 우드 베니어 캐비닛에서 벗어나, 나무 무늬를 한 비닐로 처리 되었다. 뒷면 상부(전면의 트위터 높이)에 저음반사 포트 하나가 뚫려있으며, 한 쌍(싱글 와이어링)의 스피커 터미널은 금도금 바나나 단자 대응형이다. 밑면은 스파이크 설치를 위한 나사구멍 같은 것은 일절 나있지 않은 평평한 형태이며 진동 방지를 위한 고무받침 등이 제공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진 상의 이미지는 실제 이미지보다는 좀더 멋져 보이는 편으로, 외관상의 첫 인상은 그리 고급스런 인상을 주진 않았다.
트위터는 새로운 디자인의 25mm 알루미늄 돔 형으로 네오디뮴 마그넷이 사용되었다. 우퍼는 폴리프로필렌 130mm 형으로 듀얼 마그멧에 금속 커버를 씌워 방자처리 하였다. 주형으로 찍어낸 진동판 중앙에 더스트 캡을 달고 고무 재질의 에지를 붙였으며, 이것을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고정틀에 고정시킨 형태다.
첫 만남 & 들어보기
처음 이 스피커를 접한 것은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였다. 먼저 소니 SCD-XA3000ES와 케언 4808NF를 연결해서 야신타의 Here"s to Ben(SACD), 자끄 루씨에 트리오의 Plays Bach, 끌로드 윌리암슨 트리오의 South of the Border*West of the Sun을 들었다. 저음이 희박하게 들리는 단점도 있었지만, 중고역에서는 소리의 투명도나 해상도, 다이내믹스가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다. 자끄 루씨에와 끌로드 윌리암슨에서는 심벌의 청명한 울림과 그 여운의 디테일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피아노 소리가 깨끗하고 시원스럽게 전해져왔다. 베이스의 울림과 드럼의 박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쉽긴 했다. 그렇지만 밥상에 김치나 고추장 없으면 허전한 것처럼 저음에 목을 매는 나로서도 그 청명한 소리의 매력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보컬이 주가 되는 야신타 음반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또 물건 하나가 나왔구나하는 느낌이었는데, 가격을 확인하고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외관을 감안하더라도 소리는 그 가격보다 최소 두 세배 정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접한 제품은 오리지널 모델이 아니라 박우진님이 네트워크의 부품을 업그레이드한 모델이었다. 나중에 문한주님으로부터 오리지널 ELS3를 빌려와서 이들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오리지널의 ELS3와 외관상의 사양은 동일하지만 네트워크의 커패시터 3개를 모두 고급 스피커에서 즐겨 사용한다는 프랑스제 솔렌의 폴리프로필렌 콘덴서로 교체한 ELS3 였다. 솔렌은 스피커 네트워크 용도의 대용량 필름 커패시터를 생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진님의 말에 따르면, 마침 ELS3에 사용된 것과 정확히 같은 규격의 부품을 국내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고, 비용 부담도 크지 않아서 교체를 시도해봤다고 한다. 커패시터를 교체한 제품은 오리지널보다 고역 쪽의 뻗침이 향상되어 중고역의 투명함이 더욱 살아나는 게 특징이지만, 반대로 저역 쪽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저역에 아쉬움을 느꼈던 필자는 오리지널 모델의 소리도 궁금해졌는데, 사정 상 이후에 집에서 받아 비교 시청할 수 있었다.
쿼드11L과의 비교 & 오리지널과 커패시터 교체 제품
필자의 집에서 우선 거실에 자리 잡고 있는 쿼드 11L과 커패시터를 업그레이드한 ELS3 스피커를 비교해보았다.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었지만 연결기기와 시청공간이 달라 섣부른 판단은 보류해놓고 있었다. 모든 연결 기기와 환경이 바뀌어도 그 청명한 소리는 어디 가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쿼드 11L은 예상대로 저역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깊은 대역과 역동적인 힘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서로 겹치는 대역에서 적수가 되지 못했다.
뭘 하나하나 따지기도 전에 귀에 어떤 막이나 필터 같은 것이 확 걷혀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에포스 ELS3는 기본적으로 음색의 투명함과 해상도에서 ‘등급이 다른 소리’를 내주었다. 쿼드 11L에서 상당히 허스키하게 들렸던 노라 존스와 야신타, 다이애나 크롤의 보컬이 목소리를 가다듬은 듯 맑게 들리고 데이비드 쉬프린이 연주하는 클라리넷은 오랜만에 악기 속을 청소한 듯 시원하게 들린다. 심지어 MP3 소스에서도 과거와 너무나도 달라진 소리를 내주는데, 과거에는 즐겨듣지 않고 몇 초 이내에 다음으로 넘기던 여러 장르의 곡들도 새로운 정취가 느껴져 곡의 끝부분까지 듣게 되었다. 소프트 돔을 사용하는 쿼드와 알루미늄 돔 트위터가 쓰인 ELS3의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 차이는 고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므로 보다 근본적인 차이일 것이다.
오리지널 ELS3는 중고역의 투명도에서는, 솔렌 콘덴서로 교체한 스피커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저역이 깊이 뻗고 어느 정도 박력도 느껴져 장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중고역의 차이란 것이 쿼드 11L과의 현격한 차이에 비하면 미세하다고 할 정도라서 개인적으로는 저역이 상당히 커버되는 오리지널 모델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오리지널 모델의 저역은 깊이와 강력함에서 쿼드 11L의 수준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이것은 두 스피커의 사양만 비교해도 금방 알 수 있다.
개조한 ELS3 스피커는 저역이 빈약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설치에 오히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다. 그냥 책상 위 맨 바닥에 놓아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오리지널 모델은 그냥 맨 바닥에 놓게 되면, 공진이 생기므로, 사용 시에는 최소한 고무조각 받침이라도 3점이나 4점지지로 바닥에 붙여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평가 & 결론
쿼드 11L에 대한 평가는 정당했다. 그만한 가격에 그 정도의 환상적인 외관과 우수한 퍼포먼스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엔 쿼드마저도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실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려한 외관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소형 북셸프의 진가를 드러낼 수 있는 중고역에 담금질을 가한 강력한 후속 주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서브우퍼 없는 환경에, 저역을 아주 중요시한다면 쿼드 11L이 여전히 다른 스피커보다 우선 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저역의 울림보다 투명하고 해상력 높은 소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이 가격대에선 주저하지 않고 에포스 ELS3를 추천한다. 특히 저역에 거의 아무런 미련이 없다거나 양질의 서브우퍼로 100Hz 근방을 제대로 커버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소리의 청명함과 깨끗함을 더욱 엄격하게 추구하도록 커패시터를 교체-개조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두 배 정도의 가격대 안에서 스피커를 찾는다면 아무리 저역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더라도 일단 에포스 ELS3를 듣고 그 매력을 결코 쉽게 뿌리치지는 못할 것이다. 버드아이 메이플의 화려한 외관과 저역에 못내 아쉬움이 남았지만 필자도 결국은 쿼드 11L을 내놓고 말았다.
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