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acherna@hifinet.co.kr) 2002-06-14 15:43:52
이번 기회에는 미국의 진공관 앰프 제작 회사 중에서도 싱글 튜브 앰프로 유명한 CARY Audio Design의 인티그레이티드 타입 앰프 CAD 300SEI를 소개한다.
CARY라는 이름은 이 앰프의 제조원이 위치한 미국 North Carolina 주의 지명에서 유래하였으며 사장인 Dennis Had는 소년 시절부터 2A3이나 300B 진공관을 사용하여 취미로 앰프를 제작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회사가 1978년도에 설립되었을 당시는 지하실에서 시작했지만 꾸준하게 싱글 엔디드-제로 피드백 튜브 앰프 제작에 매달려서 지금은 직원이 70명이나 될 만큼 성공하였다.
앰프의 특성
진공관 앰프로서는 다른 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300B 싱글 엔디드 출력 방식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이며 특유의 아름다운 울림을 간결한 구성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겉과 속
하나의 EI 타입 전원 트랜스를 가운데에 두고 두 개의 출력 트랜스가 가운데로 살짝 틀어진 모습이 대단히 참신하게 느껴진다. 원래 본 제품은 검은 색의 산화처리된 알루미늄 패널로 되어 있는데, 시청한 제품은 500$ 추가 부담으로 주문되는 24K 금도금이 전면 패널과 손잡이에까지 되어 있어서 아담하면서도 대단히 품위 있게 느껴졌다. 이건 한국에 수입된 앰프들이 공통이라고 한다. 전원 트랜스와 마찬가지로 양 옆에 입력 선택 노브와 밸런스 조절 노브를 대칭으로 두고 있는 볼륨은 손잡이가 잡기 좋게 크고 돌아가는 조작감도 부드러운 편이었다.
입력 선택은 모두 RCA 타입 단자만 연결되는 CD/AUX-1 /AUX-2 셋 뿐으로 매우 간결하다. 앰프 상단은 크롬 도금의 스테인레스로 거울처럼 비추어진다. 이 야무진 모습의 앰프에서 굳이 흠을 잡는다면 무관심하게 인쇄되어 고답적으로 보이는 “CARY” 로고 정도.
이 앰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헤드폰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단자가 전면에 있고, 별도의 온/오프 스위치가 앰프 상단에 누름식 버튼으로 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위치를 누르면 당연히 스피커 출력 단자로는 신호가 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10A라는 충분한 용량의 릴레이가 사용되어 있다.
고가의 앰프로서 헤드폰 단자를 부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 것 같지만, 파워 트랜스포머를 거치지 않은 순수한 300B 진공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편으로는 “한 사람만을 위한 앰프"라는 제작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류장치는 윗면 상단에 볼트로 고정하여 앰프 전체를 방열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원 필터링에는 두 개의 1200uF와 하나의 100uF짜리 스프라그 전해 컨덴서가 사용되고 있으며 폴리스티렌 캡으로 바이패스시키고 있다. 출련관인 300B의 플레이트 전압은 430volt이다. “Soft start” 회로를 사용하여 먼저 튜브의 필라멘트에 전원을 공급하고 60초가 지나면 hi-voltage plate에 전원을 공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Warm up은 겨우 3분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입력단에는 역시 3극관인 6SN6가 세 개 사용되었으며 한 개 반씩 분담하여 좌우 채널 증폭을 담당한다. Dannis Had의 주장처럼 이 앰프는 완전한 No-feed back 설계로 되어 있다. 접속 부분이 은 도금된 소켓에 꽂혀있는 300B 진공관은 CETRON사 제품이었다. 항아리 모양으로 널리 알려진 300B 진공관은 고전적인 3극관으로서 단지 세 개의 요소로 구성된다. Cathode, grid 그리고 plate.....별도의 필라멘트가 Cathode를 달구는 다른 진공관과 달리 300B의 Cathode와 필라멘트는 하나로 합쳐져 있어서 직접 가열된다.
출력 트랜스는 이 앰프만을 위하여 제조된 것으로 EI laminate 타입이고 무산소 동선으로 감겨져 있다. 하나의 큰 자석 덩어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air-gap을 두었는데 이것은 싱글 엔디드 앰프의 경우 1차 권선을 통하여 바이어스 전류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앰프 내부 배선은 모두 테프론 코팅의 은선으로 하드와이어링 되어 있으며, 손이 많이 간 듯한 만듦새였다. 저항들은 1% 메탈 필름 타입이었고, 바이 패스 컨덴서는 Kimber film이었다. 조작감이 좋았던 볼륨과 밸런스 조절 장치는 역시 최고급품 중에 하나인 Noble사 제품이었고, 출력 커플링 컨덴서는 특별 제작된 Oil 타입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최상의 부품과 세심한 노력이 가해진 작품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세팅
시청은 다음과 같은 기기를 동원하여 이루어졌다. 여러 스피커를 물려보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작은 출력에도 불구하고 다인 오디오를 잘 울려 주어서 오히려 앰프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게 되었음을 밝혀 둔다.
Speaker : Dynaudio Contour 2.8
CD Player : Wadia 21
Interconnect Cable : Super Conductor
Speaker Cable : Transparent Super MusicWave
Power Cords : XLO Type 10 Reference
Line Conditioner : Tice Powerblock II
시청평
C. Bartoli & A. Schiff/ Italian Songs Canzoni (Decca)
예전에 들은 바 있는 Manley 300B SE/PP의 기억을 되살려 비교하면 음상이 뒤로 물러선 타입이고, 음조의 균형이 고역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음상의 정위 에서는 Cary가 앞서고 음장의 크기에서는 역시 푸시풀 방식의 Manley가 우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Bartoli의 목소리는 아주 곱게 다듬어져 있는데, 음상이 정말 작다. 핀포인트 정위하는 음장 재현 능력은 실제 연주회장의 음향에 접근하고 있다. 때문에 작은 음량으로도 충분히 음악에 잠겨 들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톤이 좀 높은 편인데 때문에 필자로서는 좀 더 가라앉아 차분하면서 인간적인 온기가 스민 Manley 300B SE/PP의 보컬재생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두 앰프 모두 다 소란스럽지 않은 고요한 음장을 가지고 있고 컬러링도 심하다고 볼 수 없지만, 비교적 Cary는 고역 부분에서의 화려함이 조금 더 돋보이고, 선이 가는 조금은 차가운 음색이다.
Shiff가 연주하는 뵈젠도르프 피아노는 어떠한가? Cary 앰프가 분명히 고역은 조금 더 뻗어주는 것 같지만 Manley 300B SE/PP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짙은 음색이 인상적이다. 펑퍼짐한 울림을 들려 주는 일부 진공관 앰프를 혐오하는 필자에게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소리였다. 물론 실제 소리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다. 듣기에는 좋다고 하지만....
역시 저역의 음정이 묻힘 없이 하나하나가 명료하며 저역과 고역의 음색이 일치되어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C. Saint-Saens/ Le Canaval des animaux (harmonia mundi) Ensemble Musique Oblique
전체적으로 음장이 고요하고 울림은 은은하다. 고역은 부드럽게 roll-off 된 듯 하고 저역의 뻗침도 덜하다. 대신에 음계에 표현된 음만큼은 명료하게 내어 주고 있다. 탄력있고 유려한 음색과 작은 음 하나하나를 살려서 들려주는 디테일은 역시 대단하다. 크기가 아주 축소된 음상에 대해서는 종래 빈티지 진공관 앰프 애호가들에게는 낯선 부분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은 현대 오디오의 추세라고나 할까. 줄어든 음상 만큼 여백은 넓어지고 음악을 전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주회장의 소리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단, 음상의 윤곽은 Mark Levinson No.331에서 만큼은 샤프하지 않다. 소리결의 끝이 살짝 다듬어진 인상이 든다..
Roberto Schumann/ Piano Concerto (DG)
Pf) M. Pollini, Cond) C. Abbado, Berliner Philharmomniker
물방울처럼 맑고 영롱한 피아노의 음색하며 비단결처럼 매끄럽고 윤기있는 현의 울림이 너무나 아름답다. 소리결에서 거칠은 부분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피아노의 저역까지 뭉개지지 않으며 부풀음도 전혀 없다. 싱글 앰프답게 디테일이 엄청나서 아주 작은 소리까지 다 들려주는데, 이런 인티 앰프는 난생 처음 보는 것 같다. 다만 더블 베이스 소리만은 상대적으로 아주 약간 숨는 경향이 있다.
음상의 촛점이 잘 맞고 멀리 있는 것처럼 대단히 작게 느껴진다. 윤곽은 절대로 날카롭거나 예리하지 않다. 음상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으며 음량이 커져도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니, 음장재현 능력은 우수하다. 음장은 분명 넓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극히 고요하고 투명하여 감상자를 음악 공간으로 흡입해 버릴 것만 같다.
Levinson No.331로 바꾸어 연결하여 보니까 음정이 약간 차분해지고 음상의 윤곽이 두드러져 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면서, 음장이 앞 뒤 양옆으로 넓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음도 밝혀 두어야겠다. 확실히 작은 공간에서는 스피커가 아주 까다롭지 않은 이상은 이 정도 앰프로도 많은 음악을 즐길만한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음량은 크게 올리지는 않았다. 볼륨을 한 10시 방향에서 12시 방향 사이로 조정하면서 들었는데, 그 정도로도 음악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었다.
출력에 따른 아쉬움은 별로 느낄 수 없었다. 작은 음량으로 들었음에도 아늑하면서 섬세한 분위기만으로 필자의 연필과 메모지를 떨어뜨리고 오직 음악만을 듣게 만들고 말았다. 거시적인 다이내믹스를 크게 설정할 수는 없었어도 섬세한 음량변화까지 놓치지 않고 들려주는 데에 진심으로 감탄했으며 , 이 앰프가 들려 주는 작은 세계 속에서 내내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Chick Corea/ Works (ECM)
결코 어둡지 않게 음계 위 부분에서 roll-off된 고음의 밸런스가 음악적인 측면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9번 트랙 La Fiesta에서의 히스소리는 자극적이지 않으며 심벌, 캐스터넷 소리는 리얼하다.. 디테일이 좋으면서도 거칠음이 없으며 산만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구석 구석 손이 가지 않은 부분이 없이 정교하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재즈 음악을 들려준다. 여기에 없는 것은 라이브 재즈의 요란스럽고 왁짝지껄한 분위기, 그리고 즉흥적인 의외성이다. 듣기에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즈의 거친 에너지를 재현하고자 하는 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Eagles/ hell freeze over (GEFFEN)
팝 음악까지 대응할 수 있는 Cary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기타의 핑거링이 가볍고 드럼에 부딪히는 스틱은 사뿐하다. 매끄럽고 약간은 윤기있게 그려가는 음의 전개는 달콤하기까지 하다. 어느 부분에서도 품위있고 아늑한 분위기를 결코 잃지 않는다. 청중의 박수소리나 환호성은 음의 모서리가 조금 무디게 되었지만, 뛰어난 음장 재현 능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Namie Amuro/ Sweet 19 Blues
Cary로 듣는 음악은 항상 잘 정돈된 컨서트 홀에서 녹음된 것처럼 울림이 순하다. 합성된 전자 음향이 흡사 어쿠스틱 악기가 내어주는 울림으로 여겨질만큼 매끄럽게 울려준다. 소란스럽거나 자극적인 부분은 없다. 분명 대형 TR 앰프처럼 스피커의 저 밑바닥부터 긁어 올리는 깊은 저역은 없지만 기분좋게 깔리는 베이스 기타와 무게를 갖고 단단하게 떨어지는 드럼은 싱글 튜브 앰프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앰프의 저역 특성은 정말로 훌륭하다. 음정의 명료함이라든지, 순간 반응, 페이싱 등등......단지 스케일만이 작다. 구태여 괴물같이 큰 대출력 앰프와 비교하면서 저역 특성이 어떻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 정도 수준의 앰프를 논할 때 원하는 것은 음악의 내용을 충실하게 들려주는가 하는 부분인데, 어떤 경우에도 수준 이상의 실력을 나타내는 좋은 앰프로 판단된다.
결론
비용에 상관없이 광대한 음장 공간과 초저역에서 초고역까지 평탄한 응답을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하이파이광에게는 한정된 출력의 인티 앰프가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히 이 처럼 작은 싱글 엔디드 튜브 앰프에는 규모의 한계는 있다. 스피커를 터뜨릴만한 음량을 내어 줄 수는 없으며, 저역의 깊이라든지 음장의 넓이는 규모가 큰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소리가 아니고 음악이라면? 아마도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이 귀여운 앰프가 들려주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오디오 샵에 가서 보라. 얼마나 많은 앰프가 있는지 모른다. 그 가운데서 이 작은 Cary CAD-300SEI는 음악 애호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앰프로 위치한다. 인티그레이티드 타입 앰프로서의 합리적인 구성, 무리 없는 필요 충분한 출력 설정, 정교한 만듦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련된 음질이 장점이다. 규모만 작을 뿐 내어 주는 소리의 질은 현대의 제 1선에 선 앰프들에 못지 않다.
조용한 밤에 불을 끄고 진공관의 불빛을 감상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푹 빠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히려 호사스럽다고 할 만큼 매력적인 앰프이다. 적당한 소형 스피커와 매칭하여 깊은 밤 별 빛 속에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은 시청을 마치고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취미성을 내세우기 전에 이 앰프는 규모를 초월하여 현대의 어느 앰프 못지않은 음색의 아름다움과 디테일의 높이를 갖추고 있다.
별도의 프리 앰프가 필요없는 인티그레이티드 구성, 값비싼 300B 튜브를 채널당 하나씩만 사용한 점도 대단히 마음에 든다. 진공관을 바꾸어 테스트거나 유지하기에 부담이 적으니 말이다. 거기에 헤드폰 출력 단자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이 앰프의 편의성은 튜브 앰프로서는 달리 비길 데가 없을 듯.
우아한 외양, 매끄럽고 선명한 울림을 들려주는 Cary 300SEI 앰프는 크기는 작지만 다른 앰프들 사이에서 은은히 빛나는 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