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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베스 모니터30 스피커

하드웨어리뷰

by hifinet 2006. 8. 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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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acherna@hanmail.net)

서론 – 하베스와 BBC 모니터
하베스 스피커는 필자가 직접 써본 적은 없지만, 대단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브랜드다. 90년대 초반 북셀프 스피커로 최고의 인기 제품으로 손꼽히던 스피커가 바로 하베스 HL 컴팩트였다. 일본 스테레오 사운드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당시 하베스 컴팩트의 인기는 몇 년 전 B&W 노틸러스 805 정도에 비견할 만 했다. 가녀리면서도 촉촉한 소리도 그렇고, 고급스러운 나무결의 인클로저와 멋지게 조화된 플라스틱제의 검은색 우퍼는 입문자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하베스에는 HL5라는 상급 모델도 있었지만, 그 인기는 컴팩트에 비할 바 아니었다. 컴팩트 스피커는 그후 컴팩트7, 골드 등으로 조금씩 변화되었고 점진적으로 향상되었을 법한 음질과는 반대로 B&W, 다인오디오, JM Lab 등에 밀려서 조금씩 인기를 잃어갔다. 한 때 HL P3라는 초소형 스피커가 그 인기를 잠시 누렸다.

하베스의 HL P3는 사실 LS3/5A를 계승하는 제품이었다. 9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 오디오 경력이 꽤 되는 분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던 영국제 소형 스피커가 역시 BBC의 공식 모니터 스피커인 LS3/5A다. 로저스, 스펜도어, 하베스에서 모두 LS3/5A를 생산했지만, 가장 인기를 모은 제품은 로저스였다. PC 통신 동호회에서 이 스피커의 장단점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82dB라는 낮은 감도에, 다이내믹스나 대역 폭의 부족 등 단점도 많았던 제품이지만, 핀 포인트 적인 이미지 재생이라든지, 중역대의 왜곡이 적다든지 하는 매력을 지닌 제품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세월이 흘러서 스펜도어, 로저스 등의 이름이 조금씩 잊혀져 갔고, 홍콩에 본사를 둔 업체에 넘어갔다는 소식들이 들렸다. 그렇지만 하베스는 소 규모의 영국 스피커 회사로는 드물게 살아 남았고, 적지만 알찬 스피커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다. 

모니터 40과 모니터 30 스피커
모니터 40 스피커는 작년에, 그리고 하베스 모니터 30 스피커는 올 초에 하이파이넷 시청회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 바 있다. 하베스 모니터 40은 BBC 방송국이 인증하는 공식 모니터 스피커다. 기억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로저스 등에서 생산했던 LS5/8과 PM510을 대체하는 제품이다. 잠깐 더 추가하면 모니터 30은 LS5/9, 그리고 모니터 20은 LS3/5A의 후속 기종으로 모니터 40은 영국 공영 방송국에서 인증한 스피커지만, 반대로 미국의 앱설루트 사운드 매거진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 하이파이넷에서 시청회를 기획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로저스 LS5/9에 오디오 리서치 프리 파워를 물린 소리를 듣고 감탄한 적이 있어서인지, 모니터 30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Harbeth Monitor 40
모니터 40 스피커는 최고급 기종답게 3웨이 구성이다. 레이디얼 콘을 사용한 우퍼는 25cm 직경을 갖고 있다. 모니터 30과 달리 하베스 모니터 40은 대단히 고전적인 인상을 준다. 최근 스피커들은 바닥 면적을 가급적 줄이도록 설계한다. 트위터와 우퍼의 확산 특성 차이를 고려하는 이유도 있고, 또 홈 시어터 환경에서는 센터 스피커가 가운데 놓여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있다. 북셀프 스피커라면 거의 6.5인치 구경의 우퍼를 사용하는 것이 흐름이다. 모니터 30 스피커의 경우 우퍼의 크기와는 별개로 실제 용적으로 보면 준 대형 스피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스탠드가 필요하지만, 북셀프 스피커라 하기에는 너무 크다. 때문에 이 스피커를 방에다 두고 사용하기는 힘들 듯 하고, 40평 이상의 아파트 거실에서나 적합해 보인다.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 들은 모니터 40은 현대적인 고성능 트위터를 사용해서 고역의 해상도나 디테일, 음색 재생등의 제반 특성을 최신 스피커로 끌어올린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원래 용도인 스튜디오 모니터로서 갖추어야 할 음색이나 밸런스 측면에서의 중립성은 잘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저역의 반응이 느려서 양감이 풍부한 이전 브리티시 사운드다운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때 느낌으로는 하베스 스피커를 잘 울려주려면 저역을 약간 타이트하게 제동할 수 있는 앰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여졌다. 시청회에서는 dCS 엘가를 크렐 FPB-300C 파워에 직결해서 구동했는데 아무래도 저역의 통제 부분에서는 원활하지 않았다. 크렐 앰프의 제동력이 TR 앰프 치고는 약간 느슨한 편인데다가 아무래도 전문 프리앰프에 비해서 드라이빙 능력이 부족한 엘가를 프리로 사용하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에어의 K5 프리앰프를 더해서 들어본 결과 저역에서 보다 정돈되고 자연스러운 좋은 소리를 내주었다.

Harbeth Monitor 30올해 초에 시청회에 등장했던 모니터 30 스피커는 40에 비해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이즈를 갖고 있었다. 나사가 많이 박힌 디자인은 집에서는 달마시안 같다는 핀잔도 들었다. 그래도 예전에 동경하던 스피커였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그 점 같은 나사들이 이뻐 보이기만 한다. 모니터 30 스피커의 시청회 때에는 우퍼에 다소 문제가 있었고, 사이러스 풀 시스템의 성능도 모니터 40 스피커 때보다는 낫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들려주는 소리만 놓고 보면 모니터 40 스피커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아주 달콤한 고역과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중역, 힘 있는 저음을 들려주어 한 번 사용해 보고 싶다는 인상에 남았다. 필자가 주목했던 부분은 보컬 재생에서 목소리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재생된다는 점이었다. 중역대의 착색을 알아보는 데 보컬을 들어보는 것 만큼 좋은 테스트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모니터 30은 보컬 재생에서, 메탈 돔을 사용한 스피커들이 겪는 것처럼 너무 얇게 들린다거나 금속적으로 반짝인다거나, 치찰음이 과장되는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고음과 저음에서 완벽하게 같은 톤의 목소리가 재생된다. 웬만한 북셀프 스피커는 다 들어봤지만, 이 부분에서는 필자가 들어본 어떤 제품보다도 우수한 편이었다. 모니터 30에 대한 스펙이라든지, 특성에 대해서는 문한주님의 리뷰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감상
편의상 소니 XA-3000ES를 소스 기기로 사용하고 클라세 SSP60 AV 프로세서와 CAV180 멀티 채널 파워앰프를 통해 하베스 모니터 30을 감상했다. 수입원에서는 바우하우스에서 제작한 스탠드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가 써 오던 에포스 ST12를 임시로 물렸다. 바로 곁에 틸 CS2.4 스피커를 두고 바꿔서 연결해 가면서 수 차례 비교했다. 시청회 때도 사이러스 시스템을 고정한 상태에서 틸과 비교해 들었기에 하베스 소리의 특징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소리의 원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면 스피커에서 감상자 쪽으로 조금 당겨져 있는 편이다. 우스개 소리로 뒤로 나자빠진 소리를 내는 틸은 대단히 넓은 음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일반적인 규모의 가정 공간에서는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주위에 가재도구가 적은 빈 공간에서 틸 스피커의 장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소리를 보다 집중력 있게 감상하는 데에는 귀에 다가와 속삭여주는 모니터 30 쪽의 친절한 성향이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모니터 30의 단점도 있는데, 스펙에 나와 있듯이 감도가 낮아서 앰프의 출력을 보다 더 요구한다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밸런스 부분을 살펴보겠다. 전반적으로 보면 중고역대의 자연스러운 음색과 도톰한 살집이 돋보인다. 그리고 베이스는 두툼하지는 않고 가볍고 산뜻한 경향이며, 양감이 풍부해서 따스하게 부풀어 있다. 역시 B&W나 JM Lab 등의 스피커에 비하면 고음의 뻗침은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SACD와 CD의 차이점 같은 것은 조금 덜 두드러지게 들린다. 하베스 모니터30에서는 좋지 않은 녹음도 보다 듣기 좋고 달콤하게 들려주는 경향이 있다. 귀를 스피커 아주 가까이에 들이대고 듣더라도 분석적이거나 에어리한 느낌은 조금 낮춰진 인상이다. 그렇지만 관현악곡을 재생해 놓고 각 악기가 연주하는 음표라든지, 마이크로다이내믹스 특성, 디테일 면에서는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틸보다도 더 잘 들리는 느낌이 드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귀에 다가와서 속삭이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가격 대를 아예 떠나서 이야기해도 일급이라고 생각한다. 살바토레 아카르도의 바이올린 모음곡을 들어보면 현과 활이 마찰하면서 들리는 여러 가지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표현된다. 음량을 상당히 올린 상태에서도 리얼하다는 인상만 강해질 뿐, 귀에 거슬림 없이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린다.

중역대도 아주 자연스럽고 가지런해서 여성 보컬 감상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흔히 듣는 레베카 피전, 캐롤 키드, 제니퍼 원스, 노라 존스 등의 보컬은 정말 유연하면서도 달콤하게 들린다. 다인 오디오 류의 화려하고 윤기있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보다는 모니터 30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덜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틸과 비교해보면 이 부분에서 모니터 30이 분명히 우위에 있다. 같은 목소리에서도 손으로 만져 봤을 때의 느낌 같은 질감에서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모니터30은 아주 매끄럽고 인위적인 느낌이 적다. 번쩍거리지도 않고, 기름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생하고 부드럽다. 잠깐만 들어보더라도 경이적일 만큼 자연스러운 소리를 들려준다는 하베스의 자신감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음에서는 전방의 리플렉스 포트에서 방출되는 저역의 에너지 덕분에 조금 더 풍성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피아노의 저음은 조금 더 확장된 것처럼 들린다. 아주 약간 덜 통제된 것처럼 들리는 우퍼의 느낌은 왕년의 하베스 컴팩트의 특성과 닿아있다. 캐비닛의 두께가 매우 얇고 전면 방사 포트를 활용해서 저음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얻어진 특성이다. 그리고 통제력을 약간 희생해서 얻은 관현악 감상에서의 스케일 감은 북셀프 스피커로서는 이례적일 만큼 대단히 뛰어나다. 엄격하게 들어보면 저음의 확장성에서는 북셀프 스피커의 한계를 지니고 있어서 제니퍼 원스의 헌터에서 the way down deep은 퍼커션의 기본음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다. 부푼 듯한 저음 덕분에 대부분의 음반에서는 이런 약점이 잘 드러나지 않고, 아주 낮은 저음이 녹음된 CD에서나 드러나는 수준이다. 하베스를 듣다가 캐비닛의 공진을 엄격하게 통제한 틸 CS2.4 스피커를 들어보면 보다 깊이 있는 저음을 들을 수는 있지만, 가족들에게 물어봐도 음악 감상의 즐거움은 역시 하베스 쪽이 우세하다.

결론
모니터 30이라는 스피커가 나온지는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 기원이 되는 LS5/9 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갈고 닦여진 스피커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단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던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일 듯 하다. 하베스가 BBC 모니터 공급자로 건재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완성도 높은 스피커를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한주 필자님이 리뷰하신 내용을 보고 스피커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리뷰 내용을 보고 하실 말씀이 참 많았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 역시 오디오 평을 쓰기 때문에, 다른 필자 분의 글을 보면 행간의 의미를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는 편이다. 그래서 구입한 다음에는 금새 이 스피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워낙에 많은 제품을 접하고 쉽게 포기하는 필자이긴 해도 이렇게 애정을 갖게 된 이상에는 내놓기 너무 버거워질 듯 하다. 다행히 BBC 모니터라면 금새 신제품이 나와서 사람을 애태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감히 우수한 스피커라고 부르려면, 우선 다른 스피커에 비해 돋보이는 장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결정적인 단점이 없어야 한다. 모니터30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래 지니고 있으려면 맘에 들지 않는 음반이나 시스템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품성과 함께 다른 제품에서 보상할 수 있는 장점을 하나 지니고 있어야 한다. 모니터 30은 어떤 음반도 들을 만하게 들려주는 여유로운 멋을 지닌 녀석인데다가, 중역대의 재생은 가격대를 불문하고 최고 수준이다. 위화감 없이 자연스러운 목소리의 재생이란 과제는 최근 필자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니터 30의 감도가 낮아서 진공관 앰프로 물릴 수 있을지, 튜너를 물려보면 어떨까 여러 가지 생각과 염려에 골몰하면서도 근래 들어본 오디오 중에 가장 큰 즐거움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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