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리뷰

윌슨 오디오 그랜드 슬램 X-1 스피커

hifinet 2006. 8. 6. 14:29
Posted by 문한주 on 02/22 at 08:58 AM

온라인 오디오 커뮤니티에서 유통되는 얘기는 오프라인에서 돌아다니는 얘기에 비하면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다. 오프라인에서 확대 재생산 되는 각종 오디오 관련 야사(野史)는 오디오 애호가에게 호기심을 불 붙이는 각종 고급 제품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 특히 멋진 자태를 정면으로 바라보기에도 엄두가 나지 않아 힐끗 훔쳐보기만 했던 고급 오디오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는 그저 듣는 것 만으로도 아라비안 나이트 못지않은 끝없이 환상과 동경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필자는 윌슨 오디오의 그랜드 슬램을 코포 사운드 시청실에서 처음 마주쳤다. 그랜드 슬램을 보면서 받은 인상은 일상적인 스피커와 다른 세계의 존재감을 준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비슷한 환상을 일으킬 수 있는 제품으로는 B&W의 노틸러스 (앵무조개 모양의 인클로우저)라거나 골드문트의 에필로그 (탁월한 디자인으로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소문이다)가 필적할만하다. 앞서 세 제품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지만 크기면에서 위압감을 주는 것으로는 WEGG의 루나1을 꼽을 수 있을것 같고, 이보다는 부담이 적은 슬림한 제품을 생각해본다고 하더라도 트라이앵글의 마젤란이라던가 다인 오디오의 컨피던스 템테이션이 떠오른다.

겨우 두어 시간의 청취만으로 제품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것이므로 이 글은 리뷰라기 보다는 제품을 통해서 얻은 인상을 정리하는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시청실에 미리 세팅되어 있는 제품은 마크레빈슨 CD31.5L 트랜스포트와 360SL 디지털 프로세서 (44.1kHz), 핼크로 dm 10 프리앰프와 dm 58 파워앰프였고 스피커 케이블은 트랜스패런트 레퍼런스 XLS5, 인터커넥터는 트랜스패런트 레퍼런스 밸런스드, 파워케이블은 트랜스패런트 파워링크 수퍼, 디지털 케이블은 트랜스패런트 AES/EBU가 사용되었다.

코포 사운드의 AV시청실은 일반적인 가정에 비해면 흡음이 많은 편이고 공간도 그리 넓다고 볼 수 있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랜드 슬램에는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듯 했다.

이 제품의 제일가는 특징이라면 힘들이지 않고 실연의 느낌에 버금갈 만큼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자체적으로 증폭기를 가지고 있는 제품이 아닐까 싶을 만큼 여겨지는 술술술 풀어내는 소리는 아마도 윌슨 오디오를 특징짓는 특색이 아닐까 싶다. 그랜드 슬램에 비하면 가격이 1/3도 안되는 와트/퍼피 시스템 7에서도 어느 정도 이런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좀 더 직접음이 먼저 감지되는 편이라고 봐야겠지만...) 그에 비한다면 다른 스피커들은 (상대적으로) 파워앰프에 떠밀려서 뱉어내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제품의 이런 특성을 감안하자면 앰프의 선정시에 출력 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최상급의 제품이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핼크로와의 조합은 서로의 장점이 잘 맞아떨어지는 상생의 매칭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다음 특이한 점은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스윗 스팟이 좁다는 점이다. 앉았을 때와 일어섰을 때의 차이가 상당했고 (서서 들을 때는 코맹맹이 소리가 감지된다) 스윗 스팟에서 좌우로 치우쳐 앉으면 다르게 들린다. 마치 광학적으로 스윗 스팟에 포커스를 맞춘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제품의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음상의 크기가 비대해 진다거나 하는 심각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랜드슬램은 여덟 개의 박스로 구성되어 있고 각 박스는 전후로 조정하거나 각도를 조절해서 설치될 환경마다 다른 시청 높이나 시청 거리를 최적화 시킬 수 있게 되어 있다. 스윗 스팟의 크기도 넓게 혹은 좁게 조절이 가능한데 이 조절은 잘 훈련된 전문가들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테너 페터 슈라이어가 부른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들어보면 다른 스피커를 통해서 들었을 때와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안좋은 제품, 특히 대역의 밸런스 상에서 문제가 있고 왜곡이 있는 제품의 경우는 목소리가 빳빳하게 경직되어서 군인이 부른 듯이 들린다. 그리고 특정 대역을 강조해서 해상력이 있는것처럼 느끼게 조작한 제품인 경우는 페터 슈라이어의 나이가 젊어진듯이 들리는 경우가 있겠고 이런 유혹을 이겨내고 정석대로 잘 만들어 준 좋은 스피커에서는 성악가의 육체적인 나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랜드 슬램을 통해서 들리는 목소리는 성악가의 생물학적인 나이가 그럴듯하게 재현되는 듯 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살의 탄력 정도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페터 슈라이어의 목소리는 젊은 사람의 양 볼에 솜을 약간 넣었을 때 그 상태에서 소리를 내는 것처럼 약간의 늘어짐이 나타나게 된다. (필자는 아직 30대라서 50대 이상의 신체적인 상태를 상상할 수 없어서 이런식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래서 야윈 소리라기 보다는 사진으로 보는 정도의 체중과 살을 가진 육체에서 비롯되는 기름지고 여유 있는 소리로 들린다.

우퍼의 구경이 커서 몸으로 느껴지는 저역을 쉽게 낼 수 있지만 위압적이지 않으며 음악적이다. 어떤 스피커는 배가 울릴 정도로 저역을 내지만 불쾌함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불쾌함이 들지 않는다. 그 공로의 일부는 매칭시킨 핼크로 앰프에 돌려야 할것 같다. 아마도 이정도의 저역을 공동주택에서 소화하려면 바닥에 대해서 보강 공사를 한다거나 적절한 대안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앞서서의 스윗 스팟이 좁다는 미스테리 외에도 작은 음량으로 재생하더라도 실제 공연장에 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 또 하나의 미스테리가 될 것 같다. 굳이 볼륨을 크게 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해상력이 대단히 훌륭하며 잘 엔지니어링 되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것 같다. 그래서 모두 잠든 사이에 조용하게 음악을 틀면 주변에 그다지 방해될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장된 긴박감 없이도 생생하면서도 여유롭게 음악의 중심에 데려다 주는 이 오디오를 곁에 둔 사람에게 정말로 축하드리고 싶다. 연주회에 가까운 그의 공간에서 되도록이면 자주 연주회가 열리기를 바라며 그런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면 더 풍요로운 생활이 될 것 같다. 억대의 스피커와 수천만원짜리 앰프라면 분명히 값이 비싼 오디오지만 수십년 전에 오디오를 한 파이오니어들이 아파트 몇 채를 살 수 있는 대금을 오디오에 지불했다는 전설적인 얘기에 비하면 그때보다 더 비싸다고 보기도 힘든 것 같다. 감가상각이 기껏해야 몇년인 억대 수입 자동차도 즐비한 시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