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유명한 연주자들, 아루투르 루빈스타인, 야샤 하이페츠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마찬가지로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역시 유대계 음악인이다. 아버지인 데이비드 아쉬케나지 역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한 엘리트 피아니스트였고 어머니는 배우 출신이었다고 한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도 역시 아버지처럼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고, 유명한 레프 오보린에게 배운다. 오보린은 초대 쇼팽 콩쿠르 대회의 우승자로 그에게 배운 제자 역시 쇼팽 콩쿠르 출전을 꿈꾸었을 것 같다. 아쉬케나지는 1955년 쇼팽 콩쿠르에 참여하는 데 준우승에 머무른다. 


당시 우승자는 폴란드 피아니스트인 아담 하라셰비츠였다. 폴란드 심사위원장의 입김이 강해서였을까? 이에 불만을 품은 심사에 참가했던 아르투로 베네디티 미켈란젤리는 아쉬케나지에게 우승을 줘야 했다면서 심사위원을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슷한 일이 1980년 대회에 한 번 더 있었다. 이보 포고렐리치의 3라운드 탈락에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격렬하게 반응하고 심사위원을 사퇴했다.  


다음 쇼팽 콩쿠르인 1960년에는 아루투르 루빈스타인에게 극찬을 받은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서방 세계 연주자로는 처음 우승하고, 1965년에는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우승한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처럼 우승자보다 더 유명해진 준우승 피아니스트라면 아마 1970년도 쇼팽 콩쿠르의 미츠코 우치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우승자는 개릭 올슨이었는데 이 때도 출전자가 심사 결과에 불복하는 잡음이 있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역사가 조성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이처럼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후 아쉬케나지는 브뤼셀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경연에서 우승,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국제 경연에 참가해 영국 피아니스트인 존 오그든과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다. 잦은 콩쿠르 출전이 쇼팽 콩쿠르 준우승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그후에 그의 인생을 뒤바꾼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난다. 1961년도에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유학생과 결혼한다. 아쉬케나지는 과거에 정보원으로 의심받아 KGB에 체포된 바도 있었고, 외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해외 연주 활동에 통제를 심하게 받았을 것이다. 


부인의 가족 방문을 위해 어렵게 해외 여행 허가를 받아 출국하고 이것으로 소련에서의 커리어는 그대로 끝낸다. 소련 당국의 소환에 불응하고 런던에 눌러앉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63년부터 영국의 데카 레이블로 음반을 녹음하고 있다. 


1970년대 초에는 부인을 따라 아이슬란드 국적을 취득했고 80년대 후반 부터는 스위스 루체른에 거주하고 있다. 장남이 피아니스트이고 둘째 역시 클라리넷 연주자이라고 한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는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1987년부터 94년까지는 로열 필하모닉을 지휘했고,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체코 필하모닉에 있었다. 하지만 지휘자로서의 평판이나 경력은 피아니스트에는 확실히 못 미친다. 


음악 팬들로서는 그가 장년 이후에는 지휘에 전념하다보니 피아니스트로서 더욱 다양한 레퍼토리를 녹음해주지 못한 부분이 아쉬울 정도다. 


앞서 말한대로 데카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베토벤 소나타와 피아노 협주곡, 쇼팽,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음반 등이 유명하다. 심지어 같은 레퍼토리를 여러번 반복 녹음했다.  


바흐 음반은 그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라고 할 만큼 상당히 드문 편이다. 자료에보면 '평균율 곡집'과 '프랑스 조곡' 음반이 있었다. 유튜브에도 프랑스 조곡 연주의 일부가 올라와 있다. 현재 공연 활동은 공식적으로 은퇴한 상태라고 하는데 대신에 평생의 녹음 활동에서 미진했던 바흐 녹음에 다시 도전한 셈이다. 


아시다피시 바흐의 키보드 음악들은 원래 셈 여림 표현이 부족한 하프시코드나 오르간을 위해 쓰여졌고, 이를 피아노로 옮겼을 때는 다른 음악이 된다. 캐나다의 글렌 굴드는 파격적인 연주로 이름을 날렸다. 반대로 바흐 음악을 피아노로 충실하게 연주하려던 연주자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니콜라에바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과연 아쉬케나지는 어떨까.     

 

이 음반의 타이틀 곡으로는 유명한 이탈리아 콘체르토가 제일 먼저 나와 있지만,  실제로 첫 번째 트랙은 작품 번호 BWV831의 프랑스풍 서곡이다. 전체 곡 길이가 31분이나 되고 첫 번째 곡 'Overture'만 12분에 달한다.  


이 프랑스풍 서곡은 바흐의 음악에서도 잘 알려져지 않고 음악 애호가들조차 전혀 익숙하지 않은 레퍼토리다. 음원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이 음반을 녹음한 피아니스트가 많지 않다. 유튜브에 리히테르의 연주가 오디오로 올라와 있기는 하다. 


반대로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번호 BWV971의 이탈리아 콘체르토는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연주로 화려하면서도 발랄한 멜로디가 너무나 귀에 익숙한 곡이다. 바흐 음악 연주가로 꼽히는 굴드나 안드라스 쉬프 외에도 브렌델, 페라이어 등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녹음한 인기곡이다.  


물론 이탈리아 콘체르토와 이 프랑스풍 서곡이 묶인 이유라면 1735년에 두 곡이 함께 출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프랑스풍 서곡은 바흐의 음악이 아니라 장 바티스테 릴리라는 작곡가가 확립한 스타일로 장엄한 선율과 화려하고 빠른 전개로 구성된다.  


아쉬케나지는 특유의 생동감 있는 터치와 정교한 리듬감을 들려준다. 템포의 주관적인 변화를 배제하고 기계적으로 쳐 내려가는 것 같지만 물 흐르듯이 유연한 리듬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음악의 시작에서 끝까지 흔들리거나 주저함 없이 완벽하게 짜맞춰져 있다. 그의 전성기 시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처럼 틈이 보이지 않고 70대 후반의 나이를 생각할 수 없다. 


다음 곡인 작품번호 BWV989 이탈리아 풍의 아리아 변주곡(Aria variata alla maniera italiana)는 먼저 아리아라는 이름으로 주제 선율이 제시되고 여기에 다른 10개의 장대한 변주곡이 뒤따른다. 마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상하게 하는데, 아리아 자체는 빠르고 화려한 프랑스풍의 서곡에 비해 멜로디가 소박하면서도 간결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점점 화려해지고 구성도 복잡해진다. 연주 시간은 약 14분 정도로 1시간에 달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세번째 곡인 BWV974는 바흐가 알레산드로 마르첼로의 유명한 오보에 협주곡을 하프시코드 악보로 옮긴 것이다. 원곡 자체는 오보에의 명곡 중 하나로 특유의 우울하고 감성적인 음색에 맞춰 작곡된 멋진 음악이다. 물론 피아노로 듣더라도 멜로디가 귀에 착착 들어오지만, 건반악기를 위해 편곡된 만큼 원곡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네번째 곡인 이탈리아 콘체르토에서 아쉬케나지는 음악적인 고민 없이 경쾌하고 빠르게 직진한다. 앞선 세개의 음악과 달리 이탈리아 콘체르토는 유쾌하고 밝다. 마지막 프레스토 악장에서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술술 풀어내며 소리가 오르내리는 것이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현란하다. 


이 음반에 선택된 네 개의 음악은 마치 하나의 소나타나 교향곡처럼 들어 맞게 짜여져 있다. 결론적으로 이 음반은 어느 누구도 아닌 아쉬케나지 스타일의 바흐 연주라고 해야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음반의 구성이나 연주가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아서 뭔가 글을 남기고 싶었다.  


녹음은 데카의 피아노 음반들이 그렇듯이 고음이 억제되어 어둡고 매끄럽다. 공간감이나 투명도가 덜하고 평면적으로 들리는 점이 아쉬울 수 있다. 대신에 중저역 대역은 부드럽고 풍성한 울림으로 충실하게 담겨 있다. 대형 스피커에서는 저음의 그루브가 신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소형 스피커로 들을 때에는 큰 음량으로 자주 들어도 피로하지 않아서 좋았다.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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